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7화 (37/464)

# 37

37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3)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강당 안은 잠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잠시 후, 임정의 요인들 가운데 하나 둘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커다란 웃음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제일 앞에 앉은 김백을 비롯해 임정의 고위 인사들은 전혀 웃지를 않고 있었다.

“정길수 수석팀장이라고 했소 우리는 진실을 듣기 원하오.”

“진실입니다.”

“차라리 미국의 위장부대라고 하는 일본의 신문기사를 믿겠네.”

“그럼 그 기사를 믿으시지요.”

너무나도 당당한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김백은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로 미래에서 왔다는 것인가 ”

“저잣거리 속어로 대답하지요. 뜨신 밥 처먹고 할 거 없어서 거짓부렁을 하겠습니까 ”

“그런가 ”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 김백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독립은 했군 거기에 자네들 입성을 보니 잘 살고 있고 말이야.”

김백의 말에 정 수석팀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잘 산다’라… 극빈국의 사람들이 보면 잘 산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응 ”

정 수석팀장이 한 대답에 김백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질문을 하려 했다.

“시간관계로 질문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우선 아까 알려드린 일정대로 영어 교육을 받으시고, 그 다음….”

“이봐!”

김백의 질문을 막은 정 수석팀장이 계속 진행을 하려하자 김백의 뒤에 앉아있던 임정의 요인 하나가 벌떡 일어서서 고함을 질렀다.

“무슨 일이신지요 성함이 ”

“광복군 중장 이병석이다!”

“예. 이 중장님. 무엇이 문제인가요 ”

“네까짓 놈이 무엇이관데 주석님이 말씀을 하시려는 것을 마음대로 끊어먹는 것이냐 ”

“아까 설명 안 들으셨습니까 이 시간대로 오기 전까지는 잘 나가는 대기업의 촉망받는 인재였고, 지금은 미국 행정부와의 협상을 책임지고 있는 정길수라고 합니다.”

“이 시건방진 놈!”

이병석의 욕설에 정 수석팀장은 피식하고 코웃음을 터뜨렸다.

“이 시건방진 놈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협상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잠시 말을 멈춘 정 수석팀장은 임정의 요인들을 노려봤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장제스 휘하의 정치단체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것 아니냐는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

“철마, 참게.”

폭발하려는 이병석을 막은 김백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정 수석팀장을 바라봤다.

“우리도 노력을 많이 했다네. 하지만 가진 것이 너무 없었지.”

“인정합니다. 그리고 1차 대전이 끝나고 지금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국제정세가 꽤 도움이 안 되었다는 것도 인정은 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을 멈춘 정 수석팀장은 임정 요인들과 함께 앉아있는 리숭민을 노려보았다.

“그 국제정세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결과물이 너무나 형편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중국에서는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갈려 서로 잡아먹고, 갈라서고, 미국에서는 자기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교민사회를 반으로 갈라놓고! 그러고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 수 있는 겁니까!”

임정요인들을 향해 일갈을 한 정 수석팀장은 노트북을 조작해 연단 뒤에 걸린 스크린에 몇 줄의 글귀를 띄우고 말을 이어갔다.

“이건… 1944년에 일본의 강제징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탈출해 광복군에 투신했던 젊은이가 여러분을 보고 했던 말입니다. 읽어보죠.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본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번에 일군에 들어간다면 꼭 일군 항공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일군 항공대에 들어간다면 중경폭격을 자원, 이 임정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습니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대륙을 가로질러 온 젊은이가 바로 여러분! 이 자리에서 저를 노려보고 계신 여러분들을 보고 한 일갈입니다! 자! 여러분들은 뭐라고 말하실 겁니까!”

정 수석팀장의 일갈에 임정요인들은 입을 다물었다. 몇몇은 창피함을 느끼는 듯 했고, 또 다른 이들-이병석이나 리숭민과 같은 이들-은 정 수석팀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한편, 경비를 이유로 뒤로 빠져나와 강당 2층에서 구경만 하던 빨갱이가 무전으로 벌레를 불렀다.

“저렇게 위험천만한 발언을 한 양반이 누구냐 ”

“장하준 선생.”

“…….”

벌레의 대답에 빨갱이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이번에는 벌레가 빨갱이를 호출했다.

“당분간 애들 몇몇은 확실하게 빼둬야겠다. 노안 정 선생. 아주 죽으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아.”

“방탄조끼를 아예 본드칠 해서 가슴팍에 붙여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

“주둥이에 본드칠하는 게 낫지 않을까 뭐, 속은 시원하다만….”

“속이 시원해 누가 벌레 아니랄까봐 바퀴벌레 우는 소리 하고 쳐 앉아있다.”

“닥쳐, 빨갱이 새꺄. 저기 연단 뒤쪽이나 살펴봐라. 분위기 죽여준다.”

벌레와 빨갱이가 정 수석팀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바로 그때 해군 9전단과 필코 세이프티의 주요지휘관들이 앉은 자리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저거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뭐를 정 수석팀장 왜 ”

고 제독의 물음에 강 대령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왜긴 왜입니까. 어디 새파랗게 어린, 거기에 끽해야 대기업 출신이라는 것 빼면 별 볼일 없는 새끼가 독립이라는 대업에 일생을 건 분들을 면전에서 폄하하고 있는 겁니까 ”

지금 당장이라도 정 수석팀장의 멱살을 잡아 끌어내릴 것 같은 기세를 뿜어대는 강 대령과 달리 고 제독은 어깨를 으쓱했다.

“정 수석팀장의 발언 내용은 이미 공개 토론에서 어느 정도 조율을 한 것 아니던가 그 때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다들 저 정도의 수위는 괜찮다고 합의를 본 것으로 아는데 강 대령도 그 자리에 있지 않았나 ”

“하지만 저분들은 독립투사란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정 수석이 떠드는 내용은 그 독립투사들에 대한 21세기 젊은이들의 평가일세.”

“하지만, 저렇게 까대기만 하면 권위는 사라집니다. 독립투사들도 대차게 까이는 마당에 군이 멀쩡할 거라고 보십니까 ”

“쉿. 강 대령. 나도 속이 거북하고 어제도 계속해서 뜯어 말렸네. 하지만 말이지, 명분이 없어. 정 수석이 저렇게 충격요법을 쓰겠다고 이미 말을 했고, 토론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절대 다수가 동의를 했단 말일세.”

“그래도 저분들이 어떤 분들이십니까 ”

“국권을 되찾은 후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 나가려면 저 양반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개판이 된 대한민국을 만나게 되는 거야.”

“정 수석팀장이 너무 나댑니다. 우리 해군이 없다면 저 인간이 저렇게 떠들어댈 수 있게 만들어준 실적도 없습니다. 계속 놔두면 해군, 아니 군 전체가 호구가 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엎을까 자네가 나서서 5.16이나 12.12라도 일으킬 셈이야 ”

“필요하다면.”

강 대령의 대답에 고 제독은 성난 얼굴로 강 대령을 돌아봤다.

“안 들은 걸로 하겠네. 군이 민의 위에서 놀면 안 되는 법이야. 그건 나나 자네나 모두 역사를 통해 잘 배웠지 않나 대령은 똑똑하니 잘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하네.”

“…알겠습니다.”

고 제독의 경고에 강 대령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벌레와 빨갱이는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이 행사도 다 촬영되고 있다고 했지 ”

“맞아. 독순술 할 줄 아는 녀석이 누가 있었더라 ”

한편, 정 수석팀장은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을 향해 계속해서 독설을 퍼부었다.

“주석님. 그리고 이병석 중장님. 솔직히 말씀드려서 21세기에 넘어온 우리들이 미국 행정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여러분들을 모셔와 달라고 사정을 한 것은 대한민국의 첫 시작을 제대로 잡아 후세가 짊어져야 할 짐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주석님, 아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죠 이제부터 잘 보십쇼. 특히! 거기 리숭민 선생! 당신은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끝까지 앉아 있으쇼!”

정 수석팀장의 말에 이병석이 다시 한 번 발끈해 소리쳤다.

“이 새꺄! 어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리 박사한테 무례하게 구는 것이냐! 이런 호로 새끼 같은 놈!”

“납치 미수범한테 지킬 예의는 없다고 봅니다! 리숭민 선생! 지난 번 워싱턴에서 있었던 일 말해 볼까요 ”

“그, 그건 단지 오해였네.”

“납치 미수 오해 ”

정 수석팀장의 말에 리숭민이 더듬거리며 변명을 하자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수군거렸다. 특히, 김백을 시작으로 리숭민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은 ‘저 인간이 또….’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정 수석팀장은 리숭민의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흥! 그게 오해였는지 아닌지는 이제부터 영상을 보면 알 일입니다.”

말을 끝낸 정 수석팀장은 노트북을 조작해 스크린에 영상을 띄웠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군주‘천황’이 항복을 발표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은 독립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둘로 갈렸습니다….”

영상은 광복 이후의 일어난 일들을 참석자 모두에게 보여줬다. 남북분단, 좌우분열, 김백 암살을 필두로 좌우익의 적백 테러, 그리고 6.25….

잠시 화면을 멈춘 정 수석팀장은 리숭민을 노려봤다.

“리숭민 선생. 다시 경고 드립니다. 이 영상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으십쇼.”

리숭민에게 주의를 준 정 수석팀장은 영상을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6.25에서 서울을 버리고 먼저 도망을 치고, 보도연맹학살사건과 국민방위군사건, 사사오입 개헌과 3.15부정선거, 4.19로 망명길에 오르는 것까지 리숭민이 명령을 내렸거나 리숭민이 관련된 모든 일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4.19 이후 벌어진 혼란과 5.16,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의 시작과 유신독재, 민주화 시위와 부마항쟁. 10.26과 12.12를 지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뒤를 이은 민주화운동, 군사정권의 몰락, 문민정권의 출범과 IMF, 그리고 점점 커가는 양극화 현상까지….

영상과 정 수석팀장의 설명은 끝이 났지만 강당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한모금의 물로 바싹 마른 목을 축인 정 수석팀장이 다시금 마이크를 붙잡았다.

“주석님. 아까 잘 살고 있냐고 물으셨죠 어째, 대답이 되었습니까 ”

“…잘 되었네. 고생했구먼.”

김백이 꽉 잠긴 목소리로 가까스로 대답을 하자, 정 수석팀장은 리숭민을 다시 지목했다.

“리 선생. 왜 우리가 당신을 적대시하고 접촉을 안 하려 하는지 이제 알겠습니까 ”

“나, 나는….”

“우리는 리 선생을 ‘런 어웨이 숭민’이라고 부릅니다. ‘런 어웨이’라… 멋진 호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매우 무례한 독설이었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리숭민 본인조차 정 수석팀장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정 수석팀장을 잡아먹을 듯이 소리를 지르던 이병석마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정 수석팀장은 리숭민을 향한 칼을 빼어들었다.

“주석님. 주석님을 포함해 임정의 여러분들과 독립 운동가 여러분들이 다 계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해 주석님과 여러분께 요청이 있습니다.”

“요청이라 했나 말해보게.”

“리숭민 선생이 지금까지 미국에서 진행한 독립활동과 동지회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임시 정부의 이름으로 발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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