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62화 내부의 적, 분열 & 끼어들기 (2)
사흘 뒤, 넬슨 반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후버 국장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국장님. 프로브스키를 심문한 결과입니다.”
넬슨 반장이 내민 보고서를 펼쳐 들은 후버 국장은 절반쯤 읽어나가다가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유대놈들!”
“프로브스키 외에도 다른 라인이 더 존재할지 모릅니다.”
“이 비열한 배신자들! 빌어먹을 시오니스트들!”
온갖 단어들을 동원해 유대인들에 대한 욕설과 저주를 퍼부어 대던 후버 국장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넬슨 반장에게 손을 내저었다.
“나가 보게.”
“프로브스키 라인을 계속 팔까요 ”
“우선은 눈과 귀만 붙여놔. 혹시 모르니까 입단속 시키고.”
“알겠습니다.”
넬슨 반장을 내보낸 후버 국장은 잠시 계산기를 두들겨 보았다.
프로브스키만을 심문했는데도 알만한 유대 자본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넬슨 반장의 말처럼 다른 라인이 더 존재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었다. 후버 국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구미가 당기는 걸….”
꼬리 자르기와 가지치기만 잘 한다면 그의 주머니는 물론이고 영향력 또한 한 단계 더 강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문제는 저 대한민국, 아니 Mr.정인데….”
한국인들-정확히 말하자면 정 수석차관-은 자신이 손을 대기에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자신에게 유용한 카드로 써먹기 위해 줄을 댔던 리숭민은 정 수석차관에 의해 이용가치가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다.
물론, 후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다시 수면 위로 부상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수지타산이 너무 안 맞았다.
“내가 덮어버린다 해도, 그 작자라면 트루먼이나 다른 인맥을 통해 터뜨릴 것이 확실하단 말이지.”
이리저리 고민을 하던 후버 국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서류철과 겉옷을 챙겨들었다.
“우선은 백악관에 알려야겠군.”
* * *
후버 국장의 보고를 들은 루스벨트는 대노했다.
“샅샅이 캐내시오!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명령’이라는 천하제일의 명검을 손에 쥔 후버 국장은 미국의 정계와 재계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수십 명의 사람들이 FBI요원들에게 연행되어 조사실로 들어갔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도 높은 조사가 진행되었다.
결국, 입을 여는 이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전국에 있는 FBI의 조사실에 끌려 들어왔다. 그리고 후버 국장의 책상 위에 놓이는 서류철들은 점점 더 두꺼워졌다.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로군.”
전국에서 올라오는 보고서의 내용을 살핀 후버 국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보고서만 살짝만 살폈음에도 불구하고 정계, 재계는 물론이고 군부와 언론, 연예계까지 확대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난질을 친다
그건 후버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될 것이었다.
“장님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자진해서 늪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지.”
결론을 내린 후버 국장은 비서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
“서류들 챙겨. 백악관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 * *
“이런 빌어먹을 작자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 분노한 루스벨트의 노성이 집무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후버 국장! 이게 다 사실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천하에 이런 저주받을 작자들이 있나!”
욕설을 퍼부은 루스벨트는 인터폰을 눌러 비서관을 호출했다.
-네. 대통령 각하.
“경호실장을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잠시 후, 경호실장이 루스벨트 앞으로 달려왔다. 루스벨트는 분노에 찬 눈으로 경호실장을 노려봤다.
“지금 당장 백악관 직원 가운데 유대인들을 전원 직위해제 시키도록.”
“예 ”
“정보가 새고 있었다. 조사가 필요하네.”
“알겠습니다. 즉시 실행하겠습니다.”
루스벨트의 말을 알아들은 경호실장은 급히 루스벨트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경호실장이 사라진 다음, 루스벨트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후버 국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관련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도록 하고, 연관자들은 국가 반역죄로 즉시 구금하시오.”
“알겠습니다.”
“보고서가 완성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소 라디오 방송 시간에 맞출 수 있겠소 ”
“그 전에 완성해서 각하께 제출하겠습니다.”
“기대하겠소.”
후버 국장을 내보낸 루스벨트는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백악관 집무실 앞의 너른 마당을 바라보던 루스벨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 * *
1942년 9월 17일.
루스벨트가 직접 나온 라디오 방송은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렸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께 이런 소식을 알리게 되어 대단히 죄송한 마음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의 조국 미합중국과 동포들을 적에게 팔아넘기려던 유다와 같은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전비를 독일에게 넘겼고, 우리의 식량과 자원을 독일에게 넘겼고, 우리 군의 기밀을 독일에게 넘기려 했습니다! 이번 일을 기회로 저와 여러분, 우리 미합중국 국민들은 우리 미합중국의 승전을 위해 마음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라디오 발표를 하기 전까지 많은 심력의 소모가 있었는지 루스벨트의 목소리는 탁하고 힘이 없었다.
루스벨트의 짧은 연설이 끝나고 자리에 나선 백악관 대변인의 발표는 충격이었다.
- 미합중국의 자본과 자원, 군사 기밀을 빼내어 독일에게 넘겨준 스파이 조직이 검거되었다.
- 이들은 거의 전원이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오니스트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 이들은 재계와 군부, 언론을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해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 현재까지 파악된 것으로는 지난 7월에서 8월 사이, 약 10억 달러의 현금 자본이 독일로 넘어갔으며, 비슷한 규모의 금액이 남미의 지하자원을 구입, 독일로 넘겨지는 과정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금액은 1차 조사 결과이며 조사가 진행되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의 발표는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미국의 모든 국민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신문과 방송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기회를 놓칠 새라 FBI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주요 신문사들은 호외를 뿌렸고, 방송사들은 긴급 뉴스를 발표했다.
9월 하순이 되면서 히틀러와 손을 잡은 유대인들의 조직적인 행동이었음이 밝혀지자 미국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거기에 더해 중립국을 통해 입수된 독일의 선전 필름이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필름은 독일의 몰타 공략작전을 담은 것이었는데 거기에 나온 독일 공수부대원들이 문제였다.
왼쪽에는 갈고리 십자가를 움켜 쥔 독수리, 오른쪽에는 다윗의 별이 그려진 헬멧을 쓰고, 왼쪽 팔에는 다윗의 별이 새겨진 군복을 입은 독일 공수부대원들이었다.
결국,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앞과 뒤에서 제대로 얻어맞은 상황이었다.
분노한 미국인들에 의해 미국 전역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 회당, 기타 유대인 공동체 건물에 대한 린치와 테러가 벌어졌다.
* * *
1942년 하반기 미국을 뒤흔든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에 빗대어 유다 스캔들로 불리기도 하는 시오니즘 스캔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들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그 영향이 안 좋은 쪽이었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 특히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반유대주의는 일반상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렇게 굳건하게 자리를 잡은 반유대주의는 민주주의의 확산과 인권의식이 향상되면서 많이 희석되었지만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1995년. 2차대전 종전 50주년 기념 BBC다큐멘터리.
‘2차 세계대전. 그 거대한 변화의 역사’의 4화 ‘유대인-저주받은 주홍글자‘의 내레이션 한 토막.
* * *
졸지에 증오의 대상이 된 유대인들과 사태의 악화를 우려한 지식인들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분노에는 브레이크가 달려 있지 않았다.
“1938년 베를린에서 벌어졌던 ‘수정의 밤’이 1942년 뉴욕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위와 같은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던 뉴욕 타임즈의 논설위원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총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사건의 피해자인 뉴욕 타임즈는 물론이고 다른 언론사까지 나서서 경찰의 태업을 비난했지만, 뒤를 이어 튀어나온 FBI의 발표가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시오니스트들은 전쟁의 시나리오까지 만들고 있었다!”
FBI의 발표에 따르면 시오니스트들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1. 독일에 다량의 자본과 지하자원, 연합국의 군사 기밀 등을 제공하여 확전을 유도한 다음 전선을 고착시켜 장기전으로 유도한다.
2. 후방에서는 언론사들과 헐리우드의 영화사를 이용해 ‘1차 대전의 악몽’을 떠올리는 기사와 사설, 영화를 제작해 유포한다. 이를 이용해 ‘반전(反戰)’을 요구하는 사회여론을 만들어 정치권을 압박한다.
3. 장기전의 폐해와 반전 여론을 이용하여 독일과는 강화를, 이탈리아, 일본과는 조건부 항복을 받아낸다.
4. 중동과 아시아에 있는 영국 식민지들의 독립운동과 ‘반제국주의’를 외치는 소련과의 연계 위험성을 강조해 이스라엘의 건국과 향후 경제적 지원을 쟁취한다.
후버 국장의 노림수였는지, FBI의 발표가 있자마자 일본군이 인도에 상륙했다는 뉴스가 호외로 터졌다.
FBI의 발표와 뉴스를 들은 미국인들은 분기탱천해 길거리로 몰려나왔다.
- 우리는 유대인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다!
- 우리의 죽음은 조국 미국을 위한 것이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유대인을 축출하라!
온갖 반유대주의 구호가 쓰인 플래카드를 든 군중들이 구호를 외치며 길거리를 행진하는 가운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자신과 미국 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우리 미국정부는 설령 홀로 남아 전쟁을 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추축국과의 협상은 그 어떠한 것이라도 거부할 것이다! 추축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무조건 항복 뿐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악몽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행정명령 9066호’에 유대인들을 포함하는 것을 허용하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이로써 미국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모조리 사진과 지문등록을 하고, 거주지 이전이 제한되었으며, ‘성향이 과격한’ 이들은 가족 전체가 수용소로 끌려가야 했다.
거기에 더해 유대인들의 재산권 행사가 금지되었고 모든 자산이 동결되었다.
또한 독일에 자금과 자원 등을 지원한 것이 확실하게 판명된 유대인 부호들의 모든 자산들-하다못해 살고 있던 집까지-이 ‘적성자산’으로 분류되어 미국 정부에 몰수되었다.
미국을 강타한 반유대주의의 광풍은 ‘행정명령 9066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시오니스트들이 만들어낸 ‘전쟁 시나리오’로 인해 수많은 언론인, 사회운동가, 인문학 교수들과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배우들이 사상검증을 해야만 했다.
유대인 출신이거나, 조금이라도 유대인에게 호의적인 사설이나 논문, 또는 영화에 출연했던 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 * *
“이거야 원… 때 아닌 ‘매카시즘’이 난리다. 난리야. 쯧!”
주말을 맞이해 휴식을 취하던 빨갱이는 신경질적으로 신문을 접으며 혀를 찼다. 빨갱이의 말에 벌레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쟁 중이잖아. 사람들이 다들 제정신이겠냐 ”
“그렇기는 하지…. 뭐,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꽤 자주 봤던 장면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노안’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늦는 거야 같이 한잔 꺾자고 먼저 말한 인간이 잠수냐 ”
숙소에서 빨갱이가 열심히 씹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 수석차관은 김 주석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신문을 보시고 라디오를 통해 들으셨겠지만, 지금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이 말이 아닙니다. 미국 애들, 눈이 돌아버렸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에요! 우리라고 유대인들이 당한 상황을 안 당하리라는 장담을 못하는 상황입니다! 자나 깨나 입 조심하셔야 합니다! 옛말에도 있지 않습니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말말입니다! 주의에 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니까! 조금만 더하면 100번을 채우겠네 그려.”
“100번이 아니라 1,000번을 말하고 귀에 못이 박히는 한이 있더라도 유대인 꼴은 안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