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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FA선수가 되다-43화 (43/204)

43화. 고집

* * *

대표님, 매니저 형이랑 트레이너랑 통역까지 함께 타고 간 앰뷸런스.

앰뷸런스 안에서 눈물이 흐른다. 머릿속으로 내가 미워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이 흘러가고 이렇게 다쳐 가면서 야구를 해야 하나, 또다시 수술하고 그래야 하는 건 아닌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나마 다행이다. 결과가 좀 더 나와 봐야겠지만 광대 골절로만 보여. 위에다 상의는 해보고 여기서 수술할지 한국 가서 수술할지 생각해 보자. 천만다행이다. 이 정도면 천만다행이야.”

골절. 뼈가 부러졌다는 건데… 이게… 다행…….

“형… 시합은요? 내일 대만이랑 시합하고, 하루 쉬고 결승인데.”

“인마! 지금 시합이 문제야! 너 조금만 위에 맞았으면 눈이었어. 그랬으면 앞이 보이니 마니 했을 뻔했는데 시합을 신경 쓰고 있어. 푹 쉬어. 경기 끝나서 감독님이랑 선수단 올 거야. 우선 쉬어.”

아… 경기…….

“형. 경기는요?”

“졌어. 괜찮아. 내일 대만만 잡으면 결승은 가잖아. 형들이 알아서 잘할 거니까, 너는 쉬기나 해. 자꾸 움직이면 뼈 틀어져서 안 붙는다.”

XX. 이놈의 인생, 피어 보나 했더니… 바뀌는 게 없다.

주책없이 눈에서 눈물이 또 흐른다.

눈물이… 이런… 엄마가 TV로 보고 있을 텐데…….

“형. 전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엄마가 걱정하실 거 같아서 해야겠어요.”

“그래. 잠깐, 네 전화기 가져다줄게.”

매니저 형이 전화를 가지러 가는 그때 병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김소전 선수, 어때요? 나 보여요? 정신은 들어요?”

랩터스의 절대자. 조수아 단장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괜찮습니다. 검사 결과가 좀 더 남았다고는 하는데, 트레이너 형이 광대뼈 골절 말고는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단장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러가며 살기 가득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김소전 선수. 사진과 검사 결과는 구단에서 확인 중에 있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정밀 검사는 다시 받아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빠르면 4주. 늦어도 6주 안에 회복할 수 있겠어요. 숙소로 이미 운영팀 직원이 가고 있으니 짐은 금방 정리될 겁니다.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한국? 이대로? 다쳤으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결승은 함께하고 싶었는데…….

“저… 단장님. 한국 가서 바로 수술하는 건가요?”

“아니. 우선 부기부터 빠지는 거 보고 정밀 검사하고. 선수 자료 이미 대한병원 성형외과 의사들까지 확인했으니 흉터 안 남게 잘할 수 있어요.”

“어차피 바로 수술 못 하면 여기서 결승까지만 보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저 빠져서 고생할 선배들 덕아웃에서나마 응원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슴에 태극 마크 달고 다 같이 고생하는 선수들인데 최대한 가까이에서 함께하고 싶다. 내가 뭘 못해도 덕아웃에서 하이파이브라도 해주고 싶은 게 내 심정이다.

“김소전!”

싸늘하다. 단장이 이름만 불렀는데도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무서워서 바로 보지도 못하고 슬쩍 옆으로 흘려 보았는데 얼음이 활활 타오르는 게 보였다.

내가 뭔가… 크게 잘못했구나.

“왜 그딴 짓을 하려고 하지? 구단이 왜 그딴 걸 허락해야 하지? 랩터스가! 시즌 막판에 반 게임 차 줄타기 하고 있는 랩터스가 지금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단장의 호통에… 뭐라 큰소리 내기는 무섭고, 작게… 개미 기어가듯 반론을 펼친다.

“그… 그래도. 국가 대푠데요……. 금메달 따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화산이 터졌다. 백두산이 터지면 저런 모습일까. 말로만 듣던 파이리의 불꽃 공격이 시전되었다.

“지금 그딴 말이 나와! 국가 대표라고 선수 보내놨더니 애들을 이 지경을 만들어 놓는데, 그게 말이야! 우리 팀 유망주는 광대가 나가서 4주 아웃이고, 우리 팀 4번 타자는 발목이 나가서 6주는 수비가 안 돼. 이 와중에 감독은 결승에서 이시윤 길게 갈 거라고 기사 내놓고 마무리는 오늘 너 때문에 XXXXX한테 헤드샷 날리고, 야쿠자들한테 공개 수배당하고 있어!”

으… 심장이 쪼그라든다.

“이런데 뭐? 국가 대표? 지금 국가가 어디 있는데? 너 병원 와서 선수단 관계자 본 적 있냐? 외교부 직원을 본 적이나 있어? 하다못해 KBO 관계자들 전화라도 왔어? 구단에서 박요훈한테 사설 경호 붙이고 우리 트레이닝팀이 너하고 조영근 보겠다고 다 넘어왔어. 헛소리하지 마. 너는 나라가 아니라 구단이 지킨다.”

병원에 사람들도 많은데 저 체구의 여자가 건물이 무너져라 쩌렁쩌렁 소리를 지른다.

단장님… 무서워서 바지에 살짝 실수할 뻔…….

“그래도 여기 트레이너 형도 오고, 매니저 형이랑 통역 형도 왔다 갔다 해주고…….”

안 할 말을 괜히 꺼냈다.

“그 통역이랑 매니저… 지금 어디 있는 줄 알아? 통역 지금 외교부에 보고서 쓰고 있고 매니저는 문체부에 보고서 쓰고 있어. 사건 경위부터 앞으로의 계획까지 보고서 쓰고 있다고!”

바… 바지가 축축한 기분이 드는데…….

“이 XX들이 하는 게 이래. KBO랑 구단에 벌써부터 국회 의원들이 상황 보고하라고 팩스 보내고 있다. 이 XX들 하는 꼴이 너 한마디만 잘못하면 일본과 외교 마찰 일으키는 쓰레기로 만들 분위기야. 구단에서 너 다치는 것도 싫고, 이미지 나빠지는 것도 싫다. 짐 챙겨. 비행기 준비시켰어.”

단장의 샤우팅을 들으면서 왠지 군대 시절, 아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끝도 없던 천리 행군. 그저 눈 감고 걷고 걸어도 똑같은 논바닥만 계속 나오던 그때.

우리 분대 일병 XX가 졸다가 논바닥에 굴러떨어지고는 못 걷겠다고 X지랄. 의무병 불렀더니 4킬로 앞까지 끌고 오라고 헛소리. 분대원들이 얘 거 군장 나눠 들고 4킬로를 부축해서 갔더니 이렇게 다치면 불러야지, 데려왔다고 쌍욕.

그것도 모자라 행군 끝나고 분대원 관리 못 했다고 군기 교육대…….

그랬지… 그게… 나라다. 그게 내가 지켰던 나라다.

“단장님. 어차피 제가 여기 있다고 해야 할 일이 없어지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나라가 하는 짓이 싫어도 미우나 고우나 내 나라잖아요. 서울 돌아가서 바로 돌아가서 치료받을 수도 없는 거라면 여기서 박수라도 칠 수 있게 해주세요.”

머물고 싶다고 말을 하는 내 머릿속에 선수단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조영근 선배 수비 안 된다면서요. 외야 백업이 접니다. 때리지는 못해도 오늘 자고 일어나서 혹시 좀 덜 아프면 수비라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라가 X같다고 제가 빠지면 같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잖아요. 우리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뭐라도 하겠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미친 XX야.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너 4주 아웃이라고! 김소전! 정신 차려! 나머지는 너 하나 믿고 저딴 엔트리 짠 감독이 책임지는 거야!”

단장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는다.

“설마. 너 진짜 금 따서 군대 안 가려고 이러는 거야? 걱정하지 마! 너 어깨로도 뺄 수 있고, 오늘 사고로도 뺄 수 있어. 그런 거면 말로 해!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말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도가 넘잖아요.

“아닙니다. 군대 가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닙니다. 여기 와서 선배들하고 같이하고 배운 게 아쉬워서 그럽니다.”

단장의 표정이 너무나도 무섭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태어나서 처음 대표팀이란 걸 해봐서 그렇습니다. 이대로 다쳤다고 돌아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내 나라를 대표해서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습니다.”

미묘하게 변하는 단장의 표정을 보며 조금은 인정에 호소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뼈가 부러졌다는데 생각보다 아프지도 않고 조심만 하면 경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덕아웃에 앉아 있게만 허락해 주세요.”

한 발 떨어져 있던 단장이 훅 다가온다. 그러더니 퉁퉁 부은 내 광대를 푹 찌른다.

“으… 으윽……. 뭐 하시는 겁니까. 아프잖아요.”

나한테 잔인한 짓을 한 단장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돌직구를 날린다.

“아프지? 네 몸 다쳐서 아프지? 너 작년까지 네 몸 다칠까 봐 아끼고 아꼈던 몸 진짜 다치니까 어때? 아프지? 그렇게 아낄 땐 언제고 이제 진짜 아껴야 할 때는 안 아끼겠다고?”

눈앞에 다가왔던 단장이 살이 에일 듯한 비웃음을 짓더니 확 멀어진다.

“요즘 야구가 좀 되는 거 같으니까 네가 슈퍼스타라도 된 거 같아? 착각하지 마. 너 지금 쓸데없이 객기부릴 실력 아니야. 구단을 믿고 나를 믿고 따라와. 안 아프게 10년 동안 야구 잘할 수 있게 해줄게.”

화났던 얼굴을 정리하고 평소처럼 사무적인 얼굴로 돌아온 단장이 이 상황을 정리하려 한다.

“단장님은 모릅니다. 선수의 기분 모른다고요. 지금 될 것 같단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최고의 선수들에게서 인정받을 것 같은 제 마음을 모른단 말입니다. 그 선수들과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보고 싶습니다.”

선수를 보고 차가운 표정을 짓는 단장이 비수를 꽂는다.

“넌 주변을 더 살필 필요가 있다. 자기 꿈 좇아서 나라를 대표한다는 헛소리로 몸을 던지는 선수를 옆에서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이 어떤지 선수는 모른다.”

단장의 눈이 점점 더 차가워진다.

“선수 선발 때부터 안 좋은 발목을 숨기고 야구 하는 조영근이 내 사촌 오빠다. 그 XX는 학교 다닐 때부터 대표팀 나가면 저따위로 야구 했어. 그 XX는 금메달로 병원 진단서 바꿔와서 좋다고 절뚝거리면서 웃고 있는데 식구들은 울면서 잘했다고 박수 쳤어.”

차가워지다 못해 단장의 눈에 얼음 같은 게 서린다.

“할머니하고 큰엄마하고 밤마다 물 떠 놓고 그 XX 안 다치게 해달라고 빌던 거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려.”

씨… 갑자기 그딴 소리를…….

“요즘은 내가 밤마다 물 떠 놓고 빌고 있다. 우리 선수들 다치지 말라고 물 떠 놓고 빌고 있다. 그만해. 내가 내 새끼들 다치는 거 더 못 보겠으니까. 그만해.”

나와 단장의 눈이 마주친다. 단장의 차가운 눈에 살짝 반짝임이 어린다.

“다음부터는 걱정하시는 일 없게 하겠습니다. 이번만 있게 해주십시오.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갑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한참 동안 나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던 단장이 옆에 데려온 트레이너에게 보지도 않고 질문을 한다.

“얘, 경기할 수 있어요?”

“경기요? 광대가 부러졌는데요?”

“수비나 대주자 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진통제 맞고 더 이상 충격이 없으면 일정 부분 가능하겠지만… 저 상태에서 경기를 하는 건 무립니다.”

“일정 부분? 그래도 조영근보다는 수비 잘할 거 아니에요?”

“지금 조영근은 깁스해야 하는 상황이긴 한데… 할 말이 없네요.”

“가죠. 감독을 만나 봐야겠어요.”

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사람이 사라졌다.

“저… 저……. 소전아……. 한국 안 가고 경기하게?”

“그, 글쎄요……. 저도 헛소리를 한 것 같아요…….”

* * *

주전 좌익수를 지명 타자로 보내고 주전 유격수를 좌익수에 세운 대한민국 대표팀이 대만을 8 대 7로 꺾고 결국 결승에 올라왔다.

말 그대로 투혼. 모자에 75번을 새겨넣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고비 때마다 허슬 플레이를 펼치며 어거지로 대만을 잡아냈음에도 여론이 안 좋다.

[계획 없는 허철우호. 졸전 끝 결승전 진출]

[대한민국 야구팀, 예고된 줄부상에 걱정 가득]

[금메달을 자신하는 일본과 힘겨운 일전을 준비하는 한국]

나고야 돔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 결승전을 앞두고 원정 팀인 대한민국 선수단이 락커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한 선수를 기다린다.

경기 시간을 두 시간 앞두고 가장 마지막으로 락커에 도착한 선수가 얼굴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이고 등장하자 초조하게 기다리던 선수들이 크게 환호성을 지른다.

평소라면 야수들과 잘 얘기도 안 하는 오늘의 선발 투수가 같은 팀 소속 국가 대표 후배에게 다가가 귀에다 속삭인다.

“아프다고 징징댈 거면 지금 꺼지고, 아니면 다시 오지 않는 오늘 경기 죽어라 뛰는 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늘 제 앞에 떨어지는 안타는 없습니다.”

선발 투수와 선발 좌익수의 대화가 끝나자 선수들이 금메달을 가져오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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