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억 FA선수가 되다-44화 (44/204)

44화. 전반전

- 대한민국과 일본의 아시안 게임 결승전이 나고야 돔에서 펼쳐집니다.

- 자국에서 열리는 경기이니만큼 일본의 기세가 대단합니다.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검투사 헬멧. 구단에서 이거라도 안 쓰면 절대 경기 출전은 못 하게 하겠다며 보내줬다. 전에도 장난삼아 몇 번 써보긴 했는데, 아무래도 어색하다.

볼에 반창고도 두껍게 붙여 놨는데 그 위로 뭐가 더 있다고 생각을 하니 은근 신경 쓰이네.

- 1회 초, 공격 삼자범퇴로 마칩니다. 우리 선수들, 일본의 나카가와 선수를 상대로 힘을 못 쓰는 모습입니다.

- 예선전 3경기. 슈퍼 라운드 2경기 했거든요. 5경기 하면서 경기 초반 시원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어요. 선수의 컨디션도 문제지만 이건 감독의 책임도 있다고 보입니다.

- 평소 국가 대표팀에 관대하셨는데 오늘은 날카로운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 오늘 엔트리를 보고 화가 좀 났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되거든요. 이건 대표팀 구성이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얘기에요.

- 어느 부분이 문제가 있겠습니까?

- 지금 좌익수 수비로 들어가는 김소전 선수. 본인이 원한다고 해도 넣으면 안 돼요. 이제 프로 2년 차, 만으로 갓 20살 지난 선수입니다. 앞으로 야구 할 날이 창창한 젊은 선수를 수술이 필요한 상항에서 출전을 시킨다? 이해할 수 없어요. 선수 보호가 먼저입니다.

- 우리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기대합니다.

- 투혼이 아니라 하면 안 된다고요. 금메달 따고 선수 생활 접으면 그 기억 하나로 살아갈 겁니까? 허 감독님,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이지만 이거는 잘못된 겁니다.

- 일본의 1회 말 공격을 막기 위해 이시윤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와 있습니다.

- 랩터스의 이시윤 선수죠. 이번 시즌 16승 2패. 평균 자책점 2.23을 기록 중입니다. 이 선수의 장점은 1회부터 9회까지 강력한 구위로 상대를 찍어누를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외야에서도 투수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게 보인다. 연습 투구부터 한복판에 찔러넣는 직구. 저건… 이번 시즌 베스트다.

- 대한민국의 1회 말. 투수가 공 9개로 삼진 3개를 잡아내며 이닝을 마쳤습니다. 양 팀 다 기세가 대단합니다.

- 한일전. 결승전의 한일전이니만큼 먼저 집중력이 흩어지는 팀이 지는 겁니다.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선발이나 일본 선발이나 둘 다 오늘 제정신이 아니다. 저것들, 9회… 아니, 6회까지도 던질 생각이 없다. 쉬어가는 공 하나도 없이 자기들이 불펜 투수인 양 모든 공이 전력투구다.

100개? 저렇게 던지면 80개도 안 돼서 내려줘야 한다.

- 스윙, 삼진 아웃. 여민석,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나카가와, 이번 경기 4번째 삼진을 잡아냅니다.

- 몸쪽 빠른 직구인데 꼼짝도 못 했어요. 여민석을 상대로 바깥쪽만 계속 두드리다가 기습적으로 몸쪽에 붙였거든요. 이러면 대응하기 어렵죠.

- 3회 말, 투 아웃에 다음 타자. 부상 중에 투혼을 발휘하며 좌익수로 출전한 9번 김소전입니다.

- 슈퍼 라운드 1차전에서 이토 선수의 공에 맞고 광대뼈가 골절됐습니다. 대표팀 발표로는 4주, 소속 팀인 랩터스는 수술 후 8주를 예상하고 있어요. 투혼이 아니라 무모한 겁니다.

검투사 헬멧. 시야 확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적응이 안 돼서 그런가 뭔가 계속 이질적이다. 턱으로 뭔가 큰 게 내려와 있으니 헬멧 무게도 안 맞는 것 같고…….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는데도 자꾸 신경이 간다.

- 몸쪽 높은 공. 타자가 뒤로 물러나며 피해 봅니다.

- 알고 던졌어요. 김소전 선수 부상을 알고 있거든요. 선수는 괜찮다고 하지만 분명 부상당할 때의 기억이 머리에 남아 있단 말이에요. 그걸 다시 끄집어내려고 위협구를 던진 겁니다.

뭐 하자는 거지? 일부러 그러는 거야? 바깥쪽 던지려고 셋업하는 거야?

- 김소전! 번트. 세이프티 번트. 3루수 던지지 못합니다. 대한민국 첫 출루. 막내 김소전이 번트로 만들어 냅니다.

- 2사지만 나갔다는 게 중요합니다. 선발 나카가와 선수에게 꽁꽁 막혀 있었는데 기회를 만들어 낸 거거든요. 느린 화면 다시 나오는데 김소전, 3루수가 뒤에 있는 거 보면서 그쪽으로 댔어요. 2년 차 선수인데 노련하네요. 대단합니다.

- 말 그대로 기습이었습니다. 일본의 수비진,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 어린 선수가 열심히 하는 게 고맙긴 한데 여기서 2루 도루를 하거나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소전 선수를 정말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일본 선수들이랑 경기를 안 해봐서 몰랐는데… 얘들, 눈으로 참 많은 말을 한다. 내가 일본어는 배운 적이 없지만 구단주 형이 보내주는 일본 예술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이해가 확확 된다.

- 1루 견제. 김소전 서서 들어갑니다.

- 리드가 길지 않죠. 김소전 선수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부담이 있을 겁니다. 평소처럼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는 기대하기 힘들어요.

2아웃임에도 덕아웃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해서 베이스에 딱 붙어 있다시피 한데 저놈이 자꾸 나한테 눈으로 욕하면서 견제구를 던진다.

진통제 약발인지 볼따구가 아프지도 않은데, 기분 나쁘면 확 뛰어버릴라.

- 이민상, 우익수 앞에 안타. 3회 말, 2사 후 대한민국의 타선이 터지고 있습니다. 주자 1, 2루.

- 낮게 떨어지는 공을 잘 받아쳤습니다. 이 안타에 주자가 3루까지 못 간 게 조금 아쉽지만 이건 우리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에요. 이민상. 공 끝까지 보고 잘 쳤습니다.

내 잘못이다. 아무리 덕아웃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해도 2사면 리드를 나갈 수 있을만큼 나갔어야 하는데, 머리에 잡념이 많아 리드도 짧고 스타트도 늦었다.

경기 전에 이시윤 선배가 아프다고 징징댈 거면 꺼지라고 그랬는데……. 경기 끝나고 욕먹을 수도 있겠다.

정신 차리자, 김소전.

- 2번 정한영. 주자 1, 2루에서 타점을 올려야 합니다.

- 팀에서는 중심 타선을 치고 있는 정한영이에요.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만나 봤던 타자란 말이죠. 긴장하지 말고 평소와 같은 리듬으로 타석에 임해야 합니다.

2루에서 타석을 바라보면 많은 게 보인다. 특히나 포수의 손가락.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포수의 손가락이 쉬지도 않고 움직인다.

셋, 하나, 엄지 한 템포 쉬고 새끼. 둘 왼쪽 둘 엄지…….

더럽게 어렵네. 몰라, 나 안 해.

- 초구 154. 154짜리 직구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 구위가 무시무시하네요. 화면으로도 보이지만 공이 바깥쪽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우리 타자들, 적응하기 쉽지 않겠지만 이겨내야 합니다.

미친놈. 사람이 팔로 대포알을 던진다. 아무리 정한영선배가 직구를 잘 친다고 해도 저건 좀……. 알고 쳐도 못 치겠… 아니지……. 알고 치면 그래도 확률은 있지 않을까?

다시 눈 크게 뜨고 포수를 노려본다.

둘, 하나, 새끼, 둘, 한 템포 쉬고 엄지 둘, 오른쪽…….

봐도 모르겠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상 투수 놈 방금 먹힌 직구를 던질 것만 같다.

자, 이제부터 주문을 외워 보자. 직구 던져라. 직구, 직구, 직구, 직구.

- 정한영. 바깥쪽 공을 끌어당깁니다.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 2루 주자 홈으로 뛰어듭니다. 우익수 니사카 백 홈. 세잎. 세잎입니다. 세잎. 정한영의 1타점 적시타. 한 점 달아나는 대한민국. 1 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 정한영, 역시 빠른 볼에 강하네요. 나카가와 선수의 패스트볼 구위가 대단히 좋거든요. 바깥쪽 높은 공을 끌어당겨서 안타를 만들어 냅니다.

- 2루 주자 김소전 선수의 슬라이딩도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 김소전,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즐겨하는 선순데 이번에는 발로 들어갔어요. 아무래도 부상이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이 몸뚱이가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발부터 들어갔다. 우익수가 잘 잡아서 정확한 송구를 뿌리긴 했지만 타자의 배트가 나가는 순간부터 스타트를 시작한 내 발이 두 스텝은 빨랐다.

결승전의 선취점.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일어나 몸을 돌리자 3루쪽 덕아웃에 환호하는 선수단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 이거지. 내가 이거 보겠다고 잘생긴 얼굴에 반창고 붙이고 나온 거다.

- 지금 일본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오는데요. 주심과 뭔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 무슨 일이죠? 아… 음… 이거……. 지금 항의하는 거 봐서는 2루에서 주자가 타자에게 사인을 알려줬다고 하는 거 같아요.

- 주자가 사인을 훔쳤다는 건가요? 어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 지금 느린 그림 나오죠. 2루 주자 김소전 선수가 타자를 바라보면서 뭐라고 하는 것 같긴 하거든요.

- 그렇네요. 2루 주자가 타자를 향해 혼잣말 비슷한 걸 하는 거 같긴 합니다. 입 모양… 입 모양을 보면 직구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구종을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잘 치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합니다.

- 지금 우리 선수들도 그렇고, 일본 선수들도 그렇고 다들 프로 선수들이란 말이에요. 1년에 144경기씩 하는 프로 선수들이란 말이죠. 2루에서 주자가 볼 배합을 파악하고 타자에게 알려주는 일은 매번 있는 일입니다.

- 그렇습니다. 리그에서 가끔 일어나는 일입니다.

- 물론 드러나게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안 보이게 다들 하고 있어요. 일본의 에이스 투수와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가 나와서 경기하는데 사인이 훔쳐졌다고 생각이 되면 사인을 바꿨어야 하는 겁니다. 그게 프로다운 모습이에요.

“오… 김소전. XXX들 사인도 훔쳐?”

“넌 못하는 게 뭐냐? 우리 팀으로 와 형이 잘해 줄게.”

“얘가 시골을 왜 가. 락커만 빼. 내가 소닉스에 자리 만든다.”

“너 한국 가서 우리 팀 사인 훔치면 죽는다.”

“아 놔……. 그쪽은 선수들은 팀 사인도 모르잖아. 그걸 무슨 수로 훔쳐.”

난 주문을 외웠을 뿐인데 사인을 훔쳤다며 도둑놈 소리를 듣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억울한 마음에 뒤로 들어가 이온 음료를 들이켠다. 일본이랑 경기하고 있지만…. 이온 음료는 파란색이지…….

- 경기장 정리되고 타석에 3번 명정욱이 들어갑니다. 3회 말 1 대 0. 2사 주자 1, 2루. 기회를 잡았을 때 점수를 더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죠. 몰아칠 때 몰아쳐야 해요. 일본을 상대로 많은 찬스를 잡을 수 없어요. 힘들지만 지금이 집중할 때에요.

- 공 맞았습니다. 이게 뭔가요. 공 맞았습니다. 히트 바이 피치드 볼. 이래선 안 됩니다.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이거든요. 대한민국 선수들 그라운드로 올라옵니다. 명정욱, 일어나서 선수들을 만류합니다.

- 선수들 다시 들어가죠. 명정욱 선수, 타이탄스의 주장답게 선수들을 잘 타일렀어요. 지금 우리가 일본의 작전에 말려들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우리 것만 하면 됩니다.

저 XX들이 미친 게 틀림없다. 나 하나 X신 만든 것도 모자라서 또 저 XX이다. XXX들아, 다음 타자가 잠실 홈런왕 조영근이다. 니들은 뒤졌어.

- 3회 말 투 아웃, 주자 만루. 타석에 대한민국의 4번 타자 조영근 들어옵니다.

- 발목이 좋지 않음에도 금메달을 위해서 뛰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참가할 때부터 안 좋던 발목이 일본에 와서 더 안 좋아졌어요. 지금은 수비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은데도 타격을 하러 나왔어요.

- 대한민국 선수단의 투혼입니다.

- 투혼이 문제가 아니라 김소전 선수도 그렇고 조영근 선수도 그렇고 자기 몸 관리를 해가면서 경기를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조영근 선수,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란 말이죠.

- 그렇지만 국가를 위해 참고 뛰어 주는 대한민국 태극 전사들입니다.

- 참고 뛰면 안 된다고요! 선수 관리가 필요합니다.

팀에서 수십 번을 본 만루에서의 조영근 선배 모습이지만 오늘은 더 간절하다. 선배님, 하나 쳐주세요.

- 뻗어 나가는 타구~ 쭉쭉 뻗어 나갑니다. 담장, 담장. 워닝트렉에서 잡힙니다. 큰 타구. 아쉽게 잡히는 타구. 대한민국, 잔루 만루로 3회 말 아쉽게 공격을 마칩니다.

- 잘 쳤어요. 마지막에 살짝 부족했네요. 잘 치고 우익수 니사카 선수가 잘 잡았어요. 이제 한 점 지켜 내면 됩니다.

담장을 넘길 듯한 타구를 날렸던 대한민국의 4번 타자가 잔뜩 굳은 얼굴로 돌아온다.

수비를 나가려는 동료들을 지나쳐 복도로 사라지는 팀의 최고참.

복도 쪽에서 쇠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건 진짜다. 지금까지 저 순둥이 조영근이 저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다. 어쩐지 오늘 정말 지면 안 될 것 같다.

- 4회 초, 3이닝을 퍼펙트로 막고 있는 이시윤이 1점을 안고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 대한민국 불펜, 1회부터 준비하고 있죠. 선취점을 따낸 이상 남은 투수를 다 쏟아부어서 지켜야 합니다.

- 1번 타자 야마구치. 첫 타석에서 공 3개로 삼구 삼진을 당했습니다. 이번 타석에는 배트를 짧게 쥐고 타석에 들어옵니다.

- 이번 시즌, 타율 3할 4푼을 치고 있는 교타자에 발도 빠릅니다. 나가면 골치가 아플 수 있어요.

뭐 한 것도 없는데 경기 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가다 보니 얼굴이 뻣뻣해지면서 뻐근해지는 느낌이 올라온다.

진통제 약발이 이제 빠지는 건가. 아직 삭제 두 시간은 더해야 하는데……. 이제 부기가 빠져서 아프진 않을 거라고 했는데……. 이러면 좀 곤란한데…….

그리고 내 얼굴보다 더 걱정인 건…….

우리 팀 에이스님……. 돔구장인데 머리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계시네……. 빼박이다…….

- 아… 이거……. 이건 아닌데요.

- 이시윤 선수, 심정은 알겠는데. 국제 경기, 그것도 결승전이에요. 이건 아니죠.

- 야마구치. 이시윤의 초구에 맞고 힘겹게 일어나 1루로 걸어 나갑니다. 아, 투수와 설전이 벌어지고 있어요.

- 말도 안 통할 텐데 욕은 서로들 알아듣는 것 같네요. 이럴 필요 없습니다. 경기에 집중해야죠.

- 한일전이 이렇게 치열합니다. 주자 1루에 걸어 나가고 주심이 투수에게 경고하고… 아, 일본 팀 감독이 나오고 있어요.

- 어지러운 경기네요. 지금 감독이 나와서 일을 키울 필요가 없는데 왜 나옵니까. 이건 일본 팀 감독까지 우리 선수들을 흔들려는 수작이에요.

저 XXXXX들이 우리를 지들 애완견쯤으로 생각하나 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불덩이 같은 감정이 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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