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사 대영주와의 결전
[청염 - 창조 등급]
-액티브 스킬
-적의 근본을 불태웁니다.
-액티브 스킬북 청염 - 창조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역시 창조 등급이었어.’
예상이 적중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한데 코디기 대영주가 남긴 스킬북은 현성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해 주었다.
초월 등급이 아니라 창조 등급 스킬북을 남겨 주고 간 것이다.
스킬 설명은 고작 한 줄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성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면 가득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적의 근본을 불태운다는 청염의 설명 때문이었다.
현성은 과거 카렌과의 접전에서 적의 근본을 제거하는 힘을 사용해 본 적이 있었다.
근본을 제거하는 힘은 대단했다.
불사신과 같았던 카렌의 부활 능력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 어떤 회복 스킬도 근본을 제거하는 힘 앞에선 무력하게 무너졌다.
그 놀라운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때는 내 힘이 아니었지.’
당시 적의 근본을 제거하는 힘을 쓸 수 있었던 건 흑뢰신마공이 흑뢰신의 숨결일 때 연결되어 있던 끈 덕분이었다.
그 끈을 통해 존재의 의지로부터 적의 근본을 제거하는 힘을 빌려 올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야.’
청염을 흡수한다면?
존재의 의지를 통해 힘을 빌려 오지 않고도 적의 근본을 불태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현성은 망설이지 않았다.
곧바로 예를 선택했다.
-액티브 스킬 청염 – 창조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초월 등급이 액티브 스킬 청염 – 창조 등급과 융합됩니다.
-액티브 스킬 화염의 서 – 유일 창조 등급이 생성되었습니다.
‘놀라운데?’
현성은 당연히 화염의 서가 청염에 흡수될 거라고 생각했다.
등급 차이가 났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화염의 서가 청염을 흡수해 버렸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화염의 서가 청염을 흡수했건, 청염이 화염의 서를 흡수했건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현성이 창조 등급 스킬을 하나 더 손에 넣었다는 점이었다.
‘완전 복덩이네.’
코디기 대영주의 죽음이 현성에게 엄청난 이득이 되어 돌아왔다.
업적 획득이나 창조 등급 스킬북.
둘 중 하나만 손에 넣을 수 있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두 가지 모두를 손에 넣었다.
“네 이놈!”
그런 현성에게 분노로 가득 찬 아크사 대영주의 고성이 들려왔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크사 대영주 입장에서는 애써 차려 놓은 밥상을 남이 와서 덥석 먹어 버린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히죽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오른손을 들어 쭉 뻗었다.
그 후 검지를 까닥거렸다.
사는 차원이 다르고, 종족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이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 * *
아크사 대영주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다 잡은 먹잇감이었다.
한데 갑자기 나타난 엉뚱한 놈에게 빼앗겨 버렸다.
거기다 자신의 수하들까지 죽였다.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한데 그 도적놈이 코디기 대영주의 몸에서 나온 스킬북을 익혔다.
그것도 모자라 손가락으로 자신을 도발했다.
“이익!”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달려들어 상대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크사 대영주는 그러지 못했다.
‘보통 놈이 아니야.’
그 전까지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한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일 검에 코디기 대영주와 수하들을 쓸어버렸다.
코디기 대영주야 마력 운용이 금제된 상태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은 아니었다.
아무리 방심했다지만…….
아무리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취소했다지만…….
그들은 코디기 대영주를 생포한 실력자들이었다.
한데 그런 이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포위하라.
아크사 대영주가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슈슈슉!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이 코디기 대영주에게 펼쳤던 포위망을 다시금 펼쳤다.
‘대영주급이 분명하다.’
자신과 동급의 실력자가 나타난 이상 몸을 사려야 했다.
“네놈은 누구냐?”
아크사 대영주가 갑자기 나타난 도적놈을 향해 물었다.
모르는 얼굴인 걸 보면 타국의 인물일 확률이 높았다.
“부랑자.”
상대의 짧은 대답에 아크사 대영주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차라리 타국에 소속되어 있는 대영주였다면 이해를 했을 것이다.
한데 부랑자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내 먹잇감을 빼앗은 거지?”
아크사 대영주의 물음에 상대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오래전부터 이놈을 노리고 있었거든.”
상대의 말에 아크사 대영주의 분노 게이지가 상승했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상대의 모습이 사라졌다.
‘뭐지?’
아크사 대영주의 경계심이 급상승했다.
그때 아크사 대영주가 익힌 패시브 스킬이 마력의 흐름을 감지했다.
위기를 느낀 순간 방어 스킬을 발동시켰다.
파아앙!
날카로운 칼날이 방어 스킬을 뚫고 아크사 대영주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다행히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이놈이 감히!”
분노한 아크사 대영주가 전력을 다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지지직!
그와 동시에 황금빛 뇌전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휘익!
도적놈이 얄밉게 몸을 피했다.
“역시 안 통하네.”
그러더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너도 내가 오래전부터 노리고 있던 놈 중 하나야.”
도적놈의 말을 듣는 순간,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저놈을 죽여라!
진노한 아크사 대영주가 대군주의 외침을 통해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이 도적놈을 향해 총공세 퍼부었다.
* * *
‘초월 등급 스킬인 차원의 이면으로는 한계가 있네.’
현성이 아쉽게 혀를 찼다.
애초에 실패할 거란 사실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 봤다.
한데 역시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현성이 아크사 대영주가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코디기 대영주를 노린 이유는 간단했다.
차원의 이면 스킬이 대영주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 예상은 적중했다.
현성이 일정 거리 이상 근접한 순간, 아크사 대영주는 곧바로 반응했다.
설사 반응하지 못했다고 해도 일 검에 죽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현성이 불사의 서와 천뢰신의 갑옷을 비롯해 여러 초월 등급 회복 스킬과 방어 스킬을 가지고 있듯 아크사 대영주 역시 그럴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이제부터는 정면 대결인가?’
현성이 사방에서 자신을 포위한 채 맹공을 펼치는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을 주시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이 코디기 대영주를 어떻게 사냥하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코디기 대영주는 청염이라는 창조 등급 스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무너졌다.
아크사 대영주가 수하들에게 대군주의 축복을 비롯해 온갖 버프를 걸어 줬기 때문이다.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은 지속적으로 코디기 대영주의 체력과 마력을 갉아먹으며 승리를 쟁취했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나는 코디기 대영주가 아니야.’
현성에게는 체력과 마력을 보충해 줄 수많은 신하들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적의 체력과 마력을 흡수하는 온갖 스킬들과 아이템들로 든든하게 무장하고 있었다.
‘장기전으로 나를 이길 수는 없을 거다.’
현성이 살기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을 바라보며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창조 등급 스킬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현성의 전신을 뒤덮었다.
꽈아앙! 꽈아앙!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이 범을 사냥하는 늑대처럼 치고 빠지며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갉아먹으려고 했다.
하나 현성은 코디기 대영주가 아니었다.
현성의 체력과 마력은 변함없이 항상 일정 수준을 유지했다.
아니, 오히려 차오르려는 체력과 마력을 억제하느라 조심해야 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안 되지.’
현성은 코디기 대영주를 기습하기 전 자신의 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용인화 스킬을 발동하고 있었다.
체력과 마력을 낭비해 광폭화와 천뢰신의 갑옷 스킬도 발동시킨 상태였다.
뚱이와 덕구 역시 창조 등급 스킬인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두른 채 무섭게 날뛰고 있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칠흑빛 뇌전과 불길을 뿜어내며 적들을 공격했다.
‘확실히 격이 달라.’
흑뢰신마공의 위력이야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나 화염의 서는 창조 등급으로 거듭난 후 가지는 첫 데뷔 무대이자 테스트 무대였다.
화염의 서는 창조 등급 스킬의 힘을 가감 없이 보여 주었다.
화르르륵!
작은 불길이 닿기만 해도 상대의 마력을 불태우며 무섭게 번져 나갔다.
적은 불길이 닿은 자신의 신체를 절단해서라도 위기를 모면하고자 했다.
높은 등급의 회복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손실된 신체의 일부를 복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화염의 서가 불태운 육체는 다시금 복구되지 않았다.
적들의 입장에서는 현성을 공격하기도 쉽지 않았다.
현성의 몸은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로 뒤덮여 있었다.
흑뢰신마공의 공격력은 실로 강력하다.
거기다 적의 마력과 근본을 불태워 타오르는 화염의 서가 더해졌다.
적들은 현성을 향해 근접전을 벌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가까이 가기만 하면 칠흑빛 뇌전과 화염에 휩싸여 재로 변했기 때문이다.
원거리 공격 역시 먹히지 않았다.
뇌전 계열 스킬은 일정 범위 안에 드는 순간 통제력을 잃고 주인을 공격했다.
화염 계열 스킬은 화염의 서의 먹잇감이 되어 칠흑빛 화염을 강화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부하들이 전멸할 때까지 쭉 이렇게 덤벼 줬으면 좋겠네.’
그러면 무난하게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을 전멸시킬 수 있을 듯 보였다.
하지만…….
아크사 대영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수하들로 현성의 체력과 마력을 깎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현성과 같이 공수가 조화롭고 적의 체력과 마력을 갈취하는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를 상대로는…….
약한 다수보다 강력한 한 명이 더 낫다.
슈슈슈슉!
현성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던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 신하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그 후 넓은 포위망을 유지했다.
저벅저벅.
포위망 한가운데로 아크사 대영주가 걸어 나왔다.
“드디어 나왔네?”
현성의 물음에 아크사 대영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움켜쥐었다.
아크사 대영주는 자기 보신의 대가였다.
아주 약간의 위험 요소만 존재하더라도 나서기를 꺼렸다.
휘하 신하들의 목숨을 수없이 소모하더라도 그게 자신에게 안전한 길이라면 망설이지 않았다.
하나 그것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군주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특별함을 생각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을 뿐이다.
휘하 신하들은 아무리 많이 소모되어도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다.
하나 자신이 죽으면 끝이다.
아마 이번에도 신하들이 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만한 약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절대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신하들을 아무리 투입시켜도 소득 따위는 없었다.
오직 손해만 있을 뿐.
그 사실을 알아차렸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내가 직접 네놈의 숨통을 끊어 주마.”
타악!
아크사 대영주가 현성을 향해 달려 나갔다.
파지지직!
앞으로 달려 나가는 아크사 대영주의 전신이 황금빛 뇌전으로 물들었다.
현성 역시 미소를 지으며 전신을 칠흑빛 뇌전과 화염으로 물들였다.
꽈아아아앙!
황금빛 뇌전과 칠흑빛 뇌전에 휩싸인 두 절대자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 * *
하늘이 쪼개지고 대지가 갈라졌다.
두 절대자의 대결은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수준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코디기 대영주를 먼저 쓰러트리지 않았다면 내가 졌겠어.’
현성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름 자신이 있었다.
설사 창조 등급 업적과 스킬북을 얻지 못하더라도 대영주와 한판 붙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현성의 오만이었다.
코디기 대영주를 쓰러트리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크사 대영주와의 싸움에서 스텟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나마 스킬이 받쳐 줘서 다행이지.’
화염의 서가 창조 등급으로 업그레이드되어서 다행이었다.
흑뢰신마공만 가지고 싸웠다면?
아마 지금처럼 약간 밀리는 정도로 접전을 이어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현성은 차분하게 전투를 이어 나갔다.
아크사 대영주는 현성에게 대부분의 하급 영지를 빼앗겼다.
거기다 코디기 대영주와의 마지막 접전으로 엄청난 수의 부하들을 잃었다.
‘그리고 이미 치열한 전투를 끝낸 후지.’
직접 코디기 대영주와 붙진 않았지만, 그 부하들 중 강력한 놈들을 처리하느라 아크사 또한 어느 정도 힘이 빠졌을 터.
그런 아크사 대영주는 물론 체력과 마력을 공급해 줄 신하들 역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거기다.
냐앙! 멍멍!
시끄럽게 울어 대며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을 공격하는 두 정령의 활약 역시 대단했다.
창조 등급 공격 스킬로 이루어진 정령들의 몸뚱어리는 그 자체로 흉기였다.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 역시 실력이 뛰어나기에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뚱이와 덕구에게 당하는 이들이 나왔다.
설사 뚱이와 덕구의 공격에서 살아남더라도 버티기 위해서는 체력과 마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장기전은 무조건 내가 유리하다.’
현성은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고 차분하게 버텼다.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시간은 현성의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 * *
아크사 대영주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역시 상대는 대영주급의 강자였다.
스텟상 조금 우위에 있다고 하지만, 상대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빌어먹을.’
칠흑빛 불꽃이 날름거리며 아크사 대영주의 육신을 탐했다.
칠흑빛 불꽃은 아크사 대영주가 가장 경계했던 코디기 대영주의 스킬인 청염의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창조 스킬북만 먼저 얻었어도.’
아마 가볍게 저 도적놈을 압도하고 있을 터였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반드시 죽인다.’
아크사 대영주가 이를 악물었다.
극도로 몸을 사리던 아크사 대영주가 수하들을 물리고 직접 앞으로 나선 이유는 단 하나.
이대로 물러나면 모든 게 끝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코디기 대영주와의 접전을 끝까지 이어 나간 이유는 그간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코디기 대영주가 토해 낼 창조 등급 스킬북.
코디기 대영주 휘하에 있는 뛰어난 플레이어들과 하급 영지들.
한데 그 모든 게 날아갔다.
코디기 대영주를 상대로 피를 흘리며 치열하게 싸운 건 아크사 대영주다.
한데 갑자기 나타난 도적놈이 그간 노력해 일군 과실을 냉큼 따 먹었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아크사 대영주는 모든 것을 잃는다.
대영주의 직위뿐 아니라 목숨도 위태로웠다.
그렇기에 물러날 수가 없었다.
눈앞의 도적놈을 죽여 창조 등급 스킬북을 회수해야 했다.
도적놈의 휘하에 있는 신하들을 흡수해야 했다.
파지지직!
황금빛 뇌전이 하늘과 땅을 모두 뒤덮었다.
아크사 대영주가 몸을 사린 이유는 스스로가 가진 힘이 미약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 만큼 전력을 다하는 아크사 대영주의 힘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굳이 대군주의 축복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
나름 팽팽해 보이지만 이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인물은 바로 아크사 대영주였다.
체력과 마력을 아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상대가 대군주의 축복을 사용하기 전에는 자신도 대군주의 축복을 아끼는 게 좋았다.
‘대영주의 진정한 힘을 보여 주마.’
아크사 대영주가 이를 악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아크사 대영주의 맹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도적놈은 몸을 잔뜩 웅크린 상태로 방어에 여념이 없었다.
‘네놈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도적놈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마력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도적놈이 마력을 쏟아 내 칠흑빛 뇌전과 화염을 복구하는 속도보다 아크사 대영주의 맹공이 적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칠흑빛 뇌전과 화염을 갉아먹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난다면?
아크사 대영주는 순조롭게 자신의 것을 탐한 도적놈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
‘내 앞에 나타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아크사 대영주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더 강한 맹공을 퍼부었다.
그때였다.
-휘하 신하 네이수가 사망했습니다.
-휘하 신하 피로키우포가 사망했습니다.
-휘하 신하 리모커티가 사망했습니다.
……후략……
연속적으로 휘하 수하들의 사망 소식이 전달되었다.
“이게 무슨?”
지금 죽은 수하들은 전장에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아크사 대영주의 직영지를 지키고 있던 신하들의 사망 소식이었다.
“너만 신하들이 있는 건 아니잖아?”
도적놈이 이죽거리며 아크사 대영주를 비웃었다.
“설마?”
“코디기 대영주와의 접전을 위해 실력 있는 신하들을 다 전장으로 불러들였지? 고마워, 덕분에 일이 쉬워졌거든.”
도적놈의 말에 아크사 대영주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네놈 세키라 년과 손을 잡은 것이냐?”
도적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빌어먹을!”
아크사 대영주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휘하 신하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어 가자, 체력과 마력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
또 대군주의 깃발이 가져다주는 버프 효과 역시 급감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말 눈앞의 도적놈과 세키라 대영주가 손을 잡았다면?
언제 이 자리에 세키라 대영주가 나타날지 모른다.
도적놈과 세키라 대영주.
둘 중 하나만 덤빈다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
하지만 둘이 힘을 합쳐 자신을 공격한다면?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자신의 필패였다.
“으아아아아!”
아크사 대영주가 노성을 터트리며 도적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화가 잔뜩 나셨네.’
현성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크사 대영주의 공세를 막아 냈다.
아까보다 아크사 대영주의 공격을 막아 내기가 수월했다.
루시아와 파르티샤를 비롯한 신하들의 지원 덕분이다.
이번 전투가 있기 전 현성은 냉정하게 아군의 전력을 분석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루시아 일행이 자신과 함께하는 것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 후 현성은 루시아 일행을 아크사 대영주의 직영지로 파견했다.
루시아에게 대군주의 축복 스킬을 내렸다.
또 사방에서 쏟아지는 다른 신하들의 체력과 마력을 루시아 일행에게 보내 주었다.
주력이 빠진 아크사 대영주의 직영지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좋아.’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루시아 일행의 활약은 현성에게 큰 도움이 된다.
아크사 대영주의 직영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루시아 일행 덕분에 아크사 대영주가 거느린 신하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뚱이와 덕구 역시 꾸준히 활약하며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 신하들을 하나둘 줄여 나가고 있었다.
신하들의 숫자는 중요하다.
신하들이 있기에 체력과 마력을 보충할 수 있다.
신하들이 있기에 군주의 깃발로 인한 스텟 증가 효과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전쟁으로 수많은 신하들을 잃어버린 아크사 대영주다.
한데 그나마 남은 밑천이라고 할 수 있는 직영지가 털리고 있다.
점점 힘이 줄어들고 있으니 아크사 대영주가 조급해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버티기만 하면 이긴다.’
현성은 자신의 장기인 장기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도 버티고 버티면 이길 수 있다.
현성의 체력과 마력은 무한에 가까웠고, 아크사 대영주의 체력과 마력은 유한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크사 대영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크사 대영주 역시 최대한 빨리 승부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꽈아앙! 꽈아앙!
황금빛 뇌전이 잠시도 쉬지 않고 무섭게 휘몰아쳤다.
아크사 대영주의 검이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살이 찢어져 피가 터져 나왔다.
뼈가 부러졌다.
신체의 일부가 검게 타들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아크사 대영주는 현성의 탄탄한 방어를 뚫고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현성은 불사의 서를 통해 목숨이 위험한 치명적인 부상도 순식간에 복구해 낼 수 있다.
그런 현성에게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상처는 작은 부상 축에도 들지 못했다.
‘내가 이겼어.’
현성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크사 대영주의 몸에는 조금씩 충격이 누적되고 있었다.
청염을 흡수한 화염의 서가 아크사 대영주의 근원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부상은 순식간에 회복된다.
그에 반해 아크사 대영주의 부상은 회복이 불가능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현성이 이기는 게 당연했다.
그때였다.
타악!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 하나가 달려왔다.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대군주의 축복인가?’
무의미한 발악이었다.
아무리 대군주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진짜 대군주의 힘에는 미치지 못한다.
현성의 방어는 대군주의 축복을 받은 신하 하나가 가세했다고 무너질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악수다.’
대군주의 축복이 아크사 대영주의 체력과 마력을 더 빠르게 고갈시킬 것이다.
그때였다.
아크사 대영주가 아공간에서 아이템을 꺼내더니 대군주의 축복을 받은 신하에게 넘겼다.
대군주의 축복을 받은 신하가 아크사 대영주가 넘긴 아이템을 단숨에 삼켜 버렸다.
그 순간.
화르르륵! 파지지직!
대군주의 축복을 받은 신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화염과 아크사 대영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뇌전이 하나로 힘을 합쳐 현성의 몸을 강타했다.
“크아아아아악!”
현성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가 순식간에 뚫려 버렸다.
‘저 미친놈.’
현성은 아크사 대영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영구적으로 스텟을 하락시키는 소모성 버프 아이템.
그걸 대군주의 축복을 사용한 신하에게 복용시킨 것이다.
한두 개 정도를 복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대군주의 축복을 받은 신하의 스텟 증가 폭이 너무 과했다.
이 정도로 스텟이 급격히 늘어났다면, 엄청난 숫자의 소모성 버프 아이템을 먹었다는 뜻이다.
영구적으로 스텟을 하락시키는 소모성 버프 아이템을 쓴다는 건 순간적인 힘의 상승을 위해 그간 쌓아 올린 스텟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저 정도로 많이 처먹었다면?
전투가 끝난 후 스텟이 반의반 토막이 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저 이기적인 놈. 처먹으려면 자기가 처먹을 것이지.’
아크사 대영주는 승리를 위해 충성스러운 신하를 단순한 도구처럼 소모해 버렸다.
‘피해야 해.’
소모성 버프 아이템에 대한 대처법은 사실 간단하다.
몸을 피하면 그만이다.
소모성 버프 아이템의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지속 시간은 길어야 몇 시간 정도.
그때까지 도망 다니면 오히려 이득이다.
문제는 현재 현성에게 몸을 피할 여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현성은 황금빛 뇌전과 붉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몸을 피하기는커녕 목숨이 위태로웠다.
‘어쩔 수 없어.’
아끼고 아껴 온 힘을 사용해야 할 때가 왔다.
현성이 존재의 의지가 가지고 있는 힘을 빼앗아 왔다.
파지지직!
현성의 몸에서 초월적인 힘을 품은 칠흑빛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꽈아아앙!
현성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황금빛 뇌전과 붉은 화염이 칠흑빛 뇌전에 휩싸여 소멸해 버렸다.
파지지직!
현성이 존재의 의지에게 빼앗아 온 힘을 사용해 반격에 나섰다.
꽈앙! 꽈앙!
사납게 날뛰던 황금빛 뇌전과 붉은 화염이 한순간 힘을 잃었다.
하지만 현성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방어가 너무 단단해.’
현성이 존재의 의지에게서 빼앗아 올 수 있는 힘의 총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힘이 모두 소모되기 전에 둘 중 하나는 끝장을 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크사 대영주와 소모형 아이템을 섭취한 놈은 요리조리 몸을 피하며 시간을 끌었다.
퍼엉! 퍼엉!
의미 없는 소모전이 이어졌다.
‘이길 수 없어.’
존재의 의지에게서 빼앗아 온 힘이 서서히 그 바닥을 드러냈다.
이길 수 없다면 존재의 의지에게서 빼앗아 온 힘이 완전히 바닥나기 전에 몸을 피해야 했다.
타악!
현성이 몸을 돌렸다.
그 후 전력으로 도주했다.
하지만…….
“절대 놓치지 마라!”
“목숨을 걸고 막아라!”
현성의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다.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저들을 죽여 체력과 마력을 보충할 수 있다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력과 마력을 보충받는 건 현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미친놈들을 따돌려야 했다.
“비켜!”
현성이 노성을 터트리며 칠흑빛 뇌전과 화염을 흩뿌렸다.
뚱이와 덕구 역시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 현성에게 힘을 보탰다.
꽈아아아앙!
“크아아악!”
“커어어억!”
“절대 물러나지 마라!”
“무조건 막아라!”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현성의 앞길을 막았다.
존재의 의지에게서 빼앗아 온 힘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의 포위망을 뚫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간 이동 스킬도 사용해 보고, 장거리 공간 이동 스크롤을 찢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망할!”
마력 역장 때문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꽈아아아앙!
그 순간 붉은 화염과 황금빛 뇌전이 포위망에 갇혀 있던 현성의 몸을 강타했다.
“쿨럭!”
현성이 피를 토했다.
존재의 의지에게서 빼앗아 온 힘은 바닥난 지 오래였다.
“아아아아악!”
현성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붉은 화염과 황금빛 뇌전이 현성의 뼈와 살을 불태웠다.
심장을 비롯한 장기와 뇌가 타들어 갔다.
불사의 서가 회복시켜 주는 속도보다 파괴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대군주의 축복을 받은 신하의 힘은 이 순간 대영주와 동급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영구적인 스텟 하락을 감수한 결과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성도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다.
‘누가 먼저 죽나 어디 한번 해 보자.’
현성이 오랜 시간 억눌러 왔던 패시브 스킬들을 일제히 발동시켰다.
-패시브 스킬 생존 본능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살인자의 광분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피의 미치광이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패시브 스킬 살육의 광기 – 영웅 등급이 발동됩니다.
……후략……
꽈아아아앙!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자신을 휘감고 있는 붉은 화염과 황금빛 뇌전을 몰아냈다.
꽈앙! 꽈앙!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황금빛 뇌전과 붉은 화염을 상대로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였다.
현성의 두 눈은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전처럼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업적과 탐식의 서로 꾸준히 정신력 스텟을 올린 덕분이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현성이 전투 중간중간 포위망을 펼치고 있는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을 향해 칠흑빛 뇌전과 화염을 날렸다.
패시브 스킬을 발동시키기 전의 목표인 탈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때문이다.
꽈아아앙!
현성이 칠흑빛 뇌전과 화염을 날릴 때마다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그 모습을 목격한 아크사 대영주의 얼굴빛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이런 빌어먹을!’
아크사 대영주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완전 진퇴양난이었다.
포위망을 풀면 지루한 추격전이 벌어진다.
추격전이 길어지면?
소모형 버프 아이템의 지속 시간이 끝나는 순간,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하지만 포위망을 계속 유지하고 있자니, 자신의 수하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간다.
손해가 너무 막심했다.
눈앞의 도적놈을 제거하더라도 손해를 벌충하기 힘들 정도로 피해가 커졌다.
‘죽여야 한다.’
아크사 대영주가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이해득실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충성스러운 신하가 섭취한 소모형 버프 아이템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무조건 저 도적놈을 죽여야 했다.
-포위망을 더욱 견고하게 유지해라. 목숨을 다해 저놈의 퇴로를 차단하라.
아크사 대영주가 휘하 신하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
세키라 대영주의 공격?
대영주 직위 상실?
지금은 훗날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모든 힘을 다해 눈앞의 도적놈을 죽여야 했다.
아크사 대영주 휘하의 모든 신하들이 현성을 죽이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큭!”
현성의 입에서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모형 버프 아이템을 먹은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가 내지른 공격이 현성의 심장을 꿰뚫었다.
심장에서 시작된 붉은 불길이 현성의 장기를 녹여 버렸다.
현성은 신혈검을 휘둘러 적의 팔을 잘라 냈다.
손상된 육체가 불사의 서로 인해 빠르게 복구되었다.
파지지직!
그 순간 아크사 대영주의 황금빛 뇌전이 날아들었다.
팔이 잘린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 역시 계속해서 붉은 화염을 날렸다.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
불사의 서가 신체를 회복시키기도 전에 새로운 공격이 날아왔다.
‘지독한 놈들.’
현성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아크사 대영주와 그의 신하가 가하는 공격을 방어했다.
현성의 몸을 뒤덮고 있던 마신의 갑주는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박살 난 상태였다.
현성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포위망을 구성하고 있던 아크사 대영주의 수족들을 거의 전멸시켰다.
‘거의 끝나 간다.’
뚱이와 덕구가 남아 있는 아크사 대영주의 수족들을 전멸시키기 직전이다.
포위망을 구성하던 이들이 완전히 전멸하면?
소모형 버프 아이템을 섭취한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가 힘을 잃을 때까지 도망 다니기만 하면 된다.
승리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아크사 대영주와 그의 신하는 이대로 현성을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몸을 사리지 않는 맹공을 가해 왔다.
하지만 현성은 얼마든지 버틸 자신이 있었다.
현성이 가진 힘과 아크사 대영주, 그 신하가 가진 힘은 서로 비등했다.
그렇기에 존재의 의지에게서 빼앗은 힘까지 동원하고도 아크사 대영주와 그 신하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하나 이는 아크사 대영주와 그 신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신의 갑주는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현성에게는 수많은 방어 스킬과 불사의 서 그리고 단단한 용인의 육체가 있었다.
아크사 대영주와 그 신하의 공격에 심장이 꿰뚫릴 정도의 치명상을 입기는 했지만, 불사의 서로 인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이 싸움은 내가 이겼어.’
포위망은 뚫리기 직전이다.
설사 포위망이 뚫리지 않더라도 현성은 얼마든지 버틸 자신이 있었다.
화르르륵!
그때 전신이 붉은 화염으로 휩싸인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가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모형 버프 아이템의 효과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겠어.’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는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사지 중에 멀쩡한 부위가 거의 없을 지경이었고, 얼굴과 몸통 역시 수많은 상처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주군인 아크사 대영주를 보호하기 위해 몸으로 현성의 공격을 막아 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현성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수많은 부상을 입었다.
현성은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했지만,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는 화염의 서가 가진 근본을 불태우는 힘 때문에 부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번 공격을 방어하고 빠져나간다.’
현성이 결정을 내렸다.
이대로 전투를 지속해도 승리할 확률이 높았다.
하나 괜히 적들에게 반전의 기회를 줄 필요는 없었다.
‘맞서 싸우는 것보다 몸을 빼는 게 더 안전하다.’
꽈아아앙!
현성이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가 날린 공격을 방어했다.
이제 몸을 빼기만 하면 된다.
‘어?’
그런데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가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음에도 현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건 자신을 죽여 달라고 현성에게 사정하는 꼴이었다.
현성이 신혈검을 휘두르려다 멈칫했다.
상대의 몸에서 막대한 마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이 말이다.
‘이런 젠장.’
현성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저 현상의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자폭이었다.
‘지독한 놈.’
스텟이 영구적으로 하락하는 소모형 버프 아이템을 먹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놈은 죽을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피할 틈은 없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흑뢰신마공과 화염의 서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몸을 방어했다.
그 순간 적의 몸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마력이 일제히 폭발했다.
꽈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풍이 현성의 몸을 덮쳤다.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마신의 갑주가 완전히 소멸했다.
단단한 용인의 육체가 화염에 휩싸여 타들어 갔다.
“크아아아악!”
현성이 비명을 터트렸다.
육체를 구성하고 있던 피와 살이 불타고 뼈가 녹아내렸다.
불사의 서가 육체를 복구할 틈도 없이 현성의 육체가 빠른 속도로 소멸했다.
현성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아슬아슬하게 머리와 가슴을 포함한 육체의 일부를 지킬 수 있었다.
‘살았다.’
불사의 서가 빠른 속도로 손실된 육체를 복구시키려 했다.
그 순간.
파지지직!
아크사 대영주가 쏘아 낸 황금빛 뇌전이 현성의 육체를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렸다.
* * *
“하하하하!”
아크사 대영주가 광소를 터트렸다.
단 한 조각의 살점도 없이 말끔하게 상대를 소멸시켰다.
도적놈의 마력과 생기가 완전히 소멸했다.
“내가 이겼다!”
아크사 대영주가 승리의 포효를 터트렸다.
하지만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겨우 이기기는 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다.
아니,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될지 모르겠군.’
아크사 대영주가 직업 전용 스킬 세력 현황을 사용했다.
저 도적놈을 제거하며 새롭게 휘하에 들어온 신하들의 숫자와 레벨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어?”
한데 뭔가 이상했다.
“왜?”
세력 현황에서 새롭게 늘어난 신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도적놈이 죽으며 남겼어야 할 스킬북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아크사 대영주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사아아악!
그때 아크사 대영주의 등 뒤에서 마력과 생기가 밀집했다.
아크사 대영주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그런 아크사 대영주를 향해 칠흑빛 뇌전과 화염이 날아들었다.
아크사 대영주가 재빨리 방어 스킬을 두르고 전신을 황금빛 뇌전으로 휘감았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아크사 대영주의 몸이 뒤로 밀려 났다.
아크사 대영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아크사 대영주를 공격한 이는 바로 방금 전에 자신의 손으로 죽인 도적놈이었다.
육체를 구성하는 생체 조직을 한 줌의 재로 만들었다.
소멸하는 마력과 생기 역시 확실하게 확인했다.
한데 상대가 마치 잿더미 속에서 부활한다는 불사조처럼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