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킹 메이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알람이 울린다. 나는 눈을 뜨고 일어나, 샤워실에 가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머리를 말린 다음. 한참을 걸어 주방으로 왔다. 그런데 느닷없이 치즈케이크가 당긴다. 어제 아영이가 치킨 할 때 같이 해놓고 간 닭죽과 밑반찬 몇 가지가 있었지만, 나는 발걸음을 돌려 바로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출근할 옷 차려 입고, 집 안 쪽의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하강 버튼을 누르고 조금 기다리면,
‘띵~동’
곧 엘리베이터가 와서 선다. 나는 거기에 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1층? 아니면 30층?’
나는 금새 고민을 끝내고 1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쭉쭉 내려다가 1층에 선다. 문이 열리고, 나를 본 사원 몇몇이 인사를 한다.
“사...사장님 아... 안녕하십니까?”
놀라서 말을 더듬는 사람도 있고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침착하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손을 들어서
“네 안녕하세요.”
그들의 인사를 받은 다음 1층의 카페로 향했다. 보통 내가 직접 이렇게 내려오기보다는 비서를 보내서 사오게 시키는 편이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한 번 들러봤다. 장사 잘 되나 해서. 다행이도 카페는 아침부터 북적북적하다.
‘이정도면 뭐 장사 안 되서 공실날 일은 없겠군.’
주문을 받는 곳에는 줄이 서 있을 지경이다. 나는 말없이 그 뒤에 가서 섰다.
“들었어? 박 과장님 주택청약 넣은 게 됐대.”
“정말? 어디?”
“성수동. 주방에서만 살짝 한강 끄트머리 보이는데 프리미엄이 3억이 붙었대.”
“정말? 대박!”
“그래서 요즘에 별로 직원들도 안 갈구고 그러잖아.”
“그래? 그럼 잘 됐네?”
“근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져서 본인이 별로 열정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들도 힘 빠지고... 이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박 과장 누구지?’
우리 회사는 꽤나 커져서 과장급도 꽤 된다. 굳이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머 사장님.”
수다를 떨던 여직원 하나가 나를 보고 또 놀란다. 옆에 있던 여직원도 입을 가리며 물러난다.
“어머.”
본인들 회사 사장이 뒤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는 게 놀라워 했다. 나는 역시나 손을 들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그녀들은 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먼저 시키셔요. 사장님”
“아닙니다. 이제 두 분 차례인데요.”
둘은 뒤를 돌아본다. 그녀들 앞에는 사람이 없다. 그녀들은 내게 고개를 숙이고 가서 자기들 시키고 싶은 것을 시킨다. 내 차례. 내 앞에는 갓 고등학교 졸업 한 것 같은 앳된 아르바이트생이 있다. 그녀는 내가 이 빌딩의 주인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단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직원들이 내게 ‘사장님 사장님’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높은 사람이겠거니’하고 쳐다보고 있다. 나는
“치즈케이크 한 조각하고, 화이트초코모카 그란데 사이즈로 한 잔 주세요.”
“네”
주문을 마친 나는 잠시 카페에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머리를 잘 빗어 넘긴 잘생긴 남자 하나가 와서 인사를 한다.
“사장님. 해외투자부의 권혁진입니다. 지난번 신입사원 환영회 때 인사드렸었지요.”
“아 네 낯이 익군요. 회사는 적응할 만 해요?”
“네 사장님.”
그런데 그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향수 냄새 진한 여자 한 명이 내게 와서 인사를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장님. 국내실물투자부의 강수정입니다.”
“아 네...”
내게 줄지어서 인사를 해왔다. 덕분에 카페에는 줄이 두 개 생길 지경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평소 사장실에 틀어박혀서 뉴스 분석하고 주식 매매만 하는 바람에 내 얼굴도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직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렇게 가끔 얼굴을 비추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누가 본인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인지 한 번 즘 각인 시켜놔야 할 게 아닌가. 무수한 인사를 받으며 다시 엘리베이터 탄 나는 30층. 사장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사장님.”
두 비서가 언제나처럼 나를 반긴다. 둘 중 하나는 한 달 내로 나갈 거지만. 나는 서 비서에게 넌지시 물었다.
“서 비서 준비는 잘 되가?”
“네 사장님.”
나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어서 박 비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 비서.”
“네 사장님”
“너는 나가지 마라.”
내 말에 박 비서는 웃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 저는 서 비서만큼 많이 벌지 못해서. 못나갑니다. 사장님.”
박 비서도 서 비서랑 꽤나 친해져서 대충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 나한테 받은 월급으로 나를 따라서 주식을 사서 수십 억대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벌어도 나가지마. 네가 재보다도 더 부자가 되도 말이야. 쟤 창업해봐야 고생일걸. 집 나가봐야 집 귀한 줄 알지 안 그래?”
내 말에 박 비서는 껄껄 웃고, 서 비서는 살짝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 녀석의 어깨를 쳐 주며 말했다.
“농담이야 임마. 열심히 해봐라.”
그제야, 서 비서는 살짝 표정을 풀며 말한다.
“네 사장님.”
나는 그를 학창시절부터 보아왔다. 그는 충분히 나가서도 성공할 자질이다. 나는 그를 믿는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내가 그에게 투자 하기로 한 40억은 그 배로 돌아올 것이다.
‘뭐 안 되면 굳이 되게 만들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 힘도 있었다. 본인 모르게 말이다.
“그럼 수고들 하게.”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방금 산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들고 사장실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한 마디를 더 해다.
“아 맞아 서 비서.”
“네 사장님.”
“정 이사한테 연락 넣어서, 박 과장님들 중에 최근에 성수동 아파트 청약 된 분 있으시거든. 직접 가서 한 번 어깨 좀 주물러 달라 그래. 아파트 때문에 일하기 싫으시냐고.”
“아 네 사장님”
사장실 안으로 들어온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컴퓨터를 켰다. 지난 번 사장실에 있던 컴퓨터도 수백 만 원을 호가했지만. 새로 셋팅된 컴퓨터는 거의 5천만 원에 가까웠다. 모니터 3개에 슈퍼컴퓨터에 더 가까운 셋팅. 물론 이걸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하는 일이 다였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해놓았다. 이 컴퓨터로 오고 가는 정보들은 조 단위의 내용들이었으니까.
‘특히 오늘 들어올 정보도... 이걸 얼마짜리라고 해야 하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수백억씩 주고 팔아도 될 것이다.
‘특히 그 때 그 선상에 있던 사람들이라면...’
나는 작년에 있었던 ‘용들의 연회’를 떠올렸다. 북한강 위에서 비밀 파티를 하던 그 멤버들. 그들이라면 아마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 정책이 어떻게 될지 대단히 민감해 할 것이었다. 그것에 따라 그룹 전략을 수정 할 테니까.
‘뭐 어떻게 팔 수는 없으니까.. 별로 팔 마음도 없지만.’
나는 치즈케이크를 먹으면서 시간을 보았다. 8시 40분. 아직 15분 가량 남았다.
‘누가 되려나...’
나는 다시 한 번 조사 리스트를 꺼내들었다.
‘여당 – 주성원, 야당 – 한상훈, 이수원, 정경화 제2야당 – 곽지원, 안상진’
여기서 한상훈, 이수원, 안상진은 크로우에 의해서 하나씩 다 치명적인 약점을 잡아놓았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바로 보낼 수 있는 사람들. 만약에 이 사람들 중 누가 한 명이 당선이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머리를 날려버릴 것이다. 다 비리를 저지르고,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반대로 나와 안면이 있는 주성원 서울 시장을 비롯해서 정경화, 곽지원등은 좋지 않은 루머 하나씩은 있었지만(정치인 치고 그게 없다고 그것도 이상하다.) 크로우를 보낸 건수가 모두 진짜 결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는 생각했다.
‘될 수 있으면 주성원, 정경화, 곽지원 중 하나가 됐음 좋겠군. 내 손으로 대통령 갈 일 없게.’
솔직히 말하자면, 대통령을 내 손으로 갈아치우는 것은 약간 부담스럽다. 그 갈아치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하지 못하면, 나한테도 책임이 있으니까. 물론 비리에, 가식에 가득 찬 정치인은 목을 쳐야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본래대로 국민들이 뽑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8시 55분. 메일이 왔다. 나는 메일을 받자마자 12달 뒤에 가서, 인물검색에다가 가장 유력한 사람들 세 명을 써넣었다.
‘주성원, 한상훈, 곽지원.’
그리고 나온 뉴스를 보니. 바로 세 사람 이름이 다 들어 있는 뉴스가 떠버렸다.
‘주성원 40.7%득표율로 1위.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당선. 2위 한상훈 33.1% 3위 곽지원 20.1%’
나는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아아... 이렇게... 되는군...”
사실 내게는 주성원 시장의 당선보다도 한상훈 의원의 대선출마가 더 놀랍다. 같은 당의 이수원, 정경화도 나름 강력한 사람들인데. 그들을 물리치고 대선주자가 되다니. 역시 잠재력이 있는 정치인이긴 하다. 뒤로 구린 구석이 많았지만. 나는 이 결과를 두고 바로 해야할 행동을 생각했다.
‘주성원 시장님이랑은 이런저런 핑계 붙여서 더 친해져 놓고... 한상훈은 즉결 처분이다.’
한상훈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 50대 후반이었다. 한번 대선주자로 나왔다가 재수를 한다고 한들 이상한 것도 없다.
‘여기서 밟아놔야겠군. 완전히 재기하지 못하도록.’
그를 밟는 것은 시나리오를 다 짜놓았다. 시작은 여비서와의 불륜이다. 여의도 국회의원실에서 야동을 찍고 있었다는 것을 폭로시키면, 일차로 타격이 갈 것이다. 물론 한상훈 의원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저곳 가드를 쳐놓을 게 분명.
하지만 그 때, 구순길 리스트를 터트려서 한상훈을 완전히 몰락시킨다. 두 개가 합쳐지만, 그도 막기 힘들 것이다. 애초에 두 사건 다 ‘명백한’ 증거가 있어서 국민들 눈을 가리지 않는 한 빠져나가기 힘들지만 말이다.
‘좋아 그럼...’
나는 휴대폰을 들어서 초성을 찾았다. ‘ㅇㅇㅈ’다름 아닌 이제 한 상장사의 대표가 된 이원재다. 그는 지난 번 탁준기 사건 때 나를 도와주고, 내게서 투자를 받아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 띠리’
통화대기음이 두 번 정도 울릴 즈음. 그가 전화를 받는다.
“네 한상훈 대표님”
한 회사의 대표가 무슨 비서보다도 받는 속도가 빠르다. 물론 내 이름 보고서 놀라서 받았겠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 대표님 회사는 할 만 하십니까?”
“네 이제 자리 잡아서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제가... 한명, 정치인 한명, 묻어버리려고 하는데...”
“누구... 말씀이십니까?”
“한상훈 의원이요. 저와 동명이인.”
“아... 그 분이라면... 그런데 그 분 차기 대권주자 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원재 대표님한테 전화를 한 겁니다. 해주실 겁니까?”
그는 잠시 머뭇대더니, 내게 말했다.
“저...일단 소스 보내주십시오.”
나는 잠시 전화기를 들어서 그걸 쳐다보았다.
‘이 녀석이...’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말했다.
“하겠다 말겠다 이야기를 해주셔야 보내드리지요. 지금 저한테 간보시는 겁니까?”
내가 강하게 나가자 그는 바로 꼬리를 내린다.
“...아니요. 하겠습니다. 대표님. 제 메일로 소스 보내주십시오. 언제 써 드릴까요?”
“될 수 있으면 빨리.”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통화를 마친 나는 바로 준비했던 파일을 첨부해서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한상훈 의원에게 정치인으로서 완전 사망선고나 다를 바 없는 메일을. 그런데 메일을 보내고 나니, 다른 메일이와 있었다.
‘정정보도.’
나는 그걸 보고 생각했다.
‘아아... 그렇군. 대원일보가 여기서 그걸 터트려버리면 한상훈 의원은 대권주자도 못하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정보도를 읽어보았다.
‘정정보도 – 오늘 아침, 보내드렸던 ‘주성원 20대 대통령 당선’기사는 구독자의 개입에 의하며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나는 천천히 그걸 읽어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내용이 쓰여 있었다.
“에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