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61화 (61/464)

# 61

61화 내부의 적, 분열 & 끼어들기 (1)

몰타에서 독일군과 영국군 사이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미국도 한바탕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 시발점은 우습게도 한반도함의 의무실에서 벌어진 사담이었다.

1942년 8월 10일.

워싱턴에서 잠시의 휴가를 얻은 류 중령은 LA에 와 있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쌓인 서류더미를 보면서 류 중령은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난 분명히 휴가를 받아서 쉬려고 온 건데….”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한반도를 포함한 9전단 소속 군의관들의 최고선임으로서 할 일이었기 때문에 류 중령은 미녀들이 몰려있는 LA의 해변을 코앞에 두고 미친 듯이 서류들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다.

결국, 이틀 동안의 철야작업 끝에 밀린 서류들을 처리한 류 중령은 커피 잔을 손에 쥐고 동료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죽은 이들이 나온 것은 안타깝지만 어쨌거나 큰 고비를 넘겼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선배님.”

“다들 건강은 이상 없지 ”

“예. 그건 그렇고 워싱턴은 어떻습니까 ”

“1940년대의 워싱턴이야 뭐… 촌스럽지. 정치한다는 양반들도 순진하고….”

“순진해요 ”

“자기들 욕심을 감추는 법을 모르더라. 순진한 도둑놈들과 사기꾼들이야.”

“하하하하!”

류 중령의 뼈있는 농담에 모여든 군의관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던 와중에 천연두에 관한 이야기가 도마에 올라갔다.

“그런데 천연두는 어떻게 기억하신 겁니까 ”

“그게 연방 상원의원 비서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다가 지나가던 사람을 보고 아차 싶었던 거지. 그러고 보니… 이 시대 의사들 처방전은 좀 위험천만하더라.”

류 중령은 프로브스키 비서관이 내밀었던 처방전을 예로 들며 이 시대 무분별한 투약처방을 성토했다.

“이 양반들의 처방으로 인해 생겨난 부작용들을 기록한 데이터 덕에 우리가 좀 더 안전한 투약 처방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할 말은 없지만, 마약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이미 아편에 빠진 중국의 경우를 보면서 마약이 인간을 어떻게 망가트리는지 잘 알았을 텐데 말이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1980년대까지 서구권에서 마약 통제는 많이 느슨했지요.”

“그러고 보니 각성제로 마구 뿌려지고 있던 필로폰에 대한 리포트는 잘 올라갔습니까 아직도 근처 미군부대에서 필로폰이 심심치 않게 나와서 그거 막느라 고생 중입니다.”

“그거 마셜 장군까지 나서서 금지시키는 공문을 내려 보냈을걸 아직도 돌아다녀 ”

“예.”

“고 제독과 주석에게 말해야겠네.”

이 시기에는 아주 약발 잘 듣는 각성제로 인식된 필로폰에 관해 이야기가 오가던 가운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던 군의관 하나가 다른 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저, 잠시 제 방에 좀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갔다 와.”

양해를 구하고 자신의 방에 다녀온 군의관은 심각한 표정으로 류 중령을 바라봤다.

“아까 그 상원의원 비서관이 상담한 처방전을 다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

“그거야 뭐….”

프로브스키 비서관이 건넸던 처방전에 적힌 약들의 이름들을 다시 이야기한 류 중령은 문제의 군의관에게 이유를 물었다.

“…대충 기억나는 건 이정도야. 무슨 문제가 있나 ”

“혹시 이 약재들이 같이 있었습니까 ”

군의관이 메모지에 적은 약재 목록을 확인한 류 중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있었어. 왜 ”

류 중령의 확답에 문제의 군의관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거… 히틀러의 처방전입니다!”

“뭐!”

대답을 들은 모든 군의관들은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자신들만 알고 넘길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군의관들은 바로 고 제독을 찾아갔다. 군의관들의 보고를 받은 고 제독은 심각한 얼굴로 군의관들을 바라봤다.

“이게 히틀러의 처방전이 확실한 건가 ”

“그렇습니다.”

문제의 처방전이 히틀러의 것이라는 사실을 제일 먼저 발견한 군의관은 한 권의 책을 내밀었다.

“‘20세기 역사를 결정한 지도자들의 건강.’이라는 책입니다.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20세기, 특히 2차 대전 당시 전쟁 당사국들의 정상들의 건강 상태가 그들이 내린 정치적 결단과의 상관관계를 가볍게 풀어 쓴 서적입니다. 책갈피를 끼워 둔 곳을 보시면 히틀러의 먹은 약들의 처방 목록이 적혀 있습니다.”

“흐음… 이거 약만 먹어도 배부르겠군.”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약재 리스트를 본 고 제독의 평가에 류 중령이 메모지를 내밀었다.

“이건 제가 워싱턴에서 받은 처방전입니다.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왼손에 들린 책과 오른손에 들린 처방전을 살피던 고 제독은 책과 처방전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주석을 만나봐야겠군.”

*    *    *

고 제독의 요청을 받은 김 주석은 바로 주요 관료들과 정 수석차관을 호출했다. 고 제독의 이야기가 끝나자 김 주석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과연… 이걸 뭐라고 판단을 내려야할지 난제로군.”

“그렇습니다.”

“단순히 히 총통의 처방전을 입수한 이가 호기심에 물어봤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랬다면 히틀러의 처방전이라고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그럼 내부의 첩자 ”

“첩자면 정보를 빼내지, 의료상담을 하겠습니까 ”

긴 시간동안 주석과 각료들, 그리고 고 제독과 정 수석차관까지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지만 점점 오리무중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결국,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 머리가 아파진 정 수석차관이 주석에게 의견을 상신했다.

“주석님, 비전문가들이 모여서 답이 안 나오니 전문가를 부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

“전문가 ”

“최 중령이 있지 않습니까 ”

“아차! 그 친구가 있었습니다! 바로 부르겠습니다!”

정 수석차관에 반색을 한 고 제독은 바로 기무사 소속 최 중령을 호출했다.

*    *    *

“허어….”

히틀러의 처방전과 그 것을 입수하게 된 저간의 사정을 들은 최 중령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고심을 거듭하던 최 중령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이 처방전을 건넨 프로브스키 비서관은 어떤 사람입니까 ”

“연방 상원의원 비서관이라고 했네.”

“어디 출신… 아니, 아니. 어느 인종 계열의 미국인입니까 ”

“잠시만 기다리게.”

최 중령의 질문에 고 제독은 류 중령을 호출했다. 회의실에 도착해 질문을 들은 류 중령은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대계라고 언뜻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도대체 유대계가 왜 ”

“히틀러를 독살시키려고 그러나 ”

“히틀러 근처에 유대인이 있을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

류 중령의 대답에 사건은 점점 더 오리무중 속에 빠져 버렸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을 찾지 못한 정 수석차관이 최 중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령님. 이 처방전, 기밀로 묶어야 할 사안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공개토론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차라리 미국에다 떠넘기고 손 터는 것이 제일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

“류 중령의 주위에는 항상 미국의 눈이 있었을 겁니다. 처방전의 내용까지는 모른다 하더라도 누구를 만났다는 것까지는 이미 OSS, 아니면 FBI의 후버 국장의 귀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처방전의 내용, 아니 처방전의 주인이 히틀러란 사실이 밝혀지면 우리가 똥물을 뒤집어 쓸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가 알던 역사와 많이 틀어져 버린 지금입니다. 미국에 넘기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좋습니다.”

최 중령의 대답을 들은 김 주석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최 중령의 의견이 제일 좋은 것 같소이다. 어떻게들 생각하시는가 ”

“그게 제일 낫다고 생각합니다.”

“동감입니다.”

다른 이들이 모두 찬성의 뜻을 밝히자 김 주석은 정 수석차관을 바라봤다.

“정 수석차관. 자네가 워싱턴에 다녀와야겠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    *    *

1942년 8월 14일. 워싱턴.

“국장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 수석차관이 방문하셨습니다.”

“안으로 모시도록.”

잠시 후, 정 수석차관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후버 국장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정 수석차관.”

“오랜만입니다. 후버 국장님.”

가볍게 악수를 나눈 후버 국장은 정 수석차관에게 테이블 맞은편의 자리를 권했다.

다시 의자에 앉은 후버 국장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정 수석차관을 바라봤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

“조금 상담을 받을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상담 그거라면 트루먼 의원이 더 적격 아닙니까 변호사 출신이니 말입니다.”

“조금 다른 문제라서 말입니다.”

짧게 대답한 정 수석차관은 가방을 열고 서류철을 꺼내 손에 쥐고는 후버 국장을 바라봤다.

“얼마 전에 백악관에 나와 있는 우리 쪽 군의관이 미국 연방 상원 의원의 비서관과 만난 일을 아실 겁니다.”

“호오 그랬었나요 ”

‘젠장! 다 알고 있었군! 스토커가 따로 없어!’

순간적으로 멈칫하던 후버 국장의 몸짓을 통해 국장이 이미 알고 있었음을 확인한 정 수석 차관은 후버 국장과 마찬가지로 천연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비서관이 ‘유럽에 사는 친지’의 건강상담을 하고 싶다면서 그 ‘친지’의 처방전을 보여 줘서 우리 군의관이 상담을 해 줬답니다.”

정 수석차관의 설명에 후버 국장은 조금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요 그 의료상담이 문제가 되었나요 그렇다면 역시 트루먼 의원이 더 적격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이번에 그 군의관이 휴가를 받아 LA에 와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말입니다. 그 친지를 위한 처방전이 히틀러를 위한 처방전이더군요.”

“뭐요!”

정 수석차관의 말에 후버 국장의 얼굴에서 심드렁한 표정이 사라졌다.

다급하게 일어난 후버 국장은 정 수석차관의 손에서 빼앗듯이 서류철을 건네받아 펼쳐 들었다.

‘그것 참 꼬시다!’

처음 만남서부터 계속해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던 후버에게 한방 먹인 희열을 속으로 감추며, 정 수석차관은 ‘난 아무것도 몰라요!’란 표정과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 갔다.

“그 군의관의 설명에 따르면 그 비서관, 유대계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유대계가 왜 히틀러의 처방전을 갖고 있는 걸까요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국장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정 수석차관의 말에 떫은 감을 씹은 얼굴을 한 후버 국장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고, 고맙소이다. 내가 알아보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곧 좋은 소식을 기대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려드리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초대형 폭탄을 던져놓은 정 수석차관이 사무실을 나가자 후버 국장은 인터폰의 호출버튼을 눌렀다.

-예.

“넬슨 반장보고 나한테 오라고 해.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잠시 후, 넬슨 반장이 도착하자 후버 국장은 차가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지난번에 류 중령을 만난 상원의원 비서관이 누구인지 기억하나 ”

“플로브스키 비서관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넬슨 반장. 자네가 아일랜드계던가 ”

“그렇습니다.”

넬슨의 대답을 들은 후버 국장은 넬슨 반장에게 서류철을 내밀었다.

“방금 전, Mr.정, 그 작자에게 한방 먹었다. 서류철에 있는 그 처방전이 그날 플로브스키가 한국 군의관과 상담을 하게 만든 처방전이라고 한다.”

“이 처방전의 내용과 플로브스키가 가진 처방전의 내용이 같은지, 그리고 누구 것인지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까 ”

“겨우 그 정도면 내가 한방 먹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 처방전, 히틀러의 것이다.”

“예 ”

“지금 즉시 수사반을 구성해 플로브스키를 탈탈 털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먼지 하나까지 다 털어 내라.”

“알겠습니다.”

“만일의 경우도 있으니 수사반에서 유대인은 철저히 배제하도록.”

“알겠습니다!”

넬슨을 내보낸 후버 국장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빌어먹을! 이걸 알아채지 못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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