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41화 (41/464)

# 41

41화 Intermission. 숟가락은 늘고, 그릇은 커지고, 오늘도 야근이고 (2)

막상 길이 300m, 배수량 최하 6만톤이라는 숫자로 대략적인 윤곽이 정해졌지만, TF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추진체계였다. 영국의 QE와 같은 가스 터빈 발전기와 전기 추진체계를 이용하자니 작전 지속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아예 항모만 전담할 보급선을 만들어버리겠지만 한국은 그럴 여력도, 역량도 없었다.

TF의 속내를 말하자면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줄 해답은 있었다.

“해답이 하나 있는데 그게 정답이 되느냐 오답이 되느냐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달려 있겠죠.”

게이넌 중령의 대답에 이 중령과 장 중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설마 핵 ”

“핵추진 ”

두 사람의 물음에 게이넌 중령은 어깨를 으쓱했다.

“유지비가 줄지는 않겠지만 작전 능력이나 주변국에 대한 억지능력은 확실히 갖게 되겠지요.”

게이넌 중령의 대답에 장 중령과 이 중령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능할 리가 있나!”

“불가능이야, 불가능!”

*    *    *

강하게 부정을 하기는 했지만 전략무기로 분류되는 항공모함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이 문제는 꼭 해결을 봐야 하는 부분이었다. 결국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TF는 동력체계로서 원자력을 이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1차 보고서를 정치권에 보내야만 했다. 보고서를 받은 이들은 청와대는 물론이고 여야 할 것 없이 무섭게 끓어올랐다.

“핵추진이라니 어불성설이오!”

“옳소! 일본과 중국을 자극해 무차별적인 군비경쟁을 벌일 일이 확실하오!”

“두 나라 뿐인가 미국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해군이 보낸 보고서를 보자마자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요란했지만, 의외로 해군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왜 어불성설인가 핵 추진 엔진을 갖자는 것뿐이오! 핵무기가 아니라!”

“이미 군비경쟁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왜 우리만 못한단 말이오!”

“원잠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도 미국은 조용했소! 미국과는 협상만 잘하면 돼! 원잠이나 핵추진 항모나 뭐가 다른데!”

정치권에서 온갖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이 사실을 언론에 흘렸고, 국민들 역시 의견이 분분해졌다.

“탈원전을 선언한 지가 안제인데, 핵추진 항모를 갖자고 미친 거 아냐 ”

“필요하면 가질 수도 있는 거지! 우리는 핵추진 항모를 가지면 안 될 일이냐 ”

“썅! 중국이 가만히 있겠냐 또 한한령이네 뭐네 난리법석을 피울 텐데 왜 일을 만들어! 그리고 일본은 어떻고!”

“지금이 조선시대냐 중국 무섭다고 나라 안 지킬 거야 그리고 일본은 지금 한창 가라앉고 있는 중인데 뭐가 무섭냐!”

“이 파시스트! 군국주의자!”

“이 사대주의자 새꺄!”

국민들까지 찬반양론으로 갈려 으르렁거렸지만 조금씩 핵추진 항모를 찬성하는 쪽의 지지도가 오르기 시작했다. 스스로는 인식하고 있지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뉴스를 통해 익숙해진 항모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모습만 드러내면 상대가 경기를 일으키는 항모-정확히는 미국의 수퍼 캐리어-의 위용을 떠올리며 국민들은 핵추진 항모 보유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여론의 방향이 지지로 바뀌자 정치권은 입을 다물었고, 고심을 하던 청와대는 TF에 질문서를 보냈다.

-핵추진 체계를 선택한다면 적정한 수준의 원자로는

질문서를 받아든 TF는 다시금 머리를 맞대고 숫자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우선은 경수로 ”

“다른 방식 썼다가 북해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러시아 잠수함 꼴 나려고요 ”

“...”

“출력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요 ”

“우리가 알아보죠.”

원자로의 출력이 화두로 떠오르자 공은 미해군 쪽으로 넘어갔다.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가며 계산기를 두들겨대던 미 해군에서는 한국군에게 자신들이 찾은 답을 제시했다.

“15만 마력. 와트로 변경하면 약 112MWe.”

“확실한 겁니까 ”

이 중령의 질문에 게이넌 중령은 산출 근거를 설명했다.

“‘10만 톤급’ 니미츠 함 원자로의 ‘공식 최대출력’이 26만 마력입니다. 이걸 와트로 변경하면 약 194MWe. 지금 한국 해군이 계획하는 항공모함의 배수량을 QE(퀸 엘리자베스급)를 기준해서 6만 톤으로 잡고 니미츠의 데이터에 60%[email protected]를 해서 나온 수치입니다.”

합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도출한 합당한 답이었기에 이 중령과 장 중령은 게이넌 중령, 정확히는 미국이 내놓은 숫자를 받아들였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 출력을 낼만한 원자로를 골라야 하는 건가 ”

숫자를 받아든 이 중령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게이넌 중령이 냉큼 답을 내놓았다. 게이넌 중령은 침을 튀겨가며 이 중령과 장 중령에게 홍보를 했다.

“그거라면 역시 우리 미국에 답이 있습니다! 차세대 항공모함인 제럴드.R.포드에 설치된 원자로입니다. 포드 항모에 들어가는 원자로는 니미츠에 설치된 원자로보다 발전될 모델로 출력과 안전성이 더욱 우수합니다. 포드에는 이 원자로가 2기 들어가는데 1기면 한국의 항모에 필요한 충분한 전력을 제공할 겁니다.”

“이제는 세일즈까지 하는 겁니까 ”

불꽃같은 게이넌 중령의 홍보를 멍하니 듣던 이 중령의 타박에 게이넌 중령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나는 그저 한국이 원자력 추진체계를 획득함에 있어서 좀 더 유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말해준 것뿐입니다. 미국의 원자로를 구매한다고 하는데 미국 정부가 싫어하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다소 멀어진 미국과 한국의 사이가 좀 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거 외에도 항모에 필요한 출력을 내는 원자로를 연구해 개발하는데 들어간 시간과 자금도 줄일 수 있고 말입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는 속담 말입니다. 딱 어울리는 속담 아닙니까 하하하!”

게이넌 중령의 유려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중령과 장 중령의 인상은 잔뜩 굳어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이 중령이 결론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게이넌 중령이 가져온 추정 수치와 추천 방안을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짧게 악수를 나눈 게이넌 중령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나간 것과 달리 사무실에 남아있는 이 중령과 장 중령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아무래도 미국은 이렇게 될 것을 예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쩐지 시원시원하게 협조를 잘 해주더라니….”

두 사람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국이 항공모함을 만들고자 한다는 것은 이미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미국은 한국이 손을 내밀기 전부터 한국이 만들 수 있는 최대한과 최소한의 예상치를 연구했을 것이 빤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낸 것이고.

어쨌거나 게이넌 중령의 입을 통해 미국의 의중을 알게 된 TF는 상부에 그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TF에서 올린 보고서는 위로위로 올라가 청와대에 들어갔다.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갈 때마다 이쪽저쪽 논쟁이 붙었지만 내려지는 결론은 대동소이였다.

“이거 미국한테 당한 것 같은데 ”

“‘같은데’가 아니라 당한 거 맞아.”

“열 받네….”

“그렇다고 'Made in China' 원자로를 쓸까 ”

“…….”

“차라리 이 기회를 살려보자고, 가뜩이나 미국애들이 눈을 흘겨대는데 선물 준다 생각하고 말이야. 그리고 최신형 항공모함에 들어가는 원자로를 준다니 우리한테도 손해는 아니고 말이지….”

“그렇기는 하지만 속은 쓰리네….”

비슷한 결론을 내린 청와대 역시 ‘쓰린 속’을 부여잡고 미국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제3자가 숟가락을 들고 끼어들었다.

새롭게 끼어든 이는 한전이었다.

청와대에 난입한 한전 사장-정확히는 한국 수력원자력 공사 사장-은 냅다 대통령에게 읍소를 했다.

“우리나라의 항공모함에는 우리나라의 원자로를 넣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주국방을 위하는 길입니다!”

한전 사장의 읍소에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자주국방 좋지요. 그런데 군사용 원자로라는 물건이 쉽게 나오는 물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군용 원자로 개발부분까지 투입할 예산의 여력이 없어요. 항모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국방 쪽에서 어지간한 사업들은 다 올스톱 될 거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복지나 다른 쪽 예산을 줄였다가는 대번에 시끄러워질 테고 말입니다.”

“이미 적당한 원자로를 갖고 있습니다! 스마트 원자로가 바로 그 답입니다!”

한전 사장의 말에 대통령은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우리라고 스마트 원자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스마트 원자로의 출력은 필요한 출력에 비해 떨어집니다. 그리고 효율도 떨어지고 말입니다.”

대통령의 말은 사실이었다. 보고서가 올라오자마자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이 스마트 원자로였다. 하지만 항모를 움직이는 필요한 출력은 112MWe, 스마트 원자로의 출력은 100MWe였다.

거기에 효율도 문제였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연료인 우라늄 봉을 자주 교체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모자라는 출력을 상쇄하기 위해 차라리 항공모함의 크기와 탑재량을 줄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 의견은 군부의 극렬한 반대로 거부되었다.

군부에서는 지금 기준으로 삼은 크기가 전략자산으로서의 항모의 가치를 지니기 위한 최소한의 크기라고 우겼고, 거기에 더해 떨어지는 효율이 작전 운용에 어떤 제약을 주는 지를 설명하자 대통령은 군부의 손을 들어줬었다.

하지만 한전 사장은 계속해서 대통령을 붙잡고 늘어졌다.

“발전효율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떨어지는 출력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답이 있습니까 ”

한전 사장의 말에 대통령은 눈이 반짝였다. 한전 사장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답이 있습니다!”

-1. 스마트 원자로의 연료로 들어가는 우라늄 연료봉을 고농축 우라늄 연료봉으로 변경한다.

-2. 항모에 탑재되는 원자로를 1기가 아닌 2기를 탑재한다.

한전의 실무자가 내놓은 해결방안을 들은 청와대와 군부의 담당자들은 모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됩니다. 고농축 우라늄은 미국이 아니라 IAEA부터 당장 난리를 치고 나설 것이 뻔해요.”

“원자로 2기 탑재도 불가능입니다. 항공모함은 육지의 발전소가 아닙니다. 막말로 육지에서야 옆에 하나 더 지으면 된다지만, 항공모함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회의에 참석한 모두 불가능하다고 우겨댔지만, 한전의 실무자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답을 이었다.

“다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희 역시 그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보다 득이 많은 것이기 때문에 스마트 원자로의 2기 설치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선 2번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어지는 한전 실무자의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 미국 쪽에서는 필요출력보다 여유를 준 수치라고 하지만 실전에서는 그보다 더욱 많은 출력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원자로에 과부하가 걸리며 이는 원자로의 수명단축과 사고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 만약 원자로에 이상이 생겨 원자로의 가동을 정지시킬 경우, 원자로가 1기만 있을 경우에는 항모는 가동불능이 되어버린다. 물론 비상 발전기가 작동을 하겠지만 비상발전기로는 항모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하지만, 2기가 설치된다면 그러한 사태를 예방함은 물론 작전능력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원자로가 2기 설치되면서 함의 크기가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크기가 니미츠 급 정도로 커지는 것은 아니다. 소재의 발달과 바다라는 천혜의 대형 냉각탱크로 인해 연장되는 길이는 약 10m로 예상되며, 이 정도의 증가는 늘어난 출력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하다.

- 2기 설치로 인해 대폭 늘어난 출력은 항모가 퇴역하는 순간까지 개량작업이나 장비가 추가가 더해져도 충분한 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

“호오~.”

실무자의 설명을 들은 군부의 인사들, 특히 해군 쪽 인사들은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업그레이드라는 단어와 거의 인연이 없는 육군과 달리 해군은 이것저것 업그레이드와 추가 장착을 하는 것이 익숙했다. 문제는 전자 장비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추가되면 추가될수록 필요한 동력원, 특히 발전기의 용량은 점점 큰 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여유능력은 충분하다고 장담은 했지만 역시나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 해군이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흐음….”

군부의 반응이 좋아진 것을 본 한전 실무자는 한층 기세를 올려 설명을 이어갔다.

“그럼 대안 1번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 원자로에 들어가는 농축 우라늄을 고농축 우라늄으로 바꿀 경우, 좀 더 적은 우라늄 연료봉을 원자로에 넣을 수 있다. 노심에 더 적은 연료봉을 넣을수록 사고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또한 사고가 났을 때에도 대처하기가 용이하다.

- 원자로에 들어가는 연료봉의 교체주기가 길어진다. 미국과 다른 선진국의 경우 20년의 수명을 보장한다. 교체주기가 길어질수록 교체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의 발생과 비용의 증가를 막을 수 있다.

“호오 ”

‘오염 물질의 발생과 비용의 증가를 막을 수 있다.’라는 항목에 청와대 관계자의 눈이 반짝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이었다. 해마다 예산과 관련해서 이런 앓는 소리, 저런 우는 소리가 튀어나오는 게 일상이고, 언제나 그 소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항상 청와대였다.

거기에 환경, 특히 원자력과 관련해서는 유관부처뿐만이 아니라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목소리를 높여댈 터였다. 그런 목소리를 하나라도 줄일 수 있다면 이는 좀 더 편하게 교통정리를 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참석자들의 반응이 호의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 한전 실무자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대사를 쳤다.

“마지막으로 스마트 원자로는 100% 국내 기술입니다. 스마트 원자로를 채용하는 것이 자주국방과 국내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항모의 동력원으로 스마트 원자로를 2기 장착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접한 게이넌 중령은 이 중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국 해군이 원하는 것은 항공모함입니까 아니면 항공모함 디자인의 경주용 보트입니까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