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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16화 (21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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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30화

    ‘언제부터였던가.’

    글쎄, 아주 오래전부터.

    프로메테우스는 지배자들 특유의 특권의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거 세상을 지배했던 동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이후 새롭게 구축된 시계탑의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물이 나더군. 단순히 싫다는 감정을 넘어 혐오의 단계까지 올라올 만큼.’

    프로메테우스는 안다.

    지배자들은 결코 신이 아님을.

    절대적인 시간 ‘크로노스’를 다루는 눈먼 아버지라면 또 모를까.

    나머지는 그저 운 좋게 과분한 능력을 갖추고 태어났을 뿐임을.

    ‘그럼에도 지배자란 것들은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하더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참, 같은 지배자였던 내가 다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처음 눈먼 아버지와 혼돈의 자식들이 침공해 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유의 예지능력으로 티탄족의 처참한 패배를 봤지만, 그 사실을 동족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신에 가까운 존재를 만난다면, 하여 그런 존재의 통치를 받는다면, 지배자란 족속들도 조금은 겸손해질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리고 말았다.

    신에 가깝다고 여겼던 눈먼 아버지와 혼돈의 자식들은 그저 시계탑 꼭대기에 군림하며 아무런 관여조차 하지 않았고, 패배한 티탄족은 고향으로 숨었으며, 그 빈자리를 올림포스 일족과 아스가르드 일족이 사이좋게 나누어 차지했으니, 결국 지배자들의 역겨운 오만함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에 환멸을 느끼던 어느 날이었던가, 한동안 뜸했던 예지 능력이 발동되더군.’

    그러던 어느 날.

    혼돈의 세력에게 패배하는 미래를 예지했던 그 날처럼 또다시 생생한 미래가 보였으니, 그것은 놀랍게도 ‘슈페리어의 몰락’이었다.

    ‘아스가르드 일족의 전승에서는 그날을 라그나로크라고 부른다지.’

    일컫기를 ‘라그나로크’.

    아스가르드 일족의 오랜 전승 속에 등장하는, 이 세상 모든 지배자의 몰락과 최후를 뜻하는 단어.

    ‘내가 본 미래는 분명 라그나로크 그 자체였다. 다만 전승처럼 지배자조차 버틸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닌, 누군가의 계획 아래 차근차근 진행되어온 몰락이었을 뿐.’

    모든 예지능력은 추상적이다.

    그 추상적인 예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예언 능력자들의 급수가 나뉘는데, 프로메테우스는 그중 최상의 해석력을 갖췄다.

    그런 그가 해석한 슈페리어의 몰락은 철저히 아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혹한의 겨울을 몰고 왔고, 누군가는 불타는 검으로 지배자들을 도륙하였으며, 또 누군가들은 흑요석 성벽을 타고 넘어와 시계탑으로 진군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주류가 아닌 이들이었지.’

    주류가 아닌 이들.

    심장에서 쫓겨난 추방자들.

    나머지 여덟 중간계의 인간들.

    그런 이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슈페리어의 심장을 함락하고, 시계탑마저 무너뜨리는 비현실적인 미래.

    ‘그때부터였다. 동족 혐오에 빠져 있던 내가 추방자들, 그리고 중간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것이.’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몇몇 중간계의 인종은 진화를 이루어낼 만큼 엄청난 시간이 흘렀건만, 슈페리어 차원에는 아직 그 어떠한 이변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지더라고.’

    예지가 불발되는 경우?

    솔직히 말하면 흔해 빠진 일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슈페리어의 모든 지배자가 몰락당하는 예지만큼은 빗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해서 관여를 하기 시작했다.’

    심장 밖으로 쫓겨난 추방자들.

    잠재력이 높은 중간계의 인간들.

    그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나아가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성장하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또 지원했다.

    ‘처음에는 다른 지배자들이 중간계에서 장난질을 치는 만큼, 딱 그만큼만 지원해 줬다. 그래야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슈페리어의 언어였다.

    대부분은 슈페리어의 언어를 이해조차 하지 못하였으나, 몇몇 이들은 가르치는 족족 언어에 담긴 권능을 발현시켰으니, 보람을 느낀 프로메테우스는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슈페리어의 언어를 가르쳤다.

    ‘그게 화근이 되었지.’

    슈페리어의 언어.

    거기 담긴 권능은 곧 특권이다.

    한데 그런 힘을, 슈페리언 중에서도 눈먼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이들한테만 허락되는 특혜를 중간계의 벌레 따위에게 전파하는 프로메테우스가 어찌 보였겠는가?

    ‘지배자들을 향한 반항이자 범죄.’

    결국 프로메테우스는 시계탑 평의회의 만장일치로 배신자 낙인이 찍혀 이곳 바위산 꼭대기에 영원히 포박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알지 못한다. 내가 가르치고 지원했던 중간계와 추방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때 보였던 미래는 여전히 유효한지.’

    바위산 꼭대기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시간의 흐름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사슬에 묶인 채로 영겁의 세월을 감내할 뿐.

    그러던 오늘이었다.

    ‘이제 슬슬 다 잊어버릴까 싶을 때쯤, 내 앞에 나타난 거지. 중간계 냄새를 풀풀 풍기는 수행자가.’

    그는 자신을 첫 번째 중간계에서 온 이안 페이지라고 소개했다.

    목적은 과업을 완수하여 지배자들에게 맞설 힘을 얻는 것이란다.

    바로 그 계획을 듣는 순간.

    프로메테우스는 확신했다.

    ‘내가 보았던 미래가, 슈페리어의 몰락이 아직 유효하다는 사실을.’

    무지막지한 희열을 느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희열도 잠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지난 수만 년간 발동하지 않았던 예지능력이 지금 발휘되었거든.

    ‘……어?’

    근데 이놈.

    왜 벌써 죽지?

    * * *

    드르르르르……!

    바위산 꼭대기의 죄인을 감시하는 감시자, 일컫기를 ‘올드가드’.

    한때는 옛 지배자 가이아의 충성스러운 기사였으나, 이제는 제우스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그 존재가 앙상한 뼈, 오래된 넝마, 이가 빠진 대검을 질질 끌며 다가왔다.

    ‘죽는다고? 이런 뼈다귀한테?’

    말도 안 되는 소리.

    괜한 오기가 피어난다.

    “프로메테우스 님.”

    “음……?”

    “제가 이기면, 어찌하실 겁니까?”

    “이기면?”

    “네, 죽지 않고요.”

    “그럼 다행인 거지.”

    “……네?”

    “자기 목숨 자기가 부지했으면 그만이지, 나더러 뭘 어쩌라고?”

    “…….”

    “애당초 목숨 내놓고 과업을 수행하는 주제에 별소리를 다 하시는군.”

    구구절절 맞는 소리다.

    여기 와서 지배자란 족속들 상대로 후려친 기억밖에 없어서일까?

    먹힐 줄 알았는데, 의외다.

    생각보다 철저하잖아?

    “……그럼 이왕 알려주신 김에 몇 가지만 더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또 뭘?”

    “약점이라든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싸워본 적도 없는데, 알아서 하시라고.”

    “그래도 많이 보셨을 거 아닙니까? 다른 수행자들이 싸우다가 죽는 모습, 아니면 이기는 모습을.”

    “뭐 그냥 알아서 잘 싸우던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 이름이 뭐였더라? 헤라클레스였나? 아무튼 그 친구가 진국이었어. 감시자를 그냥 반으로 쪼개버리는데…… 보는 내가 다 통쾌하더라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아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조언 감사드립니다.”

    한숨을 푹 쉰 이안이 마나를 끌어올렸다. 전투준비에 나선 거다.

    ‘느릿느릿한 움직임, 바닥에 끌고 다니는 대검으로 봤을 때 속도나 민첩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접근만 경계한다면 충분히…….’

    바로 그 순간.

    팟!

    이안의 진정한 과업 상대, 올드 가드가 지면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처음 나타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몸놀림이었으니, 당혹감을 느낀 이안이 서둘러 보호막부터 펼쳤다.

    카앙! 캉! 카아앙!

    어디 움직임만 재빠를까?

    무섭게 휘둘러대는 대검의 파괴력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오죽하면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이안의 보호막에 균열을 일으키겠는가?

    ‘뭔 뼈다귀가 이렇게 세?’

    과연 진정한 과업의 대상다웠다.

    이래서 아레스와 아프로디테가 조심하라고, 세 번째 과업은 결단코 쉽지 않을 거라고 했던 거구나.

    [????????]

    “와, 뼈다귀가 말도 하네.”

    [??? ??? ???? ?????]

    “뭐라는 거야?”

    “티탄족 고유의 언어다. 고위층에게만 통용되는 언어였지. 몰락한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을 테고.”

    프로메테우스가 끼어들었다.

    “통역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대를 침입자라고 부르는군.”

    “그리고?”

    “죽고 싶으냐고 묻는데?”

    “대신 대답 좀 해주시죠. 싫다고.”

    [?? ????, ???? ???.]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준다네.”

    “아니, 죽기 싫다니까…….”

    카앙! 캉! 카아아앙……!

    더는 한계다.

    이제 곧 보호막이 박살 날 거다.

    안에서 놈의 실력을 감상했으니, 지금부터는 반격에 나설 차례였다.

    [?? ????? ??? ????? ???? ?????!]

    “숨어 있지 말고 나오라는데?”

    “……통역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래, 안 그래도 나갈 거다.

    시도해 볼 만한 게 떠올랐으니까.

    ‘해제.’

    재빨리 보호막을 거둔 이안.

    원래였다면 거리부터 벌렸을 터.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거리를 벌리기는커녕 대검을 휘두르는 감시자의 품으로 재빨리 파고들었다.

    대체 무엇을 하려고?

    목표는 명확했다.

    ‘턴 언데드.’

    아직 확신할 순 없다. 하나 놈의 외형은 명백히 언데드 그 자체.

    시도해 볼 만한 공격 아니겠나?

    먹힌다면 단숨에 끝낼…….

    서걱!

    하나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안보다 한 박자 빠르게 움직인 감시자의 칼날이 파고들던 이안을 사선으로 갈라버렸으니 말이다.

    “……이런.”

    그 참혹한 광경에 프로메테우스가 깊이 탄식했다. 정말이지 방금 본 미래 그대로의 광경이었으니까.

    “미리 말할 겨를이 없었다고.”

    괜히 미안해지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예지능력은 너무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발동해 버렸고, 중간계에서 온 수행자는 이미 죽어버렸는데.

    ‘이안 페이지라고 했던가? 아무튼 이 친구 말고 다른 중간계인들이 올라와주기를, 혹은 이미 올라와서 활동 중이기를 바랄 수밖에…….’

    “턴.”

    그때였다.

    “언데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불어 수행자를 사선으로 갈라 죽였던 감시자의 몸뚱이 한가운데 황금빛이 삼삼오오 모여들었으니.

    [???, ???…?]

    빠각!

    한 줌 뼛가루.

    본디 죽음을 맞이해야 할 앙상한 육신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방금은.”

    뼛가루가 흩날리는 바위산.

    그곳에 다시금 나타난 수행자.

    이안 페이지가 나지막이 물었다.

    “뭐라고 하면서 죽은 겁니까?”

    동시에 사선으로 갈라져 널브러졌던 또 다른 이안 페이지의 시신이 푸른빛 마나가 되어 흩날렸다.

    과거, 올리버 레이우드의 대련을 도우며 즐겨 사용했던 마법.

    ‘미러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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