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42화 (42/464)

# 42

42화 육군 재건 (1)

아까 내가 요즘 입시경쟁만큼 그 때도 경쟁이 치열했다고 했을 때, 농담 같았지 근데 정말로 영어 수업부터 경쟁이 치열했어. 어렵사리 영어에 익숙해지고 나니까, 바로 돌리기 시작하는데… 훈련도 힘들었지만 더욱 힘든 건 훈련 하나가 끝날 때마다 이어진 테스트였어. 교관으로 참여한 미군 장교와 한국군 장교가 테스트 결과를 공개하는데 아주 피가 말랐지. 자존심 싸움이 붙어버렸거든. 누구하고 붙었냐고 바로 좌익계 광복군들이었지. 최종 결과에 따라 누가 누구 밑에 들어가느냐가 판가름 났거든. 공평성 불복 저렇게 다 공개해 버리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하겠나

- 강재환. 독립유공자.

- 1995년. 독립50주년 기념 KBS다큐멘터리.

‘2차대전 속의 한국 국군. 그리고 정부의 비사’ 1화 ‘중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탄생’의 인터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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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본토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육군의 재건작업에서 많은 동지들이 새로운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 전쟁은 ‘리포트 전쟁’이었다.

미군의 전쟁 수행과정을 참관하면서 나와 동지들은 거의 매일 리포트를 제출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휴일인 주말이 되면 악명 자자한 ‘필코와 9전단의 워커 홀리커들’이 그 리포트들을 가지고 평가를 벌였다.

한 동지의 푸념처럼 ‘무과 장원급제를 했어도 될 정도’의 역량을 요구받는 일이었지만, 그를 통해 한반도 진공 이후 제대로 된 국군을 만들 수 있었다.

- 이청천의 자서전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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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전단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이후, 필코 세이프티의 사람들이 허송세월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1940년대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설’이고 자신들의 기준에서는 ‘재건’이 될 대한민국 육군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가장 먼저 제기되고 해결책을 내놔야 할 부분은 필코 세이프티 직원의 계급이었다.

사장인 송일한은 퇴역 육군 준장, 수석 치프인 원명환은 퇴역 육군 중령, 치프인 벌레와 빨갱이는 중사 제대인데 반해 기갑파트 파트장인 남궁일호는 소령 제대… 소수의 사병 출신까지 포함해 사내 계급과 군 계급이 일치하지 않는 카오스 상황이었다.

결국 필코 세이프티의 직원들만의 토론회가 벌어졌다. 송일한과 원명한이 생각한 대안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1. 임정 및 광복군, 그리고 연합군과의 정치적인 협의가 필요한 위치인 송 사장과 원명환 수석치프는 소장과 준장 계급으로 올린다.

2. 다른 이들은 모두 원래 군 시절 계급으로 돌아가되, 조직 자체는 ‘제 1 독립 기계화 교도대대’로 정규 육군 조직에서 분리시킨다.

3. 교도대대인 만큼 조직원들은 재건 육군의 장비 운용 교리 및 전투 교리의 연구, 교육을 담당한다. 단, 이는 참전 전까지로 한정한다.

4. 대대는 송일한 소장과 원명환 준장의 명령만을 듣는다.

“2번과 4번이 문제입니다! 잘못하면 정치적 친위군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역으로 숙청대상이 될 수도 있고 말입니다!”

2번과 4번 조항을 가지고 빨갱이와 벌레가 동시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치열한 격론이 이어지고 4번 조항은 결국 삭제되었다.

필코 세이프티에서 내린 결정을 보고받은 고 제독은 바로 9전단의 함장들과 공군 지휘관들을 소집해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의 결과, 종전 때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거의 전무한 해군은 현재의 계급을 유지하고 공군의 경우는 유지하되 조직이 확대될 경우 승진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100% 승진할 것이 확실해진 공군 지휘관들은 부러움에 가득 찬 해군 함장들의 시선을 받았다.

계급 문제가 정리되자 필코 세이프티, 아니 육군의 간부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대한민국 육군에서 황군의 물을 빼자! 단 1개 사단만 만들지라도 일본군 출신들은 하나도 받지 말자!”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 한 목소리로 제일 처음 동의를 한 것이 군의 악습으로 남아있던 구일본군의 문화를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위한 방안으로 육군의 간부들은 미군의 신병훈련 시스템을 관찰했다. 그리고 진급 체계까지 연구를 한 그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씨발! 어떻게 된 것이 21세기 우리네 훈련 방식이 1940년대 미군보다 못한 부분이 많은 거냐!”

“1940년대 미군이 우리보다 더 민주적이면 어쩌자는 거야 조또!”

욕설을 내뱉은 육군 간부들은 곧 뉴욕에 도착할 광복군을 신(新)대한민국 육군의 시작점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목표는 ‘민주적이면서도 프로페셔널한 군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훈련과정부터 꼼꼼하게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훗날 광복군 출신 노병들이 ‘다시 생각만 해도 신물이 넘어오는’ 훈련과정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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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짓을….”

늦은 밤, 내일 아침 과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제출해야 할 리포트를 앞에 놓고 이병석은 머리를 움켜쥐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냥 만주의 조선 의용대로 갈 것을 그랬나….”

충칭의 국민당 정부에게서 곁방살이의 설움을 맛보던 임시정부와 광복군에게 갑자기 미국이 손길을 내밀었다. 그들은 미군 수송기에 태워져 곤명산맥을 넘는 아슬아슬한 비행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는 수송선에 몸을 실었다.

수송선 안에서 영어에 능한 동지가 알아온 정황에 따르면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이라는 군사집단이 필리핀에서 궁지에 몰린 미군을 무사히 탈출시켰고, 그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중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 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의 미국행을 요구했다는 것이었다.

수에즈 운하를 거쳐 대서양을 지나 미국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이병석과 임정 사람들은 수송선 안이 갑자기 떠들썩해지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 더불어 그때까지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던 미국 선원들이 반대로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연유를 알아보니 그 문제의 대한민국 해군 9전단과 미군이 연합해 일본의 수도 도쿄, 특히 천황이 살고 있는 황궁을 폭격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낭보였다.

폭격 성공의 소식을 들은 날, 임정 사람들은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다른 동지들처럼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이병석의 가슴에는 웅지가 싹텄다.

‘내 미국에 가면 저 9전단을 지휘해 일본을 쓸어버리리라!’

하지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수석팀장이라는 이상한 직위를 가진 건방진 애송이와, 9전단의 최고 지휘관인 고 제독이라는 작자가 자신과 주석, 그리고 다른 동지들에게 보인 첫인상은 그게 아니었다.

예의 바른 태도와 어조였지만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저걸 어디에 써먹지 ’라는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청산리 전투를 비롯해 여러 항일무장투쟁을 거친 이병석에게 이런 대접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힘들고 외로웠을 무렵 호의를 보여준 리숭민 선생까지 모욕을 당하고, 거기에 더해 주석이신 김범 선생에게까지 건방을 떠는 모습에 이병석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대들었다.

하지만 수석팀장이라는 애송이가 코웃음을 치며 ‘이게 당신네들이 만든 미래요!’라며 보여준 영상으로 인해 이병석은 화를 낼 수가 없었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미국에 도착한 임시정부와 광복군, 그리고 독립 운동가들을 위한 설명회와 만찬이 끝나고 광복군만이 모인 자리에서 이병석은 이청천을 붙잡고 하소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병석의 하소연을 들은 이청천은 이병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쩌겠나 새로운 이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데 그들의 목적이 의로우니 우리가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

“하지만 장군...”

“노력하세나. 노력만이 답일세.”

그리고 설명회가 있던 다음 날부터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고지는 ‘영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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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외국어는 어느 정도나 하십니까 ”

설명회 다음날 아침, 임정의 각료들과 광복군의 장군들을 모은 자리에서 정 수석팀장이 던진 질문에 김백이 대표로 대답했다.

“다들 일어와 중국어는 자유롭게 하네. 영어도 어느 정도는 하고.”

김백의 대답에 정 수석팀장은 바로 전원을 상대로 각각 1:1 테스트에 들어갔다. 점심이 지나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테스트는 끝이 났고, 정 수석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스트 결과는 복도에 붙여놓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시는 즉시 등급에 해당하는 수업을 받으시면 됩니다.”

“나도 받아야 하나 ”

김백의 질문에 정 수석팀장은 짧게 한숨을 쉬고는 대답했다.

“주석님은 국가원수에 대한 국제관례에 따라 통역을 대동시키겠습니다. 하지만, 사흘 후 있을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필요한 간단한 영어인사와 미국 상하원에서 발표하실 연설문을 위한 발음 교정은 받으셔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주석님의 중국식 영어, 칭글리시가 아주 지독합니다. 그 영어를 사용하시면 득은 하나도 없고 실만 가득할 겁니다.”

“쩝. 알겠네.”

정 수석팀장의 냉혹한 평가에 김백은 입맛을 다셔야 했다. 정 수석팀장은 주석에게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루즈벨트 대통령과 있을 회담에서 이야기할 항목과 미국 상하원에서 연설하실 연설문의 초안을 잡으셔야 합니다.”

“알겠네. 많이 바쁘겠구먼.”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의 하루가 종전 후 한 달, 그리고 미래의 1년을 갈음합니다.”

정 수석팀장의 단호한 대답에 김백은 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선을 다하겠네.”

독립 운동가들을 상대로 한 영어 능력 테스트와 김백 주석에게 앞으로의 일정을 알리고 나온 정 수석팀장은 자신이 나온 건물을 돌아보며 피식하고 비틀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들에게 영어를 교육할 이들은 자신의 기획팀-단 한 명만이 빠진-이었다. 거기에 자신과 달리 금수저 출신들이 대부분. 출세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잠시 옆길로 샌 이들이었다. 간단히 말해 집에 한마디만 하면 바로 꽃길로 가는 것이 가능한 이들이었다.

“자… 이제 판은 벌어졌고, 누가 누구에게 물을 들일지, 두고 볼까 ”

*    *    *

임정이 도착하기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전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으로 9전단과 민간인들 모두 손꼽은 것이 ‘영어’였다.

“영어라… 이건 임시정부만이 아니라 우리도 문제이기는 한데… 빌어먹을... 최소 고졸이 기본학력인 집단이 영어는 젬병이라니… 욕 나오네….”

관련 서류를 앞에 내려놓은 정 수석팀장은 푸념을 내뱉었다. 푸념을 하는 정 수석팀장의 표정이 워낙 안 좋았던지라 그의 팀원들은 쥐 죽은 듯이 침묵만을 지킨 채 수석팀장의 눈치만을 살폈다.

특히 영어가 필수인 필리핀으로 파견을 나오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회화에서 낙제점을 받은 직원 하나는 굴이라도 파서 숨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9전단과 민간인을 상대로 한 영어 능력테스트 결과는 ‘입시위주 대한민국 공교육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단의 승조원들의 절대 다수는 ‘독해는 가능하나 작문은 미흡, 회화는 열등’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었다.

테스트에서 무사히 통과를 한 이들은 고 제독과 각 함선의 함장들과 부장들, 그리고 공군의 장교들 전원, 한전에서 파견한 원자로 관리요원들과 KAI와 조선사에서 파견한 설계팀들이었다.

결과를 본 정 수석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이해가 가네… 해군이야 미군과 합동작전을 피는 것이 일상이고, 공군은 거의 한집살림… 민간인들은 기본이 미국유학을 베이스로 깔고 있으니… 그건 그렇고 의외인 쪽은 이쪽인데….”

정 수석팀장이 지목을 한 곳은 필코 세이프티였다. 그쪽은 제 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원 통과’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사장이나 수석 치프는 그렇다 쳐도….”

궁금증을 못이긴 정 수석팀장은 위스키를 챙겨들고 빨갱이와 벌레를 찾았다.

“지들 입으로 공부 못해서 용병한다는 놈들이 이런 성적을 어떻게 낸 거냐 ”

정 수석팀장의 직설적인 물음에 벌레가 어깨를 으쓱했다.

“일 나갔다가 머리 위로 155mm포탄이나 2,000파운드 폭탄이 떨어지는 엿 같은 경우는 피하고 싶어서 익혔다. 그게 다 생존을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단 말이지!”

“그게 무슨 ”

여전히 이해를 못하는 정 수석팀장의 모습에 빨갱이가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주로 영업을 한 곳이 중동과 아프리카인데, 미군과 같이 뛰어다닌 적이 흔했거든. 그런데 무전 한방 잘못 때려서 포탄이 날아오거나, 우리식으론 ‘가볍게’ 깐 건데 영어식으로는 ‘죽여도 무방할’ 모욕이 되어버려서 ‘우발적인’ 오폭, 말 그대로 ‘Friendly fire'를 먹을 수도 있으니까 죽기 살기로 영어를 배운 거지. 거기에 비즈니스 문제도 생겨서 다른 나라 말도 몇 개 더 배우고.”

“비즈니스 ”

“영업 뛰어야지. 고객이 있어야 우리도 목구멍에 풀칠할 거 아니냐.”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몇 개 국어 ”

정 수석팀장의 물음에 벌레가 먼저 대답했다.

“거리 영어, 살롱 영어, 독어. 아랍어.”

“거리 영어, 살롱 영어, 불어, 아랍어.”

거의 동시에 터져나온 벌레와 빨갱이의 대답에 정 수석팀장이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거리 영어, 살롱 영어 ”

“F나 S로 시작하는 단어가 빠지면 섭섭하고 마약 냄새 그득한 것이 거리 영어, 살롱 영어는 높으신 분들이 위스키 잔 들고 시가 빨면서 쓰는 영어. 그리고 독어와 불어는 아프리카 쪽에 그쪽 식민지가 많아서. 아랍어 역시 마찬가지. 가장 많이 영업한 곳인지라.”

“그럼 그 언어들 다들 능숙하게 쓸 수 있는 거야 읽기나 쓰기도 다 가능하고 ”

“아랍어 빼고는 어느정도 아랍어는 대화만 되는 수준,”

벌레와 빨갱이의 대답을 들은 정 수석팀장은 들고 온 위스키 병을 입에 대고 냅다 병나발을 불어버렸다. 순식간에 반통을 비운 정 수석팀장은 벌레와 빨갱이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썅! 조또! 공부 못해 공부 때려 쳤다는 인간들이 나보다 외국어 능력이 좋은 거냐! 너희들 어머님들은 너희들이 하버드라도 가길 바라신 거냐 ”

정 수석팀장의 말에 벌레는 빈 잔에 위스키를 채우며 대답했다.

“아까 말했잖아 죽기 싫어 배운 거라고. 뒤통수에 총구녕이 버티고 있으니까 집중력이 좋아지더라.”

“총기 밀수해서 학습 보조용으로 팔면 강남과 목동에서 대박날 거라고 사업 구상도 했었지, 아마 ”

“이런 또라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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