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 드워프 왕국 (124/225)
  • ┃드워프 왕국

    ‘광역 스킬을 쓰면 수도가 파괴될 거 같고.’

    아무래도 육탄전으로 쓸어버려야 할 것 같았다.

    휘이익!

    현성이 삼두룡의 머리에서 뛰어내려 지상으로 하강했다.

    콰직!

    지상으로 착지한 현성의 발에 깔린 영웅 등급 몬스터 한 마리가 생을 하직했다.

    -크아아아앙!

    -캬아아아악!

    동족의 죽음을 목격한 몬스터들이 잔뜩 흥분해서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현성이 용혈검과 신혈검을 뽑아 들었다.

    서걱!

    용혈검과 신혈검이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렸다.

    고작해야 영웅 등급 하위종에 속하는 몬스터들이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현성의 상대가 될 리 없는 것이다.

    휘이이익!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왔다.

    콰직! 콰직!

    그와 동시에 몬스터 두 마리가 누군가에게 깔려 죽었다.

    ‘어?’

    누군가 했더니 길잡이 통솔을 위해 함께 따라온 파르티샤의 아들 카이와 딸 리사였다.

    ‘얘들은 왜 왔어?’

    현성을 도와주러 온 것 같기는 했다.

    ‘이건 방해지.’

    현성의 입장에서는 혼자 싸우는 게 편했다.

    지금 현성이 있는 장소는 영웅 등급 몬스터의 소굴이다.

    현성이니까 손쉽게 쓸어버리는 거다.

    격이 다르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고레벨 플레이어의 경우 이 정도 숫자의 영웅 등급 몬스터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즉, 현성의 입장에서는 아군이 아니라 짐덩어리가 도착한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콰직! 서걱!

    파르티샤의 아들 카이와 딸 리사가 놀라운 솜씨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단순한 고레벨이 아니네.’

    지구를 기준으로 치자면 랭커.

    그중에서도 최상위 랭커 수준이었다.

    그것도 단순히 높은 스텟과 상위 등급 스킬만 믿고 설치는 허풍선이가 아니었다.

    실전 경험이 상당히 풍부해 보였다.

    ‘괜히 데려가라고 한 게 아니었네.’

    확실히 실력이 뛰어났다.

    저 두 사람의 실력은 신윤아나 죠셉 같은 지구의 최상위 랭커들보다 더 강해 보였다.

    ‘아버지와 백우신도 당장은 상대하기 힘들어 보이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와 백우신처럼 저 두 사람도 파르티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을 테니까 말이다.

    카이와 리사는 매서운 기세로 영웅 등급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최대한 주군의 눈에 들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진짜 실력을 보여 드려야 해.’

    카이와 리사 이 두 사람은 그간 자신들이 가진 실력을 주군인 현성에게 제대로 보여 줄 기회조차 없었다.

    카이와 리사가 사는 차원의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주군인 현성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당연히 무조건 친해지는 게 좋았다.

    현재는 군신의 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기왕이면 더 깊은 관계를 맺는 게 좋았다.

    서로의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딱딱한 관계가 아니라 의리와 정 같은 따듯한 관계 말이다.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

    ‘최대한 주군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일단 함께하는 시간이 있어야 미운 정이 들든 고운 정이 들든 하는 법이다.

    한데 현성은 그간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항상 혼자 돌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 현성과 붙어 있을 시간이 생겼다.

    카이와 리사로서는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어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콰직!

    퍼어어엉!

    카이와 리사는 드워프들의 수도 건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몬스터들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실로 놀라운 실력이었다.

    “대단하네요.”

    현성은 감탄했다.

    스텟과 스킬은 현성이 압도적으로 앞섰다.

    하지만 전투 숙련도 면에서는 카이와 리사가 현성보다 더 뛰어났다.

    ‘하긴 평생을 몬스터와 싸워 왔을 테니까.’

    고작 몇 년간 몬스터와 뒹군 현성과는 실전을 겪은 세월 자체가 달랐다.

    “부끄럽습니다.”

    “주군에 비하면 미숙한 실력일 뿐입니다.”

    카이와 리사가 정말 부끄럽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카이 님, 리사 님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되죠?”

    “다섯 명이 더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집중적으로 키운 제자들입니다.”

    현성의 물음에 카이가 재빨리 대답했다.

    “으흠.”

    전체적인 플레이어 전력으로 따지면 지구가 압도적으로 앞선다.

    하지만 소수 정예끼리의 싸움이라면?

    ‘나랑 루시아가 간섭하지 않는다면 이 차원이 압승을 거두겠군.’

    파르티샤를 제외하고도 이 차원의 플레이어들은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통제할 수만 있다면 여차할 때 원군으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물론 지금 당장은 그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미래에 벌어질 일은 아무도 모른다.

    ‘보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현성 자신과 가족 그리고 한국과 전 세계 인류의 안전이 달려 있는 일이다.

    무조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대비를 하는 게 좋았다.

    ‘파르티샤 차원에서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경제적인 논리를 떠나 무력적으로 항상 현성이 도움을 주는 입장이었다.

    한데 적당히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카이와 리사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현성이 자신들을 좋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일단 정리를 계속하죠.”

    몬스터는 아직도 많았다.

    “예, 주군!”

    “예, 주군!”

    동시에 복명복창한 두 사람이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도 한번 제대로 해 볼까.’

    도시가 파괴될 만한 광역 스킬을 사용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육탄전으로 때려잡는 것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망자의 부활.’

    현성이 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을 사용했다.

    우드드득!

    현성의 마력이 언데드 몬스터로 화했다.

    ‘모두 쓸어버려.’

    현성의 명령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아아아앙!

    -카아아아앙!

    언데드 몬스터와 일반 몬스터들의 전투가 벌어졌다.

    현성은 죽은 몬스터들을 곧바로 언데드 몬스터로 부활시켰다.

    그러면서 차분하게 드워프 왕국의 수도를 살펴봤다.

    ‘유적지 관광을 온 기분이네.’

    현성이 벽면에 적혀 있는 글씨들을 찾아서 읽어 봤다.

    하지만 현성이 원하는 내용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뭐, 언젠가는 나오겠지.’

    없어도 상관없다.

    그 후부터는 반도 지형을 위주로 수색을 하면 되니까 말이다.

    카이와 리사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들의 활약 덕분에 드워프 왕국의 수도 복원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꽈아아아앙!

    그때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오며 카이와 리사가 뒤로 물러났다.

    -콰라라라라!

    뱀과 사자를 반쯤 섞어 놓은 것 같은 몬스터가 등장했다.

    ‘전설 등급이네.’

    카이와 리사가 강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플레이어의 기준.

    둘이 힘을 합쳐도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무리였다.

    ‘너 잘 걸렸다.’

    현성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몸을 날렸다.

    서걱!

    용혈검이 뱀의 비늘로 뒤덮인 사자의 앞발을 베어 냈다.

    서걱! 서걱!

    용혈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전설 등급 몬스터의 몸이 피투성이로 변했다.

    -크아아아앙!

    놈이 열심히 반격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콰직!

    용혈검이 전설 등급 몬스터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대로 전투가 종료되었다.

    사아아아악!

    죽은 전설 등급 몬스터의 몸에서 잔존 마력이 뿜어져 나와 아이템으로 화했다.

    ‘좋네.’

    부수입이 생겼다.

    현성은 계속해서 사냥과 조사를 이어 나갔다.

    드워프 왕국의 수도가 워낙 커서 그런지 중간중간 전설 등급 몬스터가 몇 번 더 나타났다.

    그때마다 현성은 기쁜 마음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의 숨통을 끊어 주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네.’

    드워프 왕국의 수도는 완전히 몬스터 소굴이었다.

    아마 드워프들이 이 근방에 자리를 잡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냥터로서는 효율이 상당히 좋았다.

    플레이어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천연 사냥터랄까?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카이가 보고를 올렸다.

    “그럼 내일부터는 이 근방에 있는 반도를 한번 훑어봐야겠군요.”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현성의 대답을 들은 카이가 곧바로 길잡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쉽네.’

    며칠간 드워프 왕국의 수도에 머물며 몬스터를 정리했다.

    그 후 길잡이들을 풀어 이 잡듯이 수색을 했다.

    하지만 별로 얻은 게 없었다.

    비밀 통로나 지하 요새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모두 텅 비어 있었다.

    ‘통째로 이주를 한 건가?’

    전멸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식량 창고나 병기 창고가 텅 비어 있었다.

    마력이 담긴 아이템이라면 몰라도 일반 병장기를 몬스터들이 먹어 치웠을 리는 없다.

    이건 드워프들이 제대로 몸을 피했다는 뜻이었다.

    ‘뭐, 다른 곳을 찾아봐야지.’

    어차피 큰 기대를 하고 온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전멸한 게 아니라는 증거를 발견했으니 기뻐해야 했다.

    또 드워프 왕국의 수도 자체가 나름 제대로 된 사냥터 역할을 했기에 현성으로서는 손해 본 것도 없었다.

    ‘천천히 찾아보자.’

    조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

    몬스터를 사냥하며 하나하나 뒤지다 보면 언젠가는 드워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드워프들이 멸종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 *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깊은 지하.

    이곳에 도시가 있었다.

    제대로 된 도시는 아니었다.

    마치 개미굴처럼 만들어진 도시였다.

    하지만 환기 시설도 있었고 배수 시설도 있었으며 햇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잘 자라는 균류 농사도 지어지고 있었다.

    이 도시의 주인은 작은 키와 짧은 팔다리 그리고 두꺼운 근육질 몸을 가진 드워프들이었다.

    “이변이 생겼다.”

    드워프들의 왕 헤파트가 신하들을 불러 놓고 입을 열었다.

    “무슨 이변?”

    신하 중 하나가 왕인 헤파트에게 물었다.

    “옛 수도에 인간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그놈들이 거기서 뭘 했는데?”

    “수도의 몬스터들을 모두 쓸어버렸다.”

    헤파트의 말에 신하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놈들을 다?”

    “족히 수십만 마리는 될 텐데?”

    “거기다 전설 등급 몬스터도 다섯 마리나 있잖아.”

    드워프들이 원래 살던 터전을 버리고 땅속에 자리 잡은 지하 도시로 숨어든 이유는 당연히 그 몬스터들 때문이었다.

    “그럼 우리가 다시 가서 자리를 잡아도 될까?”

    “맞아, 그랬으면 좋겠어. 우리가 두더지도 아니고 왜 땅속에서 살아야 하는 거야.”

    “곰팡이와 몬스터 사체를 먹고 사는 것도 이제는 질렸어.”

    “다시 이주하자!”

    “이주! 이주!”

    신하 드워프들이 일제히 이주를 외쳤다.

    “소용없다. 던전화가 진행되지 않아서 지금쯤 다시 몬스터로 가득 찼을 거야.”

    헤파트의 말에 신하들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 인간 플레이어들의 도움을 받으면 다시 수도를 수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한 신하의 물음에 헤파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복해 봐야 우리 힘으로 지키는 건 무리다.”

    지상은 몬스터 천국이 되어 버렸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수도를 지키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이주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

    드워프들이 지하 도시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음, 그런데 그 인간들을 믿을 수 있을까?”

    신하 중 하나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간은 신의가 없는 종족이다.

    수십만 마리의 몬스터를 쓸어버릴 정도의 강한 인간들이 과연 선의로 자신들을 대할까, 악의로 자신들을 대할까?

    선의로 대한다면 다행이지만 악의로 대한다면?

    지금보다 더 심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너희를 불렀다.”

    “우리들 중 하나가 대표로 그 인간을 만나 보라는 뜻이냐?”

    “일단은 그렇다.”

    드워프 왕 헤파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가 가겠다!”

    “아니다! 내가 가겠다!”

    “넌 꺼져! 내가 갈 거야!”

    지원자가 속출했다.

    * * *

    길잡이들이 야영 준비에 들어갔다.

    ‘이제 잘들 치네.’

    현성은 야영 도구로 현대식 텐트를 준비해 왔다.

    지구의 장인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아이템으로, 추위와 더위도 막아 주고 불과 물도 쓸 수 있었다.

    또 바닥이 푹신푹신한 건 물론이고 외부의 소음도 차단해 준다.

    거기다 미약하긴 하지만 텐트 자체에 실드 스킬이 적용되어 있었다.

    ‘여기서 야영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내일부터는 해안가를 중심으로 수색을 해 볼 참이었다.

    텐트가 완성되자 길잡이들이 요리를 시작했다.

    현성은 텐트 안에 느긋하게 누워 루시아가 메일로 보내 준 지구의 소식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현성이 소환해 놓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텐트 중심부를 바탕으로 둥그렇게 진을 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빨강이랑 삼두룡도 있으니까 알아서 해결되겠지.’

    두 마리가 힘을 합치면 전설 등급 몬스터 사냥도 가능했다.

    ‘응?’

    그때 이상한 현상이 감지되었다.

    무언가가 언데드 몬스터들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뭐지?’

    현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성은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생명체가 접근하면 공격하라는 기초적인 명령을 내려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생명체가 아니라 몬스터로 한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언데드 몬스터들은 인간과 몬스터를 구분해 공격할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문제는 몬스터를 쫓다가 언데드 몬스터들이 흩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언데드 몬스터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현성의 잠자리를 지키는 것.

    그래서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일정 범위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중복 명령을 내려놓았다.

    한데 어떤 존재가 언데드 몬스터들이 이동할 수 있는 범위의 끝에서 왔다 갔다 하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몬스터라면 아예 얼씬도 하지 않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인간에 준하는 지적 생명체일 확률이 높아.’

    예를 들자면 드워프 같은 종족 말이다.

    텐트 밖으로 나온 현성이 비행 스킬을 사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들을 대상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이를 발견했다.

    타악!

    현성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와 동시에 언데드 몬스터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응?”

    언데드 몬스터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던 상대가 현성을 발견했다.

    “역시 드워프였나?”

    현성이 상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작은 키와 짧지만 통나무처럼 굵은 팔과 다리까지.

    “으흠, 당신이 이놈들의 주인인가?”

    드워프가 현성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용건이지?”

    유적으로 변해 버린 드워프 왕국의 수도를 이 잡듯이 수색할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떠나려니까 알아서 찾아왔다.

    “음, 공용어가 아니군.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언어야.”

    드워프가 살짝 당혹스러워하며 중얼거렸다.

    현성과 드워프는 플레이어다.

    당연히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현성이 중국어나 프랑스어를 몰라도 중국인 플레이어나 프랑스인 플레이어랑 이야기를 하면, 상대가 중국어를 하는지 프랑스어를 하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그건 이 드워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대륙의 인간인가?”

    드워프가 유추할 수 있는 건 그게 최대였다.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지. 그런데 사람이 묻는 말에 대답부터 좀 하지?”

    현성이 무슨 용건으로 찾아온 건지 물었지만,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찾아왔네.”

    “일단 따라와.”

    현성이 발걸음을 옮겼다.

    현성의 움직임에 따라 언데드 몬스터들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꽤 으스스하군.”

    언데드 몬스터 무리를 관통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현성이 야영지에 도착했다.

    “주군!”

    카이가 재빨리 다가왔다.

    갑자기 현성이 사라져 꽤 놀란 참이었다.

    “드워프?”

    카이가 현성의 등 뒤에 있는 드워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인간은 대륙 공용어를 사용하는군?”

    드워프가 카이에게 흥미를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무슨 아이템이지? 신기하게 생겼군.”

    현성이 지구에서 가지고 온 야영 장비들을 이리저리 관찰하며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현성의 물음에 텐트를 살펴보던 드워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강한 무쇠 일족을 이끌고 있는 델라프라고 하네. 왕국이 멸망한 뒤 겨우 살아남았지.”

    ‘드워프 일족의 족장인 건가?’

    현성이 살짝 흥미를 보였다.

    “그런데 그것도 거의 한계네. 사방이 몬스터라서 말이야. 먹고사는 것부터 해서…….”

    델라프라는 이름의 드워프가 주절주절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자신의 일족을 데리고 가거나 안전한 곳으로 옮겨 달라.

    “드워프 왕국은 완전히 멸망한 건가?”

    현성의 물음에 델라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멸망했네. 뭐, 우리 부족처럼 생존한 소수의 집단이 몇 개 정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렇단 말이지.”

    현성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적절한 대가만 지불해 준다면 그 부탁을 들어주지.”

    “우리 부족이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카이 님.”

    “예, 주군.”

    “일단 부족 사람들을 데리고 귀환하죠. 수색은 그다음에 다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돌아간다고? 자네들이 전부가 아닌가?”

    “나머지는 직접 보고 판단하도록 해.”

    현성의 대답에 델라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자네 부족원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겠네.”

    “제가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카이가 나섰다.

    “나도 함께 가지.”

    현성이 직접 나섰다.

    “그럼 내가 안내하지.”

    델라프가 앞장섰다.

    ‘어디서 새빨간 거짓말을.’

    현성이 앞서가는 델라프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델라프는 드워프 왕국이 멸망해 부족 단위로 생존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현성은 델라프를 만난 순간부터 온 신경을 집중했다.

    현성의 오감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마음만 먹으면 상대의 심장박동과 맥박까지 읽어 낼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임의로 상대에게 거짓말탐지기를 착용시킨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정확하지는 않다.

    델라프가 드워프 왕국이 멸망했다고 대답했을 때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심장박동이 변화했을 수도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거짓말탐지기는 참고 사항일 뿐 법적인 효력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확하지도 않지.’

    드워프 왕국의 멸망을 말할 때 델라프는 전혀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냥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표정 연기까지 완벽했다면 현성도 속아 넘어갔을 수 있다.

    하지만…….

    ‘연기가 어설퍼.’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드워프 왕국은 멸망하지 않았어.’

    단지 현성을 믿을 수 없기에 적당히 간을 보고 있는 것뿐이다.

    현성으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이곳이네.”

    델라프가 현성 일행을 안내한 곳은 평범한 바닥이었다.

    “이렇게 하면.”

    델라프가 순수한 근력으로 바닥의 이곳저곳을 눌렀다.

    드드드득!

    그러자 땅속으로 통하는 통로가 나왔다.

    ‘스킬이나 마력이 관여하지 않는 물리적인 장치군.’

    저러니 발견하지 못했던 거다.

    “따라오게.”

    델라프의 안내로 땅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그리고 공터에는 30여 명 정도의 드워프들이 있었다.

    ‘너무 뻔하잖아.’

    현성이 속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부족이라고 해 놓고 여자와 아이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30여 명 모두 남자였다.

    “이게 우리 부족원의 전부네.”

    델라프의 말에 현성은 적당히 속아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일단 이들을 설득해야 진짜 드워프 왕국과 접선할 수 있었다.

    “꽤 힘들게 생활한 모양이군. 일단 가지.”

    현성은 그들을 데리고 야영장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들과 대화를 해 보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확신했다.

    ‘거짓말 맞네.’

    거짓말탐지기가 오류를 일으켰다고 보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다음 날 아침.

    현성은 30여 명의 드워프를 빨강이와 삼두룡에 나눠 태우고 파르티샤가 있는 반도 요새로 이동했다.

    * * *

    “허어!”

    델라프는 거대한 방어벽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그건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인간들이 이렇게 살고 있을 줄이야.’

    델라프는 사실 인간들이 완전히 멸종한 줄 알았다.

    현성 일행을 봤을 때도 강력한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뭉친 소수의 생존자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인간들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앙!

    두 마리의 본 드래곤이 성벽에 내려앉았다.

    “이제 내리지?”

    현성의 말에 드워프들이 성벽으로 내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주군. 정말 드워프들을 데리고 오셨군요.”

    파르티샤가 반갑게 현성을 맞이했다.

    “네, 일단 이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파르티샤가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 뒤 현성은 따로 파르티샤와 대화를 나눴다.

    “드워프 왕국이 멸망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성의 말에 파르티샤가 화들짝 놀랐다.

    “그럼 저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말입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저들의 잘 대해 주세요. 저들의 마음을 얻어야 드워프 왕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조건 후대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이곳의 평화로운 생활을 보여 주세요. 그리고 저들이 한 일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주군.”

    일주일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드워프들은 파르티샤의 왕국에서 생활하는 백성들의 생활수준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런 생활이 가능하다니?”

    식량이 넉넉했다.

    빵은 물론이고 고기도 많았다.

    단순히 그들에게만 풍족한 식량이 주어진 게 아니었다.

    병사들을 포함해 일반인으로 보이는 주민들 역시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현성이 준 식량 덕택이었다.

    파르티샤의 왕국은 아직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식량 사정이 풍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맥주까지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니.”

    지하 세계에 자리 잡은 드워프 왕국은 오직 생존만을 위해 존재했다.

    의식주 중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게 없었다.

    빛 한 점 보지 못하는 생활.

    식사는 곰팡이와 몬스터 사체로 연명해야 했다.

    옷?

    하급 몬스터 가죽을 무두질해서 만들었다.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물도 부족해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한데 이곳은 아니었다.

    완전한 지상낙원이었다.

    “일거리도 상당히 많군.”

    드워프들이 파르티샤의 왕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무구 제작.

    평범한 병장기부터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을 이용해 만드는 아이템까지.

    일거리는 많았지만 대가는 확실하게 지급해 줬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델라프는 자신과 동족들이 노예로 부려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인간들은 그러지 않았다.

    종족이 다른 자신들을 동등하게 대우해 줬고, 일을 시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했다.

    ‘이런 나라라면 함께하는 것도 괜찮겠군.’

    지하 도시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동족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쉽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한 석 달 정도 더 조사를 해 본 후 결정해야겠어.’

    대충 기한을 정한 델라프가 자신의 앞에 있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 후에는…….

    우적우적!

    고기를 맛있게 먹어 치웠다.

    ‘정말 여기가 천국이군.’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에서 곰팡이와 몬스터 고기만 먹다가 시원한 맥주에 부드러운 닭 다리 튀김을 뜯어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 * *

    ‘좋네.’

    델라프를 비롯한 드워프들이 만든 아이템은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현대 기술을 접목한 장인의 아이템도,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든 파르티샤 왕국 장인들의 아이템도 드워프들이 만들어 내는 아이템보다는 수준이 떨어졌다.

    ‘잘만 접목하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데.’

    현대 기술과 드워프 장인의 기술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제대로 된 명품 무구들의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일단 그러려면 드워프 왕국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이제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델라프가 정식으로 현성과 파르티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탕!

    “사실 드워프 왕국은 멸망하지 않았다.”

    델라프가 텅 빈 맥주잔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생존자의 숫자는 얼마나 되지?”

    현성의 물음에 델라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라지 않는 거냐?”

    “충분히 놀라고 있다.”

    현성의 말에 델라프가 얼굴을 찌푸렸다.

    “안 놀란 거 같은데.”

    인간들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화를 낼 줄 알았다.

    한데 화는커녕 너무 태연하게 넘어간다.

    “알고 있었나?”

    “대충 거짓말을 한다고 짐작하기는 했지. 생존자가 건장한 남자들만 있다는 것도 이상했고.”

    현성의 말에 델라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없겠지. 생존자 수는 대략 30만 명 정도다.”

    “꽤 많이 살아남았군요.”

    파르티샤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드워프 왕국인의 숫자는 파르티샤가 다스리는 왕국인들보다는 적었다.

    하지만 애초에 인간과 드워프는 인구수 차이가 1백 배 이상 났다.

    그걸 감안하면 정말 많은 숫자의 드워프가 살아남은 것이다.

    “우리 모두를 받아 줄 수 있겠나?”

    델라프의 말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조건을 수용해 주기만 한다면.”

    “말해 봐라.”

    “일단 드워프 왕국의 왕이 나의 신하가 되어야 한다.”

    현성의 말에 델라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생각보다 쉽게 수긍했다.

    “두 번째는…….”

    현성이 몇 가지 조건을 더 제시했다.

    “모두 수용하지.”

    델라프가 흔쾌히 수락했다.

    애초에 현성이 무리한 요구를 한 것도 아니었다.

    드워프들 입장을 충분히 배려했다.

    “그럼 지금 당장 데리러 가야겠군.”

    현성의 말에 델라프도 동의했다.

    “숫자가 많으니 본 드래곤을 동원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본 드래곤만 이용할 생각은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현성의 말에 델라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동 수단이야 더 늘리면 되지.”

    항공 이동 수단을 늘리는 것은 간단하다.

    와이번 같은 공중형 몬스터를 무더기로 잡아 언데드 몬스터로 만들면 말끔하게 해결된다.

    현성은 하늘을 날 수 있는 공중형 몬스터들을 무더기로 사냥해 언데드 몬스터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공중형 언데드 몬스터의 숫자가 수만 마리에 달했다.

    “몇 번만 왕복하면 다 옮길 수 있겠네.”

    현성의 말에 델라프가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군.”

    상대하기 까다로운 공중형 몬스터들을 이렇게 손쉽게 사냥하는 플레이어는 처음 봤다.

    “그럼 가자고.”

    현성에 말에 델라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깡깡깡!

    드워프 왕국의 왕 헤파트가 굳은 표정으로 망치를 두드렸다.

    “휴우!”

    그 후 긴 한숨과 함께 망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엉망이군.’

    원하는 퀄리티의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헤파트는 방금 완성한 검날을 다시 용광로에 녹여 버렸다.

    ‘일이 잘 안 풀린 건가?’

    델라프가 소수의 동족들을 데리고 인간들과 접선한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일이 잘못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미안하네.’

    델라프와 동족들은 인간의 노예가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괜한 짓이었나?’

    그냥 무시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하지만 이곳 지하 도시에는 미래가 없었다.

    하루하루 힘겹게 삶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또 지하 도시라고 몬스터의 침입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한 것도 아니다.

    웜이나 개미류 같은 벌레형 몬스터들의 침입이 잦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드워프 왕국은 아주 서서히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이다.

    꽈아앙!

    그때 헤파트의 공방 문이 거칠게 열렸다.

    “무슨 일이야?”

    헤파트의 물음에 드워프 장로 하나가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델라프가 돌아왔네!”

    그 말에 헤파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저자가 드워프 왕국의 왕인가?’

    현성이 헤파트를 바라봤다.

    입고 있는 의복이 다른 드워프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거기다 방금 전까지 작업을 하다 왔는지 전신이 땀에 절어 있었다.

    “헤파트, 드디어 내가 돌아왔네.”

    델라프가 편하게 헤파트를 불렀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 왕이 신하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일이 잘 풀린 모양이군.”

    하지만 헤파트는 그런 델라프의 태도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게 일상인 모양이다.

    “그쪽이 인간들의 대표인가?”

    헤파트가 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맞아.”

    현성이 짧게 대답했다.

    “일단 앉지.”

    헤파트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현성과 델라프도 자리에 앉았다.

    “얼굴 때깔이 좋아졌군.”

    헤파트가 델라프를 보며 말했다.

    “하하하, 그간 제대로 포식을 해서 말이야.”

    “그럼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놔 봐.”

    헤파트의 말에 델라프가 주절주절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된 거네.”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헤파트가 현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델라프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인가?”

    헤파트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바로 움직이지. 당장 이사 준비해!”

    “와아아아아!”

    헤파트의 외침에 드워프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이사를 준비했다.

    다른 드워프들에게 명령을 내린 헤파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성에게 무릎을 꿇었다.

    “방금 전 한 약속을 모두 지켜 준다면, 그대에게 충성을 다하겠다.”

    헤파트의 말을 들은 현성이 등용 스킬을 시전했다.

    -플레이어 헤파트에게 등용을 제의하셨습니다.

    헤파트는 망설이지 않고 현성의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다.

    -플레이어 헤파트가 등용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통솔력 40이 소모됩니다.

    ‘제대로 된 건가?’

    현성이 전직 퀘스트를 확인했다.

    ‘군주가 맞네.’

    헤파트의 직업은 군주였다.

    ‘이제 한 명만 더 채우면 되는 건가.’

    군주 한 명을 더 휘하에 거두면 5차 전직 퀘스트가 끝난다.

    “혹시 다른 이종족들의 행방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없다. 우리 드워프 종족의 생존을 챙기기에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긴 그랬을 것 같기는 했다.

    “약속은 꼭 지키기 바란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드워프 일족을 굳이 노예처럼 부릴 생각은 없다.

    정당한 대가를 주고 고용해도 현성에게는 엄청난 이득이 생긴다.

    ‘거기다 기호 식품도 제대로 파악했다.’

    드워프 일족에게 잘 팔릴 상품은 지구에서 얼마든지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분명히 양쪽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거래가 될 테니까.”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거래를 통해 현성과 드워프 일족 모두 이득을 볼 수밖에 없다.

    아, 물론 현성이 훨씬 더 큰 이득을 얻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 * *

    드워프 왕국인들의 대대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현성은 공중형 언데드 몬스터들을 이용해 아주 손쉽게 드워프 왕국인들을 파르티샤의 나라로 옮겨 버렸다.

    “와! 햇빛이다!”

    “더 이상 두더지처럼 땅속에 숨어서 살지 않아도 된다!”

    “신선한 맥주와 고기가 가득해!”

    드워프들은 잔뜩 신이 났다.

    나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현성의 손을 붙잡았다.

    한데 현성이 안내한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었다.

    언제 몬스터가 쳐들어올지 몰라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었다.

    식량도 풍족했다.

    “그동안 이 좋은 곳에서 너희들만 호의호식했다 이거지!”

    “이런 치사한 자식들, 이런 곳이었으면 진작 알려 줬어야지!”

    먼저 왔던 드워프들이 살짝 구박받기는 했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일단 집부터 지어야겠군.”

    “아니, 대장간부터 개조해야 해.”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지!”

    드워프들은 의욕이 넘쳤다.

    현성이 산더미 같은 일을 넘겨줬지만, 결코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라 했다.

    그간 제대로 된 대장간이 없어서 창작 욕구를 마음껏 발산할 수가 없었다.

    한데 이곳은 달랐다.

    제대로 된 대장간이 있었고 재료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일을 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배부르게 먹고살 수 있다.

    이보다 좋은 환경이 어디 있겠는가?

    드워프들도 만족, 현성도 만족이었다.

    ‘추가 수색은 영 성과가 없네.’

    현성은 그동안 대륙 이곳저곳을 수색했다.

    엘프 왕국을 비롯해 여러 이종족 왕국과 인간족 왕국의 수도나 도시 들을 순찰했다.

    하지만 몬스터가 아닌 이들의 흔적을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당장은 이 정도에서 만족을 해야 하나?’

    일단 드워프 왕국을 흡수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성과다.

    ‘천천히 생각하자.’

    현성은 그간 대륙의 여러 장소들을 수색하면서 꽤 많은 성과를 거뒀다.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을 사냥해 아이템과 사체를 모았다.

    그간 사냥한 전설 등급 몬스터의 숫자만 해도 두 자리가 넘어갔다.

    파르티샤의 대륙은 말 그대로 몬스터 천국이었다.

    ‘시간 많아.’

    아직 수색하지 못한 지역도 많았다.

    지구와 파르티샤의 세계를 왕복하며 수색에 열중하다 보면 다른 이종족들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설사 찾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파르티샤의 세계는 현성에게 있어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손쉽게 사냥할 수 있는 최고의 사냥터였으니까 말이다.

    * * *

    지구로 돌아온 현성은 대대적으로 아이템을 풀었다.

    우선적으로는 척살대원들에게 아이템을 돌렸고 그러고도 남는 물량을 전 세계에 동시에 풀었다.

    현성이 직접 사냥해서 얻은 아이템도 있었고 드워프들이 만들어 낸 아이템도 있었다.

    현성이 푸는 물량이 얼마나 많은지 세계 아이템 가격이 살짝 하락할 정도였다.

    ‘이 정도는 해야 제대로 전력 강화가 되지.’

    일반 플레이어들은 영웅 등급 아이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플레이어들의 아이템 수준이 많이 상향되었다고 해도 영웅 등급 아이템은 고레벨 플레이어는 되어야 착용이 가능했다.

    한데 이제는 중레벨 플레이어들도 영웅 등급 아이템을 장만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현성이 아이템을 풀자 플레이어들의 전력이 전체적으로 상승했다.

    당연히 사냥이 손쉬워졌고 레벨을 올리기도 쉬워졌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드워프들은 이제 막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또 한 번에 많은 물량이 풀린 것은 그간 드워프들이 쌓아 놓은 아이템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아이템이 풀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구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빠르게 상승할 것이다.

    ‘지구의 과학기술과 드워프들의 기술을 하나로 합치는 일은 천천히 진행하면 될 것 같고.’

    원래 급하게 먹는 떡이 체하는 법이다.

    기술 교류는 천천히 믿을 만한 이들을 통해 진행해도 충분했다.

    ‘전설 등급 아이템 수요도 꽤 많이 늘었어.’

    현성이 푼 것도 있지만 그간 지구에서 자체적으로 사냥해 착용한 것도 꽤 많았다.

    지구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많이 상승해 현성의 도움 없이 척척 전설 등급 몬스터들을 사냥해 아이템을 축적해 나갔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전설 등급 몬스터의 출몰 주기가 잦아졌어.’

    초창기와 비교하면 몇 달에 한 번 출몰할까 말까 하던 게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고정적으로 등장했다.

    문제는 그것도 모자라다는 듯 전설 등급 몬스터의 출몰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전설 등급 몬스터만 나오는 던전이 나타날 수도 있겠어.’

    이건 양날의 검이었다.

    상위 등급의 몬스터가 늘어나면 인류가 위험해진다.

    하지만 상위 등급의 몬스터가 늘어나기에 플레이어들이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좀 적당히 하면 안 되나.’

    차원 게이트를 만든 존재를 만날 수 있다면 좀 따지고 싶었다.

    인류가 쉴 시간을 좀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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