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63. 선택을 하다(2)
진호는 병원 밖으로 나와 거닐었다.
아직 이른 시간, 사람들 눈을 피해서 움직인 거였다.
바람소리조차 없어 사방이 조용했다.
안팎으로 팬들이 운집해 있던 터라 이렇게 안 하면 혼자이기 힘들었다.
“······역시 돌아오지 않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힘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무엇을 떠올려도 전생은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한 십 수 년간의 경험 역시 희미한 기억으로 변했을 뿐이다.
알고는 있지만 체감은 되지 않는.
지금의 진호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대사는 전부 기억하고 있는데.”
진호가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드라마 배역에 할당된 대사들이 전부 떠올랐다.
어떤 장면에 어떻게 대사가 쓰이는지도 이해했다.
[나는 동료를 두고 가지 않아. 그것이 내 자부심이다]
하지만 느낌이 없었다.
전사의 치열함도 생사기로에 선 자의 비장함도 없었다.
그저 입으로 뱉는 대사에 불과했다.
감정 없는 울림은 공허함만이 남을 뿐이었다.
“이게 내 진짜 실력이구나.”
힘을 사라지고 난 뒤 여실히 드러나는 실력.
그래도 경력이 있고 해 온 일들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될 거라 생각했던 걸 단번에 부정했다.
연기는 초라하고 허탈감은 극심했다.
“오빠. 여기 있었구나.”
“은서니?”
“응. 병실에 안 보여서 한참 찾았잖아. 여기서 이러다가 팬들 만나면 또 힘들어져.”
“잠깐, 숨 돌릴 공간이 필요했어.”
진호의 목소리에서 떨림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은서가 입술을 깨물며 한 달음에 다가갔다.
팔을 잡고 몸을 기대니 그 떨림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그런 거지?”
“응. 전처럼은 안 되나 봐. 그래서 평범하게 연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엉망이네.”
“아직 낯설어서 그런 걸 거야. 지금껏 해 온 일들이 있는데, 갑자기 사라지겠어?”
“······글쎄.”
희망에 희망으로 답하는 건 쉽지 않았다.
특별한 재능이 사라졌을 때 과연 무엇이 남아서 자신을 유지시켜 줄 것인가.
고민했던 부분이지만 현실은 더 차가웠다.
아니, 두려웠다.
“대표님, 안에 계시지?”
“응. 결정했어?”
“지금 이 상태로는 무리야. 드라마는 하차하는 것이 옳아 보여.”
“······응. 그래.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을 해 보자.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기회는 올 거야.”
과연 그럴까.
진호는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매달리는 건 의미 없었다.
연기 없이 드라마 안에서 진호가 이룰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배우가 아니라면 내가 뭘 보여 줄 수 있을까.”
도망칠 뿐이었다.
#
[총격 후유증? 드라마 전격 하차]
[배우 홍 진호. 드라마 하차 결정. 총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
[드라마 하차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드림. 부상 치유 및 회복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다]
결정과 이행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최현석은 아쉬웠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배우가 그렇게 선택을 했다면 그걸 지지하는 것이 대표의 역할이었다.
드림 쪽 관계자와 만나 부상 등을 이유로 들어 하차를 결정지었다.
드림 측에서는 끈질기게 잔류를 설득했지만 당사자인 진호가 부상을 핑계로 대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총 맞고 가사상태에서 겨우 돌아온 사람을 재촉했다가는 드림도 여론에서 무사하기는 힘들었다.
“정리 끝났으니까,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겠네.”
“돌아가면 휴가 받아 올 테니까 같이 좀 쉬자.”
“넌 드라마 있잖아. 지금도 억지로 시간을 냈는데, 계속 피해 줄 수는 없지.”
“하지만······”
“괜찮아. 당분간 쉬면서 생각을 정리 해 볼게.”
짐은 정리되었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마음이 모두 정리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길고 긴 시간이.
“진호야, 손님 왔다.”
“응?”
그렇게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방문객이 찾아왔다.
“으아아앙! 진호 형!”
“어? 너 진우구나?”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와서 안기는 소년.
그 날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진우였다.
“형 많이 아파요?”
“하하. 이제 다 괜찮아 졌어. 봐봐. 팔도 깁스만 했지 멀쩡하게 붙어 있는 걸.”
“그럼 왜 드라마에서 나가요? 저 때문에 다쳐서 그래요? 네?”
훌쩍이는 진우의 모습에 진호가 무릎을 굽혔다.
눈높이를 맞추고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 때문 아니야. 그런 걱정은 하지 마.”
“하, 하지만······”
“진짜라니까. 이 형은 굉장해서 드림 드라마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잠깐 쉬고 다시 하면 되니까 문제없어.”
“진짜요?”
“그럼. 나 알지? 홍진호라고.”
그제야 진우가 눈물을 멈추고 웃었다.
그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아이의 상처와 맞바꿀 가치는 없었다.
“진우야. 천천히 가라니까.”
“어?”
뒤이어 한 명이 더 들어왔다.
휠체어로 몸을 싣고 다급하게 움직이는 여성이었다.
진호는 그녀를 보자 단번에 알아봤다.
“진우 어머님?”
“네.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진우 엄마입니다.”
“몸은 괜찮으신거죠?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는데.”
“네. 덕분에요. 진호 님 아니었으면 저랑 우리 진우가 그 날 어떻게 됐을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휠체어 신세이기는 하지만 신색은 밝았다.
다행이 총알이 중요 장기를 비껴간 덕분에 부상 후유증이나 그런 것도 없었다.
진호는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무사하신 것만 해도 다행이죠. 그 테러범 놈들도 저 때문에 온 것이니 되레 제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에요. 어디 횡액이 문 두드리고 찾아온답니까. 앞일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 나서 주셨으니 진호 님의 행동은 칭송 받아도 모자람이 없어요.”
“진우 어머님······”
“다만, 그 일로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우리 진우도 저도 참 많이 걱정했습니다. 혹여나 그 일로 상처가 큰 건 아닐까 싶어서요.”
아닙니다, 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진호가 입술을 짧게 씹고 간신히 답을 이었다.
“조금 쉬면 돼요. 쉬고 나면 다시 일 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겁니다.”
“그래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어요. 진호 님 같은 좋은 분께는 항상 좋은 일만 있어야죠.”
“제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요?”
“그럼요. 용기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잖아요.”
“······”
진호가 잠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 헝클어졌던 마음이 다듬어지는 기분이었다.
많은 고통과 많은 허탈감이 자리하던 마음 한 곳에 작은 기운이 자리했다.
용기를 낸 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힘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도 남은 건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뇨. 제가 고맙죠. 진우야 감사 인사 드렸지?”
“응! 그리고 형이 그랬는데, 형은 굉장해서 금방 또 드림 같은 곳에서 드라마 할 수 있데. 대단하지?”
“어머. 대단하다. 우리 진우도 나중에 진호 형 같은 훌륭한 사람 돼야지?”
“응! 꼭 그럴 거야!”
힘이 없다 해도 가능한 일일까.
며칠 전이었다면 부정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진호가 부드럽게 웃으며 진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도 진우가 보기에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할게.”
아직 남은 것이 많다.
포기는 그저 두려움의 피신처였을 뿐.
올라갈 힘은 남아 있었다.
“응! 형, 화이팅!”
아주 많이.
#
귀국 후에는 일단 고향으로 내려갔다.
힘들 때는 역시 부모님 곁이 최고였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서울을 오갈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시골에서 머물렀다.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야지. 그리 조금 먹어서야 힘을 쓰겄냐.”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 밥도 배터지게 먹었다.
어머니 입장에서야 죽다 살아난 아들 아니겠는가.
매일같이 소 잡고 닭 잡고 돼지 잡아서 때려 부었다.
덕분에 살도 좀 오른 진호였다.
“아, 이장님. 일찍부터 나오셨네요?”
“우리야 뭐 일상이지. 진호 총각은 팔 어때? 아직도 쓰리고 그래? 우리 집에 잘 듣는 약 있는데.”
“하하. 괜찮아요.”
틈 날 때면 동네를 돌아다녔다.
고향인지라 아는 사람도 많고 바람 쐬기에는 딱 좋았다.
문제라면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
“이장님. 어제 밤에도 또 왕창 찾아왔다고 하던데. 안 불편하셨어요?”
“아이고. 뭘 또 불편할 것까지야.”
“사람 너무 몰리고 그러면 그냥 구청에 알리세요.”
“에잉. 그래도 좋다고 찾아 온 사람들인데 그러면 쓰나.”
고향 집은 이미 알려졌으니 찾아오는 건 쉬웠다.
어떻게든 한 번 만나보겠다고 우르르 몰려와서 동네 헤집어 놓는 무리가 상당했다.
잘 타일러보고 SNS에도 주의를 요했지만 어디 뭐 그런 걸 다 따르겠는가.
진호는 그 점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우리 진호 총각 팬들이 참 착해. 저번에 군청 통해서 농기구랑 사서 보내 줬다고. 최근에는 동네 길도 닦아준다고 하더라.”
“하하. 그랬어요? 무슨 선물을 한다고 하더니.”
“참, 마음 고운 친구들이야. 진호 총각이 고맙다고 말 좀 전해 줘.”
“네. 꼭 그럴게요.”
그래도 생각 있는 팬들은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한푼 두푼 모아서 기부를 하거나 진호에게 도움 될 행동을 하곤 했다.
팬 카페에서는 ‘요양 중인 진호님을 위해서 고향에 내려가는 건 삼가도록 합시다.’라는 공지가 올라왔을 정도다.
“그럼 전 산책하고 들어갈게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려. 산에 뱀 나오니까 조심하고.”
“네.”
일과처럼 동네를 돌고나면 올라가는 산이 있다.
말이 산이지 그냥 야트막한 언덕이다.
동네가 내려다보이고 산바람이 좋아서 고향으로 내려온 뒤로는 빠짐없이 찾고 있다.
“아. 아아. 그럼 다시 해 보자고.”
진호는 익숙한 듯 자리를 잡았다.
노송 위에 줄 단 나무판을 달고 그 위에 얼굴을 붙였다.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을 때, 상대역이 되어 준 아영이의 얼굴이다.
조자룡의 전생으로 그 앞에 섰었다.
“조운. 조운.”
그 날의 기억이라면 더없이 뚜렷하다.
놀란 듯 바라보던 아영의 표정.
두 부인을 구하기 위해 나선 조운의 감정.
주군을 위한 충성심에 대한 토로.
“충성이란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아는 것과 행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마치 겉도는 것처럼 기억하던 감정이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끄응. 다시 해 보자.”
처음에는 이것도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조용히 해야 했다.
그나마 지금은 익숙해져서 한 마디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는 않는다.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두드리고 다시 시도할 뿐이다.
“충성이란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고 또 하고.
힘이 사라졌으면 다른 것으로 채울 뿐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진호는 이곳에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못할 만큼 엉망인 연기를 시도했다.
부끄러움과 어색함조차 새롭다.
이건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밟아왔어야 할 길.
진호는 먼 길을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하자. 다시······”
힘은 버려도 꿈은 버리지 않았으니까.
그저 얻은 것이 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