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9화 (39/464)

# 39

39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5)

정 수석 팀장의 말에 광복군은 물론이고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의 기세까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흥분으로 달아오르는 와중에도 소수의 인원은 냉철한 이성으로 정 수석팀장의 발언을 평가하고 있었고, 그 소수에는 김백 주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보시게. 정 수석팀장. 나도 본토진공을 통해 자력으로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은 동감하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할 일이고 말일세. 하지만 말일세. 일본 본토침공과 이권쟁탈전은… 꼭 필요한 일인가 서양과 일본이 청국과 우리 조선에서 벌인 이권쟁탈을 그렇게 욕을 했는데 우리 역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잘못하면 피로 피를 덮는 역사가 반복될 수 있네.”

“주석님께서는 본토진공과 본토회복만으로 끝내자는 말씀이십니까 ”

“그렇네.”

김백의 대답에 정 수석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주석님. 주석님의 의견이 정답임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원론적인 정답이라고밖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론 현실은 아니라는 것인가 ”

“죄송합니다만, 그렇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첫째. 이 지구상에서 우리끼리만 문 닫고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타국과의 교류는 필수입니다. 이 점 동의하십니까 ”

“동의하네. 그렇지만 그 교류라는 것이 선린우호로 되어야지. 무력으로 타국을 억누르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될 말이지.”

“그 부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두 번째 문제가 튀어나옵니다. 그렇게 교류를 하려면 가장 가까운 나라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우리 주변국이 다 문제입니다. 중국과 러시아, 미국은 나중으로 치더라도 일본이 문제입니다. 주석님. 우리 시대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면 썩 좋은 관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문화적으로는 한류문화라던가 오타쿠 문화라던가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좀 많이 아주 껄끄럽죠.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정립이 미완인 상태에서 봉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완 아… 자네들의 역사에 기록된 본토진공 불발과 분단으로 인한 6.25내전을 말하는 것인가 ”

“거기에 6.25를 통한 일본의 경제회생을 포함시킵니다. 우리가 일본을 보는 가장 기본적인 시각은 ‘패전국 주제에 돈 좀 벌었다고 나댄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반대입니다. ‘얻어걸린 주제에 잘난 척 한다.’ 문제는 이 ‘얻어걸린’ 부분이 나오면 우리가 말빨에서 밀리게 되고, 그 결과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침공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자네 말에도 일리는 있네. 하지만 말일세. 자력으로 본토 수복만 해도 얻어걸린 주제는 피할 수 있지 않겠나 일본 본토를 침공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큰 것이 아닐까 걱정이 앞서네.”

“일제가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날. 항복을 받아주는 입장에 서야만 추후에 있을 이권경쟁에 끼어들 수 있습니다.”

“아까 전 자네가 한류 문화라고 말했지 문화를 통해 타국과 통교를 한다면 무력을 기반으로 한 강압적인 이권경쟁보다 훨씬 좋지 않겠나 ”

김범의 지적에 정 수석팀장은 또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주석님. 우리 시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문화를 통한 타국과의 선린외교.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주석님. 문화라는 것이 자기 혼자 잘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흉년이 들어 사방에서 굶어죽는 이들이 넘쳐나는데 판소리꾼을 불러주는 집이 있겠습니까 당장 날품팔이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데 판소리를 배우고 가르치고, 가다듬는 이들이 나오겠습니까 문화가 융성하려면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지금 저 조선에, 여기 이 임정에 돈이 있습니까 ”

“…없네. 하지만 부국이야 노력을 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본이 없으면 헛수고입니다. 그 자본, 어떻게 마련할까요 차관, 그러니까 빚을 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게 받는 렌드리스도 빚이요, 차관도 빚입니다. 빚 많아서 좋을 거 별로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고. 승전국의 자격을 가지고 일본에게서 뜯어낼 수 있을 만큼 뜯어내는 것, 달리 말해 미친듯이 뜯어내야 이득인 상황입니다. 그리고 아까 한류를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한류가 그만큼 인기를 끌게 된 것도 한국이 어느 정도 잘 살게 되면서부터 인기를 끌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잘 사는 집 놋쇠 요강은 다른 집 가보가 될 수 있지만 못 사는 집 고려청자 요강은 다른 집 가도 요강이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이해했네.”

정 수석팀장의 마지막 말에 김백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주도권이 9전단으로 넘어왔다는 상징이었다. 가볍게 목을 축인 정 수석팀장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광복군과 마찬가지로 미국 행정부를 참관하시게 될 여러분들도 그냥 구경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미군과 마찬가지로 미국 행정부 역시 이번 전쟁을 위한 시스템으로 구조조정이 됩니다. 그 과정을 하나라도 놓치지 마시고 관찰하시고, 평가하시고, 배우십시오. 이제부터의 하루, 한 시간이 광복 후 1년, 10년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친일파들이 다시 나라의 중추에 자리를 잡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상급자들이 모든 것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초보자를 하급자로 데려다 놔도 조직은 제대로 돌아간 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물론 그 상급자들은 고생문이 열린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을 이국땅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거치신 분들이 여러분들입니다. 나라를 제대로 다시 만들 몇 년의 고생을 못 참으실 분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

“아니지!”

“내 분골쇄신이 뭔지 보여주겠네!”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은 끓어올랐다.

한편, 상황을 구경하던 벌레가 무전기로 빨갱이를 호출했다.

“야, 저 자식은 무슨 사이비 교주를 해도 되겠다. 들었다 놨다 아주 정신이 없게 만들어 버리네.”

“저 새끼. S그룹 들어갈 때 스펙이 아니라 말빨로 들어간 것 아닐까 ”

*    *    *

뜨겁게 끓어오르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좌익 독립 운동가들이었다.

“이보시게. 만약 배워야 한다면 우리를 모스크바로 보내주게! 우리는 썩어빠진 자본주의를 배우지 않겠네!”

“맞다!”

“옳소!”

“시끄러워! 이 와중에 무슨 헛소리야!”

“이럴 거면 배를 타지 말았어야지!”

좌익계 인사들의 소란에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좌익과 우익 인사들 사이에서 당장이라도 멱살잡이가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정 수석팀장은 속으로 혀를 찼다.

‘썅! 예상은 했지만 참 잘 돌아가는 꼬라지다!’

마음속으로 좌우익 가리지 않고 한사발의 욕을 퍼부은 정 수석팀장이 막 마이크를 손에 잡았을 때, 김백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조용! 후대들이 보고 있는데 이 무슨 추태인가!”

김백의 호통에 소란은 빠르게 가라앉았지만 흉흉한 분위기는 그대로였다. 김백은 그런 이들을 질타했다.

“창피한 줄 알게! 방금 전 무엇을 본 것인가! 또 다시 똑같은 길을 갈 생각인 것인가!”

김백의 질타에 좌우익 독립 운동가들의 얼굴은 창피함과 화가 뒤섞여 벌겋게 변해버렸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정 수석팀장이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공산주의의 미래를 보시고 싶지 않으십니까 ”

정 수석팀장의 질문에 좌익과 우익 인사들의 시선이 모두 정 수석팀장에게 집중되었다. 그런 이들을 대표해 김백이 정 수석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건 무슨 말인가 ”

“여러분들이 계속 한 가지를 잊고 계셔서 말입니다. 저를 비롯한 9전단은 미래에서 왔다는 점 말입니다.”

“그래. 그렇….”

정 수석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김백은 정 수석팀장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자네, 지금 공산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

“사상으로서의 공산주의 실패여부는 학문의 관점이니 문외자인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체제나 국가의 관점이라고 보면 실패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대답을 한 정 수석팀장은 노트북에 담아놓은 또 다른 영상을 스크린에 재생하기 시작했다.

“1932년 우크라이나 대기근 이후 2000년까지의 공산주의 국가들의 변천사입니다. 평가는 없습니다. 단지 기록만 담아놓았을 뿐입니다.”

훗날 ‘한반도의 좌익들을 분열시킨 시작점의 2시간’이라고 일컬어진 사건의 시작이었다.

*    *    *

거의 2시간에 달하는 긴 영상이 끝이 났다. 좌익 쪽 인사들은 완전히 혼이 나간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군주와 자본가들의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태어났던 공산주의 국가들의 역사는 또 다른 폭력과 억압의 역사였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에서 레닌의 동상이 시민들의 손에 의해 부서지는 장면에 좌익인사들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실제로 레닌과 대면을 하고 그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경험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는 심장을 찔린 것과 같은 일이었다.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북한이었다. 김일성이라는 애송이가 국가의 수반으로 들어앉아서 세습왕조를 만들고는 인세의 지옥을 만들어 버렸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좌익계 인사들은 머리를 움켜쥐고 비탄에 잠겼다. 그런 좌익인사들을 우익이나 무정부주의 독립 운동가들의 시선은 안쓰러움에 가득 차 있었다.

2층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벌레가 무전기로 빨갱이를 불렀다.

“빨갱이 새꺄. 노안이 ‘저 새는 해로운 새다.’ 시리즈를 왜 안 집어넣었을까 그걸 빼먹을 새끼가 아닌데 ”

“이 벌레 새끼가… 그것까지 집어넣었다가는 저 노친네들 죄다 뉴욕 앞바다로 뛰어드실 거다! 여기까지 와서 벌레 인증하고 싶냐 ”

“냅둬유. 안 그래도 벌레라고 찍혔는데 이미 버린 몸이다. 그건 그렇고 저 장대한 삽질의 역사를 다시 본 소감이 어떠냐 같은 빨갱이로서 말이야.”

“이 새끼가… 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민주의자라고 몇 번을 말했냐 ”

2층에서 벌레와 빨갱이가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만담을 진행하고, 근처에서 경비를 서던 필코 세이프티의 팀원들이 둘의 무전을 들으며 팝콘을 즐기는 동안 아래층에선 정 수석팀장이 또 다른 표적을 향한 팩트 폭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석님.”

“아까 보신 역사 말고 또 다른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시겠습니까 ”

“또 다른 대한민국의 역사 ”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사입니다. 부제는 빛과 그림자 내지는 누더기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정 수석팀장의 발언에 김백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권유가 아니라 강요구먼. 자네 뜻대로 하게.”

김백이 수락을 하자 정 수석팀장은 노트북을 조작했다. 한편, 2층에서는 빨갱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벌레를 불렀다.

“이제 내 턴이다,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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