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권. 승부수 (168/225)

┃승부수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쟁이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은 단단히 독기를 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저승으로 데리고 가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그 독기 어린 각오 때문일까?

맹공을 펼치던 아크사 대영주 진영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곤란해.’

아크사 대영주는 다 이긴 전쟁에서 더 이상 피해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설사 영지전에서 승리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입은 피해도 어마어마하거늘…….’

더 이상 피해를 입었다가는 세키라 대영주에게 복수는커녕 반대로 잡아먹힐 판이었다.

‘지독한 놈들.’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은 완전히 고립당했다.

군수물자는커녕 식량을 보급받을 루트도 없었다.

마력 역장을 펼쳐 놨기에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해 군수물자나 식량을 보급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쉽게 말해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것이다.

거기다 승기 역시 완전히 기울어졌다.

이쯤 되면 항복할 만도 했다.

한데 코디기 대영주는 꾸역꾸역 버텼다.

‘도대체 비축한 물자가 얼마나 남은 거야.’

아크사 대영주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코디기 저놈은 정말 끝까지 내 골치를 썩이는군.’

코디기 대영주는 죽기 살기로 버티는 게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과 같은 무승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아크사 대영주가 피해를 두려워해 물러난다면?

결국 소득 없이 손해만 잔뜩 본 셈이 되어 버린다.

‘그럴 수는 없지.’

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이미 엄청난 손해를 본 상황이다.

코디기 대영주의 목이라도 베고 휘하 수하들을 흡수해야만 어느 정도 수지타산이 맞았다.

문제는 코디기 대영주 휘하 신하들이 목숨을 걸고 주군을 지킨다는 점이다.

중심이 되는 휘하 신하들이 전멸한 뒤 코디기 대영주의 목을 벤다면?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로 들어올 코디기 대영주의 신하들은 쭉정이밖에 남지 않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코디기 대영주가 비축한 물자가 다 떨어질 때까지 포위망을 유지하는 건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은 엄청나게 쪼그라들었다. 그 말은 군수물자와 식량을 소비할 플레이어의 숫자 또한 줄어들었다는 뜻이었다.

최소한 반년 이상.

어쩌면 10년 이상 버틸 수도 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지.’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내고 세키라 대영주의 공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그럼 그 방법밖에 없겠군.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보자.’

아크사 대영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코디기 대영주 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는 그간의 죄를 묻지 않고 큰 상을 내릴 것이다! 이는 나의 이름과 직위를 걸고 하는 맹세니라!”

아크사 대영주의 외침에도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크사 대영주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디기 대영주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은 이미 차가운 시체로 변한 지 오래였다.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코디기 대영주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오랜 시간 코디기 대영주에게 충성을 바쳐 온 충신 중에 충신이었다.

하나 눈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나도 참담했다.

계속해서 싸운다면?

아크사 대영주 휘하 플레이어 몇 명 정도는 저승길 길동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결국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아크사 대영주가 미소를 지으며 군을 물렸다.

‘일단 오늘은 물러나마.’

적들이 쉴 수 있는 틈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휴식은 아군에게도 필요했다.

다음 날 아침.

“한 달! 나는 정확히 한 달 뒤 총공세를 펼칠 것이다!”

아크사 대영주의 선포에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은 내심 안도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아크사 대영주의 말에는 간담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투항하지 않아도 좋다! 한 달 뒤 총공세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나와 내 수하들의 앞길을 막지 않는 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다! 하나 끝까지 내게 저항하는 자에게는 분노의 철퇴를 내릴 것이다. 내 맹세코 그자와 그자의 혈족 모두를 찢어 죽일 것이다!”

아크사 대영주는 그 말만 하고 다시금 물러났다.

그리고 아크사 대영주는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해서 회유를 이어 나갔다.

아크사 대영주의 계속되는 회유에 코디기 대영주 휘하 신하들은 마음이 흔들렸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사이의 전쟁이 종결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두 대영주 중 한 명이 목숨을 잃는 것뿐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아크사 대영주가 코디기 대영주의 목을 베어 버릴 확률이 높았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신하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충성 맹세를 철회하고 부랑자가 되든가, 그게 아니라면 아크사 대영주를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든가 말이다.

-어차피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에 들어가게 될 거라면, 조금 일찍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여기 계속 남아서 싸워 봤자 결국 개죽음을 당할 뿐이야.

-한 달 뒤 총공세 때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나는 물론 가족 모두가 살 수 있다.

단단하게 조여져 있던 코디기 대영주 진영의 군기가 흐트러졌다.

죽기 살기로 싸운다는 각오가 흐트러졌다.

오히려 각자 살길을 따라 눈치를 보는 느낌이 강했다.

신하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코디기 대영주 또한 전처럼 완벽하게 신하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아크사 대영주의 노림수였다.

투항하는 자가 나오지 않아도 좋았다.

하지만 한 달 뒤 총공세에서는 분명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이가 나올 것이다.

이미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아군을 믿지 못하는 군대는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날 결판을 낸다.’

추가적으로 피해가 아예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피해는 상당히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다.

* * *

현성은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투를 주기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크사 대영주가 말한 총공세에 대해서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일단 내가 강해져야지.’

현성은 그간 모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이게 다 얼마야.’

빈곤했던 현성의 포인트가 다시금 풍성해졌다.

이 모든 게 교류의 보석 2.5와 새로운 게임들 덕분이었다.

‘벌었으면 써야지.’

열심히 포인트를 모은 이유는 바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뭐가 좋을까?’

남은 포인트로 유일 초월 등급 스킬 하나를 유일 창조 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생각이었다.

문제는 현성이 보유한 유일 초월 등급 스킬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단 화염의 서는 보류.’

창조 등급 공격 스킬은 흑뢰신마공 하나로 충분했다.

포인트에 여유가 생긴다면 화염의 서도 창조 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결국 둘 중 하나인데.’

불사의 서와 천뢰신의 갑옷.

둘 중 하나를 창조 등급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했다.

현성이 고심을 이어 갔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천뢰신의 갑옷으로 가자.’

불사의 서가 가진 회복 능력은 지금으로도 충분했다.

회복 능력이 더 업그레이드된다고 해도 앞으로 준비해야 하는 대영주와의 일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격력을 보충했으니 이제 방어력을 보충해야지.’

현성이 초월 등급 방어 스킬북 구매를 시작했다.

-패시브 스킬북 신마갑 - 초월 등급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한번 구매한 물품은 환불이나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예] [아니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그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옵션을 살피고 연달아 초월 등급 스킬북을 구매했다.

“휴!”

가득했던 포인트가 바닥을 드러냈다.

물론 바닥났다고 해도 신화 등급 스킬북은 얼마든지 더 구입할 여유가 있었다.

‘여덟 개라.’

전보다 초월 등급 스킬북의 수량이 더 적었다.

이번에 대박을 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인트를 세이브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여덟 개가 한계였다.

‘가능할까?’

어쩌면 창조 등급으로의 업그레이드가 실패할 수도 있다.

‘해 보자.’

설사 천뢰신의 갑옷이 창조 등급으로 성장하지 못해도 방어력은 올라갈 것이다.

아크사 대영주와의 접전을 앞두고 있는 현성 입장에서는 설사 창조 등급 스킬 습득에 실패한다고 해도 남은 포인트를 모조리 써서 기존의 스킬을 강화시켜야 했다.

현성이 가장 먼저 구입했던 스킬북 신마갑을 집어 들었다.

-패시브 스킬북 신마갑 - 초월 등급을 습득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패시브 스킬북 신마갑 - 초월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초월 등급이 패시브 스킬북 신마갑 - 초월 등급 패시브 스킬과 융합됩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초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다.

현성이 연속해서 새롭게 구매한 방어 스킬북을 습득했다.

하지만 천뢰신의 갑옷이 창조 등급으로 성장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마지막인데.’

현성이 초조한 표정으로 마지막으로 남은 스킬북을 습득했다.

-패시브 스킬북 마신수호공 - 초월 등급 습득에 실패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초월 등급이 패시브 스킬북 마신수호공 - 초월 등급 패시브 스킬과 융합됩니다.

-패시브 스킬 천뢰신의 갑옷 - 유일 초월 등급이 성장했습니다.

“아!”

현성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모든 포인트를 투자했다.

하지만 결국 천뢰신의 갑옷은 창조 등급으로 승급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더 이상의 투자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옵션이 상당히 늘었어.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도 늘어났고.’

일단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차원 게이트를 통해 침략자들의 차원으로 넘어갔다.

아크사 대영주가 선포한 총공세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 * *

현성이 조심스럽게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투 지역으로 향했다.

그간 가려 뽑은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현성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루시아와 파르티샤를 포함해 타무그와 그 수하들은 물론 현재 휘하에 있는 침략자 차원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을 총동원했다.

‘난 강해졌어.’

대영주를 상대로도 충분히 해볼 만했다.

‘거기다 나만 강해진 것도 아니고.’

그간 강해진 건 현성만이 아니었다.

루시아와 파르티샤를 포함한 휘하 플레이어들 역시 놀랍도록 성장했다.

‘아크사 대영주의 목을 벤다.’

그럼 현성은 두 개의 대영지를 다스리는 대영주가 된다.

하지만 패배한다면?

현성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침략자 차원에서 일군 기반은 모조리 날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성은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벌어질 전쟁이라면?

다른 이의 손에 그 시작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포문을 열어 적들이 가장 약해진 시기에 가장 약해진 부분을 찌르고 싶었다.

잠시 후.

현성이 홀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미 결판이 났어.’

현성은 이 전쟁의 승자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군기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아크사 대영주 진영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반면 코디기 대영주의 진영은 사기가 바닥이었다.

싸울 생각보다는 도망갈 생각부터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얻을 건 얻어야지.’

현성이 차원의 이면 스킬을 시전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있었다.

* * *

약속했던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아크사 대영주는 더 이상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공격하라!”

아크사 대영주의 명령이 떨어졌다.

“와아아아아!”

커다란 함성과 함께 아크사 대영주의 병력이 총공격을 시작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콰콰콰콰!

온갖 파괴적인 마력을 가득 머금은 공격 스킬들이 코디기 대영주의 진영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꽈아아아앙!

제대로 된 충돌이 벌어지기도 전에 코디기 대영주의 진영이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반항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라!”

“몸을 피하는 자는 죽이지 마라!”

아크사 대영주의 군대가 그 말과 함께 백병전을 시도했다.

챙! 챙! 퍼엉!

아크사 대영주 군대의 창과 코디기 대영주 군대의 방패가 충돌했다.

“밀어붙여!”

“적들은 오합지졸이다!”

한 달간의 휴식 이후 펼쳐진 첫 접전.

아크사 대영주의 군대는 편안한 휴식을 통해 그간의 피로를 모두 회복했다.

휴식을 취한 것은 코디기 대영주의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몸의 피로는 회복되었을지언정 마음의 피로는 회복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마음의 피로가 더 깊어졌다.

코디기 대영주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싸우기 전부터 전의를 상실했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코디기 대영주의 휘하 신하들 중 진심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는 고작 전체 병력의 1/10도 채 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병력이 그저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허무하게 밀려나며 코디기 대영주에게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미 졌구나.’

코디기 대영주는 자신의 패배를 직감했다.

‘저 배은망덕한 놈들. 그간 내가 큰 은혜를 베풀었거늘.’

코디기 대영주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진정으로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수하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내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코디기 대영주가 싸우는 시늉만 하는 신하들의 충성 맹세를 철회했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신하들 대부분은 오랜 시간 코디기 대영주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이들이었다.

그런 만큼 코디기 대영주 휘하에서 많은 레벨을 올렸다.

“아니?”

“이게 무슨?”

코디기 대영주가 군주 전용 직업 스킬 철회를 사용하자, 싸우는 시늉만 하던 이들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코디기 대영주 휘하에 든 후 올렸던 레벨과 스킬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푸욱! 서걱!

싸우는 시늉을 하던 이들의 심장에 창이 틀어박혔다.

목이 날아갔다.

갑자기 레벨 차이가 급격하게 벌어졌기에 싸우는 시늉을 하다 목숨을 잃은 것이다.

-모두 물러나라.

코디기 대영주가 자신을 위해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워 준 신하들에게 대군주의 외침으로 지시를 내렸다.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에게 걸어 놓았던 대군주의 축복도 회수했다.

이미 승기는 기울었다.

거기다 자신을 배신한 수많은 신하들의 충성 맹세를 철회했다.

당연히 체력과 마력 수급이 확 줄어들었다.

대군주의 축복은 체력과 마력이 여유로울 때는 훌륭한 무기다.

하지만 전달 와중에 소실되는 체력과 마력이 적지 않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독이었다.

“주군!”

“어찌 물러나라 하십니까?”

신하들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얌전히 나에게 체력과 마력을 보내 주거라. 그게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주군!”

“저희도 끝까지 함께 싸우겠사옵니다!”

-괜한 전력 낭비일 뿐이다! 적들에게 호응하는 척하며 목숨을 부지해 나에게 체력과 마력을 공급해 주기나 해라.

코디기 대군주가 신하들에게 호통을 쳤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심도 아니었다.

그저 핑계였다.

‘저들은 살아야지.’

끝까지 저항하면 충성스러운 신하들은 결국 죽을 것이다.

코디기 대영주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이 전장에서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살아 주었으면 하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의 목숨을 보존시켜 주기 위해서는 이쯤에서 싸움에서 빠지게 만들어야 했다.

자신을 배신한 자들의 힘을 빼앗았다.

그 결과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반면 자신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한 이들에게는 힘을 남겨 주었다.

배신자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배신자들은 그간 올린 레벨과 스킬이 사라져 버렸기에 절대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에서 중용받지 못할 것이다.

반면 끝까지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충신들은 그간 올린 레벨과 스킬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아크사 대영주의 휘하에 들어가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으리라.

“아크사!”

신하들에 대한 처리를 마친 코디기 대영주가 아크사 대영주의 이름을 외쳤다.

“더 이상 수하들의 피를 보지 말고 나와 일대일로 겨루어 보자!”

코디기 대영주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크사 대영주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이 벌 떼처럼 코디기 대영주에게 달려들 뿐이었다.

‘쥐새끼 같은 놈.’

코디기 대영주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애초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금의 전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코디기 대영주가 아크사 대영주의 목을 베는 것이다.

성공 확률이 엄청나게 낮지만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래서 한번 도발을 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크사 대영주는 자신의 도발에 응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놈들 모두를 저승길 길동무로 데리고 가 주마.”

코디기 대영주의 두 눈에 진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어차피 죽을 목숨.

원수인 아크사 대영주에게 큰 피해를 주고 죽을 심산이었다.

코디기 대영주의 전신에서 푸른빛 화염이 넘실넘실 뿜어져 나왔다.

꽈아아앙!

코디기 대영주와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이 충돌했다.

그 강력하던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이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다.

코디기 대영주는 상처 입은 범처럼 날뛰었다.

그리고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은 범을 사냥하는 늑대처럼 치고 빠지며 코디기 대영주의 체력과 마력을 갉아먹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코디기 대영주는 무시무시한 위용을 보여 주었다.

원래 멀쩡한 범보다 상처 입은 범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날뛰는 코디기 대영주의 힘은 이 세상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듯이 그 강력함을 자랑했다.

화르르륵!

코디기 대영주의 몸을 뒤덮은 푸른 화염이 연신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을 불태웠다.

그렇지만 아크사 대영주의 수하들의 실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거기다 아크사 대영주는 직접 나서지만 않았을 뿐 대군주의 축복을 비롯한 온갖 버프로 휘하 신하들을 든든하게 지원했다.

휘하 신하의 대부분을 잃은 코디기 대영주는 체력과 마력의 공급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반면 아크사 대영주는 다른 신하들에게서 받은 체력과 마력을 코디기 대영주와 싸우고 있는 신하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해 주었다.

그 결과 코디기 대영주는 원하는 만큼의 적들을 저승길 길동무로 삼지 못했다.

‘최소한 절반 이상을 데리고 가려 했건만.’

고작 1/3 정도밖에 제거하지 못했다.

전신에서 힘이 빠졌다.

고갈된 체력과 마력 때문에 점점 몸이 무거워졌다.

‘빌어먹을…….’

코디기 대영주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아크사 대영주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노려보는 것 말고는 아크사 대영주에게 그 어떤 위해도 끼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두꺼운 인의 장벽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전투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코디기 대영주의 체력과 마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버렸다.

서걱!

대도를 든 적의 공격에 코디기 대영주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좌악!

그 뒤를 이어 날아온 도끼에 왼쪽 다리도 날아갔다.

“크윽!”

팔과 다리가 날아가고 체력과 마력이 고갈된 코디기 대영주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슈슈슉!

그때 속박 스킬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코디기 대영주의 몸을 휘감았다.

단순히 육체만 속박한 게 아니었다.

마력을 움직여 스킬을 발동시킬 수 없도록 온갖 금제를 다 가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코디기 대영주의 눈에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보였다.

그들 역시 체력과 마력이 고갈되어 자신에게 별다른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

-나를 죽인 자를 원수라 생각하지 말고, 나를 대하듯 충성을 다하거라.

대군주의 외침으로 자신의 마지막 뜻을 전한 코기디 대영주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 * *

“드디어 끝났구나.”

아크사 대영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드디어 코디기 대영주를 제압한 것이다.

마력을 금제시켰으니 자살도 할 수 없을 터였다.

‘피해가 크긴 했지만 결국 성공했다.’

코디기 대영주가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하지만 코디기 대영주의 숨통을 끊으면, 그 손해를 어느 정도는 벌충할 수 있을 것이다.

저벅저벅.

아크사 대영주가 코디기 대영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군주가 군주를 죽였을 때만 승자의 권리를 취할 수 있다.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가 코디기 대영주의 목을 베었다면?

그건 상처뿐인 영광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에 신하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코디기 대영주의 체력과 마력을 고갈시켰다.

혹시 모를 반전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서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

아크사 대영주의 신하들이 코디기 대영주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이제 남은 일은 자신이 직접 코디기 대영주의 목을 치는 것뿐이었다.

스르르릉!

아크사 대영주가 검을 뽑아 들었다.

이 검으로 코디기 대영주의 목을 치고 그의 모든 유산을 손에 넣을 것이다.

‘빼앗긴 하급 영지가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온다. 살아남은 신하들 역시 내 차지다.’

그리고 코기디 대영주가 죽으면서 토해 낼 스킬북 역시 자신의 차지였다.

아크사 대영주가 환하게 웃으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어?’

그 순간 낯선 마력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서걱!

자신의 목표였던 코디기 대영주의 목이 날아갔다.

코디기 대영주를 속박하고 있었던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말이다.

* * *

코디기 대영주의 목을 벤 현성의 눈앞에 두 개의 업적이 떠올랐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창조 등급]

-최초로 40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적 차원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침략자 - 창조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창조 등급]

-단독으로 40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를 쓰러트리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의 반란자 - 창조 등급]

‘성공했어.’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업적이 뜨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기에 시도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두 개의 업적을 얻었다.

그것도 무려 창조 등급 업적을 말이다.

전신에서 강한 힘이 솟구쳤다.

당연히 두 개의 창조 등급 업적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창조 등급 업적의 효과는 모든 스텟 320 증가다.

하나만 획득해도 총스텟이 1,600이나 증가한다.

한데 하나도 아니고 둘을 획득했다.

단번에 총스텟이 무려 3,200나 늘어난 것이다.

순수한 레벨 업을 통해 3,200스텟을 얻으려 했다면, 무려 700레벨을 올려야 했다.

그런데 단순한 칼질 한 번에 3,200에 달하는 막대한 스텟을 손에 넣었다.

‘부족한 스텟을 만회했어.’

현성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거기다 이번 공격으로 얻은 이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코디기 대영주가 죽으면서 남긴 스킬북.

그 스킬북은 현성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찬란한 백색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현성이 지금까지 직접 보지 못한 스킬북은 오직 단 하나.

창조 등급 스킬북밖에 없다.

현성이 백색 광채를 뿜어내는 스킬북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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