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한일전
- 경기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이 12 대 0으로 라오스를 꺾고 아시안 게임 첫 승을 가져옵니다.
- 점수만 보면 쉬운 경기로 보이지만 답답한 경기였어요. 9회에만 9점을 뽑으면서 이겼거든요. 다음 경기부터는 방심하지 말고 준비 잘해서 이런 경기 안 봤으면 좋겠네요.
경기 내용은 별로였지만 9회에 타선이 폭발하니 덕아웃 분위기가 조금 밝아진다. 감독이 선수단에 첫 경기이니 괜찮다는 얘기를 하고는 다음 경기 준비를 잘하라고 당부를 한다.
- 일부러 그러는 거지? 대만이랑 일본에 전력 숨기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
- 이게 이제 나한테까지 속이려고 하네. 자꾸 누나한테 까불래?
“누나는 무슨. 생일도 내가 더 빠른데.”
- 지금 개기는 거지? 좀 맞자.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기자들하고 인터뷰하는 것보다 얘랑 통화하는 게 100배는 힘든 것 같다.
- 잘 들어. 이제 인도네시아 얘기를 해줄 테니까. 잘 듣고 꼭 선수들한테 얘기 잘 해줘.
“해주긴 뭘 해줘. 전력팀에서 브리핑해 준다니까.”
- 전력팀은 대만이랑 일본만 준비한다며! 다 들었어. 그리고 그런 얘기 못 들어 봤냐? 전문가는 오타쿠를 못 이긴다. 뭐 이런 얘기 못 들어 봤어?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듣는 거냐…….
- 자, 누나가 브리핑해 줄 테니까 잘 적어. 인도네시아는…….
좀 카랑카랑하긴 하지만 여자 목소리 들으며 침대에 누워 있으니… 잠이 솔솔 오네…….
* * *
- 태국을 7 대 1로 꺾으며 대한민국이 슈퍼 라운드 진출을 결정짓습니다.
- 예선 세 경기를 답답하게 치렀습니다만 슈퍼 라운드 진출에는 성공했어요. 지금까지는 연습 경기라고 생각해도 좋았지만, 슈퍼 라운드부터는 다르거든요. 우리의 진짜 상대인 대만과 일본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해요. 지금 같은 경기력으로는 곤란합니다. 대한민국 팀, 조금 더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던 무패로 다음 단계에 진출한 팀은 분위기가 좋다. 그리고 그 팀 분위기의 중심에 막내가 있었다.
“소전아. 투스트라이크에서 진짜 슬라이더 들어오더라.”
“소전아. 너 태국 살았냐? 태국 비디오를 언제 봤어?”
“고맙다. 쟤들 진짜 몸쪽은 못 치네. 네가 전력 분석팀보다 낫다.”
상대 팀으로 만났을 땐 그렇게 무서웠던 선배들이 국대에 오니 세상 친절하다. 더군다나 나 말고도 군 면제가 걸려 있는 선배들은 내가 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정말 소중하게 새겨듣는다.
나는 그냥 여우가 자장가로 들려준 말을 그대로 해줄 뿐인데.
조별 예선이 끝나고 하루 쉰 뒤, 나고야 아시안 게임 슈퍼 라운드가 시작된다.
어떤 놈이 생각한 방식인지 모르지만 조별 예선 결과를 다음 단계 결과와 합쳐서 순위를 결정하는 신박한 방식.
슈퍼 라운드에 진출한 대한민국-태국-대만-일본 중 대한민국과 일본이 1승을 가지고 결승 진출을 노린다.
어차피 대만과 일본이 태국에 질 리가 없으니… 슈퍼라운드니, 뭐니 해도 그냥 셋이서만 잘 싸우면 된다.
더군다나 주최국인 일본이 무조건 금메달을 따낸다는 각오로 NPB 올스타로 라인업을 준비한 터라 한국은 병역 로이드를 풀로 빨아서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 정상적으로는 대만은 몰라도 일본은… 불가능하다.
“내일 일본과 첫 경기 출전 명단이다. 확인하고 잘들 준비해. 이상.”
경기를 하루 앞두고 수석 코치가 미리 선발 명단을 발표한다. 투수야 예고된 대로 현정인이지만… 7번 타자 좌익수에 내 이름이 써 있다. 나보고 한일전에 나가라고? 그것도 선발 출장?
오늘 밤잠이 안 올 듯하니 스윙 3천 개다.
- 나고야 돔에서 대한민국과 개최국 일본의 슈퍼 라운드 1차전이 펼쳐집니다. 부담스러운 상대지만 이겨 내야 하는 대한민국 팀의 선전을 기대합니다.
- 결승에 슈퍼 라운드 1, 2위가 올라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결승에 올라가면 또 만날 수 있는 상대지만 지면 안 됩니다. 오늘도 이기고 결승 가서 또 이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상대해야 해요.
- 그렇습니다. 한일전, 우리 선수들이 태극 마크의 무게를 알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부터 경기 시작됩니다.
- 위험했습니다만 3루수 라정안의 호수비로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잠시 후 3회 말 공격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공기가 다르다. 이건 공 하나하나의 느낌이 다르다. 예선에서 만났던 동남아 팀들과 경기와는 경기에 대한 집중도 자체가 다르다.
일본을 상대로 표적 등판한 현정인 선배가 완급 조절 없이 1회부터 전력투구를 하고 있다.
리그에서 저 공을 만났으면… 난 그대로 삼진이다.
반면 우리 타자들도 상대 선발 사이토를 공략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국내 투수들과는 확실히 격이 다른 구위로 변변한 타격을 해보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 나온다.
그래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는 듯 공 개수를 하나라도 더 늘리고 나오는 게 희망이라면 희망.
양 투수 다 맥스 5이닝이다.
- 3회 말 좌익수 김소전부터 시작되는 타순입니다. 오늘 좌익수에 조영근 선수 대신 김소전 선수가 나왔습니다.
- 아무래도 수비를 강화하겠다는 뜻이겠죠. 조영근 선수를 지명 타자로 돌리고 수비 범위가 넓은 김소전 선수를 쓰면서 지키는 야구를 하겠다는 얘깁니다. 더불어 김소전 선수가 빠른 볼, 그것도 150킬로 이상의 빠른 볼에는 굉장히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 김소전! 우중간~ 우중간을 갈라놓습니다. 2루까지 2루에서 3루~ 3루는 가지 않습니다. 2루타! 3회 말 대한민국의 선두 타자가 2루를 만들어 내며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가져다 놓습니다.
- 이걸 말씀드리려고 했거든요. 지금 포크볼이었어요. 포크볼…….
일본의 선발 투수는 타석에 들어서서 보니 더욱 위압감이 느껴진다. 큰 키에 긴 팔. 어딘지 모르게 얍삽해 보이는 얼굴. 좋은 공 따위는 안 줄 듯한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타석에 들어서서 어젯밤 한국의 여우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시뮬레이션 결과와 전력 분석팀에 며칠째 붙잡혀서 동영상으로 본 데이터를 지워 버렸다.
나에 대해 뭘 아는지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눈을 씰룩이는 저 투수 놈에 대한 투쟁심만 불타오른다.
150을 던지든 160을 던지든 결국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끝나는 게임인데. 뭐든 던져 봐라. 170도 쳐줄 테니까!
투수의 입을 가리던 글러브가 내려간다. 투수판에 가지런히 발을 모으고는 팔을 높게 들어 와인드업을 수행한다.
주자도 없겠다 큰 동작으로 천천히 몸을 뒤로 젖히는 투수. 투수의 투구 폼을 보면서 배트를 잡은 두 손에 슬슬 시동을 걸 준비를 한다.
새총처럼 잡아당겨진 팔이 투수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 투수 머리 뒤로 사라진다. 팔과 함께 사라졌던 손이 팔꿈치 위치에서 까꿍 하고 나타나더니 흰 공이 발사된다.
직구 타이밍으로 중심 이동을 하다 없어진 공을 보고 찰나의 순간 동안 멈칫했던 팔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뽑아낸다.
무슨 공을 던질지도 모르겠지만 첫 만남의 초구부터 투수에게 지고 들어갈 수는 없다. 붕붕이여도 최소한 배트 돌릴 줄은 아는 놈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발사된 투수의 공이 순간 멈칫하고는 스르륵 가라앉는다. 각도 큰 변화구. 포크볼이다.
스윙을 하면서도 타이밍이 늦었다고 판단했는데 공이 멈칫하고 떨어지면서 조금은 타이밍이 맞아진다. 더군다나 떨어지는 공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야구 커뮤니티에서 내 별명 중 하나가 골프 했으면 PGA 우승자다.
- 떨어지는 공을 제대로 받아쳤습니다.
- 느린 화면 보시는 것처럼 사이토 선수의 포크볼 궤적대로 그대로 퍼 올리는 스윙을 해줬습니다. 맞을 때는 넘어가는 타구로 봤거든요. 타이밍이 아주 미세하게 빨랐네요. 막내가 하나 해줬으니까 형들도 뭔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스트라이크!”
8번 서준성 선배에게 던지는 공을 투수 뒤에서 보니 투수의 디셉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진다.
셋 포지션에서도 팔을 뒤로 뺐다가 한 번 꼬아서 머리 뒤에 숨기는 동작. 이러니까 공 던지는 순간이 안 보이지. 이런 건 적이지만 칭찬을 안 해줄 수가 없다.
칭찬은 칭찬이고 이렇게 뻔히 보이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으니 나도 내 할 일을 시작한다.
- 2구, 볼. 그사이 주자 3루. 3루, 세잎. 주자 3루 세잎. 김소전 3루까지 들어갑니다.
- 빨라요. 빠릅니다. 김소전 빨라요. 이번 시즌 도루 13개죠. 시즌 13개의 도루면 아마 일본 팀에서는 제법 도루 능력은 있어도 3루 단독 도루를 감행할 거라는 생각까지는 안 했을 거란 말이에요. 일본이 완전히 허를 찔렸어요.
투수가 던지는 투구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알겠는데 너는 공 던질 때까지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덕아웃에서부터 투수가 던지는 절차를 다 확인하고 있었는데 셋 포지션에서도 발 드는 높이만 낮아졌을 뿐 상체에서 일어나는 큰 동작은 다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뛰어야지.
욕심 없이 3루까지 내달려 머리부터 베이스로 들어가고 나니 한참 후에야 등에 글러브가 닿는다.
툭툭 털며 일어나 투수를 바라보니 아까까지 웃던 눈은 사라지고 눈으로 욕을 하고 있다. 내가 일본어는 모르지만, 저거 확실히 눈으로 욕하는 거 맞다.
내가 질 거 같냐. 축구 한일전만 져도 저녁을 안 차려주던 엄마 밑에서 자란 나다. 눈 깔아라.
- 주자 3루. 대한민국, 경기 초반 좋은 기회를 잡아냈습니다. 볼카운트 1-1에서 3구를 기다리는 서준성. 침착하게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 주자, 3루에서 욕심을 낼 필요 없어요. 착실하게 한 점씩 만들어 가면 되거든요. 우리 투수들도 전부 준비가 되어 있단 말이에요. 우선 선취점을 가져오는 타격을 해줘야 합니다.
타자의 배트가 나온다. 배트가 나오는 걸 보고 스킵으로 두 발을 떼 본다.
딱!
공이 맞았다. 내가 3루수 보다 훨씬 앞에 있으니 무조건 달려본다.
- 투수 옆을 지나 유격수. 유격수 홈 송구, 홈에서 세잎. 세잎입니다. 1 대 0. 대한민국 서준성의 야수 선택으로 한 점을 앞서 나갑니다.
- 김소전의 발로 만들어 낸 한 점이에요. 홈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고 봤는데 마지막에 슬라이딩이 절묘했습니다. 포수를 보고 바깥으로 돌아들어 갔어요. 김소전 웃네요. 아름다운 얼굴이에요.
들어오고 나서야 알았다.
들어왔으면 안 되는 타구였는데. 내 눈보다 빨랐던 반응 속도가 눈치도 없이 무작정 달려들었다.
야구를 몇 년을 했는데 아직도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어이가 없어서 혼자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와와와!”
“내 새끼 잘했어. 아주 잘했어.”
“너 랩터스 있긴 아깝다. 소닉스로 와라.”
“얘 소닉스 출신이야. 폭스로 와, 형이 잘해 줄게.”
이래서 야구가 좋다. 멍청한 플레이를 해도 결과가 좋으면 이 단순한 선수들은 무조건 좋아한다.
“헤헤, 선배님들 저도 가고 싶은데 저희 주장이 노려보시는데요. 헤~”
다른 팀 선수들한테 둘러싸인 나를 팔짱 끼고 바라보던 랩터스 주장이 한마디를 던진다.
“얘 말고 날 데려가. 4년 150억이면 FA에 도장 찍는다.”
음… 역시……. 저 정도 미쳐야 주장하는 거지.
- 8회 말. 오늘 1점 차 승부가 길어집니다. 양 팀 산발적인 안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본 투수가 또다시 교체됩니다.
3회에 나온 1점이 8회가 되도록 움직이지 않고 있다. 양 팀 다 결승전인 양 투수를 쏟아부으면서 버티는 경기. 보는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하는 사람은 정말 피가 마른다.
- 볼넷. 볼넷을 골라냅니다. 송철형 볼넷. 투 아웃 주자 1, 2루 타석에 김소전 등장합니다.
- 오늘 3타수 2안타. 첫 타석에 2루타, 지난 타석에 안타를 쳤지요. 두 번째 타석에서도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호수비에 걸렸어요. 그만큼 타격감이 좋다는 거거든요. 여기서 해결해 주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2사 1, 2루. 1루까지 채워졌으니 피할 데도 없고. 너는 무조건 승부를 해야 한다.
- 여기서 투수를 바꾸네요. 일본도 이토 선수로 투수를 바꿉니다.
- 한신의 마무리죠. 일본도 질 수 없다는 겁니다.
타석에서 물러나 바뀐 투수의 연습구를 지켜봤다.
감만 잡겠다는 연습구임에도 기세가 대단하다.
제구는 썩 좋아 보이지 않지만, 저 미친 구위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고. 시원시원하고, 못 칠 것 같고……. 아니, 내가 또 왜 부정적인 생각을…….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만 하자. 긍정, 긍정.
- 경기 속행됩니다. 견제. 1루 견제.
- 쓸데없는 행동이거든요. 지금은 타자와 승부를 해야지, 주자에게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에요. 우리 주자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투수가 반응을 하는 건데 투수가 좀 예민해 보이네요.
저놈. 의도가 애매하다. 나를 노리고 견제를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주자가 부담스러워서 견제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송철형 선배가 KBO 대표 똥차인데, 아니 그걸 몰라도 저 몸만 봐도 주루 툴 따위는 없다고 써 있는데… 뭐 하는 짓인지.
우선 너 뭐 할 건지 좀 보자.
- 초구, 빠집니다. 바깥쪽 멀리 빠지는 공. 타자 잘 골라냈습니다.
- 저런 공에 반응해 줄 필요가 없죠. 기다렸다가 좋은 공만 골라서 치면 됩니다. 김소전 선수 기다려야 해요.
도망가? 도망가려고? 눈은 나한테서 도망갈 거로는 안 보이는데? 하나 더 볼까?
- 2구 스트라이크. 이걸 잡아줍니다.
- 좀 멀다고 보이는데 잡아 주네요. 이걸 잡아 주기 시작하면 힘들어요. 경기 내내 저 코스 안 잡아 줬는데 이제 와서 잡아 주네요.
바깥에서부터 조금씩 조여 오시겠다? 내가 저거 못 칠 줄 알고 바깥에다 깔짝거리시겠다는 거지?
좋아. 나도 시즌 내내 놀고 있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겠어.
- 3구 파울. 3루 라인 바깥으로 넘어가는 파울입니다.
- 놔뒀으면 볼이라고 보입니다만 타이밍은 맞았거든요. 주심이 저쪽 공을 애매하게 판정하니까 타자가 나쁜 공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주심이 나쁘네요.
아, 대각으로 달려들면서 바깥쪽 공을 걷어냈는데 살짝 벗어났다.
빠졌어도 이걸 쳤어야 했는데……. 아… 아쉽네. 하나 더 던져라, 하나 더.
- 김소전, 4구 맞겠습니다. 8회 말, 주자 1, 2루. 대한민국, 약속의 8회에 김소전이 해줘야 합니다. 4구. 아, 맞았어요. 김소전 맞았습니다. 굉장히 아파하고 있습니다.
- 얼굴에 맞은 것 같은데요.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 김소전,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너가 선수를 확인하고 있는데 시간이 길어집니다. 구급차가 들어옵니다.
- 이런 일이 벌어지나요. 사실상 우리 팀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였는데.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얼굴에 맞았어요. 큰 부상이 아니어야 할 텐데…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한 발을 밀어 넣으면서 바깥쪽 공을 걷어내 봤지만, 아직도 충분히 힘이 안 실리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몸쪽을 포기하고 평소보다 반 발 더 안쪽으로 붙어서 시작한다.
바깥쪽 또 던지면 그대로 풀스윙. 몸쪽이면 커트다.
투수가 포수와 간결하게 사인을 주고받는다. 그리고는 슬쩍 나와 눈이 마주친다.
응? 잠깐… 너 나 왜 본 거냐?
투수의 슬라이드 스텝. 저 XX, 팔이 백스윙으로 들어가는데 또다시 나랑 눈이 마주친다.
타격의 시동을 걸었다 포기하고 몸을 뒤틀어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머리를 향해 날아온다.
내 몸쪽으로 테일링이 걸린 공이 고개를 돌리는 내 얼굴에 와서 부딪친다.
“으악!”
내 입에서 내 의지랑 상관없는 비명이 흘러나오고 배트를 집어 던진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등학교 때 어깨에 칼 댄 이후로 3일 이상 아파본 적이 없게 사랑으로 관리한 내 몸인데, 눈앞이 캄캄한 게… 어째… 당분간 운동 못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