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62화 (62/204)
  • 62화. 시즌 개막

    * * *

    봄에는 KBO 역사상 최강의 전력을 보여주는 랩터스가 시범 경기 8경기 동안 6승 2패를 찍어내며 시범 경기 1위 자리에 올랐다.

    세상 쓸데없는 게 시범 경기 1등이라지만 겨우내 야구만 기다렸던 랩터스 팬들이 이기는 경기를 보니 랩터스 뽕이 한껏 차올라 악플을 달기 시작한다.

    야구 팬 놈들은 절대 잘했다고 칭찬하거나 우쭈쭈 해주는 법이 없다.

    까고 또 까고 또 까고, 가열차게 까야 더 잘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진 놈들 때문에 리그 시작을 앞두고 랩터스 홍보팀의 머리가 아파진다.

    2027시즌을 앞두고 거행된 미디어 데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전력을 보강한 KBO 10팀 감독과 선수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이번 시즌 우승을 해보겠다며 도전장을 내민다.

    지난 시즌 1위의 자리에서 도도하게 내려다보는 랩터스. 아랫것들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한 필살기를 공개한다.

    “이번엔 지난 시즌 디펜딩 챔피언 랩터스를 만나보겠습니다. 랩터스의 김민중 감독님.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감독님이 발표해 주셔야겠죠. 이번 시즌 랩터스의 목표는 어디까지입니까?”

    다른 팀들의 타도 랩터스를 인내심으로 들어주고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랩터스의 감독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한다.

    “우승입니다.”

    다른 대답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아나운서가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얼굴을 하고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지난 시즌에도 우승까지 과정이 험난했습니다. 이번 시즌도 특별한 전력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요. 우승을 하기 위한 랩터스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영업 비밀을 밝히라는 아나운서의 요구에 별거 아니라는 듯 감독이 대답을 이어 나간다.

    “랩터스는 다른 거 없습니다. 그날그날 가장 잘하는 선수가 나와서 경기 잘하고 이기면 됩니다. 준비는 끝났고 선수들은 팬들 앞에서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감독의 대답에 아나운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랩터스의 이번 시즌 타선에 특이 사항이 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2번 타순에 신인 노경준 선수를 시험하겠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일까요? 지금까지 랩터스의 2번은 옆에 계신 라정안 선수의 자리였는데요. 교통 정리가 잘된 걸까요?”

    대놓고 어그로를 끌고 있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감독은 그저 웃음. 주장 라정안은 표정 관리하느라 얼굴을 씰룩거린다.

    “항상 얘기했듯이 제가 감독하고 있는 한 랩터스에 누구를 편애하고 누구를 홀대하고 그런 거 없습니다. 이것저것 조합해 보고 시범 경기 마지막 경기에 나온 라인업이 랩터스가 구축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라인업입니다. 그리고 라정안 선수가 3루순데 2번에 넣었더니 한 시즌에 홈런 10개에서 15개 정도만 치고 있어서 책임감을 가지고 홈런 좀 치라고 3번으로 옮겼습니다.”

    감독이 던져준 떡밥을 그냥 바라만 볼 리가 없는 아나운서가 주장 라정안을 물고 뜯기 시작한다.

    아나운서가 주장을 물고 뜯는 동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감독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파격적인 신인의 2번 기용과 주장의 3번 타순 변경으로 지난 시즌 히트 상품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구경할 만한 신상품들이 많으니 작년에 나온 상품은 벌써 인기가 없다. 사람들 관심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랩터스의 1번 타자가 조용히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완벽한 몸가짐으로 시즌 준비를 마친다.

    개막전. 시즌이 끝나고 나면 144 경기 중 그저 1경기일 뿐이지만 그 한 경기를 보기 위해 추운 겨울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마음이 한곳에 쏠린다.

    2시 낮 경기. 낮이지만 아직은 쌀쌀함이 있는 날씨에도 야구에 굶주렸던 환자들이 야구장으로 몰려든다.

    랩터스의 유니폼을 맞춰 입고 들어오는 가족, 표는 두 장을 가져오는데 큰 유니폼 한 장을 둘이 같이 입고 있는 연인들, 그리고 등짐 한가득 먹을걸 싸 오는 괴물들.

    너희는 야구를 보러오는 거냐, 먹으러 오는 거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켓 응원.

    XX. 저게 뭐야.

    * * *

    개막전 관객들이 입장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는데 구단주가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묻는다.

    “조수아! 저거 뭐야?”

    “바빠! 끊어요!”

    “뭐냐고!”

    “보면 몰라요? 1인 시위지?”

    “끌어내야지.”

    “홍지 갔어요.”

    “거기에 홍지를 왜 보내! 경호팀 보내서 끌어내라고! 뭐 해!”

    “요즘이 어떤 시긴데 함부로 끌어내요? 오늘 지상파 중계하는 거 몰라요? 파악하고 있으니까 기다려요. 파악되면 알려줄게. 아니, 내가 알아서 할 텐데 왜 자꾸 전화질이에요! 바쁘니까 끊어!”

    끊긴 전화에 대고 소리를 지르던 구단주가 급한 마음에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경기 시간은 착착 다가온다.

    * * *

    경기 전 훈련도 끝나고 팀 미팅도 끝났다. 출격 준비 완료. 락커에서 로또 맞아 신인으로 개막전 선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멍청이와 상대 투수에 대해 토론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글러브에 손목이 꺾여서 들어갔다가 풀리거든. 그런데 안 풀릴 때가 있어. 그거 포크야. 그때는 치지 마.”

    “치지 마요?”

    “어. 얘가 포크볼을 존안에 못 던져. 나중에 공 60개 넘어가면서 악력이 풀려서 공 떠다닐 때 아니면 항상 존 낮은 쪽에 낮은 쪽으로 떨어져. 가끔 심판 중에 존이 낮은 심판 있거든. 그럴 때 아니면 무조건 볼이야. 그런데 오른 주심은 낮은 쪽에 후한 심판이 아니니까 치지 마. 칠 필요가 없어.”

    “그럼 뭐 쳐요?”

    “직구 쳐야지. 던지는 게 직구, 슬라이더, 포크볼인데. 슬라이더가 횡으로 도망가는 슬라이더야. 거기다 슬라이더 던질 때 직구보다 살짝 퍼져서 나오거든. 딱 보면 알아. 절대 카운트 잡는 데 쓰지 않고 도망갈 때 쓸 거니까 그것도 반응해 줄 필요가 없어.”

    “그러니까 팔목 보고 팔 나오는 각도 보고 직구만 노려 치면 돼요?”

    “그렇지. 어디 가서 떠들지 마라. 내 영업 비밀이다.”

    “네, 형. 엘리펀트 선발 투수 올해 바뀐 선순데 형은 저 선수 쿠세를 어떻게 다 알아요?”

    내가 저놈한테 하도 당해서 알지. 그래서 저놈의 비밀을 찾아냈는데도 성적이 그 모양이어서 그렇지.

    “너도 밤에 상대 선수들 비디오 열심히 보고 전력팀 얘기도 귀담아듣고 그래. 그러다 보면 보인다.”

    “네, 형. 어디 가서 얘기 안 할게요. 형이 있어서 든든해요.”

    난 네가 불안하다. 개막전 선발로 나온 신인이 초장부터 무너지면 나 내 자리 뺏기고 떠돌아다닐 거 아니냐. 네가 잘해야 한다. 무조건 잘해야 한다. 나도 포지션 고정해 보자.

    “고마우면 오늘 경기 잘하기나 해. 오늘 홈런이라도 하나 치고 끝나고 밥이라도 사든가.”

    “네, 형. 제가 오늘 꼭 홈런 쳐서 형 밥 사드릴게요.”

    홈런은 무슨. 그냥 오늘 떨지 말고 사람답게나 해라. 오늘 만원 관중이라더라. 관중 앞에 나가 서 있는 것만 해도 넌 오늘 성공이다.

    개막전 선발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멍청이와 상대 투수를 분석하고 있는 와중에 매니저 형이 나를 살짝 부른다.

    멍청이에게 경기 끝나고 먹을 음식을 생각하라고 해놓고 급하게 랩터스 사무실로 올라간다.

    “왜? 경기 시간 얼마나 남았다고 지금 부르지?”

    매니저 형한테 이끌려 사무실 안의 회의실로 끌려들어 갔다. 사무실에 들어갈 때부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직원들. 평소엔 관심도 없더니 오늘은 왜 나한테 이런 뜨거운 시선을 보내지?

    이제 저 사람들이 내 미모에 관심이 생겼나?

    회의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사뭇 차갑다.

    개막전에 가장 바쁘게 돌아다녀야 할 단장님과 홍시 누나가 걱정 한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는다.

    “김소전 선수. 경기 앞두고 불러서 미안해요. 꼭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요.”

    “소전아. 경기 끝나고 얘기할까 했는데 경기 중에 알게 되면 더 충격받을 것 같아서 불렀어.”

    뭐, 뭐지? 이 분위기 뭐야? 왜 그래?

    그러더니 홍시 누나가 급하게 인쇄한 듯한 사진을 내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게… 뭐야…….

    [랩터스 김소전아! 돈 갚아라! 네 아버지가 빌린 돈 갚아라!]

    미, 미친. 이게 뭔 X소리야…….

    어처구니없는 사진에 눈만 껌뻑이면서 단장님과 홍시 누나를 쳐다봤다.

    당황한 나를 보고 홍시 누나가 설명을 해준다.

    “내가 알아보고 있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빚을 좀 많이 지셨던 것 같아.”

    “다 갚았습니다. 아버지 보험금하고 제 계약금으로 다 갚았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누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튀어 나갔다.

    “이게 정확한 사실 관계는 알아보고 있는데… 신고 안 된 사채가 있었던 것 같아. 보니까 이번 주에 법원에 채무자 확인 소송 들어갔어. 어머니랑 통화해 봤는데 잘 모르시더라고.”

    당연하잖아. 나랑 엄마는 빚 다 갚았다고. 그거 갚겠다고 엄마가 식당에서 얼마나 고생하는데.

    “남은 빚이 있다는 얘기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억울해요. 진짜 다 갚고 우리 이제 자리 잡고 살려고 한다고요. 이거 뭔가 잘못됐어요.”

    순간 욱해서 내 목소리가 커지다 홍시 누나가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나를 달래기 시작한다.

    “소전아. 그룹 법무팀에 도와달라고 했어. 사실 관계 확인하고 대응 방안 알려줄 거야. 그러니까 우선은 걱정하지 말고 경기 잘하고 있어. 누나가 싹 정리해 줄게. 아무래도 저 사람 하는 짓이 경기장에서 너한테 피켓 들것 같아서 미리 알려준 거야. 모르고 갑자기 보면 더 당황할 거 같아서 미리 보자고 한 거야.”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다. 나는 정말 열심히만 살려고 하는데 왜 자꾸 나한테 이러는 거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빚이 얼마나 된답니까?”

    “2억 6천, 원금 1억. 이자 1억 6천이라는데, 이건 그 아저씨 주장이고 경기 끝날 때까지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해서 알려줄게.”

    어질어질하다. 2억 6천? 그 돈을 보기나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겠다. 우리 아빠는 돈을 어디서 빌린 거야.

    내가 머리를 잡고 어질어질하고 있자 반대편에 앉아 있는 단장이 물어본다.

    “김소전 선수, 오늘 경기할 수 있겠어요? 힘들면 몇 경기 쉬어도 괜찮아요. 감독님하고는 내가 얘기할게요.”

    개막전부터 사고를 친 선수를 앞에 둔 두 사람이 안쓰러운 얼굴을 하고는 내 입만 바라본다.

    표정만 봐서는 정말 엔트리에서 빼줄 듯한 얼굴. 하지만 두 분 생각 잘못하신 겁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구단에 물의를 일으켜 질책성으로 빼신다면 받아들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경기 뛰겠습니다. 정말 제가 빚이 있다면 더 뛰어야지요. 더 열심히 뛰어서 빚을 갚아야지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뛰겠습니다. 뛰게 해주세요.”

    여전히 나를 딱하게만 바라보는 단장님과 홍시 누나를 뒤로하고 경기장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랑 통화를 해봐도 엄마도 오늘 알았다고 하고, 내 기억에도 이런 빚이 있었던 적이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도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형,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어딜 다녀와요?”

    “별거 아니야. 홍시 누나가 날 좀 예뻐하냐? 시즌 전에 잘하라고 응원해 주는 거지.”

    “오~ 형~ 역시 야구를 잘하니까 팀에서도 특별 대우해 주네요. 오~ 그런데 그렇게 여홍지 팀장님이랑 따로 봐도 돼요? 형수님한테 혼나는 거 아니에요?”

    응? 뭐? 누구?

    “형수님은 누구냐?”

    “에이, 왜 이래요. 밤마다 형수님하고 통화하잖아요.”

    미쳤다.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이놈은 정상이 아니야!

    “설마 루다 말하는 거냐?”

    “형~ 왜 이래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중에 사진이라도 보여주세요. 어떤 천사길래 형 같은 사람을 만나주시나 궁금하단 말이에요.”

    “아서라. 걔랑은 그런 거 아니다. 악연이다.”

    “형. 얼굴 빨개졌어요.”

    내 얼굴이 빨개진 게 루다 때문이 아니라 아까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다.

    - 2027 개막전이 열리는 잠실입니다. 이번 시즌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이번 시즌 각 팀의 전력 보강이 충실히 됐다고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시즌이 될 거예요.

    - 국민의례. 오늘 애국가는 성악가…….

    개막전이라 그런가 하는 것도 많다. 애국가도 성악가가 와서 부르고 대통령이 나와서 시구를 한다.

    내야에 유격수로 나왔는데 쌀쌀한 날씨에 몸이 굳을까 봐 손발을 털어주며 몸을 풀어준다.

    - 박정래 대통령 당선인의 시구가 있겠습니다.

    - 평소 야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시죠. 야구 인프라에 투자를 많이 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야구 팬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좋은 정치를 부탁드립니다.

    대통령이 올라와서 포수에게 아리랑 볼을 던지는 순간 3층 관중석에 아까 사진으로 본 피켓이 펼쳐졌다.

    하… 진짜네. 알고 보니까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네.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데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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