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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18화 (21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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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2화

    콰직!

    본연의 권능을 되찾은 프로메테우스는 그야말로 엄청난 존재였다.

    이안이 어렵게 통과했던 괴수들을 잡초 짓밟고 나아가듯 사뿐히 돌파했으니,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코카서스의 의지가 빽 소리쳤다.

    [프로메테우스! 네놈이 그러고도 살아남을 성싶으냐? 시계탑의 죄인이면 죄인답게 얌전히 있을 것이지, 어딜 감히 탈출하려고……!]

    머릿속을 후벼 파는 괴성!

    그럼에도 프로메테우스는 아무런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안의 안위가 걱정되는 듯 반대쪽 손으로 이안을 감싸줄 만큼 여유로웠으니까.

    “견딜 만하신가?”

    “……아직 괜찮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시게. 내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움직여볼 터이니.”

    이것보다 더 빨리?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 의문은 빠르게 풀렸다.

    쾅!

    프로메테우스가 지면을 박찼다.

    한 번 찰 때마다 태산이 무너지는 듯 쩌렁쩌렁 울려댔으니, 하산하는 속도 역시 그만큼 빨라졌다.

    쾅! 쾅! 쾅! 쾅!

    최상급 지배자의 전력질주.

    그 무자비한 발걸음에 죽어 나가는 부하들을 지켜볼 수 없었을까?

    결국 코카서스의 의지가 직접 프로메테우스를 저지하고자 나섰다.

    쿠궁! 쿵! 쿠구구구구구……!

    태산이 요동쳤다.

    산맥 중 일부는 거대한 팔이.

    또 다른 일부는 몸통과 다리가.

    마지막으로 또 다른 일부는 머리가 되어 거인의 형상을 이루어냈는데, 그 덩치가 얼마나 거대한지 권능을 되찾은 프로메테우스를 손바닥 위에 올릴 정도였다.

    [죄인이여. 그대가 아무리 권능을 되찾았다 한들 이곳은 나의 영역이다. 여기서 날, 이 대자연의 주인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믿나?]

    도망치던 프로메테우스를 지면과 함께 통째로 들어 올린 코카서스의 의지가 엄중히 읊조렸다.

    [진심으로 그리 믿었다면 실망스럽군. 명색이 예언의 지배자였던 존재가 제 앞날조차 모른 채…….]

    [맞아. 내 능력이 좀 퇴화하긴 했지. 아까도 잘못 봤더라. 난 분명 이 수행자가 죽을 줄 알았거든.]

    [……내가 본 네놈의 미래는 다시 개처럼 바위산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제우스가 나설 것도 없지. 내 친히 그렇게 만들어주도록 하마.]

    덩치만 봐서는 코카서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산맥 자체가 거인의 형상을 이루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놀고 자빠졌구나. 코카서스.]

    [……뭐라?]

    [네깟 놈이 대자연의 주인? 내 모친께서 들으면 기가 차시겠군.]

    […….]

    프로메테우스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코카서스였다.

    그도 그럴 게, 프로메테우스의 모친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내 어머니이자 이 세계 그 자체였던 대지의 지배자 가이아 님의 적장자다. 두 발로 걷기 전부터 그분의 광활한 품을 거닐었지.]

    대지의 지배자 가이아.

    이제는 ‘옛’ 지배자로 전락해 버린 그녀의 이름을 직접 운운하자 코카서스의 기세도 한풀 더 꺾였다.

    [헌데 그런 내 앞에서 대자연을 운운해? 도망칠 수 있겠느냐고?]

    […….]

    [궁금하면 확인해 보든가. 너 같은 동네 뒷산 말고, 진짜 대자연의 혹독함 속에서 살아남은 내 힘을.]

    자신 있게 외친 프로메테우스가 손에 쥐고 있던 이안을 목덜미 쪽으로 옮겼다.

    “딱 붙어 있으시게.”

    “……네?”

    “거미처럼 말이야.”

    “아…….”

    “가능하신가?”

    “그 정도야 뭐.”

    “좋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린 프로메테우스가 더는 망설이지 않고 코카서스의 팔뚝으로 넘어갔다.

    “달려볼까.”

    그 커다란 팔뚝 위를 질주하기 시작한 프로메테우스의 목표는 바로 코카서스의 머리였다.

    [이놈, 어딜……!]

    그의 접근을 막고자 무수히 많은 괴물이 튀어나왔지만, 이미 여러 번 증명되었듯 그들만으로는 최상급 지배자의 앞을 막을 수 없었다.

    [막아! 막으란 말이다 이 노예들아! 저 죄인 놈을 놓치면 제우스와 맺은 계약이 끝나버린다고!]

    코카서스의 의지가 소리칠 때마다 팔뚝 위에 나타나는 괴물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리고 여러 번 증명되었듯, 무의미한 희생일 뿐이었다. 아니, 애당초 이 괴물들한테 생명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꼭두각시처럼 보였으니까.

    [오호라, 무슨 계약을 맺었기에 그리 호들갑이지? 코카서스?]

    [알 거 없다! 이 죄인 놈아!]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어.]

    쿵!

    결국 참다못한 코카서스가 반대편 손바닥으로 자신의 팔뚝 위를.

    정확히는 프로메테우스와 이안을 노리며 사정없이 내려쳐 댔다.

    쿵! 쿵! 쿵! 쿵! 쿵!

    그 모습이 마치 몸에 달라붙은 벌레를 때려잡으려는 듯 난폭했으나, 안타깝게도 유효하진 않았다.

    오히려 제 팔뚝만 박살 났으니 사실상 자학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

    [크아아아아아아악……!]

    놈이 미쳐 날뛰든 말든, 프로메테우스는 이안조차 숨죽이고 지켜볼 만큼의 집중력과 함께 팔뚝 위를 종횡무진 누볐으니, 이제 곧 코카서스의 머리가 지척이었다.

    [앞으로는 동네 뒷산 주제에 대자연 운운하며 까불지 말고…….]

    팟!

    프로메테우스가 지면을, 아니, 코카서스의 어깨를 박차며 도약했다.

    [숲이나 가꾸면서 살도록.]

    허공으로 치솟은 프로메테우스의 양손에 칼날 한 쌍이 나타났다.

    그 푸른색 칼날은 단검이라기엔 길었고, 장검이라기엔 또 너무 짧았는데, 그 어정쩡함에도 왠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웠다.

    카드득!

    자연스러움은 곧 완벽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푸른색 칼날 한 자루가 코카서스의 눈에 박혔으니까.

    [이, 이노오오오오오옴……!]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고작 눈 한쪽 찌르고 끝날 거였으면 이런 고생 하지도 않았겠지.

    카앙!

    머리 꼭대기로 올라간 프로메테우스가 나머지 칼날 한쪽으로 코카서스의 정수리를 힘껏 내려쳤다.

    카앙! 캉! 카아앙……!

    강하게, 더욱 강하게.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갈라지고 깨지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일까?

    겉면뿐만 아니라 안쪽 깊숙한 곳으로부터 균열이 발생하기에 이르렀으니, 그 균열은 곧 놈의 온몸으로 사방팔방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케에에에에에에에엑 - !]

    단말마치고는 길었던 비명.

    코카서스의 발악은 거기까지였다.

    균열이 일어난 결을 따라 수백, 수천, 수만 조각으로 나뉘어 와르르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괜찮으신가?”

    “싸움 구경 잘했습니다.”

    “그럼 서둘러 나가지. 거기서부터는 자네가 할 일을 해도 좋아.”

    거인이 되었던 코카서스가 무너지며 새롭게 형성된 산맥을 뒤로한 채, 멈추지 않고 산악 지대에서 멀어지는 프로메테우스였다.

    아마 곧 일대를 벗어날 터.

    그때부터는 프로메테우스의 말대로 기억을 탐색할 수 있으리라.

    ‘이 존재의 기억을 읽는다면 확실히…… 큰 도움이 되긴 할 거다.’

    상대는 지배자.

    그것도 최상급 지배자였던 자다.

    그런 존재가 자신의 기억을 자유롭게 읽어보란다. 필요하다면 수십, 수백 번 읽어도 상관없단다.

    여전히 이 세계를 파악 중인 이안으로서는 횡재나 다름이 없다.

    ‘유일한 걱정거리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기억이냔 점인데…….’

    하급 지배자였던 분석관의 기억을 읽었을 때 이미 한 번 느꼈다.

    장막 너머 심연을 들여다본 느낌이라고, 이안 본인조차 이리 힘든데 평범한 이들한테까지 공유했다가는 많이들 미쳐 버릴 거라고.

    한데 이제는 최상급 지배자다.

    심지어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재했을 티탄 출신의 지배자.

    그런 존재의 기억을 일부도 아니고 모조리 읽어내는 거, 글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다.

    아니,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

    당장의 안위가 걱정되었다면 애당초 차원문을 넘지도 않았겠지.

    ‘이 미친 세상으로부터 내 고향을 지키려면 결국 나도 미쳐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는데, 맨정신으로는 이 세계를 이길 자신이 없다.

    인간성을 지키면서 이쪽 세계의 괴물들과 맞서 싸울 자신이 없다.

    결국 괴물을 잡으려면 괴물이 되어야만 한다. 미쳐 버린 세상을 감당하려면 자신도 미쳐야만 한다.

    ‘하자. 어떤 결말이 나오든.’

    이안의 결심이 바로 설 때쯤.

    그런 이안을 목덜미에 태운 프로메테우스 역시 코카서스 산악 지대 근방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지금일세. 중간계인.”

    바로 지금.

    이안이 주문을 펼쳤다.

    상대방의 기억을 들추는 주문.

    아직 불완전하나, 격이 올라간 만큼 완벽해졌기를 기대할 뿐인 마법.

    ‘메모리 이터.’

    그 주문을 펼치는 순간.

    이안은 아주 잠깐, 정말이지 찰나의 순간 깊은 후회를 느꼈다.

    ‘엄청난…… 기억!’

    방대하다.

    정말이지 방대하다.

    평균 수명 수십 년 남짓의 중간계인이 느끼기에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은 무한대나 마찬가지였다.

    “큭……!”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그럼에도 꾹 참고 견뎌냈다.

    한 티탄족 지배자가 기간테스 일족으로 전향하고, 죄를 지어 바위산 꼭대기에 결박당하는 순간까지.

    그 영겁의 세월을 모조리 곱씹을 때까지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터.

    [거기까지다. 배신자.]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의 근엄한 목소리가 코카서스 산악 지대에서 빠져나온 프로메테우스의 귓구멍을 후벼 팠다.

    [언젠가 한 번쯤은 도망을 칠 거라 생각했지. 그게 설마 오늘일 줄은 몰랐으나, 딱히 유의미하진 않다.]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은빛 장발.

    근엄한 목소리와 말투를 가졌음에도, 더불어 ‘올림포스 전당의 우두머리’라는 격을 갖췄음에도 어울리지 않게 젊어 보이는 얼굴.

    번개를 머금은 황금빛 왕관, 황금빛 삼지창, 그 외 온갖 종류의 황금빛 장신구로 온몸을 치장한 존재.

    [……제우스.]

    ‘번개의 지배자’ 제우스.

    올림포스 전당의 최강자.

    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프로메테우스, 제 일족을 두 번이나 배신한 죄인이여. 순순히 오라를 받는다면 다시 바위산에 가두는 것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자신의 일족을 두 번이나 배신한 죄인, 그것은 곧 티탄족과 올림포스 전당 양쪽을 뜻하는 표현일 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은근한 모멸과 멸시가 담겨 있는 것이, 프로메테우스를 향한 제우스의 감정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싫다면?]

    [싫다면.]

    그 물음에 제우스가 턱짓하자 함께 왔던 두 명의 올림포스 전당 최상급 지배자,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대는 이전보다 더한 죄인이 될 것이요, 그에 걸맞은 대우로서 바위산 꼭대기가 아닌, 타르타로스 가장 깊숙한 감옥으로 떨어지겠지.]

    타르타로스.

    패배한 티탄 일족 중 미처 티탄의 땅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생포당한 이들이 떨어진 나락의 감옥.

    [아, 그곳은 본디 그대가 떨어졌어야 할 나락이니,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간다고도 볼 수 있겠군.]

    제우스의 말이 길어질수록.

    함께 온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 역시 프로메테우스와 가까워졌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더 마음에 드는데, 한 번 반항해 볼 텐가?]

    제우스의 물음.

    프로메테우스가 피식 웃었다.

    아직 이 세상을 끝장낼 예언의 후보 중 한 명, 이안 페이지의 기억 인수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한참 걸릴 것 같다.

    그렇다 함은, 결국.

    [내 당장 시계탑으로 달려가서 제우스, 네놈의 목을 따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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