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61화 (61/204)

61화. 새 시즌의 준비

“더 벌려. 더, 더. 더 벌리고. 그렇지. 중심은 가운데.”

“아니, 골반을 앞으로 내밀지 말고 뒤로, 뒤로, 뒤로. 그렇지. 주저앉아.”

“멍청아,바닥에 앉는 게 아니고 스쿼트하듯이 내려가 봐. 더, 더. 거기.”

“뭐야? 거기서도 다리가 움직여? 앞다리 더 뻗어봐.”

“허리는 집어넣으라고! 앞으로 내밀지 말고, 백스윙하지 말고!”

“아, 진짜. 그게 맞다고 너 너한테는 그게 맞다고!”

스프링캠프 기간 내내 나는 열외를 당했다. 나도 선순데… 코치님들이 나를 신경도 안 써준다.

과외받으면서 선행 학습 받은 놈은 알아서 자율 학습하라면서 덤으로 학습 부진아도 책임지란다.

그렇게 맞게 된 학습 부진아는… 답이 없다.

팔다리 길고 몸도 좋은데. 타격이 영 별로다. 문제는 컨택.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타격하는 중간중간에 몸이 고정되지 않으면서 시선이 계속 떨린다.

그러니 공을 맞히지 못하지. 투수할 때도 제구가 개떡 같은 게 일관적인 폼 유지가 안 되면서 시선이 흔들리는 게 큰 것 같다.

훌륭한 과외 선생님이면 학생의 상태에 맞춰서 맞춤 학습을 해줘야 하는 법. 저놈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시켜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

그 옛날 치팅하지 않던… 아니지, 최소한 전자기기는 쓰지 않았던 휴스턴의 벌떼 타선의 핵심이었던 베그웰이라는 타자의 타격 폼을 훔쳤다.

이 멍청이가 타격할 때 몸통이 흔들리는 게 패시브 스킬로 장착되어 있는 듯하니 아예 처음부터 스트라이드를 시켜 놓은 것처럼 다리를 쭉 펴놓고 하체를 고정시킨다.

그리고 배트 나오는 거리도 짧게 준비 자세에서 손 높이도 낮춰놓고 백스윙도 없이 그대로 발사하게 자세를 맞춰 놓았다.

이게 보기에도 충분히 웃기지만 실제로 자세를 잡아보면 발목부터 허벅지 허리 등 어깨까지 죄다 땡긴다.

시키면서도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하면 어째야 하나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키자마자 싫다고 반항을 한다.

이유는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랑 자세가 달라서…….

그래서 이 자세로 3할 치면 내 자세로 바꾸는 거 도와주겠다고 사기 쳐서 무조건 하라고 시켰다.

자세를 고정시키고도 컨택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차피 중심 이동하면서는 더 못 친다. 그리고 이놈은 높은 확률로 컨택이 좋아질 가능성은 없다.

저렇게 준비 자세 없이 때리는 데도 머리가 흔들리는데… 답도 없지. 그렇게 답이 없으면 뭐… 컨택에 집중하고 타고난 힘으로 멀리 쳐야 한다.

랩터스 스프링캠프에서 타자 둘이 단체 훈련 시간만 지나면 항상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 놈은 몸에 체득하기 힘든 쩍벌 타격 폼을 몸에 새겨넣느라 바쁘고 한 놈은 타격 폼을 세 개로 쪼개서 몸에 새겨넣느라 바쁘다.

두 놈이 항상 훈련장 배팅 케이지를 독점하고 있으니 이제 선수들도 그냥 구석 자리 두 개는 없는 셈 치기 시작한다.

항상 가장 먼저 훈련장에 나와 가장 늦게까지 배팅 훈련을 하고 피 묻은 붕대를 풀고 잠만 자러 숙소로 돌아가는 둘을 코치들도 신경을 끈다.

저놈들은 어차피 여기서 저것만 하기로 선언을 했던지라 손댈 것도 없다. 그냥 쟤들은 열외다.

* * *

휴식일. 다른 선수들이 휴식 겸 기분 전환 겸 쇼핑을 하러 단체로 떠났음에도 랩터스의 못난이 둘이 또다시 배팅 케이지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휴식일 할 일 없던 감독이 실내 훈련장으로 들어와 괜히 찔러본다.

“너희는 안 나가냐?”

공 치기도 바쁜데 감독이 괜히 와서 찔러본다.

“30개 더 남았습니다. 30개 더 치고 점심 먹으러 가겠습니다.”

내가 나올 생각이 없자. 감독이 제안을 하나 한다.

“닭장에서만 때리면 지겹잖아. 오늘 운동장도 비었는데 나가서 치자.”

나가서 치자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피칭 머신을 멈추고 감독을 돌아봤다.

“감독님이 던져주시는 겁니까? 오늘 던져줄 사람도 없어요.”

“내가 왜? 너희 둘이 던져주면 되지?”

“네? 저희는 타잔데요.”

“타자는 못 던지냐? 너네 둘 다 구속은 꽤 나오잖아. 내가 공은 받아주지. 나가자.”

아무리 머신이 좋아도 사람이 던져 주는 것만은 못하긴 하지. 한번 해볼까?

감독의 강권에 그라운드에 나와 배팅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 몇 개는 좀 어색했지만 금방 잡히는 감각. 역시 내가 투수를 했으면 커쇼보다 잘…….

‘펑’

아니다. XX. 저 XX, 뭔 공을 부실 듯이 쳐?

“노경준! 좋아. 그렇게 공 몸에다 붙여놓고 치는 거야. 어때? 기계가 던져 주는 것만 치다가 선배가 던져 주는 거 치니까 기분 좋지? 아주 선배를 박살 내버려!”

저, 저 감독 놈. 뭔 헛소리를… 배팅볼은 원래 치라고 던지는 겁니다.

펑! 펑! 펑!

타구에서 대포 소리가 난다.

아무리 내가 한가운데 던지고 있지만, 너무 세게 때리는데. 공 터지겠어.

“어이~ 김소전~ 좀 세게 던져 봐라. 너무 쉽잖아.”

“배팅볼은 맞춰 주는 겁니다.”

“공이 후져서 그런 게 아니고?”

뭐? 고, 공이 후져? 내가 마, 150도 던지고 그랬던 사람인데. 후져? 진짜…….

어깨도 풀렸겠다, 손끝 감각도 좀 생겼겠다. 공 끝에 살짝 힘을 더 주어 찍어 눌러 던졌다.

펑!

“이야~ 노경준. 이건 장외다~ 그렇게만 치면 되겠어. 김소전~ 넌 투수 안 하기 정말 잘했다. 공에 힘이 얼마나 없으면 공이 아직도 날아간다. 서울까지 날아가겠어~”

저, 저, 저놈의 감독……. 내가 오늘 공이 뭔지 보여 준다.

공을 꽉 잡고 기합까지 넣고 때려 박는다.

펑!

하… 저 XX. 팔로스로까지 완벽하네. XX.

“김소전, 안 되겠다. 자, 손가락 하나는 직구. 두 개는 변화구. 너 변화구 한두 개는 던질 줄 알지?”

뭐? 변화구 한두 개? 내가 안 던져서 그렇지 못 던지는 공이 없던 대투수님이었는데. 감독님아, 내 현란한 공을 받을 수나 있고?

기분 좋게 배팅볼을 치려던 훈련이 어느새 라이브 배팅으로 바꼈다.

홈런을 뻥뻥 날리면서 기분이 좋아진 타자와 연신 직구를 처맞고 봉인된 변화구까지 꺼내든 투수. 지저분한 승부가 시작된다.

“경준아, 빠졌잖아. 이걸 치겠다고 덤비면 어쪄냐. 또 줄게.”

“경준아, 빠지잖아. 왜 덤벼들어.”

“원 바운드는 왜 따라가. 안 되겠다. 둘이 바꿔.”

내 환상적인 변화구에 멍청이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보다 못한 감독이 둘의 역할을 바꿔준다.

흐흐흐. 내 차례다. 어디 죽어 봐라.

“소전아. 그걸 때리면 안으로 들어가냐?”

“소전아. 눈에 보이면 다 치는 거야?”

“소전아. 그걸 치면 타구가 힘이 있겠어?”

억울하다. 저 XX 제구가 안 좋아서 투수를 못 했다더니 제구가 안 좋은 게 아니라 아예 제구란 게 없다.

공은 빠른데 공이 아무 데나 막 들어온다.

공이 빠르기만 하지 만만한데 칠 만한 공이 안 들어오니 이것저것 손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정타가 안 나와 속이 터진다.

둘 다 한 박스가 넘게 치고받고는 녹초가 되었다. 매일 기계에서 나오는 똑같은 공만 치다가 못 치게 던지는 공을 치기 시작하니 힘이 몇 배는 더 많이 소모된다.

기진맥진해서 퍼져 있는 두 멍청이에게 감독이 총평을 남긴다.

“둘 다 훈련은 열심히 하는데 실전에서 먹힐지 모르겠다. 소전이한테 작년부터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둘에게 똑같이 해줘야겠다. 모든 공을 다 치려고 하지 마. 나쁜 공은 두고, 치기 좋은 공만 골라 쳐도 돼. 그렇게 좋은 공만 쳐도 3할은 칠 거다. 빠지거나 나쁜 공은 지켜봐.”

감독이 뭐라고 하는데도 두 멍청이는 전혀 듣고 있지 않다. 서로 상대에게 당했다는 분함에 투쟁심만 활활 불붙었다.

휴식일에 감독과의 특별 훈련 후 랩터스 훈련장에 변화가 생겼다.

실내 연습장 한쪽 구석에 두 자리를 차지했던 열외자들이 보조 구장 하나를 독점한다.

서로 250개 한 박스씩을 번갈아 던져 주며 하루 종일 이어지는 타격 전쟁. 저녁 먹고도 계속되는 전쟁에 쓸데없이 조명탑까지 켜 가며 랩터스의 전기세 부담을 가중시킨다.

최고의 환경에서 랩터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 평균 연령이 높은 랩터스의 주전 선수들은 한 시즌을 버티기 위해 전체적인 체력을 보충하고 본인들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앞으로 커가야 할 유망주들은 자기들의 장점은 최대로 살리면서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저… 두 놈만 빼고…….

* * *

스프링캠프 막바지에 서울에서 단장이 캠프로 날아왔다. 다음 시즌 준비에 바쁜 와중에도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 마지막 담금질이 한창인 선수들을 직접 보고 다음 시즌 구상을 감독과 함께 조율한다.

“감독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선수들 움직임이 좋아 보이네요.”

“환경이 좋으니까 선수들이 시즌 준비하기 좋아요. 처음도 아니고 벌써 몇 년인데 이제 여기도 편하고 아주 좋아요.”

“신인들의 발전이 생각보다 더뎌 보여요. 올해도 기존자원으로 버텨 봐야겠죠?”

“지금까지 후순위 픽을 뽑았으니 어린 선수들 기다려야죠. 올해 뽑은 투수들도 즉전감은 아니니까요.”

“투수들은 그렇고. 중견수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요?”

“무리라 생각하면 플랜B로 바꿔야겠죠. 있는 자원으로 하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우선 해보죠. 저놈들이 랩터스의 내일이니까요.”

감독과 구단주가 보조 구장에서 서로를 향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맞상대하는 두 선수를 보면서 기대 반 걱정 반의 눈길을 보낸다.

* * *

새 시즌을 앞두고 언제나처럼 시범 경기가 먼저 열린다. 겨우내 갈고 닦은 전력을 마지막을 조율하는 시간. 특히나 KBO 역사상 시범 경기 최다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랩터스는 올해도 시범 경기에서부터 믿기지 않는 전력을 과시한다.

- 드디어 야구의 시간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2027시즌 시범 경기 첫 경기 지난 시즌 우승팀 랩터스와 썬더스의 경기를 수원에서 보내드립니다.

- 양 팀 다 겨울에 준비를 잘했다고 자평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썬더스는 이번 시즌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거든요. 기대가 큽니다.

- 썬더스 선발. 이번 시즌 새로 영입된 로즈버그 선수입니다.

- 이 선수, 아주 기대가 크죠. 지난 시즌 디트로이트 40인 로스터에 등록됐던 선수예요. 나이도 29살. 전성기가 시작될 시점이거든요. 최고 구속 155에 12시에서 6시로 떨어지는 커브를 잘 던진다고 알려져 있거든요. 한국에서 적응이 관건일 뿐,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수예요. 이 선수를 어떻게 데려왔는지가 미스터리입니다.

시범 경기. 새 시즌이 시작되고 경기가 시작된다. 훈련을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내 뒤의 저 멍청이하고 쓸데없는 싸움질을 하느라 만족할 만큼 훈련을 못 했다.

불안한 마음 한가득으로 타석에 들어선다.

- 첫 타석 랩터스의 김소전 선수입니다. 오늘 경기 유격수로 선발로 출장합니다.

- 이번 시즌 김민중 감독이 유격수로 쓰겠다고 공언을 했죠. 보통의 경우라면 주전 유격수로 뛰면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고 얘기 드리겠지만 이 선수는 예외에요. 지난 시즌 내외야를 다 돌아다니면서 고생한 선수가 자기 자리를 찾았으니 얼마나 안정감을 가질까 기대가 됩니다.

마운드에 키 크고 팔다리 길고 잘생긴 마음에 안 드는 놈이 미소를 띠고 서 있다. 로즈버그. 이번 시즌 썬더스 팬들에게 벌레신으로 추앙받을 외국인 선수.

내 기억이 맞다면 메이저에서 보장 계약 못 받고 마이너 가느니 한국에서 돈 벌고 다시 올라가겠다고 한국에 와서 1년 반짝 뛰고 다시 메이저에 돌아가 필승조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 로즈버그, 공 좋습니다. KBO 마운드에서 처음 던지는 데도 공의 위력이 상당합니다.

- 한가운데 직구죠. 쉽게 던지는데도 149가 나왔어요. 아직 날씨가 쌀쌀한데 여름에 날이 좋아지면 어떨지 기대가 큽니다.

응? 뭐지? 얘 공도 빠른데 구위도 무시무시했다고 소문났던 애 아닌가? 공이 뭐 이렇게 밋밋해?

- 김소전! 우측! 우측! 우측! 우측 담장~ 넘어갑니다. 로즈버그에게 KBO의 매운맛을 보여주는 김소전!

- 시범 경기 기록이 크게 의미 있지는 않습니다만 김소전 잘 받아치네요. 겨우내 준비를 잘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몰리긴 했지만 빠른 공이거든요. 타자가 처음 보는 투수에 약하기 마련인데. 빠른 공을 잘 받아쳤어요. 김소전 출발이 좋네요.

이상하네. 좀 설설 던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쟤 공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공에 힘이 없어. 날이 추워서 그런가? 그래도 해 떠서 춥지는 않은데…….

- 김소전의 솔로 홈런으로 랩터스가 1 대 0으로 앞서갑니다. 다음 타자. 신인 노경준입니다.

- 김민중 감독이 시범 경기에서 실험해 보겠다고 한 노경준 선수예요. 운동 능력이 굉장히 좋은 선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프로에서 통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 고등학교 기록을 보면 작전 수행 능력이 좋은 선수로 보입니다.

- 클래식 야구에 어울리는 선수죠. 번트 능력 좋고 발 빠른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 랩터스에서 2번으로 기용하는 게 의외긴 합니다.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고는 다음 타석에 들어오는 징글거리는 놈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러면서 멍청이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형 홈런 쳤다. 내일 아침 런닝 너 30초 뒤에 출발이다.”

“형. 제가 백투백 치면 형이 1분 뒤 출발이에요.”

- 노경준! 잡아당긴 타구. 좌측 담장으로 쭉쭉 뻗어갑니다. 넘어갔습니다. 백투백! 로즈버그 선수에게 악몽을 선사합니다.

- 데이터에 장타력은 없다고 했는데 이거 장난이 아니네요. 로즈버그 선수가 직구 위주로 던지고 있지만, 공 위력이 상당해 보이거든요. 타격 자세가 굉장히 어려운 자세인데 타고난 힘이 대단해 보여요. 김민중 감독이 2번에 왜 낙점을 했는지 보여주네요. 랩터스 팬들, 올해도 기대가 되겠어요.

XX. 저 XX. 벌레신이라며! 메이저 출신이라며! 오자마자 백투백을 처맞는 건 뭔 경우야! 10킬로를 뛰는데 1분 뒤에 출발이면 저 XX를 무슨 수로 이겨!

안 되겠다. 감독님한테 타선 바꿔 달라야겠다. 인정할 수 없어. 딴 건 몰라도 저 못생기고 멍청한 놈한테 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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