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55화 돌발 변수 (6)
고 제독의 대답에 니미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잽들의 최종목적지는 수에즈라고 생각하네. 킹 제독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니미츠 제독의 물음에 턱을 쓰다듬으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던 킹 제독이 니미츠 제독, 참모들, 마지막으로 고 제독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만, 과연 잽들에게 저런 거대한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을까 ”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고 제독의 반문에 킹 제독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말은… 지난번에 고 제독이 건네준 ‘미드웨이 전투’에 관한 자료들 있지 않은가 거기에서 보면 미드웨이를 치는 것을 감추기 위해 알류샨 열도를 치지. 만약, 이번… 가설일 따름이지만, 잽들이 인도를 치는 것도 또 다른 양동작전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어. 만약 양동작전이라면 잽들에게 인도와 또 다른 전략적 요충지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하는 것일세. 인도와 알류샨 열도는 경우가 다르지 않나.”
킹 제독의 지적에 고 제독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타당성을 계산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1시간 후, 슈퍼컴이 내놓은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 가능은 하나 양쪽 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음.
실패확률 88%
슈퍼컴이 내놓은 답변을 본 제독들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제독들의 대표로 고 제독이 경우의 수를 따져 나갔다.
“만약 양동작전을 구사한다면 일본해군이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
-하와이.
“이유는 ”
-지난 동경 폭격의 전과가 예상보다 컸음. 일본 해군으로서는 그것을 덮을 실적이 필요.
“만약 일본 해군이 양동작전을 선택하지 않고 인도만을 공략할 경우 성공확률은 ”
-65%
슈퍼컴이 도출한 성공확률을 본 고 제독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생각보다 성공확률이 낮은데… 성공확률을 낮추게 만든 위험요소는 ”
- 일본군의 낙후된 통신능력, 기동력, 보급능력,
“이해는 가는데….”
슈퍼컴의 대답을 들은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성을 통해 전 세계 어디서나 필요하다면 실시간 통신-그것도 영상 통신-이 가능한 21세기에 비하자면 1942년의 통신체계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그만큼 현장의 지휘관들의 역량이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일본군 지휘관의 역량은
‘옥쇄’라는 말이 그들의 역량을 대변하고 있었다.
보급능력 또한 마찬가지…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라는 명언으로 대변할 수 있었다.
통역을 통해 슈퍼컴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킹 제독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만약, 잽들이 수에즈 운하까지 점령한다면 그 후의 결과는 ”
-변수가 너무 많음. 대상을 한정지어 주기 바람.
“잽 한정.”
-일본의 약점인 원유수급문제 해결.
-독일과의 안정적인 해운수송라인을 확보하면서 낙후된 기술 문제 해결.
-호주, 뉴질랜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보급 능력 저하.
-일본 해군의 항공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 심화.
슈퍼컴의 대답을 확인한 킹 제독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질문을 이어갔다.
“원유수급문제 이미 남태평양의 유전지대를 잽들이 손에 넣지 않았나 ”
-해당 지역에서 일본까지 해운라인의 안전유지가 일본 해군의 역량 이상을 요구.
-인도를 점령하고 수에즈 운하를 점령한다는 것은 이라크와 이란의 유전지대를 손에 넣는다는 것을 의미,
-인도를 경유해 원유의 육상수송이 가능해짐.
-인도에서 일본까지의 해상 항로를 일본 해군 항공대 또는 일본 육군 항공대의 커버가 가능한 해안선을 따라 설정하게 되면서 원유의 안정적 수급이 가능해짐.
“골치가 아파지는군… 후~”
슈퍼컴의 대답을 들은 킹 제독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눈을 감고 두통을 가라앉힌 킹 제독은 참모들을 돌아봤다.
“반론은 ”
“…….”
“니미츠 제독 ”
킹 제독의 지목을 받은 니미츠 제독은 천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차라리 인도와 하와이 두 곳을 동시에 노리는 작전을 벌이기를 빌어야겠습니다.”
* * *
결국 처음 도착할 때와 다르게 잔뜩 굳어진 얼굴을 한 킹 제독과 니미츠 제독은 고 제독과 악수를 나누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거 어려운 숙제만 잔뜩 안고 돌아가는 느낌이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마셜 장군과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겠소.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몰라. 며칠 안에 다른 이들과 함께 다시 올 지도 모르겠소.”
“저 역시 주석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이는 우리 조국의 독립에도 악영향을 줄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봅시다.”
니미츠와 킹 일행을 배웅한 고 제독은 강 대령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모두 모아야겠군. 브레인스토밍이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고 제독의 명령을 받은 강 대령이 전령을 호출하러 간 사이 고 제독은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도대체 누가 끼어든 거지 이건 아무리 봐도 야마모토의 생각이 아냐.”
* * *
“후우~. 가까스로 한고비를 넘었다. 결행일은 다음 대본영 회의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노우에 시게요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잔을 들었다.
“제군들. 잔을 들어라. 우선은 무사히 한고비를 넘은 것을 축하하자!”
“축하합니다!”
시게요시의 선창에 사무실에 앉아 있던 장교들과 민간인들이 따라 잔을 들어 올렸다. 축하한다고는 했지만 시게요시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장교들의 분위기는 딱딱했다.
그런 이들을 대표하여 가장 상석에 앉은 대좌 계급장을 단 장교가 입을 열었다.
“야마모토 사령장관도 문제지만 육군이 문제입니다.”
“맞습니다. 그 빌어먹을 육군 놈들이 또 무슨 트집을 잡아 발목을 잡을지 모릅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육군에 대한 성토가 이어진 가운데 중좌 계급장을 단 장교가 화제를 전환했다.
“앞으로의 일이 더 문제입니다. 미국의 그 신예폭격기, 아… 한국군 전투기라고 위장한 바로 그 신예폭격기를 상대할 기종이 없습니다.”
황궁을 날려 버린 신예폭격기가 주제로 올라오자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시바타 중좌. 제로센으로는 무리겠지 ”
“제로센은….”
잠시 말을 멈춘 시바타 소좌는 이를 박박 갈며 대답했다.
“이미 퇴물 전투기입니다. 빌어먹을 겐다 녀석!”
시바타와 겐다-정확히는 야마모토 파벌-와의 악연은 일본 해군 항공대가 전력화되면서부터였다.
야마모토가 소장 계급을 달고 일본해군 항공본부 기술부장으로 재직했을 때부터 시바타와 겐다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폭격기 만능론’에 심취한 야마모토와 그의 파벌들이 96식 육상 공격기를 만들고는 ‘전투기 무용론’을 외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전투기 무용론’을 단지 이론으로 외친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많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폭격기 조종사로 전환훈련을 받아야 했고, 거기에 더해 새로이 추가되는 조종사들 가운데 전투기 조종사들의 비율이 확 줄어 버렸다.
시바타는 계속해서 전투기와 전투기 조종사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결과는 묵살이었다.
거기에 더해 1933년 여름, 해군 항공대에서 열린 공중전 연구회에서 보다 먼 거리에서, 보다 확실하게 적기를 요격할 수 있는 고성능 기관총과 그 성능을 발휘하게 해줄 고성능 조준기의 개발을 역설했다가 야마모토에게서 ‘사무라이답지 못한 비겁한 발상이다.’라며 대차게 욕을 들어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시바타는 해군 내에서 왕따와 같은 처지가 되어 버렸다.
시바타가 겐다와 다시금 충돌을 일으킨 것은 제로센의 개발과정에서였다.
일본해군이 제로센-정확히는 12시 함상전투기(12試 艦上戰鬪機)-에게 내건 요구조건은 당시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무리였다.
유일한 도전자였던 미츠비시는 양립이 불가능한 조건들이 계속 상충하는 점을 호소하며 요구 조건의 완화를 해군에 요구했다.
미츠비시의 요구에 겐다 미노루는 격투전 성능이 우수할 것을 고집했고, 시바타는 속도와 항속거리의 우수성을 고집했다.
두 사람의 의견차이가 굽혀지지 않자 해군은 두 사람의 의견을 다 받아들였고, 미츠비시는 두 사람이 내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았다.
그리고 필리핀 전투를 통해 소문이 무성해졌고, 도쿄 폭격에서 그 실체를 드러낸 미군의 최신예 폭격기를 두 눈으로 본 상층부는 제로센보다 더욱 강력한 전투기의 개발을 명령했다.
하지만 겐다의 의견을 따라 격투전 성능을 더욱 우위로 두는 개발지침을 본 시바타는 분통을 터뜨렸다.
시게요시와 함께 한 이들 대부분이 시바타와 같은 처지의 이들이었다.
능력도 좋고 참신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었지만 야마모토를 중심으로 한 연합함대의 중심파벌에서는 밀려난 이들이었다.
이런 이들을 모아 시게요시는 야마모토가 계획한 작전의 허점인 인도 공략을 파고들었다.
그들은 인도 공략을 성공시키기 위한 최상의 수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가운데 이노우에 시게요시는 예전의 그라면 하지 않을 일을 실행했다.
그것은 ‘정치’였다.
천황의 최측근과의 비밀회동 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 시게요시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일본을 위해서다. 일본을 위해서….”
그리고 오늘 비선을 통해 자신이 한 ‘정치’의 결과물을 받아들고는 자신의 사람들을 모아 축배를 든 것이었다.
* * *
연합함대, 정확히는 야마모토가 계획한 ‘설욕전’에 대한 회의를 하기 위해 대본영의 대회의실에 육군과 해군의 고위 장성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5월에 있었던 동경 폭격으로 인해 절반가량이 무너져 내린 대본영의 건물 한쪽에 자리한 대형 회의실에는 갈색의 제복을 입은 육군과 백색의 제복을 입은 해군이 마주 앉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총리대신께서 입실하십니다!”
위병의 말에 서로를 노려보던 육군과 해군의 지휘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조 히데키를 향해 경례를 했다.
경례를 받은 도조 히데키는 가장 상석에 앉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자, 모두 자리에 앉지. 연합함대가 드디어 움직이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소이다.”
도조의 물음에 야마모토는 이를 악물며 대답을 했고, 도조는 싱긋이 웃으며 야마모토를 바라봤다.
“부디 좋은 계획이….”
“천황폐하께서 오셨습니다!”
대본영의 현관을 지키고 있던 장교의 다급한 목소리에 도조를 비롯한 회의실에 모든 이들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잠시 후, 지팡이에 의지한 히로히토가 회의실로 들어오자 도조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천황을 향해 예를 올렸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소.”
“영광입니다, 폐하!”
천황에게 가장 상석을 양보한 도조는 자리에 앉자마자 히로히토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는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
“제장들이 조국의 안위를 위한 계획을 마련했다고 들어서 와 봤소.”
“어전회의에서 보고를 할 것인데 구태여 오실 것까지야….”
“결과뿐인 보고서를 받는 것과 그 과정을 직접 보는 것은 다른 일이지 않겠소 아니면….”
잠시 말을 멈춘 히로히토는 도조 히데키를 노려봤다.
“총리대신은 짐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
“절대 아니옵니다! 신, 도조. 그런 불경한 마음은 단 한 번도 품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믿어 보도록 하지.”
대충 대답을 한 히로히토는 회의실에 모인 장성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들 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