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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95화 (95/204)
  • 95화. 또 다른 술자리

    이… 무슨……. 어디서 그딴 눈빛을 하고 나를 바라봐.

    내가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루다가 나를 확 잡아끌더니 클럽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아까 나오면서 추울까 봐 옷을 챙겨왔으니 다행이지, 밤바람도 찬데 그냥 나왔으면 어쩔 뻔했어….

    “아쒸. XX 춥네.”

    그러고 보니 나는 패딩을 입었지만 얘는 그냥 나왔네……. 날도 추운데 어깨를 다 드러내놓고… 춥겠다.

    “어디 가려고? 갈 거면 들어가서 얘기하고 나와야 돼.”

    갑자기 끌려 나와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루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뭐?”

    “뭐?”

    “뭐? 말을 해.”

    내가 물어도 말도 안 하고 고개만 까딱거리는 루다. 뭐? 뭐 하자고?

    “아, 이 둔한 XX. 패딩 내놓으라고. 나 얼어 죽는 거 보고 싶냐!”

    미, 미친……. 지금 기온이 얼만데 내 옷을 내놓으래.

    “지… 진짜?”

    “빨리 내놔. 추워.”

    반항을 해보려 했지만 아까 맞은 바디가 꿈틀하며 폭군의 명령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눈물을 머금고 패딩을 벗어 뒷골목 복서에게 넘긴다.

    XX XX 춥네….

    “가자.”

    “어딜?”

    “지금 택시 잡기도 힘들고 아직 지하철 안 끊겼다. 지하철 타자.”

    “야, 지하철역까지 5분은 걸어야 해!”

    “빨리 가자. 막차 끊겨.”

    추위에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내 팔을 꽉 잡은 깡패가 추운 밤거리를 끌고 간다. 평소엔 그렇게 가까웠던 지하철역이 오늘따라 더 멀기만 하다.

    착잡한 마음 한가득으로 끌려가는데 주변의 측은한 시선이 날아온다.

    내가 진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나이 먹고 옷도 뺏기고, 어딘지도 모르는 데로 끌려가고……. 슬프다.

    “자, 너 입어.”

    지하철을 타자 옷을 벗어 건네준다. 이거 진짜 해도 너무하지. 뺏어갈 땐 언제고 지하철 안은 따뜻하다고 돌려준다고? 진짜 인성하고는.

    마음 같아서는 바닥에 내팽개쳐 버리고 싶은데 그래도 내 옷인지라 버리지도 못하고 고이 받아 들었다.

    내 옷을 받아들고 고개를 들었더니 주변의 남자들이 나를 힐끗힐끗 바라본다. 이 XX들이 왜 나를 쳐다보지? 이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방향이 애매하게 이상하기에 시선을 예리하게 따라가 보니……. 저 XX들, 날 보는 게 아니라 내 옆에서 양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덥다며 손부채를 부치고 있는 여우에게 향한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는 심지어 땀난다고 교태를 부리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루다. XX. 저 관종 진짜…….

    덥다. 내가 더우니 패딩을 벗어 루다를 꽁꽁 싸맸다.

    “야! 왜!”

    “겨울이야. 추워, 입어.”

    “덥다고.”

    “여자가 추우면 안 돼. 덮고 있어.”

    옷을 입느니 벗느니로 티격태격하다 어느새 운동장역에 도착했다.

    “내려! 빨리 내려.”

    어딜 가길래 여기로 와. 여기 오면 경기장 말고는 갈 데가 없는데.

    사람도 별로 없는 지하철역을 나오니 찬바람이 확 느껴진다. 한국 시리즈… 누가 가을 야구라고 그랬어. 겨울이잖아! 겨울!

    얼어붙을 것 같은 팔을 비비면서 내 옷을 뺏어간 깡패에게 돌려달라고 외쳤다.

    “야! 덥다고 했지? 이제 다시 줘.”

    주인의 정당한 요청에 들은 척도 안 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깡패. 밤이 깊어져서 그런지 점점 더 추워진다.

    “야! 어디까지 가는데! 말이라도 해주고 가! 춥다고!”

    “춥긴 뭐가 추워! 잔소리 말고 따라와.”

    너는 내 옷 뺏어 입었으니까 안 춥지, 나는 춥다고!

    한참을 바들바들 떨면서 쫓아가는데도 계속 가는 루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야! 춥다고 어디까지가.”

    “그래? 우리 소전이 추워?”

    뭐, 뭐지? 내 손을 잡아끌고는 어딘지 모르는 문 앞에 밀어 넣은 루다가 몸을 반대로 돌려 나를 덮친다.

    땀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같이 섞인 오묘한 향을 풍기며 내가 별로 선호하지 않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

    점점 다가오는 얼굴……. 코끝이 내 턱 끝에 닿을 때쯤 내 다리가 살짝 풀리면서 내 키가 내려가자 루다의 빨간 입술이 달달한 술 냄새를 풍기며 미끄러지듯 내 입술 앞으로 다가선다.

    나도 모르게 질끈 감은 눈. 머릿속은 홍콩을 20번도 더 왕복하는 동안 내 입술이 나도 모르게 삐죽삐죽 튀어 나간다.

    - 누구세요?

    “삼촌, 루다요.”

    - 누구요?

    “루다! 이루다요! 빨리 문 열어줘요. 추워요!”

    - 누구? 루다? 네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춥다고요! 문 열어줘요.”

    - [email protected]%^#$%%$^#$%@#$.

    “문 좀 열어달라고요! 나 얼어 죽는 거 보고 싶어요? 아빠한테 이른다!”

    - 쿠당탕!

    세상과 격리돼서 앞으로 루다를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를 고민하는데 내 뒤에 벽이 무너져 내린다.

    내가 나쁜 생각을 해서 그런 건가……. 날 받치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고 나도 땅으로 떨어졌다.

    “뭐 하냐?”

    “아오, 아파…….”

    “무슨 운동선수가 이렇게 둔해. 문 열리는데 계속 기대고 있는 멍청이가 어딨어?”

    저, 저… 나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마녀 같은 것. 사람을 홀려놓고 또 구박이다.

    “너 방금 눈감고 입술 내밀고 뭐 하려고 그랬어?”

    뭐, 뭐하긴 아무것도 안… 안 했지.

    “너 술 냄새나서 눈감은 거야.”

    “진짜? 그런데 왜 우리 소전이 숨소리가 거칠어졌을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날 계속 갈구는 마녀. 언제가 내가 기필코 복수하고 말 거다.

    “여기가 어디야?”

    “내가 아는 남자 집.”

    하… 이것은 단 한 번도 정상적인 경우가 없어. 자기가 아는 남자네 집에 나를 왜 데리고 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알 수 없는 현관에서 벨을 누르자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도 잘 아는 사람이 서 있었다.

    “지금이 몇 신데 기집애가 싸돌아다녀!”

    “왜요? 여자는 돌아다니면 안 되고 얘 같은 모자란 남자는 돌아다녀도 돼요?”

    “뭐야? 김소전이잖아. 얘는 왜 데리고 다녀?”

    “요즘 제가 키우는 온달이에요. 멍청해서 키우는 재미가 있어요. 어? 현민이 삼촌도 있네. 삼촌 안녕~ 삼촌 바지 거꾸로 입었어요~”

    아까 세상이 무너졌을 때 하늘도 같이 무너졌어야 한다. 클럽 VVIP룸에서 주지육림을 즐기던 때가 1시간도 안 됐는데……. 여기서 저 아재들을 만났다. 저… 야구에 미친 아재들……. 저 아재들이랑 할 얘기는 야구 얘기랑 예술 영화 얘기밖에 없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거실로 향하는 루다. 그러더니 이 형들이 뭘 급하게 치웠는지 상판에 알 수 없는 물질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테이블을 물티슈를 쓱쓱 닦아낸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삼촌을 갈군다.

    “삼촌들 뭐 하고 있었어요?”

    “어? 뭐 하긴… 우리 뭐… 야구… 그래, 한국 시리즈 4차전 보고 있었지.”

    “야구만 봤어요? 또 뭐 했어요?”

    “뭐, 뭐하다니? 야구… 그래, 야구 복기하고 있었지.”

    “정말 복기만 했어요? 나 지금 모니터 켜?”

    “야! 왜 남의 컴퓨터를 켜려고 해!”

    “오늘 우리 아빠 급하게 미국 가느라고 파티 못 했다면서요. 우리 아빠가 올 때까지 파티는 못 하게 했고 둘이서 오늘은 즐겨야 했을 거고, 뭐 했어요? 빨리 얘기하지 못해요!”

    진짜 나중에 얘 누가 데려가려는지 그 사람이 안쓰럽다.

    “아니야! 우리 진짜 야구만 봤어. 한국 시리즈 복기하고 있었어! 진짜야. 믿어.”

    “진짜?”

    “진짜야. 이번 시즌 야구 동영상 돌려보면서 복기하고 있었어.”

    구단주 형과 구단주 친구인 에이전트 형의 눈빛이 떨리는 게 확실히 구라다. 이 사람들 진짜 연기엔 소질이 없네.

    “그래요. 루다가 착하니까 믿어주는 척해 줄게요.”

    남의 집에 와서 주인들 기선 제압을 해버린 루다가 자기 집인 양 냉장고에 가서 술을 꺼내고 팬트리에서 육포를 꺼내 비닐째로 가지고 온다.

    자기 집을 뺏긴 두 아저씨가 말은 못 하고 나한테 눈으로 욕을 하기 시작한다.

    형님들……. 저도 피해자예요. 저한테 그러지 마세요.

    순식간에 차려진 술상. 루다가 은근슬쩍 구단이 잘해서 우승했다는 식으로 밑밥을 깔기 시작하자 야구에는 진심인 아저씨 둘이 침을 튀기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다 내가 단장할 때 기틀을 다져놔서 그런 거야. 조수아는 그냥 차려진 밥상 떠먹는 거야.”

    “그렇지. 조수아가 한 게 뭐가 있어. 올해 봐봐. 내가 오스틴 뽑아줬잖아. 조수아가 오스틴 나이 많다고 싫다고 했었단 말이야. 이래서 단장은 경륜 있는 단장을 뽑아야 하는데 구단주가 멍청해서…….”

    “뭐? 거기서 구단주가 멍청하단 말이 왜 나와! 조수아가 야구를 몰라서 그렇지, 구단 관리는 잘해.”

    “그게 잘하는 거냐? 애들 패서 말 듣게 하는 거지.”

    랩터스 우승하는데 하등의 도움을 준 적이 없는 아재 둘이 서로가 자기 덕이라며 한참 동안 끝나지 않는 쌈박질을 하다 둘이 갑자기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넌 왜 왔냐?”

    빨리도 물어본다.

    “루다한테 끌려왔는데요.”

    “너 선수단 파티 안 갔어?”

    “갔지요.”

    “그런데 여길 왜 와?”

    “그걸 저도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얘한테 끌려왔어요.”

    “야! 랩터스 우승 파티는 마누라도 안 데려가는 파틴데! 너 얘랑 사귀냐?”

    “무,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하세요. 저 예쁜 여자 좋아합니다.”

    난 깜짝 놀라 부인을 하는데 내 뒤통수에서 불이 번쩍인다.

    “이게 또 까불어.”

    진짜 이걸 폭행으로 신고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좀 해보자.

    나한테 예고도 없이 폭력을 행사한 깡패가 뒤통수를 붙들고 아파하는 나는 안중에도 없이 지 얘기를 시작한다.

    “나 논문도 끝내고 친구들이랑 클럽에서 노는데 얘가 보이잖아요. 이 찐따 같은 놈이 수질 관리를 뚫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클럽에 왔길래 궁금해서 따라가 봤더니 선수들이랑 놀고 있더라고요.”

    찐따? 수질? 누가 누굴 평가하고 있어.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 학교 후배들하고 어학당 외국인 친구들 불러다 앉혀 놓고 얘 데리고 나왔어요. 명색이 우리나라 가장 괜찮은 클럽인데 이런 모자란 애가 있으면 나라 망신이잖아요.”

    나를 딱하게만 바라보는 형님들…… 그쵸? 형님들이 봐도 내 인생이 딱해 보이죠?

    “그래도 그건 좀 너무했네……. 랩터스가 야구 하는 이유가 우승하고 우승 파티하려고 야구하는 건데…….”

    “아… 그렇구나. 그래서 삼촌들이 랩터스 우승하면 우리 아빠 불러서 2박 3일씩 집에 안 보내고 그러는구나……. 혹시 내가 모르는 동생 생기면 꼭 알려줘요. 내가 잘 키울게요.”

    “야! 무, 무슨 그런 얘기를 해.”

    “서로 알 만한 사람들끼리 그러지 마요.”

    얼굴이 뻘게져서 어버버만 하는 형님들과 얼굴에 미동도 없이 술을 털어 넣으면서 육포를 씹는 루다…….

    괜히 끼어들었다간 가루가 될 듯하여 쥐 죽은 듯 가만히 숨만 쉬고 지켜본다.

    “큼, 큼……. 데리고 나온 건 데리고 나온 거고. 여긴 왜 왔어? 놀 거면 둘이 놀던가. 왜 여기 와서 우리 영화감상을 방해해?”

    “영화 감상? 아까는 야구 봤다면서요?”

    형님들의 헛기침이 많아진다. 형님들, 얘랑은 말 섞으면 안 된다니까요.

    “우, 우리한테는 야구가 영화고 영화가 야구야! 우리는 야구와 하나 된 사람들이라고”

    “아니, 뭐 그렇다고요. 누가 뭐라고 했나요? 아까 야구 봤다고 해서 그냥 물어본 거지.”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혼자 술을 털어 넣는 루다. 너도 참 대단하다.

    “그러니까 여기 왜 왔냐고.”

    빙그레 웃으면서 형님들 빈 잔에 술을 따르는 루다.

    “삼촌들 한 잔 받으시고……. 그렇지 쭉쭉 들이키시고… 그렇지……. 왜 오긴요. 루다가 삼촌들한테 할 말이 있으니까 왔지.”

    방금까지 얼굴 시뻘게져서 화를 낼 듯한 형님들이 루다가 따라주는 술 한 잔에 금세 얼굴이 누그러진다. 형님들… 그러니까 장가들을 못 가는 거예요. 어휴…….

    “무슨 할 말인데?”

    “나 우리 소전이 때문에 삼촌한테 부탁할 게 좀 있는데…….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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