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40화 (40/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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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6)

정 수석팀장이 보여준 동영상은 우익 인사들을 직격했다. 처음 시작과 중반 부분까지는 긍정적인 일변도였다.

6.25의 폐허에서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까지 불리는 위치까지 올라갔고, IMF로 휘청거렸지만 모든 국민이 뜻을 모아 위기상황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몇몇 부분에서는 세계의 최선두를 달리는 위치까지 오르는 장면에서 우익 인사들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좋았던 분위기는 거기까지였다. 그 다음부터 이어진 동영상은 우익 인사들-대표적으로 김백 주석-의 얼굴에서 웃음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부산 용두산 대화재를 시작으로 와우 아파트 붕괴, 대연각 호텔 화재,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세월호 전복사고 까지 각종 사고들과 경제성장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 IMF이후 거리에 늘어난 노숙자들과 무료급식소에서 하루를 버틸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 ‘금수저와 흙수저’, ‘귀족노조’, ‘88만원 세대’ 등, 각계에서 심화된 양극화 현상까지….

영상의 재생이 끝나고, 정 수석팀장은 김백 주석을 비롯한 우익 인사들을 바라봤다.

“자본주의의 세상이란… 참 멋지지요 ”

“이게 우리의 탓이란 말인가 ”

“억울하시겠지만 무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모조리 정치탓만 하는 것은 무리지 않겠나 ”

김백의 항변에 좌익과 우익 인사들 모두 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김백과 독립 운동가들의 반응에 정 수석팀장을 비롯해 경비를 서고 있던 필코 세이프티-이제는 대한민국 육군-의 요원들까지 동시에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그 반응을 본 김백은 얼굴을 구겼다.

“내가 틀렸나 보군.”

“이 모든 사건 사고들을 보면 겉으로는 개인 또는 단체의 사욕으로 인한 실수, 오판, 범죄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입니다. 그 실수, 오판, 범죄를 막을 행정조직이나 정치권이 그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일이 더 커진 것입니다. 따지고 들어가 볼까요 ”

잠시 목을 축이느라 말을 멈춘 정 수석팀장은 목을 축이자마자 말을 이어갔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거의 다수가 조선왕조 시대를 겪으신 분들입니다. 조선왕조의 중앙이나 지방의 행정이 어땠습니까 중앙 조직은 말도 안 되는 박봉, 지방의 행정조직은 그 수장 외에는 죄다 무급. 이래놓고 부패가 없기를 바라면 도둑놈 심보지요. 자, 거기에 일제시대를 겪습니다. 정경유착, 오직(汚職)의 대표상징이라고 평가되는 일본의 시스템이 조선왕조의 부패구조와 접목이 됩니다. 그리고 광복, 군정을 하는 미군이나 정치 투쟁을 벌이던 조선의 좌우익 정치가들 모두 친일파들을 옆에 둡니다. 미군은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정치가들은 돈을 대주니까! 그럼 그 돈은 아무 조건 없이 막 주는 돈이었을까요 아니죠! 돈을 받은 정치인들은 그 대가를 줬습니다. 뭘로 권력으로! 처벌을 받아 권력에서 배제되거나 아니면 적지 않은 죗값을 치루고 나야만 그나마 미관말직에 다시 복귀하는 것이 가능했을 친일파들이 자신들이 원래 있던 자리에 아니면 일본인들만이 앉을 수 있었던 고위 계급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자! 주석님! 하나 여쭙죠. 이렇게 자리를 잡은 친일파들이 할 행동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정 수석팀장의 도발적인 질문에 김백은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띄엄띄엄 대답을 했다.

“주머니를 채우겠지.”

“정답입니다! 광복 후 정치인들에 쥐어준 그 돈! 누구에게서 어떻게 채울 것입니까 바로 제일 바닥에 위치한 보통 국민들을 쥐어짠 겁니다! 자, 이렇게 된 상황인데 안 썩으면 신흥 종교로 삼아도 될 기적인거죠. 시간이 지나 새로운 인물이 새롭게 들어와도 월급은 박봉에 주변은 모두가 썩어버린 도둑놈, 먹고 살려면 자기도 썩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이걸 바꾸기 위해 내부 고발을 해도 고발자만 병신이 되어버리는 웃기는 세상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주석님, 모두가 정치탓만은 아니라고 하셨죠 그 말이 용인될 수 있는 시기는 1990년대, 민주화 이후는 되어야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광복 직후 100% 아니 120% 정치탓입니다!”

짝짝짝!

정 수석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21세기에서 온 이들은 한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심지어 어느새 수꼴의 대표로 인식되던 강 대령마저도 이 순간만큼은 동감을 한다는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허….”

열렬한 박수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김백은 허탈함과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결국, 김백은 백기를 흔들었다.

“그래. 자네 말이 다 옳다고 하세. 그럼 자네가, 아니 자네들이 만들고 싶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것은 지금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회사가 일본에서 만든 광고영상입니다.”

정 수석팀장의 말에 김백은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병을 바라봤다.

“코카콜라 ”

“영상을 보시죠.”

전 수석팀장은 바로 영상을 재생했다. 1980년대 버블 경제의 최고점을 찍을 당시 만들어져 지금도 유명한 코카콜라의 일본 CF묶음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난 저 CF 마음에 안 들어. 보고 있으면 속에서 뭐가 확 올라와.”

“너만 그러겠냐….”

빨갱이의 투덜거림에 응수를 한 벌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CF를 보는 벌레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섞인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걱정 없는 얼굴들을 보다보면 어느새 일본이 부럽고 동경하게 돼버리지… 덕분에 친일파 양산CF라 불리기도 했고… 그런데 그거 아냐 2020년대에 사는 일본인들도 저 CF 보면 다들 그런다더라.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어 ’ 웃기지 않냐 ”

“웃긴 일이군.”

스크린의 영상이 끝나자 정 수석팀장이 김백에게 질문을 했다.

“영상에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

“…여유와 행복 내가 잘못 느낀 건가 ”

계속해서 이어진 정신적인 난타 덕에 궁지에 몰린 김백은 조심스럽게 답을 내놓았다. 김백의 대답에 정 수석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셨습니다. 여유와 행복… 그런데 말입니다, 주석님. 여기 서 있는 후손들은 그 여유와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말하자면 여유와 행복을 느끼려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

“…모르겠네.”

“후손들이 포기한 것은 미래입니다. 미래의 반려, 미래의 자식, 미래의 여유를 포기해야 현재의 여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주석님, 제가 만들고 싶은 나라가 무엇인지 물으셨지요 제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잠시 말을 멈춘 정 수석팀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독립 운동가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저 광고가 광고 속의 신기루가 아닌 실제가 되는 나라를 만들고 그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 나라는 사상의 아귀다툼이나 주도권 싸움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제발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그게 제가 지금까지 여러분께 무례를 범한 이유입니다!”

짝짝짝!

“와아!”

정 수석팀장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강당 안은 다시금 박수소리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허어….”

김백을 비롯해 김백과 비슷한 연배의 독립 운동가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강당을 꽉 채운 박수 소리와 함성은 9전단 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2,30대의 혈기 넘치는 독립 운동가들과 비슷한 연배인 독립 운동가 자녀들이 좌우를 떠나 함께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까지 그렇게 호응을 보이는 것을 본 김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게지… 뜬구름 잡기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목표가 보이면 그쪽으로 향하는 것이 순리인 거겠지… 대세는 정해진 건가….”

젊은 독립 운동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한 정 수석팀장은 굳히기에 들어갔다.

“주석님, 그리고 임정의 여러분들과 독립 운동가 여러분들. 저희들이 준비한 계획에 동참하시겠습니까 ”

“실제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자네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좋아보이네.”

“다른 분들은 ”

정 수석팀장의 시선은 좌익 독립 운동가들에게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좌익 독립 운동가의 대표격인 조용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동참하지. 단, 난 사민주의자일세. 약자가 핍박받는 상황이 온다면 난 주저없이 투쟁을 할 걸세.”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백과 조용석으로 대표되는 좌우익 독립 운동가들이 백기를 흔든 것을 확인한 정 수석팀장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크게 외치고는 냅다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강당은 다시 한 번 박수 소리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    *    *

중간에 리숭민의 이탈이라는 작은 소란( )이 있었지만 설명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강당 옆 식당에 식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정 수석팀장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에는 한반도를 비롯한 9전단 소속의 취사병들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뷔페가 가득 차려져 있었고, 서빙을 담당한 병사들이 군데군데 서서 사람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고 제독은 옆 테이블에 앉은 정 수석팀장에게 손짓을 했다. 정 수석팀장이 다가오자 고 제독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공연 준비는 확실하게 되어 있는 것이겠지 ”

“예. 리허설도 충분히 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괜찮을까 아까 확실하게 속을 긁어놓았는데 말이지… 거기에 더해 21세기의 대중문화라… 부작용이 생길까 걱정되네.”

고 제독의 말에 정 수석팀장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중에 본토에서 겪을 일을 대비한 예방접종이라고 생각해야겠지요.”

고 제독과 정 수석팀장이 걱정을 하는 공연은 9전단과 함께 이 시간대로 넘어온 가수들이 하는 환영공연이었다.

엘레노어 루즈벨트 영부인과 펄 벅 여사의 적극적인 후원 덕에 미국 상류계급 사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녀들은 임정과 독립 운동가들이 미국에 온다는 소리에 자청해서 공연을 준비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지만 고 제독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은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마음에 걸려한 것은 그녀들의 음악이 아니었다. 그녀들의 무대의상이었다.

21세기에서 온 사람들이 조마조마해 하는 가운데, 그녀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폭발적인 고음역대를 자랑하는 솔로 가수와 21세기 기준으로 고전적인 스윙을 기반으로 한 걸그룹의 노래가 식당을 채우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김백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의 반응을 살피던 정 수석팀장과 고 제독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

영감님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정 수석팀장이 김백 주석이 자리한 테이블로 다가갔다.

“어떻게, 즐거우십니까 ”

“아 아주 즐겁네. 노래가 아주 흥겹구만. 뭐, 영어가 많이 섞인 점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네만… 그거는 뭐 이해하기 나름이고… 괜찮네.”

“감사합니다.”

정 수석팀장이 안도하는 표정을 짓자 김백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왜 노래가 거슬린다고 상이라도 뒤엎을 줄 알았나 잔치가 벌어졌으면 흥겨운 노래가 같이하는 것이 풍류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 단지….”

뭐라 말을 이어야 김백의 심사를 긁지 않을지 정 수석팀장이 고민을 하는 모습에 눈치를 챈 김백이 다시금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아! 저 가수들의 옷차림 때문에 그러는가 자네 카바레나 클럽에 안 가봤나 상하이 외국인 조계지나 충칭에 있는 카바레에 가면 저 정도는 얌전한 옷차림이야. 하하하!”

파안대소를 하는 김백의 모습에 정 수석팀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주석님이 그런 곳에도 가 보셨습니까 ”

“일본 놈들의 눈을 피해 무기밀매라던가 접선을 하다보면 가끔씩 그런 곳에도 갔지. 왜 매번 청요리집만 갔을 것 같나 ”

“…그렇군요. 공연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쇼.”

김백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정 수석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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