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제3장 전생과의 차이점(4)
수술용 참관실은 벌써부터 떠들썩했다.
국군 태극 병원 흉부외과장 최은호를 필두로 수술은 벌써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탔다.
고난이도의 삼첨판막 성형술이 고작 30분 만에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참관의들은 집도의인 백경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백경민이라는 친구, 정말 물건인데요? 언제 저런 보석 같은 친구를 키우고 계셨습니까?”
“침착한데다가 손놀림까지 정교하군요.”
“연습 없이 참관 수술에 들어간 데는 다 이유가 있었어요.”
참관의들이 백경민을 치켜세우자 최은호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제자가 잘나면 스승의 위신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최은호는 아직 수술은 끝난 게 아니라며 점잖은 척했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은호의 미소는 귀에 걸린 채 내려올 줄 몰랐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인간들.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수술실 가장 후미에 앉아 있던 강태섭은 속으로 혀를 찼다.
강태섭은 신원대학교 부산 분원 흉부외과 과장이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다른 참관의들을 훑고 있었다.
참관의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집도의 백경민을 치켜세울 때.
강태섭은 반대로 이믿음이라는 제1 어시스트에 주목했다.
강태섭이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어시스트 중에 이믿음은 단연 최고봉이었다.
이믿음은 집도의를 앞서가지도.
그렇다고 집도의에게 뒤처지지도 않았다.
집도의와 발맞춰 호흡하는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수술을 꿰뚫는 것과 동시에 집도의의 성격을 이해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최상의 어시스트를 펼쳤다.
막말로 이믿음이 제1 어시스트라면 말이다.
똑똑하고 솜씨 좋은 레지던트가 수술을 해도 성공할 정도랄까.
이믿음의 실력과 가능성을 알아본 후 강태섭은 이믿음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견물생심이라고, 이믿음을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빠졌다.
그래서 참관 중에 자주 혀로 입술을 핥아 댔다.
갖고 싶은 물건이나 사람을 발견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버릇이었다.
“선생님, 지금 퍼스트 서는 이믿음이란 친구는 어떤 친구입니까?”
강태섭은 곁에 앉은 태극 병원 흉부외과 교수 이동철에게 물었다.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모니터 속 이믿음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아, 저 친구요? 조금 특이한 친구입니다. 태극 병원 소속이 아니고 대대 군의관이에요.”
“대대 군의관이요?”
놀란 강태섭의 말꼬리가 심하게 올라갔다.
대대 군의관이 어째서 태극 병원 수술에 들어왔단 말인가.
“근래에 보기 드문 사명감을 가진 친구죠. 얼마 전 이슈가 됐던 총상 환자를 집도한 것도 바로 저 친구예요.”
이동철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믿음이 신원대학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 면허증을 취득했다는 점.
집도의 백경민과 친분이 있어서 수술을 돕게 됐다는 점 등등.
강태섭은 알면 알수록 더 이믿음을 가지고 싶었다.
흉부외과에도 스타 써전이 필요하다고, 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스타 써전의 잠재력을 가진 이믿음이 눈앞에 있었다.
군침이 돌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이믿음을 발판으로 삼아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성을 상상해 보고 강태섭은 남몰래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긴 혀로 입술을 핥았다.
* * *
3D 프린터로 제작한 기계 판막을 삽입하는 과정은 쉽고 또 순조로웠다.
두껍고 헐겁고 너덜너덜해진 기존 판막을 전부 제거한 후.
그 자리에 기계 판막을 사뿐히 내려놓았다.
업체와의 사전 조율이 충분했으므로 기계 판막은 환자의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예쁘게 자리 잡았다.
제 위치를 찾은 퍼즐 조각처럼 딱 들어맞았다.
신수술의 완성이 가까워지자 백경민은 들떠 있었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봉합술에서 들뜬 마음이 느껴졌다.
내 어시스트보다 백경민의 봉합이 반 박자씩 앞서 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구태여 그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내 템포를 백경민에게 맞추었다.
수술은 이대로 무난하게 종료되는 것처럼 보였다.
전생에서 신수술이 실패했던 이유.
그것은 단순히 업체에서 기계 판막을 잘못 보냈기 때문인 듯했다.
그렇다면 나도 안심이었다.
비극의 원인을 제거했다면 비극은 재현되지 않을 테니까.
이제 신수술은 학계에 인정을 받고 백경민은 거기에 탄력을 받아 다양한 신수술을 개발할 것이다.
흉부외과의 미래를 위해서도.
수많은 환자의 미래를 위해서도 경사인 날이 아닐 수 없었다.
“휴우~ 끝났다.”
백경민이 한숨을 내쉬며 손에서 수술 도구를 놓았다.
그러더니 슬며시 내 눈치를 봤다.
“치환한 기계 판막, 네 눈에는 어때 보여?”
나는 대답을 미루고 수술 부위를 최종 점검했다.
행여 기계 판막의 각도가 비뚤어지지는 않았는지.
봉합 부위에 누수는 없는지.
판막이 잘 열리고 잘 닫히는지 등등.
각종 처치 도구와 생리 식염수를 이용해 깐깐하게 체크했다.
마치 상견례 자리에서 만난 예비 신부와 신랑을 평가하는 장인, 장모의 마음으로.
“고생했어, 형. 오늘 밤 잠은 잘 오겠다.”
나는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친하다고 적당히 넘어가는 건 아니고?”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형이 집도했다고 해서 내가 설렁설렁 넘어갈 위인이야?”
“…….”
“이번 수술에 환자의 여생이 달려 있어. 굳이 따지자면 난 형의 편이 아니라 환자의 편이야.”
“그렇게 말해 주니까 마음이 놓이네. 믿음아, 너도 진짜 고생 많았다. 네가 나를 살렸어.”
“알았으면 앞으로 잘하셔.”
나는 스태프들에게도 고생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백경민과 나.
이렇게 둘이서만 수술을 완성시킨 건 아니었다.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묵묵하게 도와준 레지던트와 간호사들의 공로는 잊어선 안 됐다.
치환술이 성공하고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환자의 체온 조절 때문에 서늘했던 수술방의 분위기가 훈훈하게 덥혀졌다.
그렇게 3D 프린트를 활용한 인공심장판막 치환술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고.
피터팬이 후크 선장을 물리치고.
미녀와 야수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처럼 이상적인 결말만이 남은 듯했다.
적어도 인공 심폐기를 정지시키기 전까지는.
드르르륵. 덜컹!
인공 심폐기의 작동이 서서히 꺼져 갔다.
그러자 인공 심폐기를 통해 순환하던 혈액들이 환자의 심장으로 몰려들었다.
쿵. 쿵. 쿵.
잠들었던 환자의 심장은 다시 거세게 요동쳤고.
이제 그동안 절개했던 부위를 꿰매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과정을 역순으로 진행하기만 하면 수술은 완료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의술의 신이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선생님, 바이탈이 심하게 흔들리는데요?”
마취의가 전한 비보에 훈훈했던 수술방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환자의 호흡과 체온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혈압과 맥박이 말썽을 부렸다.
혈압이 90mmHg/60mmHg으로 위험 수준까지 추락했다.
맥박은 분당 130회로 치솟았으며 심전도 그래프는 널을 뛰는 것처럼 위아래로 요동쳤다.
다들 당황했지만 그중에서도 백경민의 충격이 가장 커 보였다.
백경민은 넋이 나간 얼굴로 환자 감시 장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술이 완벽하게 끝났기에 이런 돌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믿음아, 내가 실수한 거 없었잖아. 너도 쭉 지켜봤잖아. 근데 환자가 갑자기 왜 이러지?”
백경민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백경민은 어느새 잔뜩 긴장했던 수술 초반의 백경민으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뾰족한 해답이 있는 건 아니었다.
환자의 병색이 짙어진 이유를 모르는 피차일반이었다.
분명 수술은 매끄럽게 시작되어서 매끄럽게 끝났다.
흠잡을 곳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문제가 생겼다면 애초에 내가 가만히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믿기 힘든 트러블은 전생에도 벌어졌을까.
아니면 이번 생에서 새롭게 생긴 것일까.
나는 그 점도 심히 궁금해졌다.
“백 선생님, 어떻게 할까요?”
마취의가 독촉하듯이 다음 처치를 물었다.
환자의 바이탈이 흔들리는 이유를 몰랐으므로 백경민은 꿀 먹은 벙어리로 입을 다물었다.
“강심제만 우선적으로 투여해 주시겠어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백경민 대신 내가 마취의에게 오더를 내렸다.
그 후로 근 5분여간 치열한 토론이 오고 갔다.
대체 왜 환자의 바이탈이 위태로워졌는지를 두고.
“내 생각에는 어디서 출혈이 터진 것 같다. 혈압 떨어지고 맥박 치솟는 게 딱 출혈 사이즈야.”
“…….”
“봐봐, 심전도 리듬도 그렇잖아. 빨리 출혈 부위부터 찾자.”
백경민은 내 의견을 듣지도 않고 다급하게 심장 판막을 살피기 시작했다.
논의를 하는 사이 환자의 바이탈이 더욱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기분 탓인지 환자 감시 장치의 기계음이 송곳처럼 뾰족하게만 들렸다.
빨리 환자의 바이탈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라는 독촉 같기도 했다.
나는 백경민을 거드는 한편 머릿속으로 줄곧 딴생각을 했다.
정말 출혈 때문에 이 사달이 났을까?
끊임없이 의심했다.
환자의 바이탈은 전형적인 출혈 소견을 띠었으나 사실 출혈이 발생할 마땅한 부위는 없었다.
판막 근처로 굵직한 동맥이나 정맥이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있어 봐야 미세한 모세 혈관 정도인데…….
모세 혈관 출혈로 환자의 바이탈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요동치는 건 불가능했다.
“에이, 씨발! 대체 어디가 문제인 거야?”
조급함을 느낀 백경민이 급기야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수술실 분위기는 더욱 흉악해졌다.
스태프들은 졸지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추락하는 데는 날개가 없었다.
“아무래도 출혈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내 의견을 냈다.
이상하게 말을 꺼내면서 머릿속이 더 밝아진 느낌이 들었다.
수수께끼 같은 응급 질환의 원인을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출혈 말고 다른 이유는 없어. 잘 뒤지다 보면 분명 어디 혈관이 터져 있을 거야.”
“…….”
“판막 근처만 보지 말고 심장 혈관으로 범위를 넓혀 보자.”
“아니, 그건 시간 낭비야. 출혈이 문제였으면 진작 출혈점을 찾았어야 해.”
나는 단호하게 반대 의견을 펼쳤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꽁꽁 숨기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 봐.”
백경민이 답답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렴풋하게만 보이던 응급 상황의 원인이 뚜렷해진 것은.
“색전증. 그것도 폐색전증.”
나도 모르게 병인이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수술에 문제가 없었다면 수술 외적인 부분에서 정답을 찾는 게 옳지 않겠는가.
폐색전증은 인공 심폐기와 심폐기 사용으로 인한 항응고제 투여로 발생하는 부작용 중 하나였다.
혈액에 녹아 있던 공기가 단단하게 뭉쳐서 혈관을 막아 버리는 질환이었다.
나도 논문으로만 접했고 실전에서 경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왜냐고?
전생의 나는 폐·식도 파트의 문외한이었으니까.
“좋아, 네 말대로 색전증이라고 치자. 근데 폐색전증으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있어?”
“PaO2(산소 포화도)가 90mmHg 아래로 떨어졌으니까.”
나는 웰스의 폐색전증 모델에 따라 몇 가지 근거도 덧붙였다.
환자의 증상이 폐색전증 이외의 질병으로는 진단이 되지 않을 때 3점.
심부정맥 혈전증의 임상 징후나 증상 3점.
과거력이 있는 경우 1.5점.
분당 100회 이상의 빈맥 1점.
총 15.5점 만점에서 환자는 8.5점을 받았다.
그러므로 현재 가장 의심이 되는 질환은 폐색전증이었다.
“하… 쉽게 말해서 좆됐다는 소리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백경민이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