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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201화 (201/257)

201화 제1장 푸른 거탑(1)

내성 발톱 제거는 당연하게도 흉부외과의 처치가 아니었다.

정형외과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내성 발톱을 제거하는 원리와 기술을 나는 알고 있었다.

왜냐고?

내가 환자였으니까.

전생의 나는 발톱 무좀과 내성 발톱으로 크게 고통받았고, 그로 인해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그때 눈대중으로 봤던 방식으로 내성 발톱을 제거했다.

우선 살 속에 깊숙하게 박혀 있는 발톱을 끄집어낸 후 의료용 니퍼로 발 가장자리 발톱을 제거했다.

텅. 텅.

곡반 위로 두껍고 억세 생선 가시 같은 발톱이 떨어져 내렸다.

저런 흉측한 발톱이 속살을 찌르고 있었으니 발가락이 남아날 수가 없었을 테지.

“이번엔 좀 더 아플 거야.”

“지금도 충분히 아픕니다, 지대장님.”

마취를 넘어선 통증에 양정훈이 눈물을 찔끔 흘렸다. 참아 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

벅. 벅. 벅.

큐렛이라는 기구로 내성 발톱의 뿌리를 긁어내자 피가 샘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양정훈의 양쪽 발톱의 뿌리를 박멸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새살이 돋도록 양쪽 발톱에 굳은살까지 제거했다.

처치 완료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5분 남짓.

처음 해 본 정형외과 처치치고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피를 닦아 내고, 소독하고, 그 위로 거즈를 덧대면서 처치의 마침표가 찍혔다.

문득 처치를 지켜보고 있던 의무병들과 시선을 마주쳤는데, 다들 내게 감탄한 기색이었다.

내성 발톱 제거 정도로 감탄이라니…….

수술방에서 심장 수술하는 걸 보면 까무러치겠는데?

의무병들의 반응이 나는 사뭇 귀여웠다.

“샤워할 할 때는 발목에 비닐봉지를 감고 해. 아침, 저녁으로 의무대 와서 소독 받고.”

“…….”

“3일 정도는 항생제랑 소염진통제도 먹고.”

“네, 감사합니다. 지대장님.”

양정훈이 돌아간 후 나는 양정훈이 소속된 본부 중대에 전화를 걸었다.

양정훈의 부소대장과 짧게 통화를 나눴다.

-네, 지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양정훈이라는 친구가 내성 발톱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최소 한 달은 작업 열외를 해야 할 겁니다. 신발은 무조건 활동화를 신어야 하고요.”

-한 달씩이나 말입니까? 그것도 고작 발톱을 잘라 낸 걸로?

부소대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작 어처구니가 없는 건 그의 태도와 말투였는데 말이다.

양정훈의 발톱이 저렇게 악화된 이유에는 통화 중인 부소대장의 책임이 9할은 있을 것이다.

나는 몰인정한 부소대장을 겁주기로 마음먹었다.

“뭐, 원하신다면 좀 더 일찍 복귀시켜도 되고요. 그럼 발에 감염증이 생겨서 발가락을 잘라 내야 할 수도 있겠지만요.”

-에이,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설마 아무리 잘못된다고 해도 발가락까지 잘라 내기야 하겠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감염증이란 건 그만큼 무서운 거니까요.”

“…….”

“저는 분명히 경고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정훈이가 잘못된다면 전부 부소대장님 책임이 되겠죠.”

나는 일부러 책임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책임은 군대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 중 하나인데, 군대에서 지는 책임이란 대부분 안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거칠게 나오자 부소대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사근사근해졌다.

그는 양정훈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돌연 태도를 바꾸었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대답에 그저 쓴웃음만 나오는 나였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

부소대장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나는 그의 마음속을 이미 환히 들여다본 것 같았다.

뚝.

통화를 끊고도 쓴맛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지대장실에서 믹스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셨다.

전생과 다른 부대에 배치를 받은 만큼 앞으로 부대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남은 2년 4개월가량의 임기 동안 불어올 바람은 과연 산들바람일까.

아니면 태풍일까.

창밖 너머로 펼쳐진 산자락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산은 대답이 없었다.

* * *

산비탈을 오르는 엠뷸런스가 좌우로 덜컹덜컹 흔들렸다. 멀미를 모르고 살았던 내가 다 멀미를 느낄 정도였다.

그날 오후, 나는 운전병과 강진수를 대동하고 GOP 초소를 돌고 있었다.

오늘은 초소를 직접 돌며 회진을 하는 날이었다.

GOP 대대의 특성상 중대 내 병사들이 초소에 흩어져 있어 의무대에 쉽게 찾아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료를 보는 내내 나는 가슴이 아팠다.

병사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질환들은 대부분 군대에서 생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많았던 질환은 단연 정형외과 관련 질환이었다.

손목 통증, 허리 통증, 어깨 통증 등등.

군대에서 실시하는 고된 작업으로 병사들의 몸은 망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아프다는 티를 낼 수 없었고, 회복을 위해 쉴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치료는 더더욱 받을 수 없었다.

군대는 절대다수 병사의 아픔으로 굴러가는 곳이었다.

회진 중 나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도 현역에 입대한 어떤 병사를 진료하게 되었다.

병사는 디스크 수술 전적을 밝히며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불행하게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초라했다.

온찜질이 가능한 오천 원짜리 찜질기 대여.

알량한 진통제 몇 알.

국군 태극 병원으로 외진을 보내 주는 일뿐이었다.

-쉴 때 웬만하면 누워 있고, 누울 때는 무릎 밑에 베개를 받혀 놔. 그럼 허리에 부담이 덜 갈 거야.

나는 그런 조언을 할까 말까 하다가 목구멍으로 꿀꺽 삼켰다.

수술까지 받은 병사가 그 정도 상식을 모를 것 같지는 않았다.

하나 마나 한 공허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

보잘것없는 치료밖에 할 수 없었으므로 초소를 돌 때마다 내 가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켜켜이 쌓여 갔다.

초소 회진을 마치는 데는 대략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의무대로 복귀했을 때는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지대장실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흉부외과의 환경과 처우 개선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군 병사들의 의료 환경 개선은 도무지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 일을 해내려면 앞으로 회귀를 서너 번은 더해야 할 것 같았다.

* * *

일과와 저녁 식사까지 끝난 시각.

오전에 내성 발톱 수술을 받았던 양정훈이 의무대를 찾았다.

병사들이 소독하겠다는 것을 만류하고 나는 직접 양정훈의 발톱을 소독했다.

내 눈으로 경과를 지켜보고 싶어서였다.

거즈를 제거하고 살핀 양정훈의 발가락 양쪽 끝은 별문제가 없었다. 이제 필요한 건 오로지 새살이 돋고 발톱이 자라는 시간인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활동화 신고 왔네?”

나는 소독하던 중 양정훈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양정훈이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네, 다 지대장님 덕분입니다. 솔직히 부소대장님이 계속 전투화 신기고 작업도 시킬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발을 편하게 하고 최대한 빨리 낫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내가 겁을 단단히 줬거든. 지가 별수 있겠어? 치료에 관해서라면 지가 먼저 꼬리를 말아야지.”

나는 피식 웃으며 양정훈의 활동화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에 신발만 좀 편하게 신겼더라도 양정훈의 발톱은 제거해야 할 수준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군대와 간부가 양정훈의 병을 키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상에 키울 게 없어서 병을 키우게 하는 곳이라니…….

군대라는 조직은 분명히 필요한 곳이지만 이곳에서 벌어지는 병폐를 납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진짜 감사합니다. 지대장님 덕분에 정말 살맛 나는 것 같습니다.”

“그 마음 나도 잘 안다. 나도 내성 발톱으로 고생 많이 했거든.”

“정말이십니까?”

“정말은 아니고 혼잣말이야. 아니, 반말인가?”

갑작스레 툭 던진 내 고급 유머에 양정훈이 한 박자 늦게 웃었다.

안 웃었으면 살짝 서운했을지도?

어쨌거나 의무대를 떠나는 양정훈을 지켜보며 나는 조금이나마 뿌듯함을 느꼈다.

군의관이라는 자리는 분명 무력한 자리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있는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대대에 있는 병사들이 한 명이라도 덜 고통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내 소임은 다하는 것일 테니까.

기분 전환을 한 나는 의무병이 생활하는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강진수 일병과 얼마 전 전입 온 이등병 손호열이 TV를 보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 어디 갔어?”

“상병, 병장들은 체육관에 운동하러 갔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체육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체육관은 이름만 거창할 뿐 비닐하우스 천막을 쳐 놓은 곳에 헬스 기구 몇 개를 갖다 놓은 곳이었다.

조잡하고 낡은 벤치 프레스.

흙먼지를 뒤집어쓴 덤벨과 케틀벨.

혼자 외롭게 놓인 철봉 정도를 말이다.

“단결.”

“단결.”

나를 발견한 병사들이 차례대로 경례를 붙였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은 할 만해?”

“솔직히 할 게 없어서 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때가 아니면 운동을 할 것 같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의무대 이두영 상병이 대답했다.

전생에서도 그랬는데, 상병 이상 짬밥을 먹으면 운동에 눈을 돌리는 병사들이 많았다.

남는 에너지를 운동에 쏟아붓는 것이다.

“심심풀이로 하는 것치고는 몸이 좋은데? 네 복근에다 빨래를 해도 되겠다.”

“지대장님이 원하신다면 기꺼이 제 복근을 바치겠습니다.”

“야, 농담이라도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

“저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어디다 보여 줄 때도 없는 복근인데 지대장님 빨래에라도 쓰일 수 있다면 영광일 겁니다.”

“하여간 두영이 너는 진짜…….”

이두영의 너스레에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두영은 의무대에서 일 처리를 가장 잘하는 병사였고, 또 말빨도 좋았다.

“지대장님도 앞으로 운동하실 계획이십니까?”

“눈치 한번 빠르네. 맞아, 틈틈이 해 두면 좋을 것 같아서.”

멋진 흉부외과 에세이를 쓰겠다는 목표가 있지만 그 목표만으로 길고 지루한 군대 생활을 버텨 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때 복싱 학원에 다닌 후로 담을 쌓았던 운동과 다시 친해질 계획이었다.

체력과 근력은 외과 수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하나였으니까.

실제로 은사인 양 교수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 병원 근처 헬스장에서 런닝 머신을 뛰기도 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운동마저 해.”

“네, 지대장님.”

나는 양손으로 5킬로짜리 덤벨부터 들었다.

덤벨을 고작 위아래로 몇 번 들었다가 내렸을 뿐인데 위쪽 팔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 왔다.

덤벨을 사용해서 알고 있는 동작 몇 개를 3세트씩 반복했더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묵직한 근육통이 찾아왔다.

첫날이라 운동은 맛보기만 진행하고 나는 샤워한 후 지대장실로 복귀했다.

똑. 똑. 똑.

때마침 불청객으로 찾아온 노크 소리.

들어오라고 말하자 강진수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지휘통제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대대장님이 지대장님을 뵙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대대장님이?”

이 야심한 시각에 대대장의 호출이라…….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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