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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1화
“어떻게……?”
“예언의 지배자라고 하시던데, 미래가 끝까지 보이지 않고 띄엄띄엄 보이시나 봅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당혹감에 빠지든 말든, 이안은 그저 태연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사슬을 새로 바꿨다.
“하긴, 이런 곳에 묶여 있다 보면 가진 능력도 퇴화되긴 하겠네요.”
그러나 실상은 이안 역시 제법 애를 먹었다. 그도 그럴 게, 감시자가 언데드 속성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뻔했으니까.
‘시간을 되돌려야 했을지도.’
고작 이런 상황에서 온갖 부작용을 다 감당하고 회귀한다는 거, 썩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을 터.
정말 다행이다.
“근데 답변은 안 해주실 겁니까?”
“답변……?”
“아까 그 감시자, 죽으면서 뭐라 한 겁니까? 욕하는 것 같던데.”
“……아, 욕은 아니고.”
욕이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뭘까?
“잠깐만 기다리라더구나.”
“네? 기다리라고요?”
“그대가 조금 전에 상대했던 감시자, 올드 가드는 죽지 않아. 조금만 기다리면 되살아나지. 제우스에게서 불사의 저주를 받았거든.”
불사의 저주.
어째 익숙한 이름이다.
꼴을 보아하니 그런 것 같더라.
“그러니 아까 그 마지막 외침을 해석하자면, 곧 살아나서 할 일이 있으니 기다리라는 뜻이 아닐까?”
“그렇군요.”
역시나 무덤덤한 태도.
어느새 사슬이 교체되었다.
이것으로 세 번째 과업 완료다.
“저보다 먼저 감시자를 꺾은 수행자들한테도 기다리라고 하던가요?”
“으음, 그러고 보니 그런 적은 없는데…… 이번이 처음인 것 같군.”
처음이다?
이건 좀 솔깃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
뭔가 있다는 뜻일 터.
“정확히 얼마나 걸립니까?”
“내 경험으로는 한 십 분?”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10분이라.
기다리지 못할 것도 없지.
사슬 교체를 끝낸 이안이 바위산 꼭대기 한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래부터 마나가 풍부한 세상에 격까지 올라가서 그런가? 주문의 위력이 곱절은 올라간 것 같군.’
모든 언데드 괴물에게 턴 언데드 주문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의 힘이 강할수록,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높을수록 먹히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 아니던가?
그런데 이안이 상대해 본 언데드 중 가장 강력한 괴물이었을 감시자에게 턴 언데드 주문이 통했다.
그만큼 강해졌단 뜻이겠지.
‘나쁘지 않네.’
이대로 모든 과업을 완수하여 지배자의 격까지 얻어낸다면, 모르긴 몰라도 선택지가 대폭 늘어나리라.
와그작!
허기를 느낀 이안이 작은 주머니에서 동그란 환을 꺼내 삼켰다.
단 한 알만으로 완벽에 가까운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슈페리언 특유의 식사, 아니, 식사라기보다는 에너지 충전에 더 가까웠다.
“하던 얘기나 마저 하죠.”
“……무슨?”
“원하시는 대로 정체를 말씀드렸습니다. 이거, 제 입장에서는 목숨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정말 얘기할 줄은 몰랐다.
만약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면 적당한 타이밍에 넘어가줬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중간계에서 온 존재가 과업을 수행 중이라잖아?
‘내가 본 미래, 슈페리어의 몰락이 아직 유효하다는 증거니까.’
눈앞에 이 중간계인.
이안 페이지야말로 증거다.
그러니 그냥 넘어가려고 했건만.
그럴 새도 없이 정체부터 밝혔다.
‘분명 노림수가 있겠지.’
이러니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는 말에 반박 한마디 할 수 있겠나?
일단 수긍하고 들어나 보자.
놈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그러니 이번에는 프로메테우스 님께서 답변을 해주실 차례입니다.”
“어떤 답변을 원하시지?”
“목적이 뭡니까?”
“목적?”
“단지 동정심만으로 추방당한 사람들과 중간계를 돌보셨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죄인까지 되어가면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진짜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오.”
“진짜 목적?”
“모든 지배자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제가 품은 진정한 목표인 것처럼, 프로메테우스 님께서도 숨기고 있는 목표가 있으실 거 아닙니까?”
진정한 목표를 말해 달라.
그런 이안의 요구에 프로메테우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없다면?”
“그럴 리가 없죠.”
“그럴 리가 있다면?”
“그런 가정은 하고 싶지 않네요.”
“왜지?”
“제가 이쪽 세상으로 넘어와서 만나본 지배자가 총 다섯 명입니다.”
“다섯씩이나?”
“헤라클레스, 아프로디테,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그리고 그쪽이죠.”
갑자기 지배자들을 나열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솔직히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약간 그런 기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상위에 존재하는 이들이니만큼, 그만한 지성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데?”
“아니더군요. 헤라클레스, 우직한 바보였죠. 아프로디테? 글쎄요. 대단한 권능을 가졌다고 하기에는 그저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아레스는 물어볼 것도 없군.”
“잘 아시네요.”
아레스가 어떤 인물인지야 지배자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을 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저희 중간계에도 아주 유명한 바보가 한 명 있었습니다. 헌데 이제는 성군 소리를 듣고 있죠. 십 년 넘게 꾸준히 성장했거든요.”
“흔치 않은 일이로구먼.”
“중요한 건 시간입니다. 중간계의 바보 한 명이 성군으로 바뀌는 데까지 십 년 남짓이면 충분했죠. 근데 아레스를 보십시오. 그 대단한 권능을 갖고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그 모양입니다.”
“그건…… 그렇지?”
이번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아레스는 멍청했으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저는 앞선 세 명의 지배자한테 실망만 했습니다. 헤파이스토스도 딱히 좋은 인상은 아니었죠.”
“뭐, 그 친구도 똑똑한 부류는 아니니까. 쇳덩이나 다룰 줄 알지.”
“그럼 이제 누가 남았습니까?”
“……나?”
프로메테우스가 물었다.
이안 역시 가볍게 끄덕였다.
“그저 다른 지배자들이 하는 것처럼 중간계를 갖고 놀다가 선까지 넘어서 여기 묶여 있는 것이라면…… 실망이 참 클 것 같네요.”
“하……?”
“아, 참고로 그 선은 아레스조차 넘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 중간계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더군요.”
“…….”
“해서 묻는 겁니다. 아무리 봐도 다른 목적이 있으실 것 같아서.”
“…….”
“없다면 아레스보다 멍청한 지배자가 되는 건데…… 그 정도로 멍청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이놈.
도발 좀 할 줄 아는 놈인가?
“자, 다시 여쭈겠습니다.”
“…….”
“진짜 목적이 뭡니까? 죄인으로 전락할 만큼 추방자들과 중간계들을 과하게 지원한 이유 말입니다.”
이안이 다시금 묻자, 프로메테우스 역시 대답을 신중하게 골랐다.
‘이 당돌한 중간계인이 내가 본 미래를 실현시켜줄 장본인이란 확신은 없다. 다만, 적어도 그 미래의 부속품쯤은 되어줄 것 같군.’
성능 좋은 부속품.
그거면 충분하겠지. 결심을 굳힌 프로메테우스가 천천히 읊조렸다.
“……곧 감시자가 되살아난다. 그 존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은 제우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니, 그가 되살아나거든 발언에 주의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여유가 없으니 본론만 얘기하지. 나는 이 세상의 끝을 보았네.”
“끝이라면, 미래 말씀이십니까?”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은 바로 그 예지를 실현시키기 위함이었지.”
예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일.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이안은 프로메테우스의 진짜 목적을 깨달았다.
‘나와 바라는 것이 같다.’
이안이 바라는 것.
프로메테우스가 바라는 것.
그 두 가지는 놀랍게도 일치한다.
‘슈페리어 차원의 파멸.’
하지만 어째서?
제아무리 죄인 취급을 당하고 있을지언정 그는 엄연한 슈페리언이자 최상급 지배자 출신 아닌가?
“당신 같은 자가 도대체 왜…….”
“거기까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 티탄의 땅으로 가시게.”
티탄의 땅.
이미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곳.
마침 이곳 코카서스 산악 지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가서 새벽의 옛 지배자 에오스를 찾아. 그녀는 나의 숨겨진 조력자이니, 내가 보냈다고 말하면…….”
“지금 에오스라고 하셨습니까?”
“……음? 무슨 문제라도?”
문제?
그야 당연히 있지.
이걸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그게…… 말씀하신 그 에오스 님은…… 아마 돌아가셨을 겁니다.”
“……뭐? 그게 무슨?”
“제 첫 번째 과업이 에오스라는 티탄을 죽이는 임무였거든요.”
“그럴 리가, 아직 그대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존재일 텐데?”
“정확히는 미끼였고, 티탄의 땅 밖에서 아프로디테가 끝냈습니다.”
“그, 그런…….”
에오스가 죽었다.
티탄과 기간테스로 나뉘었음에도 여전히 동료였던 그녀가 죽었단다.
그것도 눈앞에 이 조그마한 중간계인, 이안 페이지의 계략 때문에.
“…….”
난감하다.
그녀가 죽었다면 이 중간계인에게 많은 것을 설명하고 도와줄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은 죄인으로서 많은 제약이 걸려있으니까.
“감시자를 한 번 더 죽여서 말로 설명할 시간을 버는 건 어떨까요?”
이안이 제안했다. 에오스를 죽인 것에 대한 멋쩍음의 결과였다.
“불가하다. 제우스가 의심하겠지.”
“그럼 제가 프로메테우스 님의 기억을 읽어보겠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니까요.”
“그 또한 마찬가지로 어렵다. 내 육신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즉시 제우스가 알아챌 테니까.”
“음…….”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에라이, 별수 없지.”
결국 고심 끝에 한숨을 푹 쉰 프로메테우스가 차선책을 내놓았다.
“지금부터 내가 무얼 하든 의심치 말고 그대의 목적만 생각하시게.”
“……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그대의 목적대로 움직이라는 뜻이야. 알겠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조리, 정말 시원하게 풀려 버렸다.
우드드득!
사슬에 묶여 보잘것없이 축 처져 있던 프로메테우스의 육체가 일순간 근육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어디 그뿐일까? 이안이 새로 묶어놓았던 헤파이스토스의 사슬을 너무나도 쉽게 끊어버렸으니…….
“지금 무슨 짓을…….”
[제우스 - ! 이 치졸한 놈!]
순식간에 본연의 모습으로.
이안보다 열 배는 큰 덩치에 탄탄한 근육으로 뒤덮인 기간테스이며 예언의 지배자,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을 향하여 천둥처럼 외쳤다.
[내 여흥 삼아 중간계의 벌레들에게 말 몇 마디 가르쳤기로서니, 고작 그 일을 빌미 삼아 나를 수만 년간 여기에 가둬놓았겠다?!]
이는 명백한 슈페리어의 언어.
그것도 최상급 지배자로서의 높은 격이 잔뜩 담긴 외침이었다.
[그 잘난 시계탑에서 목 씻고 기다려라! 내 이제야 모든 힘을 회복하였으니, 당장 달려가서 네놈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주마!]
다짜고짜 살인을 예고한 프로메테우스가 커다래진 손아귀로 이안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바위산 아래로 뛰어내리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기억을 읽을 수 있다고 했지?”
“그, 그렇긴 한데…….”
“이대로 코카서스 산악 지대를 빠져나간다. 그리하면 제우스와 연결된 모든 주술이 끊어질 터. 그대는 내가 붙잡히기 전까지 어떻게든 내 기억을 모조리 읽도록. 수백 번을 반복해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