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58화 몰타 공방전 (2)
1942년 9월 1일. 몰타 섬.
일출 직전이라 가장 어두운 하늘에서 엔진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공습이다!”
“공습이다!”
야간 경계를 서던 병사들은 공습을 알리며 수동식 사이렌의 손잡이를 마구 돌리기 시작했다.
텐트와 숙소에서 군복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튀어나온 병사들은 다급하게 자신들의 대공포 진지와 기관총 진지로 달려갔다.
잠시 후, 수많은 탐조등들이 하늘을 비추는 가운데 Ju87 슈투카 폭격기들이 급강하를 하기 시작했다.
애애애애앵!
콰쾅!
타타탕! 타타탕!
슈투카 특유의 사이렌 소리와 폭탄의 폭발음, 대공포의 발사 소음과 기관총들의 사격음이 하늘을 채우고 탐조등의 불빛과 예광탄의 빛줄기가 하늘을 찢어발기는 가운데 소리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하나, 둘씩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 *
독일 공군의 공습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영국 공군기지 인근의 벌판.
“시간이다.”
초조한 얼굴로 시계만을 살피던 일단의 남자들이 리더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사방에 쌓아 놓은 목초 더미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닥불들로 만들어진 ‘X'자가 완성되었고, 리더는 하늘을 바라봤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모닥불이 만들어 낸 ‘X'는 그곳 하나만이 아니었다. 영국 공군기지 인근과 군항 근처에 글라이더들이 착륙하기 좋은 곳에 20여 개의 'X'자들이 만들어졌다.
* * *
폭격의 제일파가 지나간 다음 바로 뒤를 이어 독일 공수부대의 글라이더들이 날아들었다.
“착륙지점 확인했다! 견인줄 풀어!”
하늘에서 'X'자를 확인한 견인기 파일럿의 통신에 글라이더 조종사는 레버를 조작해 견인줄을 풀고는 활공을 시작했다.
잠시 후, 조종사는 뒤에 앉은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충격에 대비하라!”
조종사의 외침에 뒤에 앉아 있던 병사들은 훈련받은 대로 안전벨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기체 밖에서 번쩍이는 불빛에 철모에 그려진 독수리 마크와 육망성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났다.
콰자작! 끼이익! 그극!
요란하게 부딪히는 소리와 땅에 끌리는 마찰음이 이어지며 이리저리 흔들리던 글라이더의 움직임이 멈추자 조종사는 캐노피를 열어젖히며 고함을 질렀다.
“모두 나가!”
조종사의 말에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난 병사들은 측면의 출입구와 조종사가 열어젖힌 캐노피를 통해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저 멀리, 폭발의 화염과 대공포탄의 빛줄기가 번쩍거리는 영국군의 항공기지가 보였다.
* * *
“제리(독일군의 멸칭)의 공수부대다!”
“제리의 공수부대다!”
한 차례의 거센 폭풍과도 같았던 독일 공군의 폭격이 지나가고, 막 한숨 돌리려던 영국군들은 하늘을 뒤엎은 독일공군의 Ju52 수송기들과 수송기들의 뒤로 줄줄이 이어지는 하얀색 낙하산을 보고는 내려놓았던 총기들을 다시 움켜쥐었다.
“Bloody hell!"
총을 들어 낙하산을 겨누던 영국군 병사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저 영악한 나치 놈들이 막 떠오른 해를 등지고 낙하를 하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놈들은 어차피 땅에 내려올 놈들이다! 우선 땅에 발 디딘 놈들부터 죽여라! 저놈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권총 밖에 없다!”
크레타 섬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던 몇몇 장교들과 고참 병사들의 명령에 영국군들은 땅에 착지를 한 독일 공수부대원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권총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그들의 오판이었다.
탕! 탕! 타타탕! 타탕!
독일 공수부대들을 제압하기 위해 달려간 영국군들과 독일 공수부대원들 사이에 격렬한 사격전이 벌어졌다.
몰타의 거친 바위들 사이에 몸을 숨긴 독일 공수부대원들은 낙하할 때 가지고 온 SG42를 앞세워 영국군들과 사격전을 벌였고, 독일군은 화력의 우세를 장담하던 영국군을 물리치기에 충분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도리어 권총의 알량한 명중률만을 계산하고 근거리로 달려든 영국군들이 의외의 희생을 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땅에 착지하는 과정에 사고로, 아니면 영국군의 사격에 목숨을 잃은 불운한 독일 공수부대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독일 공수부대원들이 충분한 교전거리와 명중률을 가진 SG42의 우세를 살려 영국군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독일 공군의 공습은 영국 공군의 비행기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발레타의 군항에 정박해있던 영국 해군 소속의 구축함에도 독일 공군이 달려들었다.
폭탄의 폭발음과 대공포의 포성이 요란한 가운데 P급 구축함 페타드의 함장은 전송관을 붙잡고 악을 썼다.
“기관실! 아직 멀었나!”
“아직 보일러의 압력이 낮습니다!”
“Bloody hell!"
욕설을 내뱉은 함장은 연신 하늘을 향해 불을 뿜는 40mm 폼폼포와 20mm 오리콘 기관포들을 바라봤다.
“까딱 잘못하면 표적지 신세가 되겠는데….”
걱정스런 얼굴로 하늘과 항만을 살피던 함장은 전령을 불렀다.
“알렉산드리아에 연락하라고 해. 내용은 ‘독일공군 몰타 공습. 상황 매우 불리.’ 알았나 ”
“독일 공군 몰타 공습. 상황 매우 불리.”
“좋아. 그대로 전달하도록.”
전령을 보낸 함장은 전송관을 붙잡고 다시 한 번 기관실을 닦달했다.
“기관실! 아직도인가!”
“30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 * *
시칠리아 섬에 위치한 이탈리아 공군기지.
분명히 이탈리아 공군기지였지만 기지에는 독일군 전투기와 독일군 병사들로 가득했다.
독일 공수부대 지휘관 슈투덴트 장군은 초조한 얼굴로 상황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몰타로 공수부대원들을 수송했던 수송기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었다. 상황판만을 바라보던 슈투덴트 장군은 관제탑 바깥 발코니로 나와 남쪽 하늘을 살폈다.
“지금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수송기들을 살피던 슈투덴트 장군에게 장교가 걸어와 통신문을 건넸다.
“전투기 편대로부터 전언입니다. ‘제공권 장악 완료. 몰타의 하늘은 독일의 하늘이다.’ 전투기 부대와 폭격기 부대 2진이 이미 출격중입니다.”
“수송기들의 상황은 ”
“120대 가운데 4기 격추. 30기가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23기는 바로 재출격이 가능한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는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좋아! 2진 바로 출격시켜!”
“야볼(Jawohl)!"
슈투덴트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장군이 자리한 공군기지는 물론이고 인근의 임시 기지에서 요란한 소음과 함께 Ju52 수송기들과 글라이더를 뒤에 달은 Ju87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 *
1942년 9월 1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자신을 지지하는 런던 시민에게 예의 ‘V'를 표시하며 들어선 처칠에게 다급히 달려온 비서가 통신문을 건넸다.
“각하! 지중해에서 급보입니다!”
“지중해에서 ”
통신문을 뺏다시피 건네받은 처칠은 혀를 찼다.
“쯧. 빌어먹을 일이 벌어졌군. 전쟁청(War office)으로 가도록 하지.”
-몰타 함락 위기.
통신문의 문장은 간단했지만 그 문장이 품고 있는 의미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 * *
전쟁청 대회의실.
처칠까지 참석한 회의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암울’ 그 자체였다. 처칠부터 시작해 많은 이들이 뿜어낸 담배연기로 인해 회의실의 천정은 뿌옇게 변해 있었다.
“몰타에서 추가로 보내온 전문은 없는 것이오 ”
“아직 없습니다.”
“몰타에 배치된 전력이 어떻게 되오 ”
“공군부대는 RAF의 스핏파이어 전투기 72기와 해군항공대의 소드피쉬 16기가 전부입니다. 약 2,000명 정도의 지상 병력과 수상함은 알렉산드리아에 배치된 함선들이 교대로 입항하던 정도입니다.”
“정시 보고에 따르면 몰타의 발레타에는 구축함 4척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있었다 ”
“‘최선을 다해 탈출하겠다.’가 마지막 연락이었습니다.”
“이런….”
해군 장성의 대답을 들은 처칠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전투가 벌어진 몰타와 이곳 런던은 너무나 멀었다. 허탈한 마음을 다잡은 처칠은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면 몰타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
처칠의 물음에 방금 전 대답을 한 장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몰타를 구하기보다는 몰타를 잃은 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생각하는 것이 더욱 빠를 것 같습니다.”
해군의 대답에 처칠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처칠은 문제의 장성을 몰아 붙였다.
“제독! 제독은 몰타의 가치를 잊은 것인가 ”
“잊지 않았습니다만, 현재 지중해에 있는 우리 해군의 상황이 좋지가 않습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3척, 그 가운데 하나인 워스파이트는 아직도 완벽한 수리가 끝나지 않았고, 항모는 아예 없고, 경순양함 3척. 구축함 18척이 다입니다! 항모는 아예 없고 말입니다!”
“몰타를 포기하면 북아프리카는 끝이야!”
“그렇다고 추가 전력을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지중해 함대의 전력이 여기서 더 감소된다면 이집트로 가는 보급로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몰타를 잃어도 마찬가지 아닌가!”
“독일 놈들의 수송망을 박살 낼 해군 전력은 남아 있게 됩니다!”
“아직 독일 놈들이 완벽하게 장악을 한 상황은 아니다! 바로 구원함대를 보내면 바로 역전할 수 있어!”
“몰타 섬의 크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구원함대가 도착할 때면 이미 몰타의 장악은 끝난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함대를 보내면 이탈리아와 독일 공군의 먹이밖에 안 될 겁니다! ‘Task Force Z'의 최후를 반복하실 생각입니까!”
처칠의 역린을 건드린 것일까 전함 ‘리펄스’와 ‘프린스 오브 웨일즈’의 최후가 언급되자 처칠은 직권을 행사했다.
“반론은 용납하지 않겠소! 전시 수상으로서 명령을 내리오! 지금 당장 몰타를 구원할 함대를 보내시오! 그리고 그 앉은뱅이 몽고메리에게도 명령을 전달하시오! 당장 그 무거운 엉덩이를 땅에서 떼고 롬멜의 엉덩이를 걷어차라고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명령불복종으로 군사재판에 회부할 것이라고 전하시오!”
“…알겠습니다.”
육군과 해군의 고급 지휘관들을 굴복시킨 처칠은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암호 해독은 여전히 답보상태인 것이오 암호 해독만 제대로 되었으면 이번 일은 피할 수 있었을 터인데 ”
“…죄송합니다.”
처칠의 물음의 MI-6의 수장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1942년에 들어서면서 독일군은 자신들의 암호체계를 대대적으로 변경시켰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리고 MI-6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두 번째 변경이었다. 이미 정해진 절차에 따른 변경이라는 느낌이 강했던 첫 번째와 달리 두 번째 변경은 그야말로 ‘기습’이었다.
다만 두 번째 변경은 독일군 자신들에게도 의외의 일이었던지 한동안 독일군의 통신망은 혼잡 그 자체였다.
“…그 혼잡을 통해 새로이 변경된 암호체계를 해석할 수 있는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만. 유효한 결과물을 얻을 정도로 해독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얼마나 ”
“내년 중반기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안으로 가능하도록 노력하게. 지원이 필요하면 말하도록. 1순위로 지원해 주겠네.”
“…알겠습니다.”
MI-6의 수장과 대화를 끝낸 처칠은 외무부 장관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국은 언제 제대로 참전을 할 것이라고 하는가 ”
“1943년 1월은 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겨우 폭격기 몇 기 보내놓고 뭐하자는 거지 좀 더 닦달을 해보게.”
“아직 최소한의 전력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수상께서 한번 말씀해 보심이….”
외무부 장관의 말에 처칠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백악관에 연락을 해보도록.”
“알겠습니다.”
“미군의 참전도 급하지만 물자 지원도 문제입니다.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식량도 부족합니다.”
미국의 지원이 필요한 부처들마다 튀어나오는 우는 소리와 하소연들을 듣던 처칠은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의 대영제국이 어쩌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