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시간 뒤-141화 (141/198)

# 141

흑막의 탄생

이수원 의원 건은 첫 뉴스기사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사건이 풀려버렸다. 검찰 조사 들어가기 전에, 지레 겁을 먹은 간호사가 먼저 인터뷰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그런 제의를 해오셨습니다. 돈 받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고. 이혼하고 애 아빠 없이 혼자 애 키우는 상황에서... 저한테는 1억원이란 돈이 너무 큰돈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간호사가 먼저 불어버리니 의사도 재빨리 자수를 해버렸다.

“이수원 의원님은 저희 지역에서는 너무 막강한 힘을 가지고 계서서,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도 생계가 있는 지라... 의료인으로서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고...”

‘아니 언제는 마음에서 우러러 나와서 하는 거라며...’

대화 내용을 다 아는데. 이제 와서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단다.

‘하여간 거짓말 하고는.’

어찌되었든 병역비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던 의사, 간호사. 두 명의 증인이 나온 탓에 이수원 의원은 바로 궁지에 몰렸다. 대한민국에는 평범하게 군대를 갔다 온 천만 명의 예비역 군인들이 있는 나라니까. 하버드 나와서 무슨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그 아들은 사업 하다말고 군대에 끌려갈 판이 되었다. 아들이 거짓으로 밝혀진 탓에, 이수원 본인도 병역 비리 의혹이 샘솟기 시작했다.

‘이수원 아들 병역 비리. 과연 아들만의 문제일까?’

내가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걸로 미래의 대진표는 완성되었다. 주성원 시장이 대통령이 되는, 본래의 시나리오대로. 대선주자 두 명을 잃게 된 야권에서는

‘정치탄압이다! 표적수사다!’

라는 식으로 반항을 하긴 했지만 물증이 다 나와 버린 탓에 그것도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야권에서 가장 앞장서서

‘정치탄압이다! 표적수사다!’

외치는 사람이 누군가 하니 바로 소강섭 의원이었다. 한상훈 제끼고, 이수원 제끼니까,

‘주성원 48.2%, 소강섭 30.7 곽지원 21.2%.’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섰던 세 번째 사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그를 보며 드는 내 생각은 이러했다.

‘그래 표적수사 맞아. 근데 너도 털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참 어떻게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란 다 똑같은지, 비리가 없으면 정치를 할 수가 없는 건지. 털면 뭔가 다 나왔다. 내가 크로우 한 세달 보내서 뭔가 안 나오는 사람이 있기나 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털어서 안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건 내가 마음속으로 밀던 주성원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혼외자식... 혼외자식이라...’

지난 번 미투 논란에 이어서 혼외자식 논란이다. 그는 왠지 여자들과 추문이 꽤 있다. 나는 예전 서울시청 가서 그를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그를 만나고 느꼈던 첫 인상은

‘무슨 트로트 가수처럼 잘생겼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정말 중년 치고 미남이었다. 게다가 경기도지사, 서울 시장까지 환상적인 정치 커리어를 보유했으니(차기 대통령까지 하게 된다.) 여자들이 달라붙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깨끗하고 가족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인터뷰 때나 그를 비춘 다큐멘터리 때나, 그는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 둘을 사랑하는 완벽한 가장으로 나오곤 했다. 그래서 주성원 시장하면, ‘조금 재미없지만 모범적인’ 그런 이미지가 굳어 있었다. 그리고 이미지라는 것은 참 무섭다. 예전에 한상훈 의원이 비서들과 여럿이서 즐긴 확실한 증거가 나왔는데 대중들은 그저.

‘아유 저 새끼 저거 그럴 줄 알았다.’

‘검사 때도 그랬으니까. 의원돼서도 그러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거 가지고 어느 누구 하나 정계은퇴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지자들 중에는 적반하장으로다가

‘영웅호색인데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지! 비서 셋이랑 해? 아주 호연지기구만 호연지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주성원 시장의 경우 이미지가 너무 깨끗해서 비서 한명 엉덩이라도 만졌다간 바로 십자가에 못이 박혀 군중들에게 둘러 싸일만 했다.

‘참 이미지가 좋은 게 득인지 실인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크로우가 결국 ‘주성원 시장 혼외자식’에 관한 보고서를 가져 왔다.

“말씀하셨던 문건입니다. 대표님.”

왠지 이번 보고서는 꺼내 보기가 싫다. 그건 첫째로 내가 주성원 시장을 인간적으로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고, 둘째로 이제 나는 정치인들 더러운 꼴을 보는데 조금 지쳤기 때문이다. 나는 크로우의 보고서 봉투를 받아 든 채로 잠시 생각했다.

‘여기서 진짜가 나와 버리면 또 어떻게 하지? 주성원 시장도 보내버려? 아니면... 주성원 시장은 봐 줄까? 하지만 다른 사람은 잡히는 대로 지옥 보내놓고? 그래 그건 형평성에 안 맞아... 그런데... 주성원 시장 날리면 다른 사람 튀어나오겠지 그 사람은 어떨까? 그 사람은 파 봐도 깨끗할까?’

하여간 이건 한도 끝도 없는 문제다.

‘웬만하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봉투 안의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걸 자세히 읽어 본 다음. 그 자리에서 소파에 앉아 30분 정도 고민하다가,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 장 부사장에게.

“네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네 부사장님 다름이 아니고요. 저 지난 번에 서울시장님한테 직통으로 연결할 수 있는 연줄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네 뭐 전에 증권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 정치 쪽으로 흘러가서 주성원 시장님 곁에 계신 분이 있으십니다. 주성원 시장님 개인 경제 과외선생님? 같은 분이십니다.”

“아아 그래요? 그럼 최측근 중 한명이라고 봐야겠네요?”

“그럴 수 있겠지요.”

“아아 그러면... 그 분한테 주성원 시장님한테 긴밀하게 메시지 하나만 전달해 달라 그래주세요.”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제가 미국에 가 계신 따님 때문에 시장님 한 번 뵙고 싶다고... 그렇게만 전해주세요.”

“아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장 부사장은 거기까지 말하고, 통화를 끊으려다가, 갑자기 내게 한마디를 더 했다.

“저 사장님.”

“네?”

“그런데 주성원 시장님... 자제분들은 아드님 두 분만 계시지 않던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암호라고 생각하시고. 그냥 그렇게 전해주세요. 따님 일 때문에 상담 좀 하고 싶다고.”

장 부사장은 이번에도 ‘사장님이 뭔가 이상한 일을 하나보다.’라고 생각하는지, 살짝 의아한 목소리를 하면서도, 답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

2020년 6월 모일. 나는 서울시청 근처의 한 전통찻집에서 주성원 시장을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시장님. 예전에 상 받을 때 이후로... 거의 일 년만인 것 같군요.”

주성원 시장은 일단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 인사를 받았다.

“네 한상훈 대표님. 그간 잘 지내셨지요?”

“네 물론입니다.”

“다행이시군요. 자 앉으시지요.”

그는 내게 자리는 권하고

“강 보좌관 자네도 나가서 차 한 잔 하고 있게.”

바로 옆에 있던 남자를 찻집에서 내보냈다. 나는 살짝 떨어져 있는 박 비서에게도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래서 결국 찻집 방 안에는 나와 주성원 시장만이 남게 되었다. 지금 보니 이 찻집은 딱 서울시장이 은밀한 만남을 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긴 원통형 구조인데 지금 자리 잡은 곳은 끝에 있어서 누구에게 보이기 힘든 자리로 대화 역시 훔쳐듣기가 불가능해보였다.

‘하긴 서울 시내 모든 사람이 얼굴을 아는 마당에... 이런 장소 하나 정도는 구비해둘만 하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주성원 시장이 내 잔에 주전자를 기울여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저... 제 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다고...”

“아네. 뭐... 듣는 사람도 없고, 장소도 좋고 하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내가 그렇게 말을 하니, 주성원 시장은 눈을 껌뻑거리며 내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최근에 한상훈 의원하고, 이수원 의원. 날려버린 거. 접니다.”

‘푸흡!’

그 말을 듣자마자, 잔에 입을 가져가던 주성원 시장은 평소 품위에 걸맞지 않게 차를 마시다가 뱉고 말았다. 나는 테이블 위의 티슈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주성원 시장은 그걸 받아 입 주변을 닦으며 말했다.

“아 예예. 조금 충격적인 소식이라...”

“네 뭐... 이해합니다. 그럼 계속해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주성원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자질이 되지 못되시는 분들 같아서 그랬습니다.”

“아... 네 그러셨습니까?”

주성원 시장은 잔뜩 긴장한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최근 한 달 간 쾌재를 부른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였다. 대통령이 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최대의 정적들이 제 스스로 넘어지고 엎어져서 정계 은퇴에 가까운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나는 이미 대통령이나 다를 바 없어. 내년 대선은 누워서 떡 먹기다. 4년 후 연임 플랜이나 준비해놔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앞에 자신의 정적들을 담가버렸단 사람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본인과 ‘딸 문제’ 때문에 만나자고 했다. 딱 봐도 머릿속이 복잡해 보인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게다가... 그 분들은 당선이 되도 제 이익에 반하시는 분들 같아서 그랬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아... 알아 들었습니다.”

그는 잔뜩 긴장해 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제 정보원 중 하나가 주성원 시장님 딸 문제를 가져왔더군요.”

나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거기에는 까무잡잡하면서도, 묘하게 주성원 시장이랑 닮은 여자 아이 하나가 있다.

“이름이 레이첼 링이더군요. 미국 내 중국계 가정에 입양된 것 같던데... 잘 되었습니다. 백인이나 흑인 가정에 입양된 것보다는 자연스러울 테니까요.”

주성원 시장은 그 사진을 든 채로 중얼거렸다.

“...이건 저도 처음 보는 사진이로군요...”

이쯤 되면 본인이 시인을 하는 수준이다. 뭐 이미 내가 그를 이곳으로 불러냈을 때, 어느 정도 짐작했겠지만. 그는 내게 말했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뭡니까? 대표님.”

나는 그에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도 복잡한 심경이에요. 대선 주자를 모두 털어봤는데, 모두 먼지가 나오더라.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그냥 정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사업가니 실리를 택하자. 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실리요?”

“네. 제 생각에... 주성원 시장님이라면 앞으로 대통령이 되셔도 저랑 이야기가 통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주성원 시장의 말투가 살짝 밝게 변한다.

“아... 그러셨습니까?”

그는 이제 완전히 내게 말을 높여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제게 원하시는 게 뭔지...?”

나는 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뭘 원한다... 그걸 직접 말하는 건 조금 온당치 않은 것 같군요. 뭐 예전에도 비선실세니 뭐니 그런 것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웠지 않았습니까? 저는 비선실세 같은 건 별로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잠자코 내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원하는 건... 단지... 시장님이 뉴스 하나 더 구독해주셨으면 좋겠다. 해서요.”

“뉴스요?”

“네. 인터넷 뉴스 중에 오라클 뉴스라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주성원 시장은 고개를 갸웃한다. 잘 모른단 눈치다.

“조금 작은 신문인데... 어쨌든 그 신문. 앞으로 잘 봐주세요. 일단 보도 기사부터. 사설까지요.”

“보도부터... 사설까지요.”

“네. 시장님은 앞으로. 정치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 오라클 뉴스 보시고 행동해주세요. 정치인이 언론 신경 쓰는 거야 뭐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일종의 소통이지요 소통.”

주성원 시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것이다. 본인도 모가지가 날라 갈 판이니까. 나는 여기서 생색을 조금 내놓았다.

“그러면 앞으로 구독 잘 부탁드립니다. 오라클 뉴스입니다. 그것 맞춰서 잘 해주시면. 대선 레이스까지 제가 잘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애초에 대통령이 될 사람이었는데. 내가 손을 써서 되는 것처럼 말이다. 주성원 시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상훈 대표.”

나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니요 제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

주성원 시장과 미팅 후에, 박 비서가 모는 차를 탄 채로 나는 오라클 뉴스 정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네. 가끔 제가 사설 같은 거 조금만 제 입맛대로 주물러 놓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물론이지요. 사장님.”

“아 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이해해주세요.”

“네 사장님.”

이것으로 나는 대한민국 차기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낼 창구를 마련해놓았다. 나는 오라클 뉴스에 기사를 내고, 차기 대통령은 그걸 본다. 시작도, 끝도 없는. 완벽한 청탁 방법이다.

‘좋아 이걸로 최소 5년. 길게는 9년 동안은 정치 쪽은 내 편이다.’

나는 차 뒷자리에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마침 박 비서가 모는 차는 반포대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밖으로 한강과 빌딩들이 보인다. 나는 그걸 보다가 손을 쥐었다가 펴보았다. 나는 깨달았다. 방금 전, 서울, 그걸 넘어선 대한민국. 그것을 쥐락펴락할 흑막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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