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3화 (13/464)

# 13

13화 마닐라 익스프레스 (3)

1941년 12월 22일 오전 7시 30분. 링가옌 만.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 속에서 일본군 병사들은 상륙용 발동정과 소형 목조선인 얀마로 옮겨 타고 있었다.

“빨리 빨리 옮겨 타라!”

“움직여라! 이 머저리들아!”

사방에서 호통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화물선과 수송선에 탄 일본군 병사들은 다급하게 움직였다. 바로 방금 전 자신들의 동료들이 타고 있던 수송선 하요마루가 미군 잠수함의 공격으로 격침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었다.

타아앙~.

쿠우웅!

해안가에서 아직도 간간히 총성과 포성이 울리는 가운데 화물선을 내려가는 병사들의 귀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서 움직여라! 하요마루처럼 물귀신이 되고 싶나 죽더라도 땅에서 죽어라! 움직여!”

“황군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고 빠르게 움직여라!”

“아직까지 통신은 회복되지 않고 있나 ”

“죄송합니다. 장군.”

상륙대기 중인 수송선 안에서 상륙군의 총 지휘관인 혼마 마사하루는 불안한 표정으로 부관을 돌아봤다. 상륙작전이 시작되면서 일본군 최대의 적은 날씨가 되어버렸다. 거센 파도가 들이치면서 상륙하는 부대의 통신기들이 바닷물에 젖어 죄다 먹통이 되어버려 선도부대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고, 거기에 더해 후속병력의 상륙도 지지부진해진 상황이었다.

“이거 문제로군….”

필리핀 전투의 승부수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누가 먼저 이기냐에 달려 있었다.

링가옌 만에서 루손 평야를 거쳐 마닐라까지는 잘 포장된 도로가 깔려있다는 사실은 일본군도 알고 미군도 아는 사실이었다. 만약 일본군이 시간 싸움에서 이긴다면 잘 포장된 도로를 이용해 마닐라로 빠르게 진주해 승기를 틀어잡을 수 있게 된다.

반면 미군이 시간 싸움에 이기게 된다면 도로를 이용해 집결한 미군이 루손평야를 틀어막고 일본군은 루손평야에 발이 묶이게 되어버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과 파도가 험한 상황에서도 일본군이 상륙을 강행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 황군의 돌격정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

“현인신인 천황의 가호 아래 황군이 승리할 것이 확실합니다.”

거의 종교수준의 신념을 표출하는 부관의 말에 혼마는 주제를 돌렸다.

“그렇기는 한데 저 포격이 신경 쓰이는군. 통신망만 회복되면 바로 저 중포들을 제압하라고 해야겠어.”

“명령을 준비하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부관이 자리를 비우는 것을 보며 혼마 장군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지도를 바라봤다.

콰쾅!

“무슨 일이야 어느 배가 포격에 당한 건가 ”

강렬한 폭음에 놀라 지도에서 시선을 돌린 혼마 장군은 주변에 있는 병사에게 어느 배가 당한 것인지를 물었다. 그의 물음에 막 밖으로 나갔던 부관이 선실로 뛰어 들어왔다.

“제 4 니혼마루가 당했습니다. 굉침중입니다!”

“포격인가 ”

“폭격입니다! 동쪽 교두보도 폭격을 받았습니다!”

“폭격이라니! 아군 항공대는 무얼 하는 건가!”

부관의 대답에 버럭 소리를 지른 혼마 장군은 선실을 뛰쳐나갔다.

“위험합니다, 장군!”

“밖의 상황을 살펴야겠다!”

콰쾅!

혼마 장군이 현측 통로로 나온 순간, 또 한 척의 화물선이 커다란 폭발과 함께 두 쪽이 나버렸다.

“이 무슨….”

쐐애액~

눈앞에서 병력과 무기를 만재한 화물선이 가라앉는 것을 보던 혼마 장군은 낯선 소음에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난생 처음 보는 모양의 중형폭격기 2대가 무시무시한 소음을 내며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격기들이 향하는 곳에는 하늘을 향해 대공포를 쏘아대는 구축함들이 있었다. 잠시 후, 폭격기들의 날개에서 떨어져 나간 커다란 폭탄들이 구축함들의 옆구리에 틀어박히는 것이 보였다.

콰쾅!

거대한 화염과 연기 속으로 두 척의 구축함들이 모습을 감췄다.

“이런….”

“나다카제와 하카제가 당한 것 같습니다.”

연기가 가시고 난 자리에는 옆으로 기울며 아랫배를 내보이는 구축함 한 척과, 선수만 수면 위로 내밀고 있는 구축함의 모습이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운 혼마 장군은 부관에게 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공습의 제2파가 오기 전에 서둘러 상륙을 끝낸다!”

“발동정의 수가 모자랍니다!”

“정 안되면 화물선을 해안으로 돌진시켜서 좌초시켜 버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방군 총사령부와 대본영에도 보고문을 올리도록 내용은 ‘미군 고속 중폭격기 보유!’라고 말이야!”

명령을 받은 부관과 장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안 혼마 장군은 화를 못 이겨 주먹으로 선실의 벽을 쳤다.

“칙쇼!”

*    *    *

1941년 12월 22일. 마닐라. 극동아시아군 사령부.

“링가옌에 있는 모든 부대에서 공통적으로 올라온 보고입니다. ‘아군기로 추정되는 중형 폭격기 일본 상륙군 공습. 일본군 피해. 일본군 구축함 2척 격침. 화물선 2척 격침. 교두보 2곳 이상 파괴.’”

“또 하나 공통된 정보를 추가하자면 ‘4기의 고속 중형 폭격기, 기종 불명.’입니다.”

“대한민국 해군 9전단에서 보낸 통신입니다. ‘우리는 증명했다. 마닐라 입항을 요청한다.’입니다.”

참모들의 보고를 받은 맥아더 장군은 동석한 하트 제독을 돌아봤다.

“이 ‘고속 중형 폭격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

“‘미확인’육상기가 발진할 만한 지역이 있습니까 ”

하트 제독의 물음에 맥아더는 참모들을 돌아봤고, 참모들은 고개를 저었다.

“일본군과의 교전지역이거나 이미 일본군의 손에 들어갔거나, 아니면 뭐가 있는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아군 기지뿐입니다. 그도 아니면 바다뿐입니다.”

“그렇다면 함재기라는 소리인데….”

하트 제독의 중얼거림에 동석하고 있던 제독의 참모가 반론을 제기했다.

“중형 폭격기를 발함시킬 수 있는 크기의 항공모함은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겨우 중국의 작은 군벌이 항공모함을 가지고 있을 수나 있냐는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육상기밖에 답이 없는데 이미 그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지 않습니까 ”

“전투가 벌어지는 혼란한 상황입니다. 전투기나 경폭격기를 오인할 것일 수 있습니다.”

“전투기나 경폭격기라고 해도 그게 발진할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제일 처음 조건에 걸려요!”

육군과 해군이라는 소속을 벗어나 각자 의견을 내놓고 그것을 반박하는 참모들의 설왕설래는 격하게 이어졌다. 말없이 그 광경을 보고만 있는 맥아더를 보다 못한 하트 제독이 결론을 내렸다.

“일단 눈으로 확인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령관 ”

“위험합니다! 잘못하면 마닐라 항이 공격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트 제독의 결정에 참모들이 다시 한 번 소속 불문하고 반대를 외쳤다. 그런 가운데 침묵을 지키고 있던 맥아더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호위함대가 밀집한 곳에서 화물선 두 척과 구축함 두 척을 격침시키려면 우리 육군 항공대나 해군 항공대는 몇 기를 동원해야 할까 ”

맥아더의 물음에 시끄럽던 회의실을 조용해 졌다. 잠시 후, 대충의 계산을 끝낸 육군 항공대 중령이 물음에 답했다.

“적어도 B-25 10기는 되어야 합니다. 호위전투기는 별도로 빼고 계산해서입니다.”

“이유는 ”

“움직이는 함선을 조준하는 일은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해군은 ”

“돈틀리스 10여 기와 비슷한 수의 데버스테이터를 동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참모들의 대답을 들은 맥아더는 다시 생각에 잠기며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파이프 담배 연기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맥아더가 결론을 내렸다.

“입항을 허가하도록. 좋은 카드가 생길 것 같다.”

“장군!”

“그만.”

반론을 내밀려던 참모들을 막은 맥아더는 하트 제독을 돌아봤다.

“만약의 경우, 휴스턴, 가능하오 ”

“포트 드럼이 도와준다면 가능합니다.”

하트 제독의 대답에 맥아더는 참모들을 돌아봤다.

“그들을 마닐라로 들여보내도록.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통신문을 보내겠습니다.”

참모들을 굴복시킨 맥아더는 자리에서 일어서다 생각이 났다는 듯 하트 제독을 돌아봤다.

“휴스턴이 나갈 때 나도 같이 가겠소.”

“장군!”

“그만.”

다시 난리를 치려는 참모들을 막은 맥아더는 하트 제독을 바라봤다.

“가능하겠소 ”

명령 아닌 명령에 하트 제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지요.”

“제독!”

“그만. 가서 휴스턴의 함장에게 말을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맥아더와의 회의를 마치고 해군사령부로 가는 차 안에서 동석한 부관이 걱정스런 눈으로 제독을 바라봤다.

“맥아더 장군이야 그렇다 쳐도 제독님이 가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

“갈 수밖에 없다.”

“위험합니다.”

“육군이 가는데 정작 배 주인인 해군이 땅에 있어서는 말이 안 돼.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더 이상 말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부관의 말을 막은 하트 제독은 심란한 얼굴로 차창 밖을 바라봤다.

*    *    *

"마닐라에서 들어와도 좋다는 전문이 왔습니다.”

“함재기들을 수납하고 마닐라로 가면 언제쯤 도착하겠나 ”

“오전 10시 경입니다.”

“그럼 오전 10시에 들어가겠다고 전해. 그리고….”

‘타격 성공, 귀환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고 제독은 자신의 선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랜만의 휴식을 취하던 고 제독에게 강 대령이 찾아와 미군이 마닐라로 오라는 통신을 보냈다고 보고를 했다. 앞으로 할 일을 명령하던 고 제독이 잠시 말을 멈추고 궁리를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마닐라로 들어가는 것은 한반도와 강감찬이 들어간다. 안전이 확인되면 곽재우와 김문휴가 광양 프론티어3호를 호위해서 들어온다. 그리고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모든 함선은 ‘투명망토’를 작동시키도록.”

“알겠습니다.”

고 제독의 명령을 받은 함선들은 ‘투명망토’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선체의 외벽을 따라 모니터 스크린들이 펼쳐지고 위장영상이 흘러나오자, 미리 하늘로 띄워놓은 소형 드론들이 함체의 위장상태를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드론들이 보내온 촬영데이터를 기반으로 위장작업을 책임진 컴퓨터가 영상을 조절하면서 어느새 광양 프론티어를 제외한 함대 전체의 모습이 흐릿하게 사라져갔다.

“저건 진짜 사기 템이라니까… 빨갱아, 안 그러냐 ”

광양 프론티어3호의 선교에서 함대의 위장작업을 보며 감탄을 하던 ‘벌레’ 진한이 옆에 있던 ‘빨갱이’ 진한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기는 하네… 저 뒤에 길게 늘어지는 항적만 없다면 말이지.”

“그거야 저속으로 항해하면 항적은 상당히 감출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럴 거면 마닐라 만 입구에서 하면 되는 일을 왜 벌써 저 지랄인지….”

“거, 빨갱이 새끼, 더럽게 따지네!”

두 진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옆에 있던 명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떠들고 나가서 장비나 점검해!”

“거 참~ 뻑하면 나가라네….”

“뭔 말을 못하게 해….”

“썅!”

명환의 명령에 툴툴거리던 두 진한은 명환이 눈을 부라리며 욕설을 뱉자 ‘어마, 뜨거라’하며 선교 밖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타고 둘의 모습이 사라지자 구경만 하고 있던 일한이 명환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저 둘의 별명이 벌레와 빨갱이입니까 ”

“한 놈은 정치적으로 오른쪽이어서 벌레라고 불리는 거고, 다른 한쪽은 왼쪽이어서 빨갱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벌레라면… 진짜 그 사이트 가입자인 겁니까 ”

극우 성향의 게시물로 인해 ‘벌레’라고 불리는 모 사이트를 떠올린 일한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자, 명환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요. 저놈이 벌레면 진짜 벌레들은 다 히틀러 클론들일 겁니다. 빨갱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빨갱이가 빨갱이면 진짜 빨갱이들은 다 스탈린이나 모택동, 아니면 평양의 미친 3대의 클론들일 겁니다.”

“그런데도 둘의 사이가 좋아 보입니다만 ”

명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서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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