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57화 몰타 공방전 (1)
1942년 8월 5일. 베를린.
“요즘은 아주 기분이 좋군. 두통도 덜하고….”
히틀러는 요즘 들어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슈페어의 충고를 받아들여 주치의를 모렐에서 다른 이로 바꾼 이후 두통이 많이 가라앉았다.
거기에 더해 전선에서 들어오는 소식도 그의 즐거움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전선에 투입되면서 전선 유지에 숨통이 트였다. 비록 4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거의 벼락치기로 몰아치다시피 받은 군사훈련을 받은 상황이었지만 절박한 상황에 몰려있었던 유대인들의 감투정신은 매우 뛰어났다.
덕분에 동부전선은 모스크바 후퇴의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금 소련군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바바롯사 작전 초기와 달리 독일군은 보급선의 확충에 신경을 쓰며 진격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 지난 진격 때와 달라진 점이었다.
북아프리카 전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토브룩을 수복한 다음, 엘 알라메인까지 진격을 하려는 롬멜에게 히틀러의 친필 명령서를 소지한 친위대 장교들이 급파되었다.
‘내가 허가하기 전까지 현 위치 절대 사수. 이것은 나, 아돌프 히틀러의 절대 명령이다.’
친필 명령서를 읽은 롬멜의 사나운 눈빛을 받은 친위대 장교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총통 각하께서는 장군이 거부할 경우 즉각 베를린으로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다. 각하의 명령이시니 따라야겠지. 나가 보도록.”
“총통각하께서는 소관들이 장군의 주변을 24시간 호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빌어먹을….”
친위대 장교의 대답에 롬멜은 이를 갈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난 6월에 있었던 대숙청의 소식을 들은 그로서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북아프리카 전선은 멈췄다.
신임 영국군 사령관으로 착임한 몽고메리는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위해 물자를 쌓아 두며 방어에 몰두하고 있었고, 롬멜 역시 새로이 도착하는 병사들을 훈련시키며 방어선을 굳혀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알지 못했지만 이는 더욱 커다란 충돌을 예견하고 있었다.
한편, 유대인들을 동원하는 것으로 재미를 본 슈페어와 독일 군부는 점령지 정책의 변화를 계획했다. 초안을 작성한 슈페어는 히틀러를 찾았다.
“오! Herr. 슈페어! 어서 오게!”
“안녕하십니까. 총통각하!”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인가 ”
“독일군의 전력강화를 위한 정책의 초안입니다. 각하의 현명하신 판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줘 보게.”
서류를 건네받은 히틀러는 돋보기를 끼고는 서류를 찬찬히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꼼꼼히 서류의 내용을 읽은 히틀러는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슈페어를 바라봤다.
“유대인에 이어서 슬라브인이라… 꼭 필요한 일인가 ”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은 같은 슬라브라고 해도 소련에 대해 적개심이 강합니다. 이를 이용하면 우리에게 유용합니다. 거기에 더해… 지원한 이들에게도 유대인과 똑같이 소련 내부에 토지 획득권을 주고 나중에 그들을 소련 지역으로 이주시키면 됩니다. 그들을 동쪽으로 밀어내고 그들의 땅에 우리 독일 국민들이 이주하면 되는 겁니다.”
“밀어 낸다… 흐음….”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면 소련군 포로에서도 최대 200만의 병력을 뽑아낼 수 있다는 군부의 보고입니다.”
“소련군 포로에서 괜히 적에게 총을 쥐어 주는 것 아닌가 ”
“도시 출신의 병사들이 아니라 농촌 출신의 병사들 위주로 구성하면 됩니다. 포로를 심문한 조사반의 보고서에 따르면 1930년대 스탈린이 집단농장을 조성하면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있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농촌 출신 소련군 포로들 사이에 반 스탈린, 반 공산당 기조가 강합니다.”
슈페어의 보고에 히틀러는 파안대소를 했다.
“하하하! 그 그루지야의 백정놈이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되는군! 아하하하하!”
속이 시원하다는 듯 파안대소를 한 히틀러는 슈페어가 내민 기획안에 멋들어지게 사인을 했다.
“허가한다. 단, 포로들의 경우 혹시 모르니 처음 구성하는 부대는 최대한 잘게 쪼개서 운용하도록. 그들의 전과와 충성도를 보고 운용규모를 다시 조정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결재를 바랍니다.”
“줘보게… 흐음… 자네가 고집 부리던 그 총인가 ”
“예. 실험적으로 생산된 소총을 사용한 일선 부대의 평가입니다.”
“흐음….”
슈페어의 설명에 히틀러는 다시금 진지한 얼굴이 되어서 서류를 살폈다.
슈페어가 고집을 부린 총은 다름 아닌 훗날 'StG44'로 불릴 소총이었다. 슈페어가 처음 기획안을 올렸을 때, 히틀러의 반응은 원래의 역사와 똑같았다.
“Kar98K에 사용하는 탄환 생산과 전선 보급에 혼란을 줄 수 있으니 불허한다!”
하지만 슈페어는 굴하지 않고 생산과 채용을 히틀러에게 상신했다.
“소련 공산당 놈들의 인해 전술에는 대량의 탄환을 빠르게 발사할 수 있는 총기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기관총은 비싸고 기관단총은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입니다!”
“Kar98K에 사용하는 7.92mm탄 5발 제작에 소모되는 자원이면 7.92mm Kruz탄 8발을 만들 수 있습니다!”
“MP40부터 Kar98K까지 이 총으로 대체를 하게 되면 전력 상승은 물론이고 자원절약까지 가능합니다!”
슈페어는 틈만 나면 히틀러를 찾아와 신형 자동소총의 채용을 상신했다.
슈페어가 말한 이점에 혹하고, 매번 찾아와 징징거리는 슈페어에게 질려 버린 히틀러는 실험적으로 소량 생산한 다음 전선에서 사용 평가를 할 것을 명령했다.
“폭발적인 호평이로군….”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히틀러는 슈페어를 노려봤다.
“Herr. 슈페어. 정말로 이 총으로 승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적어도 병사 대 병사의 전투에서는 밀리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Herr. 슈페어. 승리는 물론이고 전선 보급에 차질을 주지 않겠다고 확신하는가 자네의 목을 걸 정도로 ”
히틀러의 경고에 슈페어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른 침을 삼킨 슈페어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제 목을 걸겠습니다!”
슈페어의 대답에 히틀러는 피식하고 웃더니 서류에 사인을 했다.
“조심스럽기로 소문난 Herr. 슈페어가 자기 목을 건다니 믿어 보지. 그건 그렇고 이 총의 이름은 정해졌나 기관단총도 아니고 소총도 아니지 않나 ”
“아직….”
“그래 흐음….”
콧소리를 내며 잠시 생각을 하던 히틀러는 서류철을 펼치고는 제일 상단에 휘적휘적 펜을 놀렸다.
‘Sieg Gewher'(승리소총)
원래 역사의 StG-44가 아닌 SG-42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1942년 8월 20일. 베를린.
“총통각하. 빌헬름 카이텔 총장과 밀히 원수가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잠시 후, 비서의 안내를 받아 두 명의 장성이 히틀러의 책상 앞으로 걸어왔다. 두 사람의 경례를 받은 히틀러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
“새로운 작전에 대한 결재를 받으러 왔습니다.”
“새로운 작전 줘 보게.”
카이텔 총장이 내민 서류철을 건네받은 히틀러는 표지를 펼치자마자 두 사람을 노려봤다.
“몰타를 점령하자고 ”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그럴 이유가 있나 ”
“북아프리카 전선과 지중해의 안정을 위해서입니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라… 빌어먹을 무솔리니….”
북아프리카와 지중해가 언급되자마자 두통이 재발한 히틀러는 무솔리니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를 갈았다. 무솔리니의 섣부른 도박이 부른 폐해로 인해 북아프리카와 지중해는 독일군의 계륵이 되어 있었다.
“북아프리카와 지중해를 포기할 수는 없겠지 ”
“동부 전선의 아래쪽이 위험해집니다.”
“흐음...”
서류를 읽어나가던 히틀러는 서류를 내려놓은 채 두 사람을 노려봤다.
“이런 문서가 아닌 자네들의 직접적인 설명을 듣고 싶네. 왜 몰타인가 ”
“몰타를 손에 넣으면 아프리카와 지중해를 완벽하게 우리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이텔 총장과 밀히 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 몰타는 독일, 이탈리아에서 북아프리카로 가는 수송로와 영국에서 북아프리카로 가는 수송로의 교차점과 같다.
- 이 교차점을 손에 쥐면 적국의 목줄을 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독일 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의 적극적인 공세로 고사지경에 도달했던 몰타의 영국 공군은 현재 서서히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
반대로 항공기의 성능에 따른 제약 문제와 인력 수급 문제로 인해 독일 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은 공세를 확대하는 것에 애로사항이 있다.
- 몰타를 손에 넣게 되면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전선의 전세가 역전된다. 판테렐리아와 시칠리아, 몰타가 연결되면 영국군은 심각할 정도의 피해를 입어야 지중해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 영국의 보급망이 차단되면 북아프리카 전선의 영국군의 전력 또한 약화된다. 거기에 더해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향하는 아군 보급선단의 안전이 확보되면서 북아프리카 전선 보급의 효율이 올라가게 된다.
이는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말이 된다.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수에즈 운하를 독일이 장악할 수 있다.
이는 동맹국인 일본 점령지와 보다 빠르고 대규모로 운송이 가능한 해운이 가능해진다는 소리이다.
-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이라크 지역의 키루쿠크 유전과 페르시아 지역의 유전지대까지 도모할 수 있다. 이는 루마니아 유전에 의지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비해 좀 더 안정적인 원유 입수 경로를 확보하게 된다는 소리이다.
- 페르시아 지역을 점령한다면 소련을 향한 또 다른 진격로가 만들어진다. 이는 동부 전선에 가해지는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다.
“좋군. 좋기는 한데 말이지….”
설명을 다 들은 히틀러는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했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며 서류를 내려다보던 히틀러가 카이텔과 밀히를 바라봤다.
“이 작전, 실행할 병력은 있나 ”
“공수부대(Fallschirmjager)의 투입을 허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총통 각하.”
지난 크레타 전투에서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공수작전 금지된 공수부대의 해금을 요청하자 히틀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공수부대 ”
“몰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입니다. 총통각하.”
“병력은 있고 ”
“제 1 유대 공수사단이 훈련 중에 있습니다.”
“유대 공수사단 벌써 낙하 작전이 가능할 정도로 훈련이 된 건가 ”
“아닙니다. 글라이더를 동원할 것입니다.”
“흐음….”
밀히의 대답을 들은 히틀러는 고심에 잠겼다. 한참을 묵묵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히틀러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허가하지. 오랜만에 팔시름예거(Fallschirmjager)의 위용을 보여주도록.”
“야볼(Jawohl)!"
* * *
'빗장(Bolzen)작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밀 서류를 받아든 슈페어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후우~. 이제 좀 여유가 생기나 했는데….”
“이 작전만 성공하면 확실하게 여유가 생기게 될 것이오. 그러니 부탁하오.”
“작전만 성공하면 영국 해군에 의해 허무하게 사라지는 보급선이 확 줄게 될 것이오. 그러면 모든 방면에서 한숨 돌리게 될 것이 확실하오.”
카이텔과 밀히는 한숨을 내쉬는 슈페어를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몰타를 공략하기 위해 서부 전선의 항공전력 가운데 1/3이 이탈리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항공기 자체야 날아가면 그만이니 별 문제가 없었지만 정비를 할 인력들과 사용할 물자, 그리고 상륙 작전에 필요한 물자들을 운송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철도망을 움켜쥐고 있는 슈페어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서류를 살피던 슈페어는 작전이 성공할 경우 이어지는 군사행동 계획을 보고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총통각하께서 결재하신 일에 뭐라 하는 것이 대단히 불경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두 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작전이 성공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수에즈 운하 이상은 무리입니다….”
슈페어는 두 사람에게 뼈아픈 현실을 지적했다.
“우리 독일제국은 미국이 아닙니다. 그렇게 확대된 수송망을 유지시킬 만한 트럭 생산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꼭 페르시아까지 가셔야 하시겠다면 영국군들의 트럭은 단 한 대라도 놓치지 말고 다 노획하십시오. 철도 역시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