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43화 육군 재건 (2)
진주만 기습이 벌어졌을 때, 난 막 중위 계급을 달았을 때였어. 전선에 나가고 싶었는데 수학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로 보급으로 끌려갔지. 수학 성적이 좋으면 주로 가는 곳이 포병 아니면 보급이었는데, 난 좀 운이 안 좋았던 거지. 그리고는 서류와의 전쟁을 시작했다네.
내가 담당했던 일이 당시 한국군이 필요로 하는 물자, 특히 한국군만의 전용 무기들을 공급하는 것이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어, 한국군에게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약간 어려울 뿐….
뭐, 그것까지도 별 문제는 아니었는데 그 무기들을 노리고 달려드는 미군들이 많은 게 문제였지. 그래서 난 아직도 공수부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해병대도.
- 아서 S. 폴먼. 전 미육군 중령.
* * *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기 위해 계속 벌어진 토론회들에서 필코세이프티의 인원들이 제기한 문제는 ‘무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였다.
기관총서부터 K4를 비롯한 대부분의 무기는 미국의 가려운 부분을 살살 긁어줄 수 있는 종류였기에 공동생산을 유도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지만,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제식소총’에서 발목이 잡혀 버렸다.
“M1은 안 됩니다! 가뜩이나 병력도 적은데 8연발 반자동소총으로는 답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벌레의 발의와 동시에 필코 세이프티의 사람들이 대부분 동의하고 나선 가운데 정 수석팀장이 반박을 했다.
“해결할 방법은 있습니까 총과 탄약을 건네주고 그대로 카피해서 생산해 달라고 할까요 자기네 무기 찍어내기도 바쁜 미국 애들이 과연 그렇게 해줄까요 ”
“렌드리스를 이용하면….”
“렌드리스가 뭡니까 무기 대여법입니다. 미국 애들이 풀빵 찍어내듯이 만든 무기를 대여해 주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무기를 대신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M60, K4, 클레이모어 등등의 무기는 미국도 필요하지만 없거나 구형밖에 없기에 대체제로 우기면 넘어올 가능성이 크지만 제식소총은 아니지 않습니까 M1은 전쟁 직전에 찍어내기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거액을 들여 라인 깐 지 얼마 안 된 것들을 냅다 뜯어낼 거라고 보십니까 거기에 강화 폴리머라든가 하는 듣도보도 못한 소재들로 떡칠이 된 것들을 만들 기술은 있고요 소재라는 것이 역설계가 가능한 것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
정 수석팀장의 지적에 벌레와 빨갱이를 위시로 한 필코 세이프티의 직원들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결론은 M1을 사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지만 벌레와 빨갱이는 여전히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8연발은 좀….”
“정답은 아닌 것 같지만 나름 꼼수는 있습니다만.”
대안이 있다는 말에 토론장에 있던 이들의 고개가 순식간에 홱 돌아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는 두꺼운 안경을 쓴 남성이 소심하게 손을 들고 있었다.
“성함이 ”
“박현오라고 합니다. KAI 설계팀 소속입니다.”
“대안이 있으십니까 ”
“지금 현재의 소재기술의 수준에 맞춘,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소총을 설계해서 생산을 의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하아….”
박현오의 대답에 모두-정확히는 KAI 설계팀을 제외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이들을 대표로 해서 정 수석팀장이 입을 열었다.
“방금 제가 설명을 드렸다시피 미국애들은 자기네가 쓸 무기 찍어내기도 바쁜 상황입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필리핀이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예를 생각한다면 총이라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시골 촌동네 대장간에서라도 찍어낼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말이지요. 제가 알기로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총기 생산을 할 때 타자기 회사까지 참여한 것으로 아는데, 제대로 된 설계만 있다면 괜찮은 금속 가공업체와 생산 계약을 해도 됩니다. 이를테면 수도 파이프 제작업체라던가 말이지요.”
“의견은 좋습니다만… 제일 첫 조건부터 걸립니다. 바로 제대로 된 설계 말이지요. 우리에게는 총기 설계 전문가가 없습니다.”
정 수석팀장의 지적에 강도현 KAI의 설계수석팀장이 박현오를 대신해 토론에 나섰다.
“설계는 우리가 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항공기 설계 전문가로 알고 있습니다만 ”
“그렇기도 하지만 총기 설계도 합니다. 이미 몇 건의 설계와 시제품 생산도 해봤고 말입니다.”
경험이 있다는 강 설계수석팀장의 대답에 정 수석팀장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험험!”
몇 번의 헛기침을 하고 표정을 가다듬은 정 수석팀장은 강 설계수석팀장과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그럼 현재 미군이 사용하는 탄에 맞는 우리만의 소총을 설계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십니까 ”
“ROC가 확정되면 바로 설계에 들어가 설계와 시제품 생산에 한 달, 양산 시제품의 실사 테스트와 피드백은… 생산을 맡을 미국 회사에 달렸지만 석 달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엄청나게 짧은 시간인데 자신하십니까 ”
“이미 우리끼리 한번 계산을 해봤습니다. 처음부터 100%의 신기술과 신소재만 적용한다면 최소 5년이지만 기존의 설계를 차용한다면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시제품을 생산할 시설이 없습니다. 미국에 생산거점을 만든다 해도 참전과 본토진공까지 때를 맞추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정 수석팀장의 지적에 강 설계수석팀장은 한반도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충분한 시설이 저 한반도함에 있습니다.”
“예 ”
“아~.”
강 설계수석팀장의 대답에 정 수석팀장은 고개를 갸웃한 반면 고 제독을 비롯한 해군들은 모조리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한반도함 승조원들은 뭔가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우리 배에 처음 붙었던 별명 가운데 하나가 ‘공구상가’였었지 ”
* * *
결국 제식소총에 관한 안건은 ‘설계 및 시제품을 완성한 다음, 적당한 미국 회사에 생산을 위탁한다.’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니까… 우선적으로 이것만 맞춰 드리면 되는 겁니까 ”
“옙. 5.56이 될 확률보다 7.62나 30-06 가운데 하나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꼭 생각해 주시고요.”
필코 세이프티에서 건넨 서류에 담긴 ROC를 확인한 강 수석설계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멋진 놈으로 보여드리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벌레와 빨갱이는 90도를 넘어 아예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여 강 수석팀장에게 부탁을 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정 수석팀장은 한반도로 돌아가는 강 수석팀장 옆에 붙어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한반도함에 시제품을 만들 정도의 시설이 되어 있습니까 ”
“있지요.”
강 수석설계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했다.
함선이라는 것이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전투 중에 입는 손상을 수리할 수 있는 장비는 기본적으로 실리게 된다. 그리고 이 장비는 함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충실해지기 마련.
거기에 더해 한반도는 항공기까지 싣게 되므로 관련 장비와 부품들은 더욱 충실하게 실리게 된다.
하지만 한반도는 원자로와 통합작전통제센터 덕분에 공간의 여유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제한된 배수량에서 무조건적으로 공간을 늘리면 장갑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조선업체에서는 군부에 선택을 강요했다. 정비용 부품의 보관 공간과 연료와 무장의 저장 공간, 둘 가운데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 선택을 강요한 것이었다. 고민 끝에 해군은 미 해군에게 특허료를 지불하고 ‘연료조합장치’를 설치해 탑재기용 연료탱크를 줄였고, 공군은 팬텀과 KF-5를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을 살려 금속 3D프린터와 관련 장비들을 한반도에 설치했다.
“그 덕에 공군이 설치한 3D프린터와 한반도 함에 실린 공작기계들을 사용해 제식 소총의 시제품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거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잠시 말을 멈춘 정 수석팀장은 강 수석설계팀장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정말 자신 있으십니까 ”
“뭐가요 소총 말입니까 흐음… 이런 말하면 자화자찬 같지만 저 녀석들이 처음 총 만들었을 때 우리 회사 이사 양반 하나가 그러더군요. ‘우리 전투기 못 팔면 총 만들어 팔아도 되겠다!’ 이걸로 답이 되겠지요 덧붙이자면 M-16도 항공기회사 엔지니어의 작품입니다.”
“허어~. 항공기 설계 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총기 설계까지 잘 하시는 지 놀랍군요!”
“다 저 녀석들이 총을 좋아하는 면제자들이라서 그래요. 자격지심, 또는 분노의 덕질이라고나 할까요 ”
“예 ”
“대한민국에서 총덕 또는 밀덕인데 군대 안 갔다 오면 무슨 평가를 받는지 아십니까 ‘군대도 안 갔다 온 새끼들이….’ 그 뒤에 붙는 말이 뭔지는 말 안 해도 아시겠지요 ”
“아아….”
정 수석팀장은 이해를 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 수석팀장은 작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 그래서 저 녀석들이 더욱 깊게 파고든 것일 겁니다. 저 녀석들의 머릿속 사전에 ‘클럽’이란 춤추고 여자를 유혹하는 곳이 아니라 총 쏘는 곳이라고 적혀 있을 겁니다.”
* * *
그런저런 속사정을 속에 품고 ‘K1 Rifle'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처음 시제품을 보게 된 빨갱이와 벌레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뭔가 어디서 많이 본 녀석 같아 보인다.”
“그러게… 어쨌거나! 한번 쥐어보면 알겠지!”
“그래. 한번 조져보면 알겠지! 막내야! 실탄 좀 챙겨라! 한번 조져보자!”
하지만 벌레와 빨갱이의 시도는 원명환에게 막혔다. 냉큼 총을 뺐어든 명환은 벌레와 빨갱이를 노려봤다.
“조지는 것은 양산시제품이 나온 다음이다. 우선은 사용편의성만 점검해봐. 그리고 이건….”
명환이 내민 길쭉한 상자를 열어본 벌레와 빨갱이는 명환을 바라봤다.
“도트 사이트 아닙니까 ”
“총 만들면서 같이 만들어 봤단다. 우리가 쓰는 것에 비하면 돌도끼 수준이기는 한데 1940년대 기술력으로 만들 수 있게 설계를 한 것이라고 하더라. 조질 때 같이 조져.”
명환의 말에 벌레는 삐딱한 표정으로 도트 스코프를 바라봤다.
“시험 하나마나 아닙니까 보나마나 조명으로 알전구 박았을 게 빤한데… 한발 쏘자마자 전구 나가버릴게 확실합니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벌레에 이어 빨갱이까지 동의를 하고 나서자 명환이 두 사람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쓰읍! 저 치들이 그거 생각 안했겠냐! 최대한 버티게 설계를 했다니까 테스트해봐! 만든 사람 성의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 아냐!”
“…알겠습니다.”
“맨날 우리만 갖고 뭐라 그래….”
“아 쫌!”
“옙!”
* * *
1942년 3월 하순. 메사추세츠. 보스턴.
“이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소령.”
미 육군 소령의 안내를 받은 정 수석팀장은 눈앞에 서 있는 공장의 간판을 확인했다.
“존슨 오토매틱스(Johnson Automatics)라….”
간판을 확인한 정 수석팀장은 어깨에 멘 도면통을 한번 추스르고는 소령을 돌아봤다.
“들어가실까요 ”
“그러시죠. 상병, 트렁크에 있는 짐 가지고 따라오도록.”
“알겠습니다, 소령님.”
소령의 명령을 받은 상병은 트렁크에서 길쭉한 엽총가방과 중간 사이즈의 트렁크를 들고는 소령의 뒤를 따라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