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46화 (46/464)

# 46

46화 육군 재건 (5)

갈색과 채도가 다른 두 종류의 녹색, 검정색 등의 여러 색이 복잡한 모자이크 무늬로 뒤섞인 군복을 본 미군 장성들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이거 군복 맞나 ”

“군복 맞습니다.”

“복장 군기는 확실하게 난장판이 되겠군….”

호의적인 말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가운데 마셜이 테스트를 담당했던 소령을 바라봤다.

“그래… 한국군은 왜 이런 화려한 꽃무늬 군복을 만든 것인가 ”

“피탐 저감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피탐 저감 ”

“예, 바로 실증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한번 보지.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

“지금 잠시 바깥으로 산책을 즐기시면 됩니다.”

“응 산책이라… 그래. 오랜만에 산책이나 한번 해보도록 하지.”

마셜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다른 장성들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벗어났다.

마셜 일행이 향한 곳은 육군부 인근의 작은 공원이었다. 소령은 눈앞에 있는 작은 숲을 가리켰다.

“지금 장군님들이 계시는 곳에서 저 숲까지의 거리는 약 20야드입니다. 가로 약 40야드, 세로 약 20야드의 저 작은 숲에 한국군의 위장복을 입은 병사들이 있습니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응 ”

소령의 말에 마셜 장군과 장성들은 눈을 크게 뜨고 꼼꼼하게 숲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 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몇 몇 장성들이 병사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저기 저 나무 옆에 있군.”

“저기 풀숲에도.”

병사들을 찾았다는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본 정도가 더 지나서였다.

“다 찾으셨습니까 ”

“그런 것 같네.”

“11명이로군요.”

장성들이 찾아낸 병사들의 수를 확인한 소령은 숲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전원 앞으로 나와 정렬!”

소령의 명령에 숲속에서 병사들이 하나둘 앞으로 나와 정렬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자리를 잡아가자 마셜을 비롯한 미 육군의 장성들은 기가 막혔다.

자신들이 찾아낸 것은 11명, 지금 나와서 정렬하는 병사들은 거의 30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자신들은 분대 병력이라고 파악했지만 실제로는 소대병력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후우… 처음 볼 때는 정신 사나운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꽤 괜찮다고 느껴지는군.”

한숨을 내쉰 마셜이 한국군 전투복에 대한 평가를 위로 올리자, 소령은 말을 덧붙였다.

“저도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저 전투복, 낮에도 꽤 괜찮지만 밤에는 아주 죽여줍니다.”

“그런가 ”

마셜 장군이 혹하는 모습을 보이자 뒷줄에 서 있던 장성 하나가 반발을 했다.

“숲에서는 좋을지 모르지만 시가지에서는 저 무늬가 오히려 약점이 될 겁니다! 전쟁을 야외에서만 치르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충분히 일리 있는 반론이었기에 마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느새 친한파가 되어버린 소령이 재반박에 나섰다.

“장군님, 육본에서 여기까지 오시는 동안 저 군복을 입은 병사들을 보셨습니까 ”

“응 ”

“실은 제가 육본 건물부터 이곳까지 오는 길 여기저기에 이 전투복을 입은 병사들 1개 분대를 흩어 놓았습니다. 보셨습니까 ”

“못 본 것 같은데… 아, 두어 명 봤나 귀관들은 ”

마셜 장군의 물음에 장성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한국군의 설명에 따르면 장군님들이 어지럽다고 말씀하신 그 얼룩무늬는 일부러 그렇게 어지럽게 만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시각 인지 능력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흐음….”

“그리고 장군님, 방금 전 시가전에 대한 지적이 있었는데 지금 우리 미군 보병이 입고 있는 군복에 그런 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 미군의 피복이 1차 대전 이후로 변한 것이 있습니까 ”

“…….”

소령의 지적에 장군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는 이가 없었다.

시연회에 참석했던 장군들 모두 한국군의 전투복이 많은 부분에서 미군의 군복보다 우수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한국군의 군복을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기에, 한국군이 사용한 위장무늬 원단을 M41 전투복의 원단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절충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참전한 1943년 후반기부터 전선으로부터의 밀려들은 개선요청으로 인해 미군의 전투복 디자인은 바뀌어야만 했다. 한국군의 전투복과 빼다 박은 듯이 닮은 M43전투복과 필드 재킷이 미군에게 보급이 되면서 위장무늬 M41은 ‘역사에 길이 남을 예산낭비’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다른 장비들-군복처럼 눈에 확 뜨이지 않는 부분에 사용된-은 호평을 받음과 동시에 채용이 긍정적으로 검토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방탄조끼와 군화였다.

*    *    *

“방탄조끼를 만들었다고 ”

“응.”

“1940년대의 기술로 가능해 ”

“가능해.”

‘Tokyo raid'를 결행하기 위해 떠나는 9전단을 배웅하고 돌아온 자리에서 방탄조끼를 만들겠다는 벌레와 빨갱이의 말을 들은 정 수석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니네 둘이 만들었다고 정말 ”

“이게 속고만 살았나….”

“그럼 보여줘….”

“따라와라.”

정 수석팀장을 끌고 자신들의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벌레와 빨갱이는 옷장 한쪽에서 문제의 방탄조끼를 꺼내들었다.

“뭔가 익숙한 냄새가 나는 것 같으면서도 낯설다.”

정 수석팀장의 평가에 벌레와 빨갱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베이스 디자인은 우리들이 쓰는 플레이트 캐리어니까. 중요한 것은 이거지.”

벌레는 방탄조끼 앞쪽에 달린 똑딱 단추를 풀러 안에 들은 방탄판을 꺼내 정 수석에게 건넸다.

“꽤 무겁네… 뭐로 만든 거냐 ”

“이것저것… 이 동네 철물점 좀 털었다.”

“성능은 ”

“30-06 일반탄까지는 막아낸다.”

“호오 자세히 설명 좀 해봐.”

벌레와 빨갱이에게 바싹 다가앉은 정 수석팀장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벌레와 빨갱이의 설명에 따르면 문제의 방탄판은 철판과 유리섬유, 에폭시 레진 수지, 마지막으로 Duct tape의 복합소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원래는 AR500철판을 쓰려고 했는데 1940년대 산업 규격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곳 기지 경비장교에 부탁해서 공구용 특수강을 구했다. 이게 그냥 압연강보다 좋거든.”

“뭐가 다른데 ”

“좀 질기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힘을 많이 받는 일을 하는 도구에 써야하니까.”

“그렇다 치고… 유리섬유와 에폭시 레진은 왜 필요한 거야 ”

“에폭시 레진을 바른 유리섬유를 층층이 쌓아 건조시키면 꽤 우수한 방탄판을 만들 수 있어. 2인치 두께 정도면 44 매그넘탄도 관통 못한다. 물론, 소총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지만. 그래서 특수강을 중간에 넣고 샌드위치 패널을 만들어버린 거지.”

“그냥 특수강만 써도 되지 않았냐 ”

“2가지 문제가 있어. 무게와 파편.”

“무게는 이유를 알겠는데 파편은 왜 총알도 막는 철판이 파편을 못 막을 리 없잖아 ”

“외부에서 들어오는 파편이 아니라 총탄이 부서지면서 만들어지는 파편. 총탄이 방탄판에 충돌하면 그냥 찌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부서지거든. 그럼 그 파편이 어디로 갈 것 같아 그래서 유리섬유를 쓴 거야. 유리섬유의 섬유층에 파편이 걸리도록 말이지.”

“흐음… 그래. 대충 무슨 원리인지는 알겠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걸 만드는 방법을 안 거야 ”

“유튜브. 미국의 생존주의자들이 비슷한 걸 만드는 동영상들을 올려서 알게 되었다.”

“호오~.”

벌레의 대답에 정 수석팀장은 가벼운 놀람을 표시했다.

“미국에 별별 인간들이 다 몰려 있다는 건 알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21세기의 미국이 워낙 살벌한 나라였어야지.”

“그 살벌한 나라에서 몇 년 살았던 나로서는 긍정 반, 부정 반이기는 한데… 너희들은 왜 이런 걸 파고든 거야 ”

“친애하고 경애하는 국군 덕에 알게 됐다.”

“잉 ”

“우리 국군에 방탄복이 얼마나 보급되었을 것 같냐 나 제대할 때까지도 100%를 못 찍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폐기했을 구닥다리도 없어서 못 입는 애들이 한둘이었는지 알아 그런 상황에서 방탄판은 제대로 보급이 될까 ”

“아마 안 되겠지 ”

“‘아마’가 아니라 ‘확실히’다. 젠장! 다시 생각해봐도 열 받네!”

설명을 하다 열이 뻗친 빨갱이가 열을 식히는 동안, 벌레가 뒤를 이어 설명을 이어갔다.

“21세기의 주력 방탄판은 세라믹을 써서 이것보다 가볍지. 문제는 세라믹 방탄판은 총격을 받으면 깨진다는 것이 1차 문제. 2차 문제는 깨진 방탄판은 새로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과연 대한민국 국군 보급창고에 재고가 있을까 ”

“…….”

“제일 문제가 마빡에 별 달고 다니시는 분들하고 여의도 나리님들이야. 비용이 문제면 포스코에 주문을 넣어서 AR500강으로 만들어서라도 보급을 하면 되는데, 병사들을 그저 소모품으로밖에 생각을 안 하니 그딴 일이 벌어지는 거지. 그거 귀찮으면 아마존에 주문 때려 넣던가. AR500강이면 30불 밖에 안하는 놈의 거…….”

“말이 자꾸 옆으로 샌다.”

“어쨌거나!”

정 수석팀장의 지적에 말을 멈춘 벌레는 몇 가지 파트를 더 꺼내 정 수석팀장에게 내밀었다.

“낭심 가리개와, 옆구리 보호판이다. 이 옆에 있는 것은 차량에 갖다 붙일 방탄판이고.”

벌레가 건넨 부착물들이 다 부착된 방탄조끼를 든 정 수석팀장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거 많이 무겁다.”

“어쩔 수 없어. 소재가 문제니까. 21세기처럼 케블러 계열의 방탄섬유가 제대로 있었으면 그 무게로 목부터 상박, 허벅지까지 다 보호할 수 있는 물건이 나왔을 거다.”

“지금은 이게 최상 ”

“우리들 머리로는 그게 한계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정 수석팀장은 방탄조끼와 기타 부속물들을 내려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이거 입고 뛰어 다니려면 곡소리 나겠다.”

“그래서 계속 차량화, 차량화 노래를 하는 거다,”

“흐음….”

다른 때 같았으면 ‘알았다.’라는 말과 동시에 물건을 들고 사라졌을 정 수석이 계속해서 자리에 앉아있자, 빨갱이가 으르렁거렸다.

“뭐야 너도 이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거냐 ”

“그건 아니고… 이거 너희 둘이 만든 거라고 ”

“그렇다니까.”

“차량용 방탄판도 ”

“그래!”

벌레와 빨갱이의 대답을 들은 정 수석팀장은 무엇인가 결심을 한 듯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사람을 돌아봤다.

“이거 특허 받자. 로열티는 대한민국 정부가 4, 너희 둘이 3씩 먹고. 어때 ”

“응 ”

“어 ”

정 수석팀장의 제안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벌레와 빨갱이는 한쪽으로 몰려가 작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돈이 될까 ”

“노안, 저 새끼 코가 보통 코냐 돈 냄새 펄펄 나나 보다.”

“그런데 말이지. 저거 결국은 우리가 쓰는 거잖아. 가뜩이나 렌드리스네, 빚이네, 허리띠를 조이네 하는데, 우리만 냄새나는 뒷돈 챙기는 느낌이 들면서 좀 찔리는 느낌이 드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벌레가 정 수석팀장을 돌아봤다.

“그거 서류 장난질 쳐서 뒷돈 빼먹었다고 나중에 욕먹는 것 아냐 괜히 뒷말 나오게 될 거면 그냥 안하는 게 낫지 않겠냐 ”

“이거 미군에게 보여주면 좋아할 거다.”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다시금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던 벌레와 빨갱이가 결론을 내렸다.

“그래. 계약서 쓰자!”

재빨리 특허를 등록한 정 수석팀장은 트루먼과 마셜 장군을 찾아 방탄조끼를 소개했다.

한국군의 방탄조끼는 무거웠지만 그때까지 미군이 개발했던 방탄장비들보다는 가벼웠고, 활동성은 압도적으로 우수했다. 미군의 장성들은 총기나 위장복과 달리 바로 채용을 결정했고, ‘Armor Vest'는 폭격기의 승무원들부터 일반 보병들까지 일괄 지급 품목이 되어버렸다.

정 수석팀장이 특허를 등록한 것은 방탄조끼만이 아니었다. 좀 더 뛰어난 접지력과 쿠션을 가진 군화의 밑창과 군복의 위장 무늬까지 특허를 받아 놓았고, 이를 미군이 채용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재정 부분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피복부분에서의 개선은 2차 대전의 미군과 한국군을 매우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단색의 두꺼운 모직 군복, 징이 박힌 가죽 밑창의 단화, 각반이 일반적인 다른 국가들과 달리, 두툼한 고무 밑창의 목이 긴 군화를 신고 얼룩무늬 군복에 방탄조끼까지 걸친 미군과 한국군은 ‘적군으로 절대 오인 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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