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63화 (63/464)

# 63

63화 내부의 적, 분열 & 끼어들기 (3)

“후우~.”

“야. 인상 좀 펴라. 노친네들이 또 무슨 사고를 쳤기에 인상이 죽상이냐 ”

“죽상이라기보다는… 딱 그건데 영화관 들어가기 직전에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던 우리 형 얼굴.”

“그거 보다는 신나게 결제했는데 품절크리 당하면서 환불당한 표정이 더 가깝지 않냐 ”

그런 둘의 만담에도 여전히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던 정 수석차관은 다시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빌어먹을 유대인들의 뻘짓 때문에 쓸 만한 카드를 하나 날린 것 같아 그렇다. 소련이라는 카드는 끝내주는 카드인데….”

“소련이야… 일회용도 아니고 유통기한도 길잖아. 나중에 써 먹으면 되는 거 아냐 ”

“문제는 그 카드 받아줄 곳의 한도기준이 확 줄어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단 말이지… 나중에 쓱 카드 긁었는데 ‘한도초과입니다!’ 이런 소리 들으면 골 때리는 거잖아.”

정 수석차관의 설명에 벌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진짜 소련 때문인지 소련을 핑계로 카드깡을 긁는 건지 무지하게 따질 것 같기는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벌레와 정 수석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던 빨갱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자본주의 새끼들이 지들만 아는 소리하고 앉아있네. 그럴 거면 월가에나 가서 퍼마셔!”

잠시 후, 새로이 한잔 가득 맥주를 채워서 돌아온 세 사람은 다시금 ‘유대인의 대형사고’를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채 두 달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동안 20억 달러를 움직이다니 유대인은 유대인인가 ”

“달리 ‘세계의 흑막’이라고 불리며 음모론의 중심이었겠냐 ”

“인터넷도 없는데 어떻게 그리도 빨리 움직인 건지….”

“전신은 있잖냐….”

계속해서 이야기가 돌고 술잔도 도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떠올린 벌레는 빨갱이가 한쪽에 치워둔 신문을 다시 손에 들었다.

“술 먹다 말고 갑자기 신문은 왜 펼쳐 ”

“잠깐 생각이 난 것이 있어서 말이지… 흠… 흐흠….”

“술 먹다 말고 뭔 뻘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술맛 떨어지게….”

빨갱이의 타박을 귓등으로 흘리며 벌레는 신문에 정신을 집중했다.

‘LA 타임즈’의 기사 면들을 앞뒤로 오가며 무엇인가를 살피던 벌레는 신문을 도로 덮고는 정 수석차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노안. 이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 거지 ”

“무슨 기회 ”

“아직도 못 알아챈 거야 ”

“그러니까, 무슨 기회 ”

“너하고 너 밑에 있는 애들, 단체로 레이다 고장 났냐 이걸 못 알아챘어 ”

“그러니까 무슨 기회 ”

벌레는 주변을 슬쩍 살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가서 이야기 하자. 눈이 좀 많다.”

“그 눈들. 매번 외출할 때마다 보던 눈들이잖아. 갑자기 왠 유난이야 ”

“빨갱이 새꺄. 말 좀 들어라, 응 ”

갑자기 돌변한 벌레의 분위기에 빨갱이와 정 수석차관은 두말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둘러 세 사람이 사라지고 난 후, 근처 테이블에 앉아있던 부두 노동자 차림의 남자 셋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세 사람이 있던 테이블 옆을 지나 밖으로 나온 남자들은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테이블과 그 주변에는 아무 것도 남겨 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Mr.정이 오기 전, 온 이후로 다른 두 사람이 자리를 뜨거나 다른 이와 접선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일찍 자리를 떴다. 그것도 심각한 표정으로. 무엇인가 이상이 있다는 거다.”

“‘RED’가 내려놓은 신문을 보고 ‘BUG’이 이상행동을 보였습니다. 신문에 어떤 암호문이 실려 있었던 것 아닐까요 ”

“‘RED'가 신문에 어떤 조작을 하는 행동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RED'가 가게에 들어오기 전에 신문에 조작을 했을 경우는 또는 이미 신문에 조작이 가해져 있을 경우는 ”

“'RED'가 신문을 사는 가게와 이동경로에 감시역이 이미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가게에 들어가는 신문들도 사전에 다 검사를 해서 집어넣고 있습니다.”

부하들의 보고를 들은 남자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무릎을 꿇고 앉아 신발끈을 다시 묶는 시늉을 하며 생각을 정리한 남자는 결론을 내렸는지 다시 일어서서 걸음을 옮겼다.

“귀환한다. 감시 인력의 배치는 통상 수준으로. 특히나 ‘RED'를 비롯한 좌익 인물들의 감시는 놓치는 일이 없도록 ’Insiders'에게 주의를 주도록. 그리고 ‘RED’가 구입한 오늘자 LA타임즈에 관해 암호 해독실에 분석 요청을 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소령님.”

상황을 정리한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헤어져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    *    *

“갑자기 왜 그런 겨 ”

캠프로 돌아온 빨갱이는 벌레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벌레와 빨갱이를 비롯해 대한민국 육군 캠프에 있는 한국인들-21세기에서 온 이들이건, 광복군 출신이건, 하다못해 한국계 미국인들까지-에게 주말 외출은 나머지 닷새를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었다.

병사들을 훈련에 집중시키고, 군기를 유지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주말 외출 금지’였다. 다른 하나는 독립군 출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감봉’이었고.

빨갱이가 으르렁거리건 말건 벌레는 심각한 얼굴로 정 수석차관을 노려봤다.

“정말로 모르는 거냐 큰 기회가 왔다는 것을 ”

“그러니까 무슨 기회 ”

“여기 이 기사와, 이 광고들 안 읽어 봤어 ”

“어디 보자… 적성 자산 매각 기사와… 이사진 교체 공시… 전환사채 발행 공시 ”

심드렁한 얼굴로 벌레가 지적하는 기사와 광고를 보던 정 수석차관이 딱딱하게 굳었다.

“맙소사! 이걸 놓칠 뻔했다니!”

“'Fast Follower'가 사훈인 S그룹 출신 티내는 거냐 ”

“새꺄! 내가 하는 일이 한두 개 인줄 알아 지금 상황은 내 클론이 한 다스는 있어도 전부 과로사로 실려나갈 판국이야! 어쨌거나!”

신문을 움켜쥔 정 수석차관은 방문을 열고 전력질주를 했다. 정 수석차관이 달려간 곳은 주석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진 정 수석차관을 바라보던 빨갱이는 벌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사람 면전에서 대놓고 따를 시키고 앉아 있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스토리인지 얌전히 불어라. 안 그러면 오늘 여기서 살풀이 한번 거하게 할 테니까.”

“어차피 너는 물론이고 애들 도움도 필요하니까. 멱살은 놔라. 안 그러면 내가 네놈 살풀이 해버릴라.”

벌레의 말에 빨갱이는 멱살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팔짱을 낀 채 책상에 기대고 선 빨갱이가 노려보건 말건, 느긋한 몸짓으로 숨겨놓은 술병을 꺼낸 벌레는 술이 가득 담긴 잔을 빨갱이에게 건네고는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이 묶인 외래자본을 대상으로 토착자본이 공격을 시작한 상황이야. 이럴 때 놀면 뭐하냐 냉큼 숟가락 얹어야지.”

“토착자본 외래자본 ”

“토착자본은 미국 토종 자본… 그 유명한 록펠러 같은 양반들. 외래자본은 유럽에서 들어온 자본들. 역시나 너도 들어봤을 로스차일드 같은….”

“유럽 자본이라며 로스차일드는 유대 자본이잖아 ”

“유럽 자본이 유대 자본이라고 생각하면 계산은 쉬워… 조금 더 풀어서 지금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히틀러하고 손잡은 것이 들통이 나는 바람에 모조리 몰수가 되었던 유대인들의 자산들이 곧바로 매각이 되기 시작했어. 예상보다 무지하게 빠른 일이야. 거기에 더해 많은 회사들에서 이사진들이 물갈이가 됨과 동시에 전환사채를 발행하기 시작했지. 이건 유대 자본가들의 수족들이었던 이사진들을 쳐냈다는 소리야. 이렇게 유대인들의 팔다리를 꽁꽁 묶어놓은 상황에서 그들의 경제 지배력을 날리기 위해서 미국 행정부와 미국 자본가들이 작심하고 손을 잡았다는 소리다. 거기에 더해 ‘유대인 옹호’ 문제로 언론은 재갈이 물린 상황이야. 자~. 이 모든 것을 더해서 섞어보자. 전쟁특수, 언론이 마비되면서 권력에 대한 감시는 느슨해졌지, 더해서 추가로 돈 들어갈 구석도 줄었고. 마지막으로 정치권의 대폭적인 협조. 이게 다 섞이면 무슨 비빔밥이 나오느냐 우리가 알던 역사에서는 없었던 미증유의 자본전쟁, 아니 자본학살이 미국 한복판에서 벌어진단 소리야. 아마도 미국 행정부의 최종목표는 연준(FED)에서 유대자본을 축출하고 연준을 확실한 행정부의 수족으로 만드는 것이겠지. 토착자본들이야 파이를 독차지하게 되는 거고.”

“그럼 우리도 끼어들면 위험한 것 아냐 ”

“우리가 가진 돈 다 털어봐야 태평양에 소금 한 스푼 넣은 것밖에 안되는데 무슨… 우리가 필요한 것은 자본 이익이 아니라 기술이야. 그 점은 노안이도 잘 알고 있을 거고.”

“흐음….”

벌레의 설명에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빨갱이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벌레를 바라봤다.

“그런데 넌 어떻게 잘 아는 거야 아까는 아예 노안이 뺨따구를 왕복으로 싸대기 치던데 ”

“한때 주식 좀 굴려봤거든… 결과야 뭐… ‘한강 가즈아~’ 직전에 빠져나와서 PMC들어온 거고… 빌어먹을 비트코인….”

“비트코인까지 했었냐 ”

“아니, 비트코인 정보를 처음 접한 때가 비트코인 폭발하기 5년 전이었지. 전자화폐, 가상화폐에 관한 ‘뉴스위크’ 기사였는데… 가상화폐의 예시로 나온 것이 비트코인이었어. 살짝 관심이 갔는데 사용예시가 안 좋았지. 마리화나를 불법 구매하는데 구입대금으로 사용한 것이 비트코인이네 블랙마켓에서나 쓰일 것 같아 관심을 끊었는데 5년 뒤에 그렇게 터질 줄 누가 알았나. 그 때 미리 구해뒀으면 5년 뒤에 강남에 빌딩 두 채는 가지고 탱자탱자하고 있었을 텐데… 1942년까지 와서 뭐하자는 건지….”

‘이리저리 꼬아 만든 새끼줄을 모아모아 다시 꼬아 만든 왕 새끼줄’ 같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잠시 투덜거리던 벌레는 술잔을 단번에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거나! 애들 모으자!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했다! 돈 벌어야지!”

“미국 애들 노 젓는 거하고 우리 돈 버는 거하고 무슨 상관인데 ”

“노안이가 숟가락 얹을 때 우리도 좀 얹어야지! 노후 생각 안할 거냐 ”

*    *    *

“…해서,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팀장으로서 명령이 아닙니다. 저, 김진한의 개인적인 제안입니다.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매우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전원 참석하라.’는 비상 연락을 받고 모인 전(前)필코 세이프티의 직원들은 심각한 얼굴로 벌레의 얼굴을 바라봤다. 벌레의 설명을 들은 원 준장이 소름이 끼치는 듯 가볍게 몸을 떨었다.

“자본학살이라… 갑자기 97년의 악몽이 떠오르는군.”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이 무엇인가 ”

“우리들의 월급과 수당을 투자에 사용했으면 합니다.”

“월급과 수당을 ”

“그렇습니다. 21세기에서 1941년으로 떨어진 우리들입니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모두 고아나 마찬가지입니다. 보살필 가족도 없지만 보살펴줄 가족도 없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서 죽거나, 불구가 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죽느냐 사느냐의 도박을 통해서 가까스로 급여체계와 보훈체계를 보장받았습니다만, 가까스로 살아갈 수준밖에 안됩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캠프 근처 차이나타운의 홍루만 즐겁게 해주지 말고 말입니다.”

“괜찮기는 한데….”

벌레의 제안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다.

다들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속에 공통적으로 걸리는 것이 있었다. 다들 눈치만 살피는 가운데, 기갑파트 파트장인 남궁일호 소령이 총대를 맸다.

“다 좋은데… 만약 전사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김 팀장 말처럼 우리 모두 고아나 마찬가지야. 전사한 사람 몫의 원금과 이익금은 어떻게 되는 거야 ”

“그 부분은 저도 고민입니다만… 우선적으로 생각한 것은 장학재단입니다. 전사자 몫의 원금과 이익분을 모아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간 동료들의 명예도 살려주고 후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벌레의 설명을 들은 전(前)필코 세이프티의 직원들은 장고에 빠졌다. 침묵이 길어지자 빨갱이가 앞으로 나섰다.

“에이!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고! 바로 표결합시다!”

“그럴까 ”

“그게 낫겠네….”

바로 표결이 이어졌고, 전원 찬성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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