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대격변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뽑았고 나름 잘 돌아갔다.
사회 전체에 부패를 혐오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타국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현성은 꾸준히 강해졌다.
신화 등급 정신계 방어 스킬을 구입해 용인화의 단점을 어느 정도 보완했다.
그 후에는 마신의 갑주 세트를 구입했다.
신화 등급으로 아이템 세팅을 맞춘 후에는 신화 등급 스킬을 구입해 기존 신화 등급 스킬들의 위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업적도 꾸준히 늘어 가고 있었다.
파르티샤의 차원에서 새로운 몬스터를 사냥해 업적을 늘렸다.
지구에서도 미국을 시작으로 진행되던 던전 순회공연이 어느새 아메리카 대륙을 끝내고 유럽으로 넘어갔다.
‘유럽에만 있는 던전이 많지는 않으니까 금방 끝나겠지.’
유럽을 정리하면 중동을 시작으로 중국과 인도 등등에서 얻을 수 있는 업적을 싹쓸이하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순회공연이 끝나면 지구에서 몬스터를 사냥할 필요가 사라진다.
지구에서 몬스터를 사냥해 업적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그때부터는 파르티샤의 차원에 집중해야지.’
차원은 많았고 사냥할 몬스터는 더 많았다.
‘까망이도 많이 컸어.’
그간 까망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얼마나 빠르게 성장을 하는지 더 이상 현성의 팔목에 감길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 결과 현성은 까망이를 개인 소유 던전에 풀어서 키웠다.
그랬더니 성장이 더 빨라져서 지금은 영화에 등장했던 아나콘다보다 더 커졌다.
성장한 것은 까망이만이 아니었다.
지구의 플레이어들 역시 강해졌다.
세계 각국의 플레이어들은 현성의 도움 없이도 전설 등급 몬스터를 무난하게 사냥할 정도로 강해졌다.
최상위 랭커들만 성장한 건 아니었다.
현성이 드워프 왕국과 주종 관계를 맺으며 저렴한 가격에 아이템을 공급하자 플레이어들의 전체적인 수준 역시 상승했다.
드워프 장인과의 기술 교류 역시 인류의 수호신교 출신 지구 장인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이루어졌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하나로 융합될 것이다.
또 가장 우려했던 수중 차원 게이트 역시 미드호 사건 이후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금의 평화가 오래 유지되면 좋겠네.’
현성은 지금의 평화에 만족했다.
사냥을 통해 포인트와 아이템을 수급한다.
시스템 상점을 통한 장사로 포인트를 모은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또 게스피트가 연구하고 있던 교류의 보석 업그레이드판 역시 대중화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제대로 된 3D 게임의 시대가 오는 거지.’
교류의 보석이 업그레이드가 되면 지금처럼 시스템 상점을 통해 DVD를 판매할 필요가 없다.
교류의 보석을 통해 디지털 영상을 판매하면 된다.
현성이 일일이 부족한 수량을 체크해서 채워 넣을 필요가 사라지는 것이다.
‘호루스의 눈 연구도 1차적으로는 끝났어.’
호루스의 눈 다운그레이드판이 완성되었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단가가 더럽게 비싸지.’
신화 등급 아이템의 다운그레이드판이라서 그런지 고작 하나를 만드는 데도 전설 등급 몬스터의 마석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그런데 성능은 원본인 호루스의 눈보다 월등히 떨어진다.
‘차라리 돈을 발라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은데.’
전설 등급 몬스터의 마석 수량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그것도 힘들었다.
그 결과 호루스의 눈 다운그레이드판의 우선 배정권을 놓고 벌어졌던 각국의 신경전도 사실 의미가 없어졌다.
재료 수급이 힘들다 보니 그냥 전설 등급 몬스터의 마석을 먼저 모아 오는 국가라면 굳이 순번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제작이 가능했다.
‘뭐, 덕분에 나도 짭짤하게 재미를 봤지만.’
현성은 파르티샤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했다.
엘프를 비롯한 이종족 수색 겸 사냥을 한 것이다.
그 와중에 수급된 전설 등급 몬스터의 마석이 상당히 고가에 팔렸다.
이미 현성에게 있어서 돈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전설 등급 아이템과 교환하는 형식으로 거래를 했다.
그 덕에 1기 척살대원들에게도 전설 등급 아이템을 공급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사정이 좋았다.
아버지와 루시아 그리고 백우신의 경우는 이미 전설 등급 장비로 풀 세트를 맞춘 상태였다.
‘이대로만 가자.’
그럼 참 좋을 것 같았다.
“주군.”
루시아가 현성을 불렀다.
“어서 나오시랍니다.”
루시아의 말에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출발하는 건가요?”
현성의 물음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른 가죠.”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그간 현성과 최현지는 일에 빠져 살았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 박미숙 여사가 자식들도 좀 쉬라고 여행을 계획했다.
현성도 찬성했다.
‘어차피 스페인은 가야 하니까.’
여행 장소는 스페인이었다.
현성 입장에서는 어차피 유럽을 가야 했으니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여행하는 중간중간에 돌면 되겠지.’
어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현성은 여행을 가서도 꾸준히 던전 순회공연을 이어 나갈 생각이었다.
‘아마 누나도 비슷하겠지.’
일중독자가 되어 버린 누나 최현지 역시 여행을 갔다고 손에서 일거리를 놓을 것 같지는 않았다.
* * *
북대서양의 심해.
파지지지직!
그곳에서 거대한 차원 게이트가 열렸다.
새롭게 열린 수중 차원 게이트에서 수중형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중형 몬스터들이 드넓은 북대서양 바다 곳곳으로 흩어져 나갔다.
하지만 수중 차원 게이트가 열린 곳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북대서양 바다 이곳저곳에서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수중 차원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차원 게이트의 숫자는 많았고 뿜어내는 몬스터의 등급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수중 차원 게이트는 일반 등급 어류형 몬스터를 토해 냈고, 어떤 수중 차원 게이트는 희귀 등급 어류형 몬스터를 토해 냈다.
그 수가 적긴 하지만 영웅 등급 어류형 몬스터를 토해 내는 수중 차원 게이트도 당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파지지지직!
마지막으로 형성된 차원 게이트에서 바다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검푸른 비늘이 전신을 뒤덮고 있고 머리는 드래곤의 형상을 띠고 있는, 몸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바다뱀이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차원 게이트가 계속해서 거대한 바다뱀들을 토해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 * *
거대한 LNG 선박이 북대서양 바다를 가로질렀다.
천연가스는 여전히 인류에게 있어서 값싼 에너지원이었다.
마석의 가격은 비쌌고 난방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생산 수량이 부족했다.
한국의 경우는 현재 러시아와 연결된 가스관을 통해 천연가스를 저렴하게 공급받고 있었다.
유럽의 경우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미국산 천연가스를 동시에 공급받으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현재 북대서양 바다를 가로지르는 LNG 선박은 미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중이었다.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은 북대서양을 통해 많은 물자를 운반했다.
“어?”
레이더를 보던 선원 하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물속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선박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수함?’
처음에는 잠수함인가 했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랐다.
‘어뢰?’
어뢰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위이이이잉!
선원은 일단 비상벨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선박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방향 틀어!”
LNG 선박은 일단 회피 기동을 실시했다.
하지만 거대한 괴물체는 선박의 이동속도보다 월등히 빨랐다.
“너무 빠릅니다!”
“이제 충돌합니다!”
선원들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충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선박이 뒤흔들리지도 않았다.
선원들이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런 선원들의 눈에 거대한 파충류의 머리가 보였다.
뱀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드래곤을 닮은 것 같기도 한 거대한 머리.
“모, 몬스터다!”
“당장 지원 요청해!”
선박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때였다.
쩌어어억!
아가리를 벌린 거대한 파충류가 그대로 선체의 일부를 물어뜯었다.
콰지지직!
날카로운 파충류의 이빨에 너무도 손쉽게 선체가 손실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 선박에 실린 것이 LNG라는 것이었다.
파충류의 이빨이 LNG를 담아 놓던 탱크를 부숴 버렸다.
그 와중에 파충류의 날카로운 이빨과 선체가 충돌하며 불꽃을 일으켰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커다란 폭발과 함께 선박에 실려 있던 LNG 탱크들이 연달아 폭발했다.
-캬아아아아앙!
정체불명의 파충류가 고통스러운 괴성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정체불명의 파충류가 폭발에 휩쓸려 죽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첨벙!
선박을 폭발시킨 정체불명의 파충류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선박을 원거리에서 공격했다.
콰콰콰콰콰콰콰!
물이 극도로 응축된 워터 브레스가 북대서양을 이동하던 다른 선박과 충돌했고…….
꽈아아아아아앙!
워터 브레스에 적중당한 선박은 선체가 두 동강 나며 그대로 침몰했다.
* * *
‘좋네.’
현성이 드넓은 백사장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가족 여행을 온 현성은 밤에는 사냥을 하고 낮에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해외에서 보내는 휴가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동안 해외는 많이 돌아다녔지만 다 일만 했으니.’
순수하게 놀기 위해 해외를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가족들과 함께 말이다.
‘진작 이런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너무 정신없이 살아왔다.
각성을 하기 전에도 그렇고 후에도 그랬다.
좀 여유를 가지고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가족 여행을 올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종종 이런 시간을 가져야지.’
가족들과 여행을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사냥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히히!”
“오빠, 재미있어! 더 해 줘!”
바닷가에서는 백우신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여동생 백우희와 물놀이를 즐겼다.
“우희가 정말 재미있게 노네요.”
“우신이도 정말 즐거워 보여요. 고마워요, 언니. 가족 여행에 우리도 끼워 줘서.”
“왜? 우린 한 가족인데.”
현성의 어머니와 백우신의 어머니는 모래사장에 누워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곁에는 전설 등급 골렘 허순자가 수영복을 입고 선베드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원래는 놓고 오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골렘도 가족이라고 우겨서 데리고 왔다.
현성도 경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찬성했다.
아버지와 루시아도 해외에서 즐기는 휴가가 그리 나쁘지 않은 듯했다.
뭐, 누나 최현지는 살짝 불만이 있어 보였다.
노는 와중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업무가 많아서 어쩔 수가 없다나?
그 덕에 다른 전설 등급 골렘 허명자도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업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업무에 무능한 골렘의 손까지 빌리는 걸 보니 정말 일거리가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친동생으로서 친누나의 소소한 고생 따위는 무시해도 상관없었다.
‘진짜 일중독자라니까.’
현성이 안타깝다는 듯 누나 최현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현성 역시 일중독자였다.
휴가를 와서도 잠까지 줄여 가며 꾸준히 던전 순회공연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위이이이잉!
‘어?’
현성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웬만하면 안 받았을 거다.
휴가 중이었으니까.
한데 이 전화는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백악관에서 전화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현성이 휴가 중이라는 걸 모르는 국가 원수는 없다.
미국이 현성에게 밉보이고 싶어 작정한 게 아니라면 정말 큰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여보세요?”
현성이 전화를 받았다.
-최현성 플레이어, 제발 미국을 구해 주십시오!
수화기 너머에서 윌슨 대통령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좀 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북대서양에 대규모 해양 몬스터들이 출몰했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말을 들은 현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숫자가 얼마나 되죠?”
-현재 파악조차 힘듭니다. 북대서양을 횡단하던 선박들이 연달아 해양 몬스터의 습격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가죠.”
-사라 플레이어를 보내겠습니다.
슈욱!
윌슨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 보유자 사라가 현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어지간히 애가 탔던 모양이다.
“급한 일이 생겨서 잠시 다녀올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가 현성의 손을 덥석 잡고는 그대로 장거리 공간 이동 스킬을 사용했다.
슈욱!
해변가에서 현성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도대체 이게 뭔 일이라니?”
현성의 어머니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잘 놀고 있던 현성이 갑자기 사라졌다.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루시아가 전화기를 들고 강선영 길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네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루시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일단 오늘 물놀이는 여기서 끝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북대서양에 차원 게이트가 열렸고 대량의 해양 몬스터가 풀려났다.
현재 현성의 가족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바다도 북대서양이었다.
결코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거니?”
현성의 어머니 박미숙 여사의 물음에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로 돌아가 자세한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잠시 후면 해수욕장 자체가 폐쇄될 것 같습니다.”
“꽤 큰 사건이 터진 모양이구나.”
현성 가족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럼 어서 돌아가자.”
박미숙 여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성 가족들이 해수욕장을 떠날 준비를 했다.
“어서 나오렴.”
일단 물놀이를 즐기던 백우신과 백우희를 불러들였다.
애애애애앵!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해수욕장을 폐쇄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소식을 전달받은 스페인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스페인 정부만이 아니었다.
북대서양과 인접해 있는 국가들이 모두 해안가에 대피령을 내리고 선박의 이동을 금지했다.
백우신과 백우희가 물 밖으로 나왔다.
해수욕을 즐기던 이들도 하나둘 물 밖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기에 모두 대피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 사달이 벌어졌다.
좌아아악!
검푸른 바닷물 속에서 거대한 물고기가 튀어나왔다.
콰직!
“아아아악!”
수심이 깊은 곳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사람 중 하나가 처절한 비명과 함께 거대한 물고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검푸른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꺄아아아악!”
“몬스터다!”
해수욕을 즐기던 이들이 비명을 터트리며 해변가로 도주했다.
하지만 인간의 피 맛을 본 거대한 물고기가 빠른 속도로 헤엄치며 사람들을 사냥했다.
타악!
해변가에서 짐을 챙기고 있던 루시아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총알처럼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루시아가 아공간에서 자신의 검과 방패를 꺼냈다.
그와 동시에 물 위를 평지처럼 달리며, 학살극을 벌이고 있던 거대한 물고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거대한 물고기의 몸이 둘로 갈라졌다.
첨벙!
두 동강이 난 거대한 물고기의 사체가 바다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해변가에 모습을 드러낸 해양 몬스터는 거대한 물고기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피 냄새를 맡고 왔는지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숫자의 해양 몬스터들이 해변가로 몰려들고 있었다.
콰콰콰콰콰콰!
루시아의 검에 검푸른 마력이 응집했다.
휘익! 좌아아아아악!
루시아의 검에서 뿜어져 나간 검기가 바다를 둘로 갈라 버릴 듯이 뿜어져 나갔다.
순식간에 수백에 달하는 해양 몬스터들이 그 생을 달리했다.
-캬아아아악!
하지만 해양 몬스터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위이이이잉!
해안가에 있던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가 광역 방어 스킬을 시전했다.
아직 해안가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타악!
백우신 역시 자신의 검과 방패를 소환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빠지지지직!
허공에서 수백 개가 넘는 얼음의 창이 만들어졌다.
현성의 아버지 최형규가 만들어 낸 공격 스킬이었다.
얼음의 창이 바다를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꽈꽈꽈꽈꽈꽝!
커다란 폭발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빠지지지직!
얼음의 창은 바다를 얼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칫!”
하지만 최형규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바닷물 자체가 해양 몬스터들의 몸을 보호해 주는 방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전방에는 루시아와 백우신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방어에 전념하자.’
최형규는 방어 스킬을 유지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최형규의 믿음에 부응하듯 루시아와 백우신이 온갖 스킬들을 쏟아 내며 해양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해양 몬스터의 레벨이 낮은 건 아니었다.
대다수가 일반 및 희귀 등급이었지만, 영웅 등급 몬스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1레벨 플레이어인 루시아와 현성이 주는 비약을 먹고 레벨링을 통해 스텟을 꾸준히 늘려 온 백우신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최형규가 방어하고 루시아와 백우신이 공격한다.
루시아와 백우신의 스텟과 스킬이 방어에 치중되어 있는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력이 빈약한 건 아니었다.
현성과 같은 규격 외의 존재가 비교 대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백우신이 방패로 후려치고 검으로 내려찍으며 해양 몬스터들을 소탕해 갔다.
루시아의 경우는 길이가 5미터는 넘어 보이는 검기를 연달아 날려 보내며 바다 전체를 초토화시킬 기세로 날뛰고 있었다.
해안가로 대피한 사람들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중 일부는 스마트폰으로 루시아와 백우신의 전투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야?”
“도대체 어느 나라 랭커들이지?”
뒤늦게 소식을 듣고 출동한 스페인 플레이어들은 입을 쩍 벌리고 루시아와 백우신의 활약을 지켜봤다.
마음 같아서는 합류해서 함께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신들이 합류했다가는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스페인 플레이어들은 아직 대피하지 못한 국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한창 시끄럽던 바다가 잠잠해졌다.
바다 위에 몬스터의 사체가 둥둥 떠다녔다.
반대로 바다 밑에는 마석과 아이템이 잔뜩 쌓여 있었다.
‘끝난 건가?’
루시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파도와 함께 해일처럼 밀려들던 몬스터들의 공세가 끝났다.
일반인들도 대피했으니 일단 물러나도 될 듯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루시아가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하는 대상은 최현성의 가족이었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콰!
마력이 가득 담긴 강력한 물줄기가 루시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막는다.’
루시아가 방패를 들고 방어 스킬을 풀 가동시켰다.
사실 정면에서 막는 것보다는 피하는 게 더 쉬웠다.
하지만 루시아가 피해 버리면 마력이 가득 담긴 물줄기가 해변가로 향한다.
그럼 현성의 가족과 일반인들이 위험해진다.
꽈아아아아앙!
루시아의 방패와 물줄기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바닷물 위에 서 있던 루시아의 몸이 뒤로 쭉 밀려 났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물줄기는 루시아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마력이 가득 실린 물줄기의 파편들이 비산하며 해변가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최형규가 만든 광역 실드가 가뿐하게 막아 냈다.
‘전설 등급인가?’
방금 전 공격은 영웅 등급 몬스터가 보여 줄 수 있는 수준의 공격력이 아니었다.
“백우신, 당장 돌아가서 주군의 가족과 네 가족을 보호해라.”
전설 등급 골렘 둘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골렘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루시아의 말을 들은 백우신이 그대로 몸을 돌려 해변가로 향했다.
백우신을 보낸 루시아가 아공간을 열어 갑옷을 착용했다.
상대가 전설 등급 몬스터라면 루시아도 전력을 다하는 편이 좋았다.
좌아아아악!
바닷물을 헤치며 방금 전 물줄기를 날린 범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을 닮은 듯한 머리, 뱀처럼 긴 몸통.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의 모습을 목격한 루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까망이?”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덩치 차이만 있을 뿐 겉모습 자체는 까망이와 똑같았다.
‘그럼 전설 등급이 맞군.’
까망이가 전설 등급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아니, 까망이는 새끼고 이놈은 성체이니 어쩌면 준신화 등급 몬스터일 가능성도 충분했다.
루시아가 마력을 끌어 올려 도발 스킬을 시전했다.
이런 놈이 해변가로 가서 날뛰면 위험하다.
무조건 이곳에서 쓰러트려야 했다.
타악!
루시아가 바닷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방패로 몬스터의 머리를 후려쳤다.
꽈아아아앙!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던 머리가 획 하고 돌아갔다.
콰콰콰콰콰콰!
루시아의 검에서 검푸른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직!
루시아의 검이 몬스터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단단해.’
절삭력이 좋은 액티브 스킬 검기를 발현시켰음에도 검이 깊게 박히지 못했다.
-크아아아아앙!
몬스터가 포효를 터트렸다.
-정신계 위압 스킬 피어에 걸리셨습니다.
-위압에 잠식당한 신체가 10초간 경직 상태에 빠집니다.
-패시브 스킬 꺾이지 않는 신념이 발동합니다.
-패시브 스킬 불타는 투지가 발동합니다.
-패시브 스킬 굴하지 않는 정신이 발동합니다.
……중략……
-워크라이 스킬에 완벽하게 저항했습니다.
‘피어 스킬까지?’
확실히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하지만 그건 다른 플레이어들이 놈의 상대였을 때 이야기다.
루시아에게 있어 눈앞의 몬스터는 전혀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었다.
휘이이이익!
몬스터가 루시아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루시아는 날렵하게 몸을 날려 어깨로 몬스터의 턱을 들이받았다.
빠각!
턱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목이 뒤로 획 하고 넘어갔다.
루시아가 검을 휘둘러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턱 사이에 검을 찔러 넣었다.
좌악!
긴 상처가 생기며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캬아아아앙!
몬스터가 포효와 함께 맹공을 가했다.
하지만 루시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루시아의 실력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타국 정부도 그저 상위 랭커급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루시아의 진짜 실력은 지구 플레이어들 중 두 번째였다.
현성을 제외하면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것도 3위와 까마득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강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신화 등급 몬스터라면 모르겠지만 준신화 등급 몬스터까지는 충분히 일대일로 상대할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상대가 전설 등급 몬스터라면?
충분히 압살할 수 있었다.
꽈아앙! 꽈아앙! 꽈아앙!
루시아의 손에 들린 방패가 연달아 몬스터의 머리를 후려쳤다.
직업이 기사이고 스텟 자체도 방어에 치중되어 있다 보니 루시아의 공격력은 현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이다.
현성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이 걸릴 뿐 루시아의 공격력은 전설 등급 몬스터를 사냥하기에 충분했다.
몬스터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늘어났다.
그에 비해 루시아의 몸에는 작은 생채기조차도 없었다.
루시아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몬스터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결과.
좌아악!
검을 휘둘러 몬스터의 목을 베어 낼 수 있었다.
첨벙!
몬스터의 머리가 바닷물 속으로 떨어졌고…….
촤아아아악!
그 뒤를 이어 피투성이로 변한 몬스터의 사체가 커다란 물보라와 함께 바닷물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설 등급 몬스터 솔로 레이드에 성공한 플레이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그 시각 현성은…….
* * *
‘도대체 뭐가 이렇게 많아.’
북대서양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해양 몬스터 때문에 멘붕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막기에는 이미 늦은 거 같은데.’
호루스의 눈을 통해 살펴본 차원 게이트의 숫자는 족히 수천 개가 넘었다.
파악된 몬스터의 숫자는?
당장 파악되는 것만 최소 억 단위 이상이었다.
미드호 때처럼 차원 게이트를 봉인하고 빠져나온 몬스터를 때려잡아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차원 게이트의 던전화도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차원 게이트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심해 깊은 곳에서 오픈된 차원 게이트도 많았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냐?’
인류가 바닷길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