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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96화 (96/204)
  • 96화. 접근

    “소전이 연봉을 챙겨달라?”

    “역시 똑똑한 희승이 삼촌. 내가 이래서 삼촌을 좋아한다니까.”

    “챙겨는 줘야겠지만… 쉽지 않아.”

    뭐야? 한참 분위기 좋은데. 갑자기 뭐가 쉽지 않아?

    “삼촌! 올해 소전이 9천9백 받았어요. 신인상 받고 홈런 19개 치고 9천9백 받았다고요. 이거부터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옳거니 잘한다. 우리 루다

    “나도 알지. 나도 알아…….”

    루다의 공격을 받은 구단주 형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나지막이 말을 한다.

    이 틈을 놓치지 않는 루다. 비어 있는 구단주 형 술잔에 가득 술을 따르고는 육포를 집어 든다.

    “삼촌~ 쭉쭉쭉~ 한잔하고 올해는 조금만 신경 써줘요.”

    겁도 없이 루다의 술을 받아먹은 구단주 형이 루다가 주는 육포마저 입에 넣는다.

    뒷일은… 난 모르겠다.

    “루다야. 나야 많이 주고 싶지. 내가 다른 건 아껴도 랩터스에 들어가는 돈은 안 아낀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방금까지 아양을 떨던 얼굴은 어디 가고 표정이 싹 바뀌는 루다. 자기 앞의 빈 술잔에 가득 술을 따르고는 구단주 형을 노려보며 한 번에 털어 넣는다.

    “돈도 있는데 소전이 연봉을 후려치는 이유가 뭐예요?”

    기분 좋게 술을 한잔하다가 갑자기 몰아친 한기에 구단주 형이 정신을 확 차린다.

    “루다야. 구단 운영은 단장이 하는 거야. 단장이 일 년 페이롤 운영하는 걸 내가 간섭할 수가 없어.”

    “뭔 소리야, 그게!”

    또다시 술을 털어 넣는 루다, 저 술꾼……. 저러다 또 퍼지지.

    “조 단장이 내년 시즌 FA 지르면서 페이롤 총액 맞출 거야. 소전이 연봉도 FA 금액을 봐가면서…….”

    구단주 형이 말을 하다 멈춘다. 빈 잔을 들고 있는 구단주 형 잔에 루다가 넘쳐흐르도록 술을 따른다.

    “소전이 올해 2할 9푼에 홈런을 29개를 쳤어요. OPS가 0.89였고, WAR이 4.3이었어요.”

    구단주 형이 아까운 술이 손을 타고 흐르자 얼른 손을 빼면서 한 입에 털어 넣고는 반박을 시도한다.

    “도루는 23개를 했고, 삼진은 111개를 당했지. 그리고 4.3은 S-WAR고 K-WAR로 보면 3.9지.”

    전형적인 방구석 전문가. 나보다 내 기록을 더 잘 아는 듯한 두 사람이 죽일 듯이 노려본다.

    “그래서 얼마 줄 거예요?”

    “연봉 협상은 내가 아니고 단장이 하는 거라니까.”

    “알았어요. 그럼 나 말리지 마요. 올해는 순순히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날이 선 루다의 목소리에 진심을 느낀 구단주 형이 회유를 시도한다.

    “얼마를 받고 싶어서 그래?”

    “역대 최고 인상률이 450%죠? 4억5천 채워주세요.”

    얼씨구. 4억5천? 구단을 너무 무시하는데?

    “알지? 풀타임 3년 차까지는 연봉 조정 신청도 못하는 거?”

    “FA 때 얼굴 안 볼 생각이면 그렇게 하시고요.”

    네가 무슨 내 에이전트냐? 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어.

    “루다야. 그래 봐야 3할도 못 치고 30홈런도 못 쳤어. 올해 유격수 골든글러브도 소닉스 장준태하고 박빙인 거 내가 기자들 좀 구슬려서 간신히 받았다. 3년 차 4억5천은 내가 단장이어도 무리야.”

    뭐, 뭐야? 아직 발표도 안 된 골든글러브를 어떻게 벌써 알고 있어. 그리고 간신이라니? 기자들 매수라도 한 거야?

    “장준태! 올해 경기 몇 경기나 나왔다고요! 심지어 유격수 몇 경기나 나왔다고 골든글러브를 줘요? 기레기들 또 이름값만 보고 투표하려고 했어!”

    구단주 형과 이야기하다 또다시 술을 원샷으로 털어 넣는 루다. 이제 불안하다.

    “하여간. 내가 단장이어도 3억 정도가 한계고 조수아는 거기서 더 깎을 거야.”

    “삼촌! 정말 이럴 거예요!”

    “루다야……. 나 조수아 무서워.”

    무슨 돈 주고 직원 부리는 구단주가 단장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어. 에잇, 그럴 거면 XX 떼버려라. 아… 구단주 형 단장할 때 계란에 맞아서……. XX 깨졌지……. 괜히 미안하네.

    “삼촌. 정말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예요, 진짜? 삼촌이 안 도와주면 나 그냥 조수아 들이받을 거야!”

    말 한마디에 술을 한 잔씩 털어 넣는 루다. 보고 있기만 해도 불안하고 불안하다.

    “루다야. 내가 올해도 소전이 돈 더 주라고 예산도 줬어. 그래도 사치세 걸려서 안 된다는데 어쩌냐. 그래도 올해는 사치세 넘길 생각하고 있으니까 3억은 챙겨주지 않을까?”

    “챙겨주긴 뭘 챙겨줘요! 조수아에 여홍지 있으면 소전이 탈탈 털리기나 하지! 만렙 여우 같은 것들!”

    또다시 술을 털어 넣고는 길게 울부짖는 루다. 누가 만렙 여우인지 모르겠네.

    “저 루다야. 힘들 때 기회가 있는 법 아니겠냐?”

    “현민이 삼촌은 좀 빠지시죠. 삼촌은 이시윤 양키스 계약한다고 바쁜 거 아니었어요?”

    시애틀이냐, 양키스냐 고민한다고 하더만 양키스 가는 거였어……. KBO에서 양키스……. 듣기만 해도 겁나 멋있네.

    “그렇지. 역시 나 바쁜 거 알아봐 주는 건 우리 루다밖에 없어.”

    “그러니까 현민이 삼촌은 빠지시고요. 희승이 삼촌! 소전이 3억은 절대 안 돼요. 지금까지 홀대당한 게 얼만데, 올해는 후려치는 거 절대 안 돼요!”

    그렇지 잘한다. 우리 루다!

    구단주 형이 장고에 들어가는 사이 에이전트 형이 또다시 입을 놀린다.

    “루다야. 삼촌이 빅리그 관리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삼촌도 소전이한테 애정이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소전이 내 선수였어.”

    아… 그랬었지…….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나랑 계약했다가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해지하고. 그때 홍시 누나가 고생 많이 했는데…….

    “그건 또 뭔 소리예요? 저 멍청이가 무슨 삼촌 선수예요?”

    슬슬 발음이 뭉개지기 시작한 루다가 에이전트 형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면서 묻는다.

    “나랑 에이전트 계약까지 맺었는데 조수아가 훼방 놓아서 깨졌어. 삼촌도 그래서 아쉽다. 그 계약이 아직도 유지됐으면 연봉 더 받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

    뭐? 연봉을 더 받아준다고? 가만 보자. 그때 뭐 이상한 소송도 한다고 해서 내 연봉 더 깎이지 않았었나?

    “어떻게 할 건데요?”

    “어허. 탑 에이전트의 영업 비밀을 묻다니, 그건 실례야.”

    혀가 자꾸 힘을 잃어가는 루다가 에이전트 형과 자기 전에 술을 꾹꾹 눌러 담고는 원샷을 강요한다.

    오늘 내가 타깃이 아니라 감사합니다.

    “확실해요?”

    “이루다! 나 박현민이야. 내 손을 거쳐 간 선수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 루다야 이러면 삼촌이 속상해.”

    또다시 둘의 술잔을 가득 채우는 루다. 원샷을 한 지 얼마 지났다고 또다시 둘이 원샷을 한다.

    “4억 받을 수 있어요? 확실해요? 못 받으면 나 가만 안 있어요.”

    “나 박현민이라고! 빅리그에서는 보라스도 한 수 접는 박현민이라고! 내 자존심을 걸고 4억 받아주겠어.”

    “콜!”

    “콜!”

    “야, 너 손 내놔.”

    술 취한 두 사람이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내 손을 끌고 가더니 고추장에 손을 찍고는 휴지에 푹하고 지장을 찍는다.

    저, 저거……. 술버릇 못 고치면 큰일이다. 나랑 술만 먹으면 저 모양이네. 술 먹을 때마다 내가 따라다닐 수도 없고……. 몰라. 데리고 살 사람이 걱정하겠지.

    “야! 너 누나가 4억 만들어 준 거야!”

    이 말을 남기고 루다가 쓰러졌다. 내가 너 계속 술 따라서 먹을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형, 어쩌죠? 형!”

    루다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웃고 있던 에이전트 형도 승리의 막 잔을 들고는 바닥에 누웠고 그 꼴을 보던 구단주 형도 혀를 끌끌 차더니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게 뭐야! 내 집도 아닌데 이 이상한 조합으로 술을 먹다 죄다 뻗었어……. 난 뭘 해야 하냐고…….

    테이블에 뻗어 누운 루다를 소파에 대충 올려놓고 바닥에 퍼져있는 에이전트 형은 바로 눕히고 부엌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남들은 우승 파티한다고 신나서 웃고 떠들고 있을 텐데……. 나는 이게……. 여기서 뭐야…….

    루다 걱정을 하면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더니 루다가 사라지고 없다. 나도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마계에서 빠져나온다.

    아오… 이루다. 내 패딩도 가지고 갔어. 넌 다음에 보자. 가만 안 둔다.

    집에 가서 푹 쉬고 평소보다 엄청 늦게 훈련장에 다시 나왔다. 술을 먹든, 마녀에게 잡혀서 마계에 잡혀 있든, 매일매일 최소한의 루틴은 해줘야 한다.

    그래도 어제 나는 술을 안 먹었더니 좀 찌뿌드드해서 그렇지 몸 상태가 아주 썩 좋지는 않았다.

    아무도 없는 훈련장에서 가볍게 몸을 푼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조심 1년간 쌓였던 무게들을 덜어낸다.

    파티는 어제로 끝. 남들보다 재능이 부족한 나는 오늘부터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홀로 땀을 내다가 저녁을 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시간, 훈련장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온다.

    “소전아!”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다 떠난 내 동기 중 가장 친했던 수영이가 정장을 빼입고 나타나 내게 손을 흔든다.

    “수영아~ 너 멋있어졌다.”

    랩터스의 황금기에 신인으로 들어왔던 내 동기들. 사치세까지 맞고 1지명권까지 박탈당한 랩터스가 포텐만 보고 뽑았던 선수 중 살아남은 선수가 없다. 그나마 내가 이적하면서 들어왔으니 망정이지 중간에 1년이 통으로 날아갈 뻔했다.

    내가 이적해서 적응 못 하고 헤맬 때 내 옆에서 같이 운동하던 친구. 비록 2년 만에 팀에서 방출이 되고야 말았지만 착하고 성실했던 수영이를 오랜만에 보니 기쁘다.

    “수영아, 취직했어? 정장 입으니까 사람이 달리 보이네.”

    “어, 취직했어. 외국계 회사에 취직했어.”

    “오~ 이수영~ 솰라솰라 영어도 하는 거야? 넌 뭘 해도 될 줄 알았어.”

    “신입이다, 신입. 아무것도 몰라.”

    방출되고 근근이 안부나 묻던 수영이가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니 괜히 내가 성공한 것 같고 기특하고 복합적인 기분이 든다.

    “영어는 언제 배웠어? 무슨 회사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자 방언이 터져 나온다. 이래서 사람들이 친구를 만나나 보다. 확실히 마음 편한 사람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아, 그래서 무슨 회사라고?”

    “HM 코퍼레이션이라고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종합 서포팅 회사야.”

    “와, 이름만 들어도 있어 보인다. 이 자식 성공했네! 성공했어.”

    “성공은 네가 했지. 내가 영어 공부하면서도 너 경기하는 건 항상 챙겨본다.”

    “너도 같이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다. 나는 너 실력 쑥쑥 느는 거 보면서 빨리 잘 그만뒀다고 생각한다. 그때도 알았지만 난 죽었다 깨도 너처럼 재능이 없다.”

    재능……. 내가 재능있다는 소리를 친구한테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하다. 항상 타격에 소질이 없다느니 그렇게 비쩍 말라서 운동선수의 자질이 없다느니 하는 소리만 잔뜩 들었었는데, 언제부턴가 타고났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여태까지는 그게 인사치레하는 줄 알았는데……. 내 옆에서 같이 땀 흘리던 친구가 이야기해 주니 눈물이 핑 돈다.

    “연봉은 많이 받아?”

    눈물을 숨기기 위해 눈물 숨기는 데 가장 좋은 주제인 돈 이야기를 꺼냈다.

    “말도 마라. 이쪽도 1년 차는 정말 짜다. 그래도 우리 회사 교통비하고 숙박비는 다 지급해 주니까 그나마 살 만하다.”

    이놈 무슨 회사를 들어간 거야. 회사에서 교통비하고 숙박비 지급하는 건 당연한 거지.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수영이가 말을 이어붙인다.

    “우리 회사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출장이 많거든. 차는 렌터카 무제한으로 쓸 수 있고 숙소는 대한 호텔 잡아준다. 그것만 해도 일할 만해.”

    평범하고만. 렌터카랑 대한 호텔 잡아주는 게 어때서. 출장 보냈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그럼 이 동네 지나다가 들린 거야? 우리 시즌 끝나서 나 없으면 어쩌려고 왔어.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내가 널 모르냐? 1년에 쉬는 날이 하루도 없는데 오면 무조건 있겠지. 그리고 우리 사장님이 고객님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게 철칙이신 분이다. 그래서 너 없으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

    자, 잠깐. 중간부터 뭐가 잘못됐는데? 고객님? 나보고 고객님이라고 한 거 맞지? 느낌이 싸한데…….

    오랜 친구가 뜬금없이 찾아와 고객님이라고 부른다? 이거 이상하다.

    “너 혹시 나한테 할 말 있냐?”

    “흐흐흐. 고객님 앞으로 고객님을 맡게 된 이수영입니다. 계약서에 사인 좀 해주시죠.”

    뭐, 뭐야? 다단계냐? 보험이냐? 그것만 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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