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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전생 배우-141화 (141/178)

Chapter63. 선택을 하다(1)

삑. 삑.

의료기계의 단조로운 신호음이 병실을 맴돌았다.

말소리, 숨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울리는 신호음이 전부였을 뿐이다.

“······”

침대 위에 누워있는 건 창백한 얼굴의 진호.

곁을 지키는 건 퀭 한 눈의 은서였다.

그녀는 연락을 받자마자 새벽 비행기로 날아와 자리를 지켰다.

마른 눈물 자국과 번진 화장이 흉했지만 닦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였다가는 눈앞의 사람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조금 쉬라니까.”

이내, 문이 열리고 지친 얼굴의 송학이 들어왔다.

병원까지 함께 건너온 뒤 수술을 모두 지켜본 그였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마음은 넝마였다.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마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남아나지 못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의사 선생님이 뭐래요?”

“고비는 넘겼데. 다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터라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거야.”

“어째서요? 수술도 잘 끝났고 출혈도 많지 않았다는데 왜 의식이 안 돌아와요?”

“모르겠다. 의사들도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해. 무언가 뇌에 과부하가 거렸다나. 내 영어가 짧아서 이해를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병원 의사들도 난색을 표했다.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영화배우.

그것도 수많은 인명을 살린 슈퍼 히어로다.

잘못 되면 여파가 어떤지는 그들이 더 잘 안다.

그렇기에 최고의 최고만 모아서 온 거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이해가 안 돼요. 오빠는 그냥 배우잖아요. 운동 많이 하고 스턴트를 배운다고 하지만 그냥 배우에요. 왜 테러범과 맞서서 싸운 거죠?”

“······아이가 있었다고 하더라. 테러범이 아이를 두고 총을 쏘려고 하자 진호가 못 참고 나섰데.”

“왜. 왜 그래야 하는데요. 진호 오빠가 뭔데? 배우면 그냥 연기만 하면 되잖아요. 대체 뭣 때문에 나서는 건데요? 네?”

“은서야······”

“대체 왜! 자기가 무슨 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왜 그러는 건데!!”

고함을 쏟아내던 은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살갗이 찢어져 피가 새어 나오고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쏟아낸 말은 금세 돌아와 가슴을 후벼 팠다.

송학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곁에서 다독일 뿐이었다.

“······어서 일어나라 진호야.”

비행기로 이동 중인 진호의 부모님.

마찬가지로 이동 중인 최현석 대표, 선아, 세미, 루카, 빌 엘빈 등······

걱정에 달려오는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어디 가까운 사람들 뿐만일까.

병원 밖, 진호의 상태를 알고 찾아온 팬들이 수천 단위로 운집해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랐다.

어서 일어나라고.

#

진호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뿌연 안개 같은 것이 바닥에 깔려 있고 주변은 명암이 엇갈린 기묘한 형태였다.

꿈일까.

가장 먼저 생각한 건 그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앰뷸런스 안.

힘이 다해서 고꾸라진 뒤 꿈을 꾸는 거라면 앞뒤는 맞아 떨어졌다.

“아니. 꿈은 아니다.”

“······어?”

답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진호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다.

노인? 어린아이? 여자? 학생?

무어라 답하기 어려운 기묘한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보고 있어도 확인할 수 없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기묘한 존재였다.

“이리 빨리 올 줄이야.”

“절 아십니까?”

“알다마다. 항상 지켜보고 있지 않느냐.”

“저를 말입니까?”

웃는다.

그런 느낌이었다.

“아주 오래전, 네가 우리를 본 것처럼 우리도 너를 보았다. 그 이후로 평생을 함께 했으니 남이라고는 말 할 수 없겠지.”

“아주 오래전? 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리석은 거냐, 아니면 믿기 싫은 거냐. 전생이라 콕 집어 말해야 이해를 하겠느냐?”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진호가 살짝 벌어지는 입을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그럴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다만, 쉬이 인정하지 못했을 뿐.

“전 죽은 겁니까?”

“글쎄. 그렇다고 말하면 수긍 할 셈이냐?”

“······아뇨.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요.”

“그래. 솔직하구나. 죽음을 의연하게 바라보는 건 먼 훗날이 되어도 충분하겠지.”

불가해의 존재는 뒷짐을 진 채 끄덕였다.

마치 아이를 보는 어른의 시선과 같았다.

진호는 그 시선이 불쾌하지 않았다.

되레 편안함을 느꼈다.

“이곳은 삶과 죽음의 사이. 경계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구나.”

“제가 왜 이곳에 와 있는 겁니까?”

“그야, 힘을 과도하게 쓰지 않았더냐. 아무리 눈이 뜨였다고는 하나 넌 고작 인간에 불과하다. 견디지 못하는 거지.”

“······그 힘. 그게 제 몸을 망가뜨린 겁니까?”

“한 사람이 하나를 누리는 것이 삶이다. 너는 몇 개의 삶을 살았느냐? 그것을 단락조차 없이 과용하니 견딜 수 있을 리 없지.”

진호는 납득했다.

전생을 보며 기이한 일들을 많이 저질러 왔지만 그 순간에 보인 능력은 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수십, 수백의 전생을 한 번에 사용하는 것.

몸이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습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쉬운 것과 어려운 것입니까?”

“아니. 둘 다 어려운 것이다.”

불가해의 존재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공간이 휘며 사람이 지나갈 만 한 통로 두 개가 만들어졌다.

“하나는 힘을 얻되 시간을 버리는 길이다. 넘치는 힘을 몸이 견딜 때 까지 이곳에서 인내하는 것이지.”

“이곳에서 말입니까? 그럼 현실의 제 몸은······”

“몸은 살아있되 정신은 없는 상태로 남아 있겠지.”

“식물이간이군요.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글쎄.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장담 할 수 없다.”

“그렇게나 긴 겁니까?”

“네가 누린 삶의 해를 헤아려 보거라.”

수백. 아니, 수천 년.

그 길고 긴 시간과 비교하면 짧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10년이나 20년을 짧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잃는 것이 시간이라면 너무 큰 대가였다.

“다른 하나는 무엇입니까?”

“시간을 얻되 힘을 버리는 길이다. 육신을 괴롭히는 것이 힘이니 그걸 버리고 깨어나면 되겠지.”

“그 말씀은······제가 더 이상 전생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겁니까?”

“그렇다.”

진호가 입술을 달싹였다.

직접 귀로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아주 어릴 적.

힘을 저주하던 시기를 제외하면 한 번도 사라질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숨 쉬듯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근데 그 힘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럼 그 뒤는?

힘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배우 진호가 이룩한 일에 힘을 제외하면 과연 남는 것이 있을까?

손끝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느껴 본 적 없는 두려움이었다.

“선택은 네 것이다.”

불가해의 존재가 물러나고 열린 길 두가지만 남았다.

진호는 말없이 한참을 고민하다 한 가지를 물었다.

선택을 위해 필요한 질문이었다.

“······잠깐. 잠깐이라도 제 주변을 볼 수는 없습니까?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아주 잠깐이다.”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존재의 끄덕임과 함께 바닥의 안개가 걷혔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사이가 갈린 듯 조용히 누운 자신의 몸과 그 주변에 앉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부모님, 은서, 송학, 최현석, 세미······

그 동안 인연을 맺고 알아왔던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선택을 내렸느냐?”

“······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눈으로 보니 확신이 섰다.

열린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걸었다.

#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진호는 눈을 떴다.

희미한 조명 아래로 격자로 나뉜 천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병원인가.’

코끝을 스치는 병원 특유의 냄새도 있었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돌렸다.

“······”

침대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는 은서가 보였다.

제대로 잠도 못 잔 듯 얼굴이 야위어 있었다.

안쓰럽고 미안했다.

손을 뻗어 볼에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 주었다.

“으, 으응······”

손길에 은서가 깨어났다.

잠긴 목소리로 앓는 소리를 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멈췄다.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어야 할 사람이 깨어나 있는 것이다.

꿈인가 싶어서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눈을 뜬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였다.

말라붙은 입술을 떼고 손을 뻗었다.

역시나 꿈은 아니었다.

“오······빠? 오빠 맞아?”

“응. 맞아.”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아니야. 꿈이라면 이렇게 만질 수 없잖아.”

진호가 은서의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전해지는 온기에 은서가 무너지듯 침대 위로 쓰러졌다.

몸이 포개져 한 곳으로 뒤엉켰다.

“오빠! 오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흐윽······윽! 다시는 못 일어나는 줄 알고······”

흐느낌과 고함의 중간 어딘가.

소리치고 울고 등을 안고 얼굴을 매만지고.

은서는 정신없이 진호의 생환을 탐닉했다.

놓치면 달아나 버릴 새처럼 꼭 안고 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기다리게 하겠어. 돌아와야지.”

“으아아앙!”

그리고 아이 같은 울음까지.

소란에 놀란 간호사들이 들이닥칠 때 까지 은서는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전처럼 눈물이 쓰진 않았다.

지금은 기뻐서 우는 것이었으니까.

#

진호가 깨어난 소식은 금세 전해졌다.

호텔에서 쉬고 있던 부모님들이 찾아오고 지인들도 하나 둘 얼굴을 비추었다.

누구는 화를 내고 누구는 핀잔주고 누구는 울었다.

하지만 표현만 다를 뿐 모두 진호의 생환을 기뻐해 주었다.

“약속해. 다시는 그런 짓 안 한다고.”

“그런 짓?”

“괜한 영웅놀이 말이야! 오빠가 아무리 뛰어나고 그래도 보통 사람이라고. 다음번에 그런 일이 또 있으면 가만히 있어. 그런 건 전문가한테 맡기라고.”

“아. 하하. 그래야겠지.”

“웃지 말고! 나 심각하니까 약속해 줘.”

“알았어. 약속할게. 다음에는 경찰이 올 때 까지 가만히 있는 걸로.”

그때가 되면 또 모르지만 지금은 약속을 해야 했다.

손가락을 걸고 손바닥으로 긁는 시늉까지 했다.

그것도 모자라 어설프게 각서까지 썼다.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래도 또 모르잖아.”

“이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거든.”

“응?”

“나······”

쿵쿵.

무언가 말을 이어가려던 차에 누간가 문을 두드렸다.

개인실, 지정인 제외 면회 사절이기 때문에 찾아 올 사람은 소수였다.

“진호야 잠깐 괜찮을까?”

“아. 대표님. 무슨 일 있어요?”

“그게······드림에서 사람이 왔다. 네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다고.”

“드라마 말이군요.”

촬영 기간 중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진호가 은서와 최현석을 번갈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오래된 서랍 속 일기장처럼 쉬이 열리지 않았다.

“나. 한 가지 할 말이 있어요.”

그러다 간신히 첫 장을 손끝으로 잡았다.

심장이 뛰고 목 안이 뜨거웠다.

그것이 선택의 결과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픈 건 변함이 없었다.

후—

짧게 숨을 내쉬고 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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