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38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4)
“이, 이보시게! 정 수석!”
정 수석팀장의 감사 발언이 나오자마자 리숭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리숭민의 모습에 김백이 제지를 하고 나섰다.
“자리에 앉으시게. 리 박사.”
“주석!”
“앉으시라니까. 그리고 정 수석팀장.”
“예. 주석님.”
“리숭민에 대한 처벌이 꼭 필요한 일인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동지일세.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나도 내가 암살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속이 편치는 않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래의 일일세.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 가지고 임정의 대통령까지 지냈고, 지금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한 동지를 처벌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야.”
“주석님. 제 요청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앞으로 벌어질 일 가지고 리숭민 선생에 대한 제재를 운운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했던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확실한 감사와 그에 따른 공과를 논하자는 것이지요.”
“지금까지라 ”
정 수석팀장의 말에 김백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정 수석팀장을 시작으로 9전단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리숭민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정 수석팀장이라는 젊은이의 발언과 주변의 분위기를 볼 때 리숭민의 배제는 단지 시작일 수도 있었다.
문제는 저들 덕택에 임정과 동지들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자리를 옮김과 동시에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게 되었다는 현실이었다.
거기에 더해 임정과 동지들 가운데 많은 수가 리숭민 특유의 독선과 자기 과시욕으로 인해 리숭민을 경원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김백 자신도 리숭민을 좋아하지 않았다.
김백이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리숭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이건 나에 대한 고의적인 음해다! 증거가 있으면 증거를 대라!”
“증거요 이걸 보시지요.”
정 수석팀장은 또 다른 동영상을 재생했다. 그 동영상은 리숭민이 미국에서 활동했던 시기의 행적이 담긴 다큐멘터리의 편집본이었다. 편집본에는 리숭민의 공도 담겨있었지만 과오도 그대로 들어있었다. 교민 사회의 분열과 자금 횡령 등등… 특히 안창호 계열의 독립단체가 모은 자금을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확보했던 사건의 육성 증언까지 나오자 임정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의 사나운 시선이 리숭민에게 집중되었다.
동영상이 끝나고 김백이 결론을 내렸다.
“아무래도 정 수석팀장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의합니다.”
다른 임정의 요인들까지 김백의 의견에 찬성의 뜻을 밝히자, 리숭민은 강하게 거부의 뜻을 밝혔다.
“나는 거부하오! 임시 정부가 무슨 권한으로 나를 감사한다는 것이지 말만 임시정부지, 건국강령만 있고 헌법조차 없는 일개 정치 단체가 무슨 권한으로!”
리숭민의 지적에 정 수석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을 내놓았다.
“임시 정부는 이미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연합국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헌법은… 이미 헌법의 초안은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하위 법안들도 이미 초안은 다 잡혀있고 말입니다. 몇 가지 수정만 더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그걸 언제….”
“우리가 누구인지 진짜 가볍게 생각하셨군요. 21세기 대한민국에 헌법과 다른 법안들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해군 9전단이 움직이고 있을 동안 다른 민간인들은 그냥 놀고만 있었을까요 ”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리숭민은 허를 찔린 표정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리숭민은 발악을 했다.
“이건 나에 대한 조직적인 음해이다! 지난 시간동안 독립을 위해 헌신해 왔음에도 이러한 모독을 주는 것은 어불성설! 나는 더 이상 임정에 참여하지 않겠다! 더불어 임정을 인정하지 않겠다!”
폭탄선언을 한 리숭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그런 리숭민을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 그리고 9전단의 사람들 그 누구도 잡지 않았다. 문 앞에서 잠시 멈칫하던 리숭민은 확실하게 결심을 한 듯 문을 열고 강당을 빠져나갔다.
* * *
1942년 5월 10일에 있었던 임시정부와 9전단의 회동은 꽤 강한 후폭풍을 가져왔다. 그 후폭풍 가운데 가장 강했던 것은 리숭민의 독자세력화 선언이었다.
리숭민의 선언 이후 미국 한인사회의 40%가 리숭민을 따라 별개의 조직으로 뭉쳤고, 리숭민은 최초의 반체제 인사가 되었다.
- 1995년. 독립 50주년 기념 KBS 다큐멘터리.
‘2차대전 속의 한국 국군. 그리고 정부의 비사’ 1화, ‘중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탄생’의 내레이션 한 토막.
* * *
리숭민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한동안 강당 안은 소란스러웠다.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방금 전 리숭민이 보인 행동을 가지고 격론을 벌인 것이었다.
“저런 후안무치한 자가 있나!”
“공식석상에서 저런 취급을 당하면 저라도 저랬을 겁니다!”
“우리가 중국에서 무슨 꼴을 당했는데!”
“그래도 그의 공은 인정해줘야 합니다!”
리숭민의 행동에 대한 찬반양론이 거세게 격돌하는 가운데, 김백이 상황을 진정시켰다.
“다들 조용히 합시다, 조용!”
김백의 말에 강당 안의 소란은 빠르게 진정되어갔다. 소음이 가라앉자, 김백이 상황을 정리했다.
“우선 정 수석팀장 ”
“예, 주석님.”
“아직 젊어 혈기방장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좀 성급하고 과격했어.”
“하지만 리숭민은 배제를 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리숭민이 문제가 많은 것은 인정하네. 하지만 좀 과격했네. 어쨌든!”
잠시 말을 멈춘 김백은 주변에 있는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리숭민이 저렇게 나간 이상, 우리 임정과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소. 물론 리숭민이 이대로 조용히 있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나! 나나 여러분들이나 리숭민이 어떤 이인지 잘 알고 있으니 쓸 데 없는 분란을 만들지 맙시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요 ”
“알겠습니다, 주석!”
김백의 말이 끝나자마자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한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며 정 수석팀장을 비롯한 9전단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김백이로군… 단 몇 마디의 말로 상황을 종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리숭민과의 연계를 차단해 버리는 명분을 얻어버렸다.’
‘김백 최대의 라이벌을 날려버린 이번 일이 과연 잘한 것인지 걱정이 되는군.’
9전단의 사람들이 감탄과 걱정을 하는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상황을 정리한 김백이 정 수석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그 난장판 덕에 자네가 말한 것을 많이 잊었네 그려. 다시 한 번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해줄 수 있겠나 ”
리숭민으로 인해 벌어진 난장판을 수습하면서 기세를 살린 김백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정 수석팀장에게 하대를 했다. 그런 김백의 변화에 정 수석팀장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만만치 않은 기세를 피우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우선 주석님은 4일 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하시게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그 다음은 ”
“지금 도착하신 분들 가운데 영어회화가 힘드신 분들은 영어교육을 받으셔야 합니다.”
정 수석팀장의 설명에 김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교육 당분간 미국에 있어야 하니 그래야겠지. 중국어에 이어 영어라… 제대로 된 독립국을 만들 수 있다면 밤을 새서라도 배워야겠지.”
김백의 말에 동감한 듯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 광복군은 미군에서 훈련을 받으시고, 다른 분들은 미국 행정부와 산업시설들을 순방하시게 됩니다. 이후, 광복군의 장성 분들은 미군 참모본부에 옵저버로 활동을 하시게 되며 다른 분들은 미국 행정부에서 옵저버로 활동을 하시게 될 겁니다.”
“옵저버 관전무관인가 ”
“그렇습니다.”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리숭민의 퇴출 이후 입을 닫고 있던 이병석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구경만 하라는 거야! 이렇게 무시를 할 거면 뭐 하러 우리를 미국에 오라 한 것인가!”
“병력도 없이 장군들만으로 전쟁을 하실 겁니까 ”
“병력은 있어!”
“보자… 1,012명이군요. 이 병력 가운데 지금 장성들만 여섯 분. 간단하게 산술적으로 따지면 한분이 약 160명 언저리로 병사들을 지휘하시겠군요 ”
“그래서! 그러는 네놈들은 모두 몇 명인데!”
“육해공 통틀어 2,500명입니다. 거기에 전투기 40대. 다목적 무인기 8대. 조기경보기 3대. 헬기 12대. 전차 8대. 차륜형 자주포 4문, 고기동 장갑차량 총 25대. 트럭 12대. 항공모함 1척. 구축함 3척입니다. 아!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 항공모함은 1942년 현재, 세계에서 제일 큰 함선입니다.”
“빌어먹을….”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이병석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런 이병석과 이심전심이었는지 이청천이 정 수석팀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병력수로는 지극히 소수라는 것을 인정하네. 하지만 말일세. 관전무관이라니 그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갑자기 뒷방 늙은이로 만들어버리니 철마(鐵馬), 저 친구가 화를 내는 것 아닌가 ”
이청천의 지적에 이병석은 마구 고개를 끄덕였고, 정 수석팀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 그 부분은 제 설명이 미숙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광복군의 장성 여러분. 옵저버가 간단히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별을 단 이들이 사령부에서, 전선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언제 하는지 확실하게 보고 익히십시오. 그리고 그 행동의 성공과 실패를 확실하게 파악하시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니면 우리가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과 개선해야 할 부분을 확실하게 매뉴얼로 만드셔야만 합니다.”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이청천이 호기심을 보였다.
“뭔가 큰 그림을 그리나 보군 ”
이청천의 물음에 정 수석팀장이 비릿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본토 진공과 일본 침공, 안 하실 겁니까 ”
정 수석팀장의 물음에 한쪽에 앉아있던 광복군들의 기세가 단번에 사나워졌다. 폭풍처럼 사나운 기세를 온몸으로 받으며 정 수석팀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본토 진공과 수복. 시작은 한미 연합군으로 시작한다 해도 끝은 반드시 우리 손으로 끝을 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고 국토가 반동강이 나는 사태를 피함과 동시에 이권경쟁에도 뛰어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자원. 물적 자원은 렌드리스를 이용해 충당할 수 있습니다. 인적자원은 본토에 들어가서 모병을 하던 징병을 하던 어떻게든 충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써먹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사상누각! 광복군의 장성 여러분들이 미군사령부에서 보고 배우셔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작게는 수만, 많으면 수십만의 병력을 움직이는 법을 배우셔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