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제3장 전생과의 차이점(3)
수술방에 들어갔을 때는 당연하게도 수술 준비가 끝나 있었다.
수술방에 먼저 들어갔던 인턴과 순환 간호사가 수고를 해 준 덕분이었다.
수술대로 다가가자 전신마취가 된 환자가 눈에 보였다.
환자의 이름은 우세원.
나이는 50대 중반.
본래 까무잡잡했던 피부는 무영등의 조명을 받아 새하얗게 보였다.
전생의 우세원은 이번 수술로 사망했지만 나를 그를 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비극은 다시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3D 프린터 업체가 잘못 제작한 판막의 문제를 사전에 발견했다.
중대한 위험 요소를 제거했으니 수술은 순조로울 것이다.
아마도.
띠. 띠. 띠.
고막에 흘러드는 기계음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환자 감시 장치가 있었다.
혈압은 120mmHg/80mmHg.
맥박은 분당 58회.
호흡은 분당 20회.
체온은 36.5도.
환자의 바이탈 사인은 정상이었으나 심전도의 파동은 불안정했다.
수술 전 환자 관리에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환자의 심장 판막 두 곳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심장 리듬이었다.
수술이 잘 마무리되면 리듬은 정상을 되찾으리라.
“자, 각자 자기 자리로.”
수술대 근처에 몰려 있던 스태프들이 백경민의 지시를 받고 제 위치로 이동했다.
제1 어시스트인 나는 백경민의 맞은편에 섰다.
공교롭게도 참관용 수술실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럼 얼마나 대단한 분이 행차하셨는지 확인해 볼까.
나는 고개를 들어 참관용 수술실을 살폈다.
국군 태극 병원 흉부외과 과장이 상기된 얼굴로 뭐라 뭐라 떠들고 있었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그 이야기를 심드렁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친분은 없지만 아는 얼굴 몇몇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순간.
내 시선을 사로잡은 한 남자가 있었다.
분명히 잘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답답하게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 사람이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윤곽만 보였기 때문이다.
“왜? 아는 사람이라도 참관 왔어?”
나를 지켜보고 있던 백경민이 물었다.
“그냥 딱 한 명이 거슬려서.”
“여자냐?”
“아니.”
“아쉽네. 여자면 소개시켜 달라고 하든가, 네 연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백경민이 쩝 입맛을 다셨다.
이 상황에 농담하는 걸 보면 드디어 긴장이 풀린 건가.
잠깐 기대했지만 착각이었다.
백경민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수술대 아래에 있는 다리는 떨렸고, 눈동자는 환자와 환자 감시 장치 사이를 방황했다.
집도의의 수술 자리가 참관용 수술실을 마주하고 있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랬다면 백경민은 더 긴장했을 테니까.
“지금부터 3D 프린터를 이용한 환자 맞춤형 인공 판막 제작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백경민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수술방에 퍼져 나갔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술에 온전히 집중했다.
* * *
적어도 심장을 노출할 때까지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스태프들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수술 도구가 손에 들어왔고.
말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어시스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수술 초반에는 집도의인 백경민보다 내가 할 일이 더 많았다.
백경민은 오늘의 메인인 판막 수술에 체력과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궂은일을 도맡았다.
가슴 부위의 피부와 근막 절개.
전기톱으로 흉골을 잘라 내는 정중흉골 절개술.
수술 시야 확보를 위한 견인기 세팅 등등.
보통 40분은 걸리는 수술 전 처치를 나는 고작 15분 만에 해치웠다.
내 실력을 아는 백경민은 무덤덤했지만 레지던트들은 달랐다.
그들은 내 신속하고 정확한 처치에 크게 놀랐다.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이따금 짧은 감탄사를 토해 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목격했다고 해서 내가 딱히 우쭐하거나 거들먹거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리운 향수에 빠졌다.
나도 스승인 양 교수 밑에서 수련할 때 딱 저런 기분이었지.
양 교수를 감탄하고 존경했으며 양 교수처럼 멋진 외과의가 되고 싶었지.
돌이켜 보면 참 풋풋하고 좋았던 시절이었다.
“캐뉼라 꼽고 심정지액 투입해요.”
나는 오더를 내리며 잡념을 뿌리쳤다.
“네, 선생님.”
레지던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엉덩이가 무거웠던 인공 심폐기사도 몸을 일으켰다.
인공 심폐기를 연결하는 동안 잠깐 여유가 생겼다.
나는 백경민에게 물었다.
“형, 아직도 긴장돼?”
“어, 심장이 뛰고 속이 좀 울렁거린다.”
“수술 하루 이틀 하는 아마추어도 아니고, 형답지 않게 왜 이렇게 쫄았어?”
“보는 눈이 너무 많잖아. 참관 수술은 처음이라고.”
백경민의 목소리는 흡사 누명을 쓴 사람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심정이야 골백번도 더 이해한다만, 더 이상의 긴장은 곤란했다.
집도의는 긴장을 유지해야지 긴장에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
집도의인 목동이 없으면 어린 양 떼와 같은 환자와 어시스트들은 어쩌라는 말인가.
“이제라도 마음을 바꿔 먹어 보는 건 어때?”
“어떻게?”
“참관 온 사람들을 감시자처럼 생각하지 마. 반대로 형이 저 사람들을 초대했다고 생각해.”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초대라…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초대. 저 사람들은 한마디로 들러리야. 형의 신수술을 구경하러 온 들러리.”
“…….”
“들러리가 있어야 결혼식이 더 풍성하고 멋있어지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들러리 앞에서 멋진 결혼식을 치른다는 느낌으로 수술을 해 보라는 거지.”
“휴우, 그게 말처럼 쉽냐?”
내 조언에도 백경민은 쉽게 부담을 떨쳐 내지 못했다.
“아니, 말보다 쉬워. 형이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나도 옆에 있잖아. 여차하면 내가 수술을 거들면 돼.”
“그건 좀 안심이 되네. 하긴, 총상 환자도 수술한 네가 옆에 있는데… 무슨 일이 생기면 네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
백경민이 각오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있는 참관용 수술실을 올려다보았다.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이었다.
참관용 수술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용기의 표현이었으니까.
드르르륵. 드르르륵.
때마침 환자의 심장이 멈추고 인공 심폐기의 펌프가 돌아갔다.
인공 심폐기에 연결된 관으로 환자의 혈액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환자의 심장이 쉬는 동안 심장의 역할은 인공 심폐기가 대신할 것이다.
“이믿음, 부케 받을 준비됐냐?”
백경민이 나를 바라보며 농담을 던졌다.
아까와는 성격이 180도 다른 농담이었다.
아까의 농담이 자조적인 농담이었다면, 이번 농담은 자신감이 충만한 농담이었다.
내가 익히 알던, 내가 보고 싶었던 백경민이 반갑게 복귀했던 것이다.
“얼마든지.”
* * *
마침내 수술이 본래 궤도에 올랐다.
심낭을 절개하자 심장이 드러났고, 곧바로 첫 번째 수술인 삼첨판막 성형술이 시작되었다.
삼첨판막은 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에 위치한 판막이었다.
환자의 경우 판막이 기능을 상실해 제때에 닫히지 않았고, 그로 인해 혈액 역류가 일어났다.
혈액 역류가 일어나면 심장이 안 해도 되는 일을 더 해야 하므로 시간이 갈수록 심장의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기능을 상실한 판막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10번 블레이드.”
백경민이 어시스트에게 메스를 받아 들었다.
그는 거침없는 손길로 노후화된 판막들을 제거해 나갔다.
백경민의 손놀림은 정교했다.
제거할 것만 제거하고 남겨야 할 것은 칼같이 남겼다.
불필요한 처치가 없었다.
나는 수술에서 한 걸음 물러서 백경민을 도왔다.
백경민이 잘라 낸 판막의 찌꺼기들을 썩션기로 흡입하고, 미세 출혈들도 빨아들였다.
치이이익.
판막이 건조해서 찢어지지 않도록 생리식염수로 이리게이션(세척)을 하기도 했다.
백경민이 자신감을 회복했으므로 잔소리는 더 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오늘의 주인공인 백경민이 빛나도록 곁에서 돕는 것뿐이었다.
‘동료의 마음을 관리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백경민을 도우면서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전생의 나는 나밖에 몰랐다.
집도의인 나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스태프들은 알아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다 착각이었다.
내 마음을 관리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단계였고, 스태프들의 마음을 관리하는 것은 심화 단계였다.
비록 오늘은 집도의가 아니다만 경우는 비슷했다.
만약 내가 백경민의 긴장을 풀어 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수술은 한참 꼬이지 않았을까.
“성형술 시작한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노후화되고 너덜너덜한 판막을 모두 제거하고서 백경민이 한마디 했다.
나는 포셉으로 판막 링을 쥐고 판막 위에 덧씌웠다.
판막 링은 지금까지 제거한 판막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백경민이 판막을 꿰매고, 나는 판막을 고정시켰다.
우리의 호흡은 찰떡같았다. 잉꼬부부 같기도 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필요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싫은 소리를 하느라 소모될 수 있는 에너지가 전부 수술에 집중되었다.
삼첨판막 수술은 차차 점입가경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봉합술의 완성도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사람이 손이 아니라 마치 재봉틀로 판막을 꿰매고 있는 듯했다.
“아…….”
숨 막히고 팽팽한 공기 속에서 백경민이 한 줄기 탄식을 뱉어 냈다.
성형술의 마침표를 찍는, 외마디 탄식이었다.
성형술이 무사히 끝났음을 자축하는 탄식이었다.
“이렇게 잘하면서 그동안 앓는 소리를 했단 말이지?”
나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삼첨판막 성형술은 한마디로 대성공이었다.
앞으로 관리만 잘한다면 족히 10년은 버틸 수준이었다.
“어시스트가 너니까 그렇지. 이렇게 깔끔하게 성형술 한 건 나도 오늘이 처음이다.”
백경민이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시스트 진짜 기가 막히더라. 네가 텔레파시로 내 마음을 읽는 줄 알았다니까.”
백경민의 말은 단순한 호들갑이 아니었다.
집도의의 실력을 100퍼센트로 이끌어 내는 건 오롯이 어시스트의 몫이었으니까.
전생과 이번 생에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은 나는 집도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뛰어난 어시스트를 할 수 있었다.
“어시스트가 아무리 잘나도 집도의가 못나면 말짱 꽝이지. 형도 대단했어.”
“뭐야? 칭찬 릴레이라도 하자는 거야?”
백경민의 눈이 반달을 그리며 웃었다.
여유와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막간의 대화로 삼첨판막 수술 성공의 여흥을 풀고, 우리는 곧바로 문제의 인공 판막 치환술로 접어들었다.
수술 난이도로만 따지면 성형술이 판막술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성형술이 망가진 판막을 대대적으로 고치는 작업이라면 치환술은 판막을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제 기능을 못하는 판막을 들어내고 인공 판막으로 갈아 끼워 주기만 하면 됐다.
그래서 그런지 백경민은 이미 수술이 다 끝난 것처럼 방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경민과 달리 나는 긴장을 끈을 바짝 조였다.
전생에서도 판막 치환술 중에 문제가 발생했으니까.
그러니까 본 게임은 성형술이 아니라 치환술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