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45화 육군 재건 (4)
한국군의 무기라…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방탄조끼(Armor vest)로군. 엄청 무거웠거든.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배급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다들 받자마자 반납을 해서 중대 창고에 그냥 산처럼 쌓였었지. 다들 저 무거운 것을 입고 기어 다니느니 자기 다리를 믿겠다고 그랬었거든.
그런데, 첫 실전이 끝나자마자 중대창고에서 방탄조끼가 다 사라져 버렸어. 어느새 다 챙겨 입더라고. 아, 끝까지 안 입은 이들도 몇 있었는데 그치들도 ‘앞치마’는 꼭 챙겨 입고 다녔지.
- 도널드 ‘덕’ 헤임스. 퇴역 미육군 병사.
- 2005년. 2차 대전 종전 60주년 특집 BBC 다큐멘터리.
‘2차 대전 음모론의 총아. 대한민국 해군 9전단’ 2화, ‘후방 속의 최전선-기술전쟁’의 인터뷰.
* * *
한국군의 보병화기를 견식한 상원의 국방사문위원회가 이른바 ‘0.5인치 전쟁’을 치른 이후 미군 보병들의 무장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미 육군 병기개발국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육군 전술의 가장 기본인 분대 단위에서 진주만 기습 이전과 비교했을 때, 2정의 BAR가운데 하나를 M60E6로 바꿨을 뿐인데도 분대 전체 화력이 약 1.5배 상승, 유탄인 M320까지 도입한 결과 분대 전체 화력이 약 2배에서 2.5배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그 결과, 한국군에 대해 호의를 감추지 않던 해군과 달리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미 육군이 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군이 제식 소총부터 시작해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군이 비록 소수이지만 그들이 알려온 계획에 따르면 적어도 1만, 최대 10만 이상의 육군 병력이 조직될 것이다. 그들을 위해 따로 생산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전선에 나갈 병사들이 사용할 총기류만 따지더라도 개런드와 M1카빈, 톰슨 SMG, 콜트 1911, M1919와 M60E6, M2HB와 M2CB등 복잡한 상황이다.
- 거기에 같이 전투를 벌일 한국군 전용 소총을 위한 보수 부품과 탄창 등의 소모품을 위한 보급라인까지 갖추면 혼란의 극치가 될 것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요란하게 떠든 내용은 거의 저 두 가지로 압축이 되어있는 상황이었고, 이는 육군의 상부는 물론이고 트루먼이 있는 국방 사문위원회를 시작으로 한 정치권에서도 말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트루먼은 정 수석팀장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 수석팀장은 K1라이플 때의 이유를 다시 되풀이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적은 병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전투력을 최상으로 유지시켜 줄 장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말이에요. 생산성에서 효율이 떨어지고 보급선에도 혼선이 발생한다고 말들이 많아요.”
“생산성은… 미국의 유관 산업체들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우리 군만 별도 라인을 빼서 문제가 생긴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이는 인정하시죠 제 눈에는 총기 업체들부터 시작해 미국의 사업가들이 밥그릇 빼앗길까 봐 우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흐음… 그럴지도….”
정 수석팀장의 지적에 트루먼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국방사문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이 발견한 것도 사방에서 줄줄이 새는 재정이었다.
군의 규모를 대폭 확장한다는 이유를 들면서 적정수량 이상으로 미친 듯이 찍어내던 물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국채를 찍어가면서 예산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써대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문제를 확인한 트루먼의 국방사문위원회는 미친 듯이 삭감과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며 사업가들과의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군에서 우는 소리를 하는 이들과 한국군을 씹어대는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런 사업체들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솔솔 새어나오고 있었고….
“그리고… 보급선의 혼선이 발생한다라… 이 점은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다고 인정은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트루먼 의원님.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요 ”
“생각을 바꾸자 ”
“한국군과 미군의 장비를 공용화 하되, 한국군이 미군의 장비를 쓰는 것이 아니라 미군이 한국군의 장비를 채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30-42탄과 M60E6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럼 보급의 혼선과 비용 절감 모두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더불어 소중한 미국 젊은 청년들의 생명도 보호할 수 있고 말입니다.”
“응 ”
순간 트루먼이 혹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 수석팀장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솔직히 미국의 거대 사업가들과 충돌이 예상되는 부분은 한국군 전용 소총 부분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거의 다 개조(Tune)를 하는 정도여서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시장 위축으로 고통 받는 영세상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거 좋은 일이군요. 하지만 본론은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그렇지요. 본론으로 들어가 한국군 전용으로 따로 생산을 하는 것은 소총과 피복, 배낭과 같은 휴대장비, 방탄장비 등입니다. 이 부분에서 소총은 빼고 나머지 부분, 특히 피복 부분은 생산 라인을 대규모로 바꾸거나 할 필요가 없는 부분입니다. 휴대장비 역시 마찬가지지요. 동의하시지요 ”
“동의합니다.”
정 수석팀장의 물음에 트루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복만 예로 들어도 저 한국군들이 입고 있던 얼룩무늬 군복도 염색과 재단의 문제만 있지 특별히 돈이 더 들거나 생산에 시간이 걸리는 물건들이 아니었다.
“저 군인 양반들이 잊고 있던 문제를 하나 지적하자면 우리 군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장비는 지금 1942년부터 70년이 넘는 시간동안 축적된 경험들이 만들어낸 장비들입니다. 군복 하나만 봐도 소재인 원단을 제외하고 디자인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군복보다 훨씬 우수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기술로 만들 수 없는 장비들이나 무기는 우리 역시 따로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을 겁니다. 부릴 이유도 없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기술로 대체가 가능한 것들은 반드시 대체를 할 것입니다. 우리 국군 병사들의 생명과 승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아시겠지요 ”
정 수석팀장의 물음에 트루먼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1차 대전을 겪은 이였다. 그것도 눈이 나빠 병역 대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력검사표를 통째로 외우는 병역비리를 저질러 유럽 전선에 참전을 한 이였다.
전선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을 본 그였기에 트루먼은 결론을 내렸다.
“만약, Mr.정의 말대로 한국군이 쓰겠다고 만든 장비들이 미군의 안전과 전력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되면 바로 미군에 채용되도록 추진하겠어요. 내가 책임지고 말이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한국군이 만든 장비들의 기술 특허와 디자인 특허를 인정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것들은 한국군들이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이 축적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제가 개량형 컨테이너의 특허와 M60과 같은 몇몇 병기들의 특허를 주장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내가 책임지지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날, 정 수석팀장과 트루먼과의 벌어진 단 30분간의 대화는 미군 보병 장비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훗날 2차 대전을 연구하는 사가들과 정치와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들다.)’의 가장 확실한 사례로 손꼽았다.
* * *
트루먼의 설득이 성공했는지 의회는 한국군과의 장비 공용에 대해 연구를 할 것을 군부에 요구했다. 군부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트루먼은 마셜 장군을 찾아갔다.
“왜 육군의 행동이 예전과 달리 느려진 것입니까 ”
“이미 육군의 장비가 생산궤도에 올랐는데 또다시 바꾸는 것은 비경제적이라고 그래서 말이오.”
“장군님. 제 소속이 어디인지 잊으셨습니까 ”
“그건 아니오만….”
말을 흐리는 마셜 장군의 모습에 트루먼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존심 문제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의를 보이시던 분들이 변심을 한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
“장군님. 저들을 단지 아시아에 있는 소국의 병사들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저들이 가진 것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경험에서 나온 지식’입니다. 저들에게는 과거이지만 우리에게는 미래인 7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동안 쌓인 경험 말입니다.”
“그건 알지만 저들 없이 우리들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않겠소 물론 저들이 가진 놀라운 장비들을 빼고, 'K1 Rifle'만 보더라도 놀라운 물건이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 육군의 개런드도 지금으로서는 세계 최고의 총이고, 이걸로도 충분히 히틀러나 덴노의 머리를 부수기에는 충분하다는 말이오.”
“물론 장군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들이 만들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장비들이 그저 우리를 놀래기 위해 만드는 장난감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장군님을 포함한 육군의 장군들은 저들이 그저 서커스의 마술사로 보이시는 겁니까 ”
“그건 아니네만… 솔직히 M60E6라던가, K4라던가 등은 아주 마음에 드네. 그래도 말이지. 우리 미군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국군과 같은 차림을 한다는 것이 기분 좋을 리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유럽의 구닥다리들이 촌것이라고 놀려대는 우리라고 해도 말이야.”
“장군님. 나라를 보지 말고 기술을 봐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저들이 단지 우리가 신기해하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서 저런 장비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들은 자기네 병사들을 살리기 위해 저런 장비들을 만드는 겁니다! 우리 역시 우리네 병사들을 살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장군들의 자존심이 문제입니까!”
거의 멱살잡이까지 각오하고 따지고 드는 트루먼의 모습에 마셜은 고뇌에 잠겼다. 솔직히 이성은 의회의 명령이 옳은 것이라고 인정을 하고 있었지만 감정은 그렇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말없이 한참을 고민하던 마셜이 결론을 내렸다.
“전선에 투입될 부대들의 편성이 완벽하게 완료될 때까지 아직은 시간이 좀 남았으니 제대로 된 평가팀을 구성하겠네. 됐나 ”
“감사합니다, 장군님.”
“욕봤네.”
트루먼, 정확히 말하자면 의회의 요구를 받아들인 마셜의 명령에 따라 육군은 평가팀을 구성해 평가에 들어갔다. 평가팀이 제일 먼저 평가에 들어간 것은 ‘군복’이었다.
“뭐야 이 눈 아픈 얼룩이 군복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