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40화 (140/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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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 메이커(2)

    기사 내용은 내가 예상하던 것과 꽤나 달라져 있었다.

    ‘20대 대통령 선거 이수원 당선, 총 득표 수 이수원 38.8%, 주성원 36.1%, 곽지원 21.2%.’

    대통령이 달라져 있었다. 주성원이 아니라, 이수원으로.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수원은 야당에서 한상훈과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는 사람으로, 62세의 3선 정치인이었다. 지역구는 충청남도 공주. 전형적인 지방 토호로 아버지도 공주에서 국회의원을 하다가 본인도 그렇게 똑같은 자리에서 3선을 한 인물이었다. 검사 출신인 한상훈과 달리, 뼛속부터 정치인이라는 평가. 나는 턱에 손을 기댄 채로 생각했다.

    ‘음... 나비효과다 이거로군. 이 사람이... 주성원 시장을 누른다...’

    참 아이러니컬하다. 본래는 한상훈도 못 이겼던 사람이, 대선에 나와서는 주성원까지 꺾어버린다.

    ‘인간 상성이라도 있는 건가?’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들이 서로 가위바위보처럼 물리고 물리는 것처럼, 현실세계에도 누군 누구한테 약한 대신, 누구한테 강하고.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 주성원 시장은 점잖고 이미지 좋은 사람. 싸움닭 이미지인 한상훈과 대결했을 때, 왠지 허허 웃기만 해도 득점을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수원을 상대로 했을 때는 조금 상성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수원은 그야말로 ‘정치질’에 능한 사람으로 조금 뻣뻣한 한상훈과는 달랐다. 점잖은 주성원 시장을 진흙탕으로 끌어들일 힘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주성원 시장은 그런 면에서 약간 약한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서울시장 선거 때도 미투에 당해서 곤란을 겪었던 것이 있었으니까.

    ‘음... 이거 내가 손을 쓰면 대통령이 바뀌어버리는군... 하지만 차라리 한상훈이 나았으면 나았지. 이수원은 절대 대통령 감이 아닌데... 잘 됐다 원래 안 그래도 손봐주려고 했는데... 이수원 먼저 보내버려야겠군.’

    이수원은 몇 년간 본인도, 자신의 아들도 병역비리 논란에 휘말려 있었다. 크로우를 시켜서 알아본 결과. 그는 본인도, 자신의 아들도 의사를 매수해서 병역을 회피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인은 70년대에 아버지가 주인인 건물 의사에게 간단하게 피부병 진단 하나로 넘겨버렸다. 요새는 어림도 없는 방법인데, 그 땐 그것만으로도 넘길 수 있었던 듯하다.

    담당 의사는 70년대에도 50살을 넘긴 나이어서 이미 죽어버린 지 오래라서 다시 들춰낸다 한들 문제 삼기 어려웠지만, 아들은 달랐다. 아드님은 어디서 실족을 해서 우측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했는데 그게 거짓말이었다. 담당의에게 4억원, 간호사한테 1억원 준 다음 다른 사람 엑스레이 사진 갖다 붙이고, 수술 동영상도 바꿔치기 해서 그걸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이건 나도 까마귀 안대로 모두 다 실시간으로 봐 놓았다.

    ‘우리 아들이 해외에서 공부 많이 하고 돌아왔는데 군대 가서 2년 썩게 되는 거 너무 아깝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의원님. 이게 하여간 병역 의무라는 게 차등이 있어야지. 하버드 나온 사람이랑 전문대도 못나온 놈들이랑 같이 붙여놓는 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하 어쨌든 그래서 좀 잘 좀 부탁드립니다. 닥터 김.’

    ‘걱정 마십시오. 의원님. 제가 자알 해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이번 일만 잘 넘기면 뭐, 우리 동네에서는 닥터 김 병원에 환자 없을 일은 없을 겁니다.’

    ‘아유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다 우러러 나오는 마음에 해드리는 건데요.’

    크로우의 조사서에는 그걸 바뀌 치기한 병원, 의사, 자신의 사진을 바꿔치기 당한 진짜 환자. 목록까지 모두 실려 있었다. 이것도 터트리면, 물론 이수원도 낙선이다. 병역 비리는, 나같이 평범하게 군대에서 2년 쌩으로 구르고 나온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사안이니까. 나는 바로 이원재 대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띠리’

    이번엔 통화음이 네 번 즈음 울릴 때, 그가 전화를 받았다.

    “아아 대표님.”

    “네 대표님.”

    “메일은 받아보셨습니까?”

    “네. 받는 즉시, 바로 투고 쪽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이제 대표님 문서는 누군가에게 투고된 것으로 돼서, 이번 주 중으로 기사가 나갈 겁니다.”

    “벌써요?”

    “네. 대표님이 시키신 일이니, 지체 없이 바로 처리했습니다.”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아니 이럴 땐 쓸데없이 빠르네.’

    “왜 문제 있으신가요? 투고 하신 것을 그냥 묵살해버리는 것으로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만...”

    “아니요. 아닙니다. 그냥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제가 보낸 메일 내용 누군가는 봤을 것 아닙니까?”

    “네... 제가 쏜 거라 정치부 쪽 사람들은 이미 다...”

    크로우의 정보는 그걸 본 사람은 모두 믿게 된다. 너무 정확해서.

    “그럼. 억지로 막지 말고. 일단... 그냥 그렇게 진행시켜주세요.”

    나는 일단 원래대로 한상훈부터 보내기로 했다. 이수원도 당장 보낼 수 있지만 정치적 이슈가 너무 한 번에 터져 나오면, 대중들 시선이 분산될 수 있으니까.

    “에... 그럼... 일단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표님.”

    이원재 이사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하긴, 차기 대권 주자를 한 명 보내는 게 본인도 부담스럽긴 할 것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이원재 대표님.”

    “네?”

    “이번일 끝나면, 저랑 대표님은 아마 차기 대통령을 같은 배에 태우게 될 겁니다. 그럼 아마 대원일보 내에서 대표님 지위도 올라가게 되겠죠? 저 믿고 진행하세요.”

    이원재 대표는 내 말을 들더니 그 떨리던 목소리가 조금은 잦아들었다.

    “아 네 대표님.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이원재와의 통화를 마친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런 다음 포털 창에 이수원을 검색해보았다. 60대 아저씨가 능글맞게 웃고 있다.

    ‘이 아저씨가 차기 대통령이라고? 말도 안 되지.’

    한상훈 다음에는 이수원이다. 나는 그렇게 못을 박아놓았다.

    *

    그날 저녁. 대원일보에서는 내가 기획한 한상훈 의원 저격기사가 떴다.

    ‘한상훈 의원 비서들과의 불륜.’

    크로우가 보내준 야설에 비하면 많이 수위가 내려간 기사였지만. 그래도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충분했다.

    ‘와 여의도에서? 대박’

    ‘한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떡치려고 국회의원 하냐?’

    ‘의원님 실망이네요. 여성인권 운운할 때는 언제고... 이게 위압에 의한 성폭력 아닌가요.’

    한상훈 의원은

    ‘나는 그런 적 없습니다.’

    식으로 발뺌을 뺐다. 하지만, 워낙에 기사 내용이 디테일해서, 그걸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가는데...’

    ‘이런 거 기사로 안 나와도 알 거 같은데 한상훈 저 아저씨 딱 바람 필 거 같은 관상이구만’

    ‘아니 그냥 당당하게 말해. 나 비서랑 했다. 하고. 검사 시절에 룸 공짜로 다니던 거 다 아는 데 뭐.’

    이정도면 됐다. 애초에 이건 한상훈 의원에 신뢰도를 떨어트리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클린턴, 르윈스키 사건 때도 볼 수 있지만, 섹스스캔들은 화제를 불러오는 데는 좋지만, 치명타를 입히기는 조금 약했다. 진짜는 구순길 리스트다.

    ‘좋아 그러면 한상훈 의원은 그렇게 보내고... 이수원은 한 달 뒤 즈음 그 때 터트리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오후 8시 55분에 온 메일에다가 한 번 더 인물검색을 해보았다. 정정보도가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데, 진짜였다.

    ‘20대 대통령 이수원 당선. 주성원 서울시장과 2%차이. 그 차이를 가른 그 배경은?’

    12달 뒤에는 그런 기사가 떠 있었다.

    ‘진짜 어이없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그런데 기사 내용이 조금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표를 가른 것 중에는 다른 요소도 컸지만, 아무래도 대선 투표 한 달 전 불거진 주성원 시장의 혼외자식 논란이 주성원 시장 지지자들을 이탈시킨 것이 큰 것으로... 모범생 이미지의 주성원 시장에게 이수원 의원의 네거티브가 정확하게 먹혀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는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혼외자라고?”

    확실히 놀라운 이야기긴 하다. 그 올바르게 생겼던 주성원 시장에게 혼외자식이 있다니. 확실히 지금 보면 40%가 넘었던 주성원 시장의 득표율이 조금 낮아져 있었다.

    ‘이수원시장은 이걸로 주성원 시장을 공략한 건가?’

    지난 번 주성원 시장 당선 기사 때는 ‘혼외자식 논란에도 불구하고...’그런 말이 없었는데, 생긴 것을 보면, 확실히 이수원 시장은 이쪽을 파본 듯하다. 나는 포털 사이트에 가 ‘주성원 혼외자’를 검색해보았다. 아예 그런 이야기가 하나도 나와 있지 않았다. 루머조차 없다. 하긴 그런게 있었다면, 내가 지난번에 크로우를 보내봤을 것이다.

    ‘진짠가? 아니면... 만들어진 가짜?’

    잘 모르겠다. 주성원 시장은 나랑 한 번 만난 적도 있고, 나는 꽤나 좋은 인상을 받았었지만, 그 속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일단 이것도 체크 해놓을까. 크로우가 쉬고 있으니...’

    진짜든, 가짜든, 확실히 알아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일단 크로우와의 만남을 잡고, 그 쪽에 조사를 보내놓았다.

    *

    그 주말 한상훈 의원의 성추문은 계속해서 화제가 되었다가, 예전 그의 비서 중 하나가 나서면서 일이 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이 ‘한상훈 의원은 일단 모든 비서에게 들이대고 본다.’는 식으로 폭로를 했기 때문이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정치권을 건드리면 뭔가가 하여간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오곤 한다. 한상훈 의원은 이번에도

    ‘나는 모르오.’

    그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려고 했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다. 나는 여기에서 ‘구순길 리스트’를 꺼내들었다. 내가 큐 사인을 보내자 대원일보는

    ‘구순길 리스트 재조명. 한상훈 의원 구순길에게 돈 받았다.’

    는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 법정에서 한상훈 의원이

    ‘저는 모릅니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한 것들을 모두 뒤엎는 내용으로. 한상훈 의원은 완전히 수세에 몰렸다. 이미 거짓말쟁이로 낙인이 찍혀 있는 와중에 구순길 리스트 사건까지 더해졌으니까. 박형준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정권이 넘어갈 것을 우려했던지, ‘이때다’하고 특검을 발동시켰다.

    한상훈은 나름 특검에서 벗어나보려 아둥바둥댔지만 재조사가 들어가면서 크로우의 보고서에 있던. 구순길 사장의 측근이었던 장 모 이사가 검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증언을 하는 바람에 결국 사건이 뒤집히고 말았다. 그래서, 그렇게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혔던 한상훈 의원은 내가 대원일보를 통해 기사를 쏜 지 딱 한 달 만에 정치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제 이것으로 인물 검색에 ‘한상훈’자리는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한상훈 의원은 가끔 ‘뇌물 받아 훅 간 정치인’에나 가끔 회자 될 것이다. 타산지석으로.

    *

    5월 말. 한상훈 의원의 정치적 사망이 확정될 즈음. 나는 바로 다음 카드를 꺼냈다. 다음은 재고 뭐고 할 것 없이. 다이렉트로 간다. 이수원 의원 저격. 이것은 딱히 두 대 때리지 않아도, 약한 고리가 이미 있었다. 4억 받은 담당의사 그리고 1억 받은 간호사들.

    이수원 의원이야 닳고 닳은 정치인이니까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 쳐도, 의사나 간호사들이 검사의 압박조사를 이겨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보고서에는 그들이 돈을 받은 경로까지 모두 쓰여 있었으니까. 이원재 대표는 이번에도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크로우의 보고서를 기사화 해주었다.

    ‘이수원 의원 아들. 십자인대 파열은 과연 본인의 것인가?’

    정확하게 아픈 곳만 때리는 기사였다. 이수원 의원도 일단은 부정하고 봤다. 한상훈처럼.

    ‘응답할 가치가 없는 논란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미래에서, 대통령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다.

    ‘주성원 48.2%, 소강섭 30.7 곽지원 21.2%.’

    한상훈도 없는데 아예 리스트에서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이 사람도 보나마나 며칠 내로 매장이다.

    ‘소강섭은 누구지? 그나저나... 주성원 시장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군.’

    예전보다 지지율이 높다. 이번에는 투표율이 50%에 육박한다. 내가 한상훈도 제거하고, 이수원도 제거해서, 남은 정적들이 다 없어져 버려서 그런 듯하다. 나비효과 때문에 한 번. 대통령이 됐다가, 못 될 뻔 했지만 어쨌든 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흐음... 그러면 이대로 가면 될까?’

    그런데 그러던 중, 크로우가 나를 찾아왔다. 한달 전 주성원 시장의 혼외자 조사 보고서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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