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 청소 (123/225)

┃청소

폴란드에서 촉발된 불안의 씨앗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왜 폴란드는 최현성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지 못했나?

-다른 유럽 국가들도 폴란드와 다를 바가 없다.

-유럽은 더 이상 안전 지역이 아니다.

-최현성 플레이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유럽을 다시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유럽 각국의 정부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움직였다.

-폴란드는 자국에 나타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자력으로 해결했다.

-폴란드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나온 건 안타깝다. 하지만 전설 등급 몬스터가 등장했음에도 그 정도 피해로 끝난 것은 상당히 선방한 거다.

유럽의 각국 정부가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실 이 정도면 국민들이 냉정을 되찾을 수도 있었다.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유럽 각국 정부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때 유럽 각국에 있는 인류의 수호신교와 이모탈 길드 지부가 정보 공작을 시작했다.

-폴란드는 자력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쓰러트린 게 아니라 이모탈 길드의 힘으로 쓰러트린 거다.

-맞다. 이번에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한 이들은 모두 이모탈 길드 소속이다.

-최현성 플레이어와 이모탈 길드가 등을 돌리면 유럽은 지옥으로 변할 거다.

나름 합리적인 주장이었다.

또 냉정한 현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았다.

현성은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와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를 만들어 아메리카와 유럽의 국가들을 압박하려 했을 뿐 정말 버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흔들리고 있던 유럽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최현성 플레이어와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해야 한다.

-아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유럽의 플레이어 전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

-그냥 둘 다 해야 한다.

온갖 의견이 난무했다.

당연히 그러는 동안 강자 책임론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현 상황에서 강자 책임론은 등장하고 싶어도 등장할 수가 없었다.

현성을 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던 이들은 국민들의 집중포화를 받고 침몰했다.

강자 책임론을 주장했던 이들도 그 기세에 휘말릴까 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때 대이변이 일어났다.

유럽 국가인 루마니아가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을 신청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는 이를 수용했다.

-루마니아는 유럽 국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할 수 있지?

-유럽은 무슨…… 사실 유럽과 아시아를 묶어서 유라시아라고 부르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엄연히 하나의 대륙인데 왜 둘로 나누나?

-맞다, 유럽을 다른 대륙으로 나누려면 인도나 중국도 아시아가 아니라 다른 명칭을 써야 한다.

-유럽 놈들이 억지로 구분해 놓은 것일 뿐이다. 사실 유럽과 아시아는 하나의 대륙이다.

-유라시아라는 어이없는 명칭 대신 아시아로 통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루마니아의 배신 이후 속속 배신하는 국가들이 나타났다.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결국 끝까지 버티던 프랑스와 독일도 대세에 따라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와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에서 소외된 대륙은 아메리카밖에 남지 않았다.

* * *

미국 워싱턴 D.C에 자리한 백악관.

“완패군.”

윌슨 대통령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자리를 잡고 있는 국가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최현성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설상가상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남아메리카 국가들 중 하나가 남아메리카 연합 수호 기구를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럼 북아메리카만 외톨이가 된다.

북아메리카에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까지 등을 돌린다면?

사실상 미국은 외톨이가 되어 버린다.

“어쩔 수 없군.”

윌슨 대통령이 수화기를 들었다.

그 후 한국의 이모탈 길드 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 * *

“미국이 백기를 들었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보고에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순순히 아메리카 연합 수호 기구를 만들겠다고 하던가요?”

현성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나중에는 더 잘게 쪼개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세계 각국이 현성의 눈치를 보고 서로 경쟁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덩치가 너무 비대해서 좋을 게 없었다.

“유럽과 중동을 따로 잘라 내겠습니다. 아메리카도 북과 남으로 나누고요. 아프리카도 나눌까요?”

강선영 길드장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프리카는 그대로 놔둬도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일이 잘 풀렸다.

앞으로 강자 책임론 같은 의견은 절대 나오지 못할 것이다.

아니, 나올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각국의 정부가 먼저 나서서 말릴 것이다.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 아메리카 연합 수호 기구.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는 셋으로 쪼갠다.

아메리카 연합 수호 기구는 둘로 쪼갠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타국이 현성에게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현성에게 반하는 국가나 지역이 나오면?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면 그만이다.

‘충성 경쟁이나 열심히 해라.’

도움받는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입에 재갈을 물려 버렸다.

“아메리카 연합 수호 기구가 만들어지면 전설 등급 아이템 경매를 시작해도 될까요?”

강선영 길드장의 물음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성은 그간 전설 등급 아이템 경매를 멈춰 놨다.

아마 아메리카와 유럽이 더 버텼다면?

아시아 연합 수호 기구와 아프리카 연합 수호 기구 소속의 플레이어들만을 대상으로 전설 등급 아이템 경매를 진행했을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사탕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메리카와 유럽은 알아서 꼬리를 내렸다.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이런 짓거리를 하다니.’

괜한 일에 심력을 낭비한 느낌이었다.

“저, 그리고 정부에 대한 조사가 끝났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에 말에 현성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무래도 쓸데없는 짓거리를 한 번 더 해야겠네.’

이번 기회에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제대로 물갈이해야 할 것 같았다.

* * *

이지용 대통령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최현성 플레이어가 정말 복덩이군.’

막대한 자금이 소모될 북한 영토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대한민국의 내수 경제가 살아났다.

수출 현황도 순조로웠다.

이번 사건으로 타국 정부가 현성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었다.

한국 기업들에게 적지 않은 특혜를 준 것이다.

이지용 대통령 덕이 아니라 현성 덕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실업률이 떨어지고 경제가 급성장했다.

당연히 이지용 대통령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결정적으로…….

‘정말 제대로 한몫 챙길 수 있겠어.’

단순한 명예뿐 아니라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

대규모 토목공사만큼 손쉽게 비자금을 조성할 수 있는 방법은 상당히 드물었다.

이지용 대통령으로서는 현성과의 거래 한 번으로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까지 모두 손에 넣은 셈이었다.

‘최현성 플레이어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미국, 러시아, 중국 같은 강대국의 수장들도 눈치를 보는 인물이 현성이다.

굳이 그런 사실에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그치들도 적당히 만족하겠지.’

여당과 야당 그리고 대기업 오너 일가.

이건 모두가 이득을 볼 수밖에 없는 장사였다.

덜컹!

그때 이지용 대통령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대통령님! 크, 큰일 났습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비서실장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차원 게이트라도 열린 건가?”

현 상황에서 문제가 생길 구석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 그게 아니라.”

비서 실장이 황급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도대체 뭐길래?”

이지용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비서실장이 내민 스마트폰을 받아 들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한 이지용 대통령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스마트폰에서는 북한 지역 재건 사업을 담당했던 대기업들의 횡령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막아! 무조건 막아!”

이지용 대통령이 악귀와 같은 표정으로 외쳤다.

대기업이 걸리면?

정치권도 걸린다.

이건 무조건 덮어야 했다.

“일단 급한 대로 제가 지시를 내려놨습니다.”

비서실장이 황급히 대답했다.

하지만 이지용 대통령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야당의 공세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경찰과 검찰도 겁나지 않았다.

언론도 어떻게든 틀어막을 수 있다.

하지만…….

‘최현성 플레이어가 나서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해.’

최현성 플레이어가 이 일에 관심을 가지면 모든 게 끝이었다.

* * *

-경진 그룹 북한 영토 재건 비용 횡령!

-횡령 규모는 수천억!

-다른 대기업들의 횡령 사실도 속속 드러나!

인터넷이 들끓었다.

언론이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더 큰 역풍이 불었다.

-검찰은 뭘 하고 있는 거냐? 당장 압수 수색 해라!

-공무원 놈들은 일을 어떻게 처리한 거야!

-언론은 왜 입을 다물고 있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검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 수색을 시작했다.

언론도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타깃은 철저하게 대기업의 실무진들에게 쏠렸다.

대기업의 오너들은 북한 영토 재건 사업 비용의 횡령을 인정했다.

하지만 철저하게 실무자들의 개인적인 비리로 몰고 갔다.

검찰 역시 이례적으로 빠르게 수사를 진행했다.

실무자들이 구속되었다.

구속된 실무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했다.

검찰은 이번 일이 실무자들의 개인적인 비리라고 발표했다.

그때 또 다른 폭탄이 터졌다.

-북한 영토 재건 비용 횡령의 주모자는?

-실무자들의 비리로 둔갑한 대기업 오너들의 비리.

대기업 오너들이 직접적으로 이번 일에 관여한 증거가 인터넷에 버젓이 올라왔다.

-검찰은 도대체 뭘 수사한 거냐!

-대기업 오너들한테 뒷돈 먹은 거 아니냐?

진정될 기미를 보이던 여론이 다시금 분노에 휩싸였다.

적당히 꼬리 자르기를 하려던 정치권과 재계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특히 수사 결과를 섣불리 발표한 검찰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졌다.

하지만 폭탄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정계와 재계의 은밀한 만남.

-횡령한 북한 영토 재건 비용 정치 비자금으로 둔갑하다.

-정계와 재계의 나랏돈 빼먹기.

-청와대는 과연 이 사실을 몰랐을까?

대기업 오너들과 여당, 야당 대표들의 은밀한 거래 증거가 세상에 드러났다.

청와대까지 의혹에 휩싸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일에 개입되지 않았던 소수당 의원들이 거대 당인 여당과 야당을 공격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횡령 사실과 무관한 여당과 야당 의원들이 내부에서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정계와 재계는 혼돈의 도가니 속에 빠져 버렸다.

그때 현성이 공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의 혈세를 횡령한 이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한다.

인터넷에 허구한 날 올라오는 일반적인 정론에 불과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현성의 발표 이후 곧바로 특검이 꾸려졌다.

특검은 이번 일과 관련이 없는 이들로만 꾸려졌다.

아니, 그렇게 꾸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모탈 길드가 직접 검찰에 압력을 넣었으니까 말이다.

본격적인 특검이 시작되었다.

특검은 사정없이 칼날을 휘둘렀다.

정계의 거물이건 재계의 거물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라면 같은 검찰까지 적으로 삼았다.

특검의 활약에 고구마 줄기가 뽑혀 나오듯 정재계의 거물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뽑아 먹은 방법은 다양했다.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하청이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공사비로 1백억을 준다.

그럼 대기업 1차 하청 업체로 60억이 투입된다.

그다음은?

1차 하청 업체에서 2차 하청 업체로 40억이 투입된다.

이렇게 몇 바퀴만 돌면 실제 공사비의 90%가 사라진다.

당연히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하청 업체는 모두 한통속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허위 청구였다.

공사에 사용하지도 않을 자재 구입비를 허위로 청구하고 그 차액을 횡령한다.

세 번째는 되팔이다.

필요 이상으로 대량의 자재를 구입한 후 실제 공사에 사용된 것처럼 꾸민 후 다시 되파는 것이다.

법인 카드를 이용해 허위 결제를 하거나 실제 결제를 한 후 뒷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온갖 기상천외한 횡령 방법들이 총동원되었다.

그 결과 실제 투입 비용 대비 공사에 사용된 실비용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대놓고 국민의 혈세를 빼돌린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정재계는 얼마나 썩은 거냐!

-나랏돈이 눈먼 돈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국민들이 분노했다.

자신의 혈세가 엉뚱하게 낭비되고 애먼 놈 입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하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한두 푼 들어가는 공사도 아니고 무려 1천조 원이라는 거금이 투입된 공사였다.

특검이 매섭게 칼날을 휘둘렀다.

그 후 온갖 증거들을 포착해 구속시켰다.

-역시 특검이 최고다.

-이승혁 검사 파이팅!

-모두 잡아들여라!

특검의 활약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특히 특검의 사령탑인 이승혁 검사는 국민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순식간에 스타 검사가 되었다.

한편 그 시각.

현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승혁 검사의 선전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승혁 검사가 일을 잘하네.’

사실 잘할 수밖에 없었다.

현성이 직접 그에게 몇 가지 선물을 주었으니까 말이다.

이승혁 검사는 인류의 수호신교를 믿는 교인이었다.

그것도 현성이 직접 휘하에 들여서 관리를 해야 할 정도의 광신도였다.

현성은 이승혁 검사에게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비롯해서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이런저런 스킬들을 선물로 줬다.

아, 밤샘 수사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비약도 잔뜩 먹였다.

현성의 명령을 받은 이승혁 검사는 앞뒤 가리지 않았다.

여당 대표든, 대기업 회장이든, 검찰 선배든 가리지 않고 죄가 있다면 무조건 수사했다.

인류의 수호신교 교인들에게 있어서 현성은 살아 있는 신이다.

신이 직접 내린 명령이다.

광신도로서 앞뒤 가리지 않고 파고드는 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대통령까지 올라가겠네.’

애초에 증거 자료도 가지고 있다.

사이코 메트리 스킬과 진실의 계약 스킬과 같은 스킬의 힘도 빌렸다.

당연히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싹 다 물갈이가 되겠어.’

현성이 심어 놓은 씨앗은 이승혁 검사만이 아니다.

정치권과 언론을 포함해 수많은 분야에서 인류의 수호신교 교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현성은 그중 열성적인 이들에게 몇 가지 선물을 주었다.

또 이모탈 길드의 힘으로 그들을 후원하게 했다.

당연히 성장 속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수호신교 교인들만 지원한 건 아니다.

제대로 된 신념을 가지고 있고, 비리와 무관하며, 스스로의 일에 열심인 이들에게도 금전적, 정치적 후원을 해 주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뒷배가 된 상황이다.

당연히 무서울 게 없었다.

현성의 후원을 받는 이들은 국회의원도, 대기업 오너 일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가 있다면 무조건 물어뜯었다.

‘다시 더러워질 수도 있겠지.’

솔직히 한 번의 청소로 오물통이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청소할 때 못 본 오물이 있을 수도 있다.

오물이 다시 생겨날 수도 있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더러워지면 다시 청소를 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건 청소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거다.

이승혁 검사의 칼날이 청와대까지 휘저었다.

소위 말하는 정재계의 높으신 분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대통령의 최측근들조차 잡혀가는 마당이다.

대한민국에서 이승혁 검사의 칼날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결과.

대기업, 정치인, 대통령이 하나로 얽혀 있는 북한 영토 재건 비용 횡령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횡령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북한 영토 재건 비용에 투입된 혈세의 대부분이 눈 녹듯 사라진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썩어 빠진 전 정권과는 다른 줄 알았는데.

-그 나물에 그 밥이었어.

결국 이지용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했다.

정치인들도 자진해서 의원직을 사퇴했다.

기업 총수들 역시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검찰이 해결하지 못하면 직접 나서겠다는 현성의 전언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두 번 연속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하야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지만, 대한민국은 나름 잘 굴러갔다.

실업률은 최저로 떨어졌고 경기는 호황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대선과 재보궐 선거가 치러졌다.

* * *

‘지구에서 할 일은 대충 마무리된 것 같고.’

이제 다시 파르티샤의 차원에 가 봐야 할 때가 왔다.

‘이번에는 목적이 다르지.’

저번에는 빨강이를 완성시킬 목적에 무조건 몬스터들만 사냥하고 다녔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적이 달랐다.

‘드워프와 엘프를 찾아야겠어.’

파르티샤가 다스리는 나라의 장인들이 열심히 아이템을 생산해 현성에게 공급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 등급이 낮았다.

‘가성비가 너무 떨어져.’

현무의 등껍질로 만든 방어구에서 보듯 재료가 좋아도 그걸 살리기가 힘들었다.

제대로 된 장비 비축을 위해서는 드워프와 엘프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론 단순히 그런 이유로 드워프와 엘프를 찾으려는 건 아니었다.

‘슬슬 5차 전직 퀘스트 대군주의 길도 완료를 해야지.’

현성의 직업인 군주는 현재 4차 전직 상태다.

5차 전직을 위한 조건은 세 명의 군주에게 충성 맹세를 받는 것.

‘지구에서는 찾기가 힘들지만 파르티샤의 차원에서는 가능할 거야.’

파르티샤가 모르는 인간들의 나라를 발견해도 좋다.

그게 아니면 드워프와 엘프 들의 나라를 발견해도 좋다.

적당한 거래를 통해 그들의 충성 맹세를 받는다면?

의외로 손쉽게 5차 전직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이런저런 일이 많이 있어서 미뤄 놨지만, 이번에는 해결을 해야지.’

스텟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직 퀘스트도 중요하다.

직업 군주 같은 경우는 현성 홀로 강해지는 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휘하 신하들과 함께 성장한다.

현성 한 사람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강해지는 것이다.

현성이 파르티샤에게 문자를 통해 자신을 고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군주의 외침 스킬보다는 스마트폰이 편하지.’

군주의 외침은 일방통행이고 스마트폰은 쌍방 통행이다.

-고용주 파르티샤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파르티샤가 바로 호출을 해 왔다.

현성이 예를 눌렀다.

화악!

밝은 빛무리가 현성은 몸을 휘감았다.

“주군을 뵙습니다.”

파르티샤가 공손히 군례를 올렸다.

“특별한 일은 없었죠?”

현성의 물음에 파르티샤가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예, 자체적으로 해결이 가능한 수준의 작은 전투만 있었을 뿐입니다.”

뭐, 현성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위기가 닥쳤다면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했을 것이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드워프나 엘프 같은 유사 인종들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혹시 짐작 가는 장소가 있나요?”

현성의 물음에 파르티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 과거 그들의 나라가 있던 장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멸망했지만 생존했다면 그 근처에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게 아니라면 저처럼 반도 지형에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파르티샤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지도가 있나요?”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그곳 지리에 익숙한 길잡이들을 데리고 가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그게 좋겠네요. 준비해 주세요.”

자고로 타지를 돌아다닐 때는 가이드에게 길 안내를 맡기는 게 편하다.

준비는 순식간에 끝났다.

파르티샤가 길잡이들을 데리고 왔고 현성은 그들을 삼두룡에 태웠다.

“꿀꺽!”

길잡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본 드래곤.

그것도 바그토크의 악몽이라고 불렸던 괴물의 등에 올라타고 하늘을 날아야 한다.

비행 경험이 없는 길잡이들로서는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어서 타지 않고 무얼 하는 거냐.”

“빨리빨리 움직여라.”

길잡이들의 통솔자로 따라온 파르티샤의 아들 카이와 딸 리사가 길잡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에 길잡이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삼두룡의 등에 올라탔다.

‘그럼 슬슬 가 볼까.’

삼두룡의 가운데 머리에 자리를 잡은 현성이 지시를 내렸다.

-크아아아앙!

삼두룡의 커다란 포효를 터트리며 날개를 펄럭였다.

“히이이익!”

삼두룡이 움직이자 길잡이들이 기겁을 했다.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카이와 리사 역시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하늘을 나는 게 그렇게 싫은가?’

현성은 의아할 뿐이었다.

휘이이이잉!

삼두룡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가로질렀다.

처음에는 두 눈을 꼭 감고만 있던 길잡이들도 서서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건물들이 저렇게 작게 보이다니?”

“산이 작은 언덕처럼 보여.”

길잡이들이 수다를 떨며 비행을 즐겼다.

‘익숙해지면 편한 법이지.’

사실 본 드래곤의 등에 올라탄 채 하늘을 나는 것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다.

거기다 길잡이들 역시 중저레벨이기는 하지만 모두 플레이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반인들처럼 본 드래곤에서 떨어져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뭐, 현성이 떨어지는 길잡이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도 없었지만 말이다.

현성은 중간중간 길잡이들의 안내를 받으며 과거 드워프 왕국이 있었다는 장소를 향해 날아갔다.

전투는 없었다.

종종 공중형 몬스터들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삼두룡을 보고는 알아서 꼬리를 내렸다.

족히 반나절 이상을 날아간 결과.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곳이 드워프 왕국이 있던 곳인가?”

현성의 물음에 길잡이 하나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예, 그렇사옵니다.”

“으흠.”

자세히 살펴보니 문명의 흔적이 약간은 엿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폐허에 불과했다.

거기다 몬스터들이 잔뜩 서식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북쪽으로 가시면 드워프 왕국의 수도를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수도라. 일단 가 보지.”

현성이 삼두룡에게 명령을 내렸다.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드워프 왕국의 수도에 도착했다.

수도는 꽤 웅장했다.

“멋있네.”

중간중간 파괴된 흔적이 있기는 했지만 드워프 왕국의 수도는 실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산을 통째로 깎았을 줄이야.’

드워프 왕국의 수도는 거대한 광산이었다.

드워프들이 거대한 광산을 깎아 도시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도시 내부에 드워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오직 몬스터들뿐이었다.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네.’

현성이 굳이 드워프 왕국의 수도로 온 이유는 단 하나.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살아남은 드워프는 어디 어디로 와라.’ 같은 거 말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