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화 몰타 공방전 (4)
1942년 9월 12일.
런던, 전쟁청(War Office).
“몰타 작전의 1차 보고서입니다.”
“후우~”
비서가 건넨 보고서를 살피던 처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서의 내용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전멸’이었다.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지만 여전히 답답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처칠은 회의실에 모인 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겠소 ”
처칠의 물음에 회의실에 있는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입을 다문 채 다른 이들의 눈치만을 살피는 가운데 처칠이 그들을 닦달했다.
“말들 좀 해보시오!”
처칠의 닦달에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지난 회의에서 몰타의 포기를 주장했던 해군 장성이었다.
“당분간은 방어 우선의 작전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당분간이라면 어느 정도요 ”
“대서양과 북해의 함대에서 함선들을 추려 지중해로 보낼 때까지입니다.”
“지브롤터에 있는 함대를 우선 보내면 어떻겠소 ”
“지브롤터에 있는 함대의 규모는 이번 몰타 작전에 동원된 함대 규모입니다. 그들까지 잃어버린다면 지중해는 두 번 다시 손에 넣을 수 없게 됩니다.”
“허어….”
처칠은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그의 귀에는 분노한 영국국민들의 노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러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목이 매달리겠군….”
처칠이 나름의 농담을 던졌지만 그의 농담에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닥까지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처칠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야 했다.
“그런데 독일 놈들은 어디에서 이런 대규모의 공군 세력을 뽑아온 것이오 동부전선은 아니겠고… 도버 너머의 부대가 확실하겠지 ”
“그건 확실합니다. 런던의 시민들이 요 며칠 숙면을 취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처칠의 농담에도 불구하고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회의실의 분위기는 공군 장성의 가벼운 농담에 조금 밝아졌다.
“그럼 이 기회를 살려 독일에 대한 야간공습을 강화하는 것은 어떨까 ”
“글쎄요….”
처칠에 제안에 영국 공군의 장성들은 말을 아꼈다.
“어떤가 해리스 사령관.”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칠의 지목을 받은 아서 T.해리스 폭격기 사령부 사령관은 즉답을 회피했다. 그런 해리스의 대답에 처칠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평소의 사령관답지 않군 ”
“야간 공습 강화라는 것이 명령이 떨어진다고 바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야간 폭격에 참가했던 조종사들의 보고서를 보면 독일의 야간 방공능력이 약화된 흔적이 없다는 보고가 일관되게 올라왔습니다.”
“그런가 알겠네. 아쉽게 되었군.”
해리스의 대답에 처칠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결국은 당분간은 수세라는 것인가 ”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몽고메리에게서 온 연락은 ”
“엘 알라메인 근방에서 공방 중이라는 보고가 왔습니다.”
“아직도 ”
“롬멜의 방어가 매우 완강하다고 합니다.”
“골치 아프군. 좀 더 공세를 강화하라고….”
“그건 안 됩니다. 수상각하!”
몽고메리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하라는 처칠의 말을 끊은 것은 예의 해군 장성이었다. 해군 장성은 처칠에게 작금의 상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지중해 함대가 재건될 때까지 아프리카 전선에 보급이 쉽지가 않습니다! 불필요한 공세는 물자만 낭비할 뿐입니다. 독일군의 보급능력은 강화된 반면에 우리의 보급능력은 약화가 아니라 고사지경에 빠진 상황인 것입니다! 무의미한 공세는 아프리카 전선에 있는 우리 군의 전력약화는 물론이고 위기상황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Bloody hell!"
해군 장성이 지적한 현실에 처칠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처칠을 비롯한 회의의 참석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궁리했지만, 결론은 단 하나였다.
“미국이 좀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미국을 채근해야 합니다.”
결국, 처칠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외무부에 말해서 최대한 빨리 루스벨트와의 만남을 성사시키도록 해 보지.”
바로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비서가 달려 들어왔다.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 ”
처칠의 물음에 비서관은 전신용지를 처칠에게 내밀었다.
“인도에서 반란이 벌어졌습니다! 인도에 일본군이 들어왔습니다!”
“뭣!”
의자에서 튕기듯이 일어난 처칠은 비서의 손에서 빼앗듯이 전보문을 건네받았다. 떨리는 손으로 내용을 읽은 처칠은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오, 신이시여….”
* * *
1942년 9월 3일. 베를린.
초상집이 된 런던과 달리 베를린은 잔칫집이 된 분위기였다.
“하하하하!”
작전 개시 다음 날이 되자마자 ‘몰타를 손에 넣었고, 현재 잔적 소탕중’이라는 현지 상륙부대 지휘관의 보고가 히틀러에 손에 들어왔을 때, 히틀러는 파안대소를 하며 손에 쥔 종이를 흔들었다.
“이 소식을 들었을 처칠의 얼굴이 보고 싶군!”
그리고 며칠 뒤인 9월 10일, 영국의 고속전함 바함을 위시로 한 영국군의 함대가 궤멸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괴벨스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독일 공군의 위대한 승전소식’을 발표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나온 뉴스를 들은 독일 국민들은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또한 이번 승전에 관계된 이들에게 대대적인 포상을 수여한 히틀러는 총통관저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귀관들의 공로가 매우 크다!”
몰타 공방전의 주역인 서부 전선 공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모인 연회석상에서 히틀러는 지휘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공로를 치하했다.
애애애앵~
“공습입니다!”
“모두 다 방공호로!”
한창 연회의 흥이 오를 무렵, 난데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히틀러를 비롯한 제3제국의 중추인물들은 총통관저 지하의 방공호로 다급히 움직였다.
방공호에 도착한 히틀러는 뒤따라 들어온 관료들과 공군의 지휘관들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처칠의 심기가 아주 사나운 모양이로군.”
“파티를 훼방 놓다니 신사답지 못합니다!”
“처칠이 신사였던가 깡패 두목이지!”
“하하하하!”
폭격을 피해 방공호로 대피했지만 히틀러와 사람들은 농담을 던지며 웃어댔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웃음소리가 가라앉자 히틀러는 진지한 얼굴로 공군지휘관들을 바라봤다.
“지금 이 상황을 봐서 알겠지만 영국은 끈질기다! 거기에 더해 저 그루지아의 백정놈도 끈질기지! 거기에 조만간 미국도 모습을 드러낼 거다. 저 미국이 말이다!”
히틀러가 미국을 언급하자 방공호 내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히틀러는 공군의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몰타의 전투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승리를 위해서 강력한 공군은 필수이다! 그렇다면 계속된 승리를 위한 강력한 공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말하라!”
히틀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갈란트가 앞으로 나섰다.
“가장 시급한 것은 더욱 많은 파일럿들이 필요합니다.”
“파일럿들이 전투기나 폭격기가 아니라 ”
“이번 몰타 전투를 위해 서부 전선을 맡은 공군의 1/3이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겨우 1/3만이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목표로 한 야간 공습이 멈춰 섰고, 방공 업무도 가까스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총통 각하께서 말씀하신대로 조만간 미국이 끼어들 것이 확실한 상황! 그 전에 미리 인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밀히 원수 ”
갈란트의 발언에 히틀러는 공군의 최고 책임자인 밀히 원수를 바라봤다. 히틀러의 시선을 받은 밀히 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란트 총감의 말이 맞습니다. 총통각하.”
“지금의 훈련시설로는 부족하다는 것인가 ”
히틀러의 물음에 갈란트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지금의 훈련시설로는 전선에서 상실하는 파일럿들의 자리를 메우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총통각하.”
갈란트의 대답에 히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상신하도록. 바로 결재를 해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총통각하!”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히틀러의 물음에 다시 한 번 갈란트가 앞으로 나섰다.
“새로운 전투기입니다, 총통각하!”
“이보게, 총감….”
갈란트가 ‘새로운 전투기’를 언급하자 밀히 원수는 작은 목소리로 갈란트를 만류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히틀러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전투기 ”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이미 공군에는 뛰어난 성능의 전투기가 있는 걸로 아네만 ”
“필리핀과 도쿄에서 모습을 드러낸 미국의 터빈엔진 장착 폭격기를 기억해주십시오! BF-109나 FW-190으로는 미국의 터빈엔진 폭격기를 막지 못합니다, 총통 각하!”
“그렇군. 그게 있었군….”
갈란트의 말에 히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란트는 필사적으로 히틀러를 설득해 나갔다.
“미국이 필리핀과 도쿄에서 호위기 없이 폭격작전을 벌였던 것은 그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전투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는 우리 독일 역시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미국이 유럽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그 고속 폭격기를 대량으로 생산했을 때일 겁니다! 미리 방비를 해야 합니다!”
“흐음….”
갈란트의 설명을 들은 히틀러는 고심에 잠겼다. 잠시 고민을 하던 히틀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야 원 미국이 문제로군…. 바다 건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나 유대 놈들은 뭔가 할 것 같더니 갑자기 조용해졌고… 어쨌거나, Herr. 슈페어.”
“예, 총통각하.”
“내가 명령한 터빈엔진 장착 폭격기의 개발과 동시에 터빈엔진 전투기까지 개발과 생산이 가능할 것 같소 ”
“총통각하의 명이시라면.”
“요즘의 자네답지 않은 대답 말고. 그냥 솔직하게 말하게.”
히틀러의 명령에 슈페어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대답을 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기체 설계부터 엔진 설계 및 제작까지 각 항공기 제작사들이 자체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전투기 동시개발은 시간과 자원의 낭비입니다. 따라서 폭격기와 전투기 양쪽 모두 시제안 가운데 최고의 성능을 가진 단 한 기종만을 선택해 모든 제조사에서 대량으로 생산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제조사들은 반발이 심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통각하의 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제조사들이 제조사를 불문하고 단 한 종류를 똑같이 생산한다 ”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생산능력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슈페어의 단호한 대답에 히틀러는 침묵에 잠긴 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히틀러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슈페어와 공군의 지휘관들은 초조해져만 갔다.
“좋다!”
결국 히틀러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고함을 질렀다.
“슈페어!”
“옛. 총통각하!”
“지금 즉시 항공기 제조사에 공문을 보내도록! 내용은 터빈엔진 폭격기에 이은 터빈엔진 전투기의 개발이다! 시한은 앞으로 6개월! 승자는 단 하나! 탈락자들은 그 즉시 선정된 기종을 공동 생산한다! 따지고 싶으면 나한테 직접 오라고 해! 미국식 무한 경쟁이다!”
“야볼(Jawohl)!"
* * *
‘미국 공포증’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최고상층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던 사고방식이었다.
물론 개전 전부터 히틀러를 위시로 한 독일의 최고상층부는 미국의 개입을 최대한 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미국의 개입이 확실하게 되자, 히틀러는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관련된 산업부분을 모두 미국식 대량생산 체제로 변환시켜버렸다.
하지만 그 체제는 미국식이 아니라 오히려 스탈린의 소련이 선택한 대량생산체제에 가까웠다.
- 1995년. 2차대전 종전 50주년 기념 BBC다큐멘터리.
‘2차 세계대전. 그 거대한 변화의 역사’의 3화 ‘대량생산-가혹한 경쟁’의 내레이션 한 토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