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2화 (12/464)

# 12

12화 마닐라 익스프레스 (2)

1941년 12월 21일 마닐라. 극동군 사령부. 통신실.

피곤이 가득한 얼굴의 중위가 역시나 마찬가지로 피곤이 가득한 얼굴의 상관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또 다시 그들의 통신입니다.”

“그들 아, 그 ‘대한민국 제9전단’을 말하는 거야 ”

“그렇습니다.”

“무시하라는 상부의 명령이다. 본국에 알아봤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 장제스 휘하 소형군벌이라는 답변이 왔다고 한다. 장제스에게도 없는 해군 전단이다. 잘해야 정크선 몇 척이 전부일 것이라는 게 본국과 상부의 판단이다. 자네도 알잖나 중국 놈들의 허풍이 어떤지 ”

“알고 있습니다만, 이건 좀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줘봐.”

심드렁한 얼굴로 통신문을 받아든 상관은 통신문의 내용을 읽어가면서 표정이 진지해졌다.

“일본군의 선두 다깃에 도착. 일본군의 대형 수상기 12정이 다바오 만 도착 일본의 또 다른 상륙부대가 이동 중 목표는 링가옌 도착시간 22일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 ”

통신문의 내용을 다 읽은 상관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다깃에 관한 정보는 자신도 확인을 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바오는 이미 적의 손에 들어간 곳이고 링가옌은… 곰곰이 생각을 하던 상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보고를 해야겠군.”

상관이 가지고 간 보고서는 순식간에 위로 위로 올라갔다. 통신문의 내용을 읽은 맥아더는 참모들을 돌아봤다.

“어떻게 생각하나 ”

“지리적으로 봤을 때는 일본군이 노릴만한 곳입니다. 링가옌의 3번 국도는 잘 포장된 도로입니다. 이 노선을 타면 바로 마닐라입니다. 제가 일본군이라도 이 곳을 노리겠습니다.”

참모의 대답을 들은 맥아더는 지도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폈다.

“위장일 가능성은 ”

“육군 항공대가 12월 20일에 제출한 정찰보고도 거의 같은 내용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시선을 고정한 채 참모들의 보고를 듣던 맥아더가 상황을 정리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정보는 배제하더라도 잽들이 링가옌으로 온다는 것은 확실한 정보로군. 그렇다면 아군의 배치는 ”

“링가옌 만 남쪽에는 필리핀 제 21사단이 동쪽에는 필리핀 제 11사단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바우앙에 주둔하고 있는 71보병 연대에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일본군을 저지하라는 명령이 내려갔습니다. 취소시킬까요 ”

“제 26기병연대는 포조루비오에 이동해 있습니다. 다시 위로 올리시겠습니까 ”

이런저런 상황을 보고받은 맥아더는 결정을 내렸다.

“제해권과 제공권을 잽한테 빼앗긴 상황이다. 코리아라는 이들이 보낸 정보가 잽들의 위장정보라면 이동 중에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하고… 링가옌만을 수비하고 있는 사단에 적이 접근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고 수비를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참모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가운데 창밖을 보던 맥아더가 명령을 추가했다.

“그리고, 그 코리아의 해군이 다시 통신을 보내면 답신을 보내도록.”

“뭐라고 보내면 좋겠습니까 ”

“간단하다. ‘아군이면 증명하라.’ 그리고 하트 제독에게 연락해서 잠수함을 링가옌과 그 주변지역으로 추가 증파해 달라고 요청하게.”

“알겠습니다.”

*    *    *

“잠수함을 추가로 증파해 달라고 ”

“그렇습니다.”

참모의 대답에 하트 제독은 얼굴을 찌푸렸다.

12월 8일 이후, 미국은 계속해서 두들겨 맞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시아에 주둔해 있는 연합군들이 매일 일본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태평양 지역의 제해권과 제공권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잠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하트 제독이 참모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팅레이가 보내온 전문에도 링가옌이었지 ”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제독, 만약 이게 잽들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잠수함들은 현재 우리 아시아 함대의 마지막 남은 유효타입니다. 이미 스팅레이의 보고를 받고 근처에 있던 잠수함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 증파를 하게 되면 마닐라 만이 비어 버립니다.”

“그렇기는 하지….”

참모의 진언에 하트 제독의 고심은 더욱 깊어갔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하트 제독이 결심을 했는지 명령을 내렸다.

“마닐라 만을 비워두고 증파는 할 수 없다. 해당 지역에 나간 잠수함들에게 임무를 맡긴다.”

“알겠습니다.”

“단, 주변 지역에 나간 잠수함들에게 함선 도록에 있는 일본 함대가 아닌 미확인 함선을 확인하면 공격하지 말고 감시만 하라고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참모들에게 명령을 내린 하트 제독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대한민국 9전단 때문에 그러십니까 ”

“자네도 중국인 특유의 허풍이라고 생각하나 ”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

“함대(Fleet)가 아니라 전단(Flotilla)이라고 한 게 자꾸 걸려. 중국인들 특유의 허풍이라면 함대라고 하지 않았겠나 ”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휴스턴만 남긴 것이 아쉽군. 후우~.”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하트 제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주만이 기습적인 공격을 당한 그날, 필리핀의 미군 역시 기습공격을 받았다. 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지휘부에서 날려먹은 몇 시간과 재급유를 위해 전투기들과 폭격기들이 착륙한 바로 그 시간에 공습을 당했다는 불운이 겹쳐져 미 육군 항공대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계속 누적되는 피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 육군 항공대는 호주로 철수를 해야만 했다.

하트 제독의 아시아 함대 역시 공습을 피해 차근차근 필리핀을 벗어나 보르네오와 호주로 철수를 했고, 미군의 봉쇄로 항구에 묶여있던 상선들도 마닐라를 벗어나 호주로 철수를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마닐라 항에는 구축함 두 척-그나마 한 척은 수리 중인-과 소수의 어뢰정과 지원함정, 잠수함 27척만이 남아서 버티고 마지막에는 잠수함만이 남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하트 제독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휴스턴을 마닐라에 묶어 두었다. 결국, 초기 계획대로라면 제5함대의 기함으로서 함대를 이끌고 네덜란드령 발릭파판으로 갔을 휴스턴은 마닐라 항구에 닻을 내렸다.

“갑갑하군.”

창밖을 보던 하트 제독이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이렇게 끌려 다니는 것은 성미에 안 맞아.”

*    *    *

“미군에게서 답신이 왔습니다.”

“뭐라고 왔나 ”

“‘아군임을 증명하라.’입니다.”

작전통제 센터에서 주변의 상황을 보며 고심을 하던 고 제독은 미군이 보낸 통신문의 내용을 듣고는 혀를 찼다.

“쯧. 말로는 못 믿겠다는 거군.”

“그게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

동석한 강 대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고 제독은 강 대령과 박 대령을 돌아봤다.

“작전을 짜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대형 홀로그램 모니터에 떠오른 3차원 지도를 보며 의견을 교환했다.

“우리가 아군임을 증명하라는 요구에 대답하는 적당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생각나는 대로만 나열하면 일본 본토를 공격하거나, 대만의 일본 육군과 해군의 항공대 기지를 공격한다. 또는 현재 링가옌으로 가는 수송함대를 공격하거나, 링가옌에 상륙하는 일본군을 공격한다. 현재 우리 함선들의 위치나 증명하는데 걸리는 시간 등을 따진다면 나로서는 제일 마지막을 선택하고 싶다. 귀관들의 의견은 ”

“저도 마지막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동감이기는 합니다만 한번 계산을 해봤으면 합니다.”

“계산 ”

고 제독의 물음에 박 대령은 홀로그램 모니터 옆에 앉은 중위에게 명령을 내렸다. 현재의 함대의 상황, 정찰을 통해 획득한 정보를 입력하고 작전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 등을 입력하자 잠시 후, 홀로그램 모니터에는 수퍼 컴퓨터가 추천하는 작전이 떠올랐다.

“이 아이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군.”

“가장 무난한 작전이니 말입니다.”

“그럼 이제 가장 좋은 시점과 투입할 전력은… 그것도 나왔군. 응 ”

“어라 ”

“오류인가 ”

홀로그램 모니터를 보던 세 사람은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수퍼 컴퓨터가 내놓은 의견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폭격에 1개 편대만 투입한다고 ”

“숫자 잘못 쳐 넣은 것은 아니겠지 ”

“입력 데이터는 제대로 넣었습니다!”

1개 편대, 단 4기의 전투기만을 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는 컴퓨터의 의견을 본 박 대령은 조작 담당 장교에게 입력 오류 여부를 추궁했다. 데이터는 실수 없이 입력했다는 대답을 들은 고 제독은 조작 장교에게 명령을 내렸다.

“추천을 한 이유를 물어 보도록.”

“알겠습니다.”

잠시 후, 수퍼 컴퓨터는 자신이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모니터에 띄웠다.

- 항모에 적재된 탄약, 특히 항공폭탄과 유도무기의 재고 한계문제.

- 함대에 마닐라 항구의 입항 문제와 그에 따른 공중 급유 문제.

-함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전력의 안배.

-작전의 목적.

-함재기의 폭장량.

“이해가 가는군.”

수퍼 컴퓨터가 근거로 내놓는 항목들의 내용을 살피던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 대령과 박 대령도 이제는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고 제독은 수퍼 컴퓨터 담당 장교와 함께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일본군들이 상륙을 시작할 예상 시각은 몇 시로 추정하는지 알아 봐.”

“알겠습니다.”

“4시에서 6시 사이라… 확실히 야간에 벌이는 대규모 상륙작전은 무리겠지… 그럼 우리 함재기들이 발함하는 시각은….”

계속해서 컴퓨터와 주거니 받거니 하던 고 제독은 만족한 듯 뒤로 물러서며 담당 장교에게 명령을 내렸다.

“좋아, 이걸 강 대령과 박 대령, 그리고 각 함정의 함장들과 작전관에게 전송하도록.”

“알겠습니다.”

잠시 후, 강 대령과 박 대령이 들고 다니던 태블릿에서 알람이 울렸다. 태블릿에 전송된 작전의 내용을 꼼꼼히 읽던 박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대로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지.”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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