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6화 (36/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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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2)

9전단이 태평양전쟁 시기로 넘어오고 다들 전쟁에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이 세 사람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감찰과 기무는 보안과 ‘모종의 임무’를 부여받아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를 제외한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맡은 것이 이백현 변호사였다. 그는 헌법을 만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21세기 대한민국의 헌법이었던 9차 개정-10차 개정이 이뤄지기 바로 직전이었지만-헌법을 1940년대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맡은 것이 이백현 변호사였다.

처음 그 일을 맡았을 때 이백현은 자신은 변호사일 뿐 헌법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강하게 거부를 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들 같은 이유를 들어 이백현에게 그 일을 떠넘겼다.

“우리 가운데 당신만큼 법을 아는 이가 없다!”

세 사람이 친해지게 된 것은 최병섭 중령이 연결고리가 되어서였다.

기무라는 병종의 특성 덕에 형사법과 민사법에 대한 좀 더 전문적인 지식과 자문이 필요했던 최병섭 중령은 때마침 이백현 변호사가 한반도에 동승하자 이런저런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보안과 관련된 감찰 작업을 하기 위해 한반도에 도배된 CCTV가 필요했던 김창현 대령도 어느새 최병섭 중령과 이백현 변호사와 친분을 쌓게 되었다.

정 수석팀장과 벌레, 빨갱이의 만담쇼에 대한 감상으로 세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9전단이 2차 대전으로 시간이동을 하게 되고, 전투를 겪으면서 필코 세이프티의 전투 지휘관들이 젊은 부사관들과 사병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강해졌습니다.”

최병섭 중령의 평가에 김창현 대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그날의 선상반란 때문이겠지 ”

“그렇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선상반란이 없었다면… 아마도 함장들의 정권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시작부터 군사정권이 만들어졌겠죠.”

이백현 변호사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백현 변호사의 말에 최병섭 중령과 김창현 대령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 선배들처럼 똥개 신세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팽 당해서 언론들이 면피용으로 씹어댈 보신탕 신세가 되겠지.”

군사정권의 도구로써 사용되다가 결국 온갖 오욕을 뒤집어쓰고 사라진 선배들을 떠올린 김창현 대령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이백현 변호사는 서둘러 주제를 바꾸었다.

“그런 신세한탄을 안하기 위해서 다들 고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걱정하는 것은 나중에 걱정하고, 지금 닥친 문제부터 좀 도와주세요.”

“그럽시다. 그래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

“감찰이나 기무업무를 하시니 인사기록 가지고 계시죠 ”

“그렇소만 ”

“사병들 가운데 혹시 국문학이나 글 잘 쓰는 사람 있는지 좀 알아봐 주세요. 아주 죽겠습니다.”

이백현 변호사의 푸념에 최병섭 중령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법조문이 어렵기는 하지요.”

*    *    *

공개토론회에서 헌법과 기타 법령제정에 관한 안건이 나오고 이백현 변호사가 그 중임을 떠맡는 것으로 결론이 나자 벌레가 손을 들고 안건을 내놓았다.

“법조문을 일반인도 알기 쉬운 평문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죄다 한문에 조사만 우리말로 붙여놓아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법조인들만 알 수 있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법이 어려우면 법치는 물 건너갑니다! 법치가 제대로 돼야 공정한 사회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겁니다!”

벌레의 발언에 빨갱이가 손을 들고 반박을 했다.

“법치가 돼야 공정한 사회가 된다는 말은 웃기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살던 21세기가 그렇게 개판이 된 것이 법치가 안돼서입니까 있는 놈들이 개판이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있는 놈들이 지들 잇속 챙기려고 법을 개판으로 만들고 법치가 어쩌고저쩌고 개소리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개판 막기 위해 법조문을 한글 평문으로 작성하자는 거 아닙니까! 변호사나 판검사가 아닌 일반인들도 법조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있어야 이게 개소리인지 아닌지 알 것 아닙니까 쉽게 생각해 봅시다. 우리 고등학교 때 한 번은 달달 외워봤던 기미독립선언서 한번 읊어 보세요.”

“오등은 자에….”

벌레의 요구에 독립선언서를 암송하기 시작한 빨갱이는 처음 두 단어 이후에는 생각이 나지 않아 말을 멈추었다.

“다른 분 ”

벌레의 물음에 손을 드는 이들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벌레는 빨갱이에게 다른 것을 요구했다.

“그럼 똑같이 고등학교 때 한 번씩 달달 외웠던 훈민정음언해본 외워 보세요. 쓰기가 아니라 말하기니까 편하게.”

“세종어제훈민정음.나랏말싸미듕귁에달아문자와로서로사맛디아니할새이런전차로어린백성이니르고져홀배이셔도마참내제뜨들시러펴디못할노미하니라.내이를위하야어엿비녀겨새로스물여ㅤㄷㅡㄼ짜랄맹가노니사람마다해여수비니겨날로쑤메ㅤㅃㅕㄴ한ㅤㅋㅢㅤ하고져할따람이니라.”

“오오오~.”

짝짝짝!

빨갱이가 단번에 몰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을 하자 토론회에 참석했던 이들 모두 감탄을 하며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가 가라앉고 벌레는 말을 이어갔다.

“기미독립선언서와 훈민정음언해본의 차이는 뭘까요 기미독립선언서는 조사 빼고는 다 한자입니다. 언해본은 그 반대이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미독립선언서가 우리에게는 뜻깊고 중요한 선언서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이가 드문 것이고, 언해본의 경우는 비록 중세 국어라고는 해도 우리말이기 때문에 바로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고 기억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훈민정음언해본과 마찬가지 이유로 헌법을 포함한 모든 법조문, 나아가 공문서는 일반 국민들도 접근하기 쉬운 문장으로 작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법다운 법이 만들어지고 법치가 되는 것입니다!”

“옳소!”

“와아아!”

벌레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토론장은 환호로 들끓었다.

결과는 이미 확정적이었지만 표결로 이어졌고, 표결의 결과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조문과 공문서는 최소한의 한문만을 병용해서 보통 국민들도 이해할 수 있는 평문으로 작성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 뒤로 벌레는 몇 가지의 안건을 더 제안했고, 그 안건들 또한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며 통과했다.

토론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빨갱이는 벌레에게 맥주병을 건넸다.

“아주 훨훨 날아다니는구나. 기분이 어떠냐 ”

“이제 단추 하나를 제대로 꿴 느낌이다.”

벌레의 대답에 빨갱이는 피식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단추 하나 나중에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네 욕 많이 할 거다.”

“정치나 잘하라 그래.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나 욕할 인간들이 한둘이겠냐 나이불문, 성별불문하고 수두룩 빽빽하게 나올 걸 ”

벌레의 대답에 빨갱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러니까 너무 법, 법 하지 말라니까 법보다 사람을 생각해야지.”

“그러니까 네놈 새끼가 빨갱이 소리를 듣는 거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법이 제대로 보호를 해줘야 할 거 아냐.”

“말 말자….”

*    *    *

1942년 5월 9일. 뉴욕항.

부두에 접안을 끝낸 수송선에서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내려왔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교민들의 뜨거운 환영 속에 헐 국무장관과 뉴욕 시장이 참석한 환영행사가 이어졌다.

“1775년. 미국은 부당한 독재에서 자유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해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1783년 그 뜻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여기! 저 먼 아시아에서 부도덕한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일생을 바쳐온 분들이 오셨습니다. 이분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저는 진실로 뜻 깊은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헐 국무장관의 연설에 환영식장에 참석한 교민들과 미국 시민들, 그리고 기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대한민국 육군 소속으로 자리한 빨갱이는 박수를 치면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그 부도덕한 일본하고 짝짜꿍을 했던 건 어디의 누구였더라 ”

“입 다물. 이 자리가 그거 따질 자리냐 궁한 건 우리라는 거 잊지 마라.”

옆에 있던 벌레의 타박에 빨갱이는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지. 언제나 없는 놈이 서러운 법이지.”

“그렇게 서러우면 일본이나 줘 패. 모르냐 기승전 일본공격.”

한편, 헐 국무장관이 연설을 하는 연단의 뒤쪽으로 고위인사들이 앉아있는 곳에서는 고 제독이 정 수석팀장을 설득하고 있었다.

“자네. 정말 그 계획대로 진행을 할 것인가 ”

“이미 토론회에서 합의를 한 일입니다만 ”

“너무 과격한 일처리가 아닐까 걱정이 드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빨리빨리’인 것인가 ”

“진짜로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의 하루가 종전 후 1달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이 찬성을 한 일입니다. 이걸 뒤집어 엎으시려는 것은 제독님의 월권이고 독재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먼 곳에 분풀이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다시 말씀드리지만 토론의 표결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정 수석팀장의 단호한 대답에 고 제독은 입을 다물고 하늘을 바라봤다.

행사가 끝나고, 중국에서 온 임시정부의 사람들은 미 육군이 지원한 버스에 타고 인근에 자리한 주 방위군 캠프로 자리를 옮겼다.

*    *    *

캠프에 자리를 잡은 다음 날, 캠프에 있는 강당에는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9전단의 간부들과 민간인들이 자리했다. 단상 뒷벽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을 배경으로 정 수석팀장은 마이크를 손에 뽑아들고 입을 열었다.

“편히 쉬셨습니까 저는 9전단과 동행하고 있는 민간인들의 대표인 정길수라고 합니다. 또한 지금 현재 미국 행정부와의 교섭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독립을 위해 노력해 오신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신의 소개를 한 정 수석팀장이 고개를 숙이자 박수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정 수석팀장은 9전단과 필코 세이프티, 그리고 필코 마이닝을 시작으로 과거로 온 이들의 대표들을 소개해 나갔다.

“여기 계신 분은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을 이끌고 계신 고재환 제독이십니다… (중략) … 그리고 한반도 함의 심장인 원자로를 책임지시고 계신 한국 수력원자력공사의 성기남 부장님. 한반도함의 설계를 지휘하셨던 지일규 팀장님. 한반도 함에 탑재된 KF-1C의 설계 책임자이신 강도현 수석팀장님. 마지막으로 현재 우리의 행적을 모두 영상으로 담고 계시는 방송팀의 서한승 PD님과 동승한 연예인들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시는 김성식 부장님이십니다.”

정 수석팀장의 호명이 있을 때마다 당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하거나 목례를 했고,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임정의 요인들과 독립운동가들에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순서를 끝낸 정 수석팀장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임정의 각료 분들과 광복군은 가장 먼저 영어부터 배우실 것입니다. 그 다음, 미국 행정부와 미군에게서 실무를 익히시게 될 것입니다. 실무를 익히시는 동안 여러분들은 저희들과 함께 저희들이 마련한 대한민국 헌법 초안 및 기타 법조문에 대한 수정에 참여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실무에 적응하시고, 광북군, 아니 대한민국 육군이 전쟁에 참여할 최소한의 준비가 되면 전쟁에 참여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오신 가족 분들 가운데 취학 연령대이신 분들은 영어를 익히신 다음 미국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정 수석팀장의 발언이 끝나자 임시정부 쪽 진영에서 수군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앞에 있는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바로 마이크를 드리겠습니다.”

정 수석팀장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김백이 손을 들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김백은 정 수석팀장과 연단에 앉은 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범부(凡夫) 김백일세. 지금 임시정부의 주석을 맡고 있네.”

“알고 있습니다.”

“내 하나만 묻지. 자네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온 이들인가 우리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아직 해군, 그것도 전단을 9개나 가지고 있는 해군은 없어. 거기에 자네들을 아는 이들이 하나도 없었네. 자네들은 누구인가 ”

김백의 물음에 정 수석팀장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20**년 대한민국의 해군이고 국민들입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반동강이 난 한반도에서 태어나 자란 국민과 군인들이 여러분들을 뵙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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