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14화 마닐라 익스프레스 (4)
“허어~.”
휴스턴의 옆을 천천히 지나가는 항공모함의 축면을 보며 한숨인지 감탄인지 모호한 숨을 내뱉었던 하트 제독은 주변을 돌아봤다.
처음 저 항공모함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악마가 나타났다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기도문을 외우던 수병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닥다닥 난간에 들러붙어 자신처럼 항공모함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는 어느새 맥아더가 나란히 서서 항공모함을 구경하고 있었다.
장군들과 마찬가지로 항공모함을 구경하던 수병들 사이에서도 감상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진짜 더럽게 크다.”
“렉싱턴보다 큰 것 같은데 ”
“그런데 생긴 게 왜 저 모양이냐 ”
“뱃머리 좀 봐라! 충각인가 ”
“함교는 왜 저렇게 생겨먹은 거야 피라미드 ”
항공모함의 덩치와 외형을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누군가의 푸념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더럽게 크네… 휴스턴이 구축함 같다….”
“어 항공모함에서 발광신호다!”
저 높은 곳에 있는 항공모함 한쪽에서 빛이 번쩍이며 발광신호가 송신되자, 수병들 가운데 몇몇이 송신을 해독했다.
“동료 함들이… 들어 옴… 아군임….”
두 척의 중형 함선과, 한 척의 대형 화물선이 항구에 접안을 하고 나서야 항공모함과 그 호위를 맡은 대형 함선이 부두에 닻을 내렸다.
항공모함이 부두에 접안을 하자, 하트 제독과 맥아더 장군이 바로 항공모함에 올랐다. 오르기 전 호위병의 규모 문제로 잠시 실랑이가 있었지만, 호기심이 불안함보다 강했던 맥아더와 하트가 참모진들에게 일갈을 했다.
“그럼 나만 오르겠다! 귀관들은 여기 남도록!”
“나 역시 마찬가지! 귀관들은 여기에 남도록!”
두 사람의 서슬에 참모진들은 뒤로 물러섰고, 두 장성은 소수의 호위만을 대동한 채 항공모함에 올랐다.
“한반도 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반도 함의 함장으로서 승무원들을 대표한 강 대령의 경례를 받은 두 장성은 곧이어 고 제독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한반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필리핀에 온 것을 환영하오. 때가 좀 안 좋지만.”
고 제독의 인사에 두 사람이 화답하는 간단한 환영식을 끝내고, 고 제독은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한편, 현문 옆 복도에서 부동자세로 서있던 승무원들은 높으신 분들이 다 안으로 사라지자 자세를 풀며 감상을 이야기했다.
“후우~. 빠짝 얼어 있었더니 쥐가 날 것 같네.”
“사진으로만 보던 양반을 실제로 보니 좀 묘하다.”
“그치 ”
“역시 별을 그렇게 무더기로 달면 포스가 다르기는 하다.”
“그렇기는 하더라.”
* * *
한편, 시간이동이 벌어진 이후 쥐 죽은 듯이 선실만 지키고 있던 민간인들 가운데 M방송국의 직원들은 맥아더가 승함을 했다는 소식에 잔뜩 흥분했다.
“이건 내 인생 다시없을 기회다! 인터뷰 따야해! 야! 카메라 챙겨라! 김작, 이작! 인터뷰할 대본 좀 써봐라!”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이 방방 뜨는 서한승 PD의 모습에 후배인 김인영 PD가 말리고 나섰다.
“안전지대에 들어갈 때까지 선실에만 있으라고 했잖아요 ”
“여기가 안전지대가 아니면 어디가 안전지대냐 ”
“여기 필리핀이라고요, 필리핀! 오늘 새벽에도 전투기들이 나가서 한바탕 뛰고 온 전쟁터란 말입니다!”
“아 썅! 그 말 들으니 더 열 받네! 진짜 좋은 장면 낚을 수 있었는데 못 잡았잖아! 이런 꼴통 군바리들!”
“저, 저, 선배 주특기 또 나온다. 옆길로 새는 거. 지금 그게 문제요 우리가 전쟁터 한복판에 앉아 있는데! 그것도 2차 대전! 죽거나 다쳐도 산재보상 안 나온단 말입니다!”
“그래서 특종이잖냐! 맥아더와 단독 인터뷰! 퓰리처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인데!”
“선배, 보도국이 아니라 예능국PD라는 거 잊었어요 ”
한쪽에서 방송국 PD들이 흥분해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군의관들이 모여 맥아더를 주제로 의견교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맥아더란 인물 참 흥미 있는 인물이지 않아요 ”
“금수저의 흥망성쇠를 모두 다 보여주는 인물이죠.”
“진짜 한번 1:1 심리 상담을 해봤으면 하는데….”
맥아더란 인물에 대해 1차 적인 감상만을 이야기하는 여타 군의관들과 달리 정신과 담당 군의는 학문적인 흥미를 느끼는 듯 했다.
“심리상담 ”
“예. 2차 대전 후반기 미국의 대일전에서 필리핀은 전략적 가치가 많이 떨어지는 곳이었는데 맥아더가 부득불 우겨서 필리핀 공략을 했다고 들었어요. 유능한 군인이라 인정받던 그가 왜 그리고 불리한 전황을 단숨에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을 입안하고 성공시켰던 이가 왜 중공군의 참전 이후에는 무기력하게 후퇴만 했을까요 상담을 해서 그의 심리상태나 사고방식을 연구해 보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기는 하네요….”
한편 광양 프론티어3호에서도 맥아더를 주제로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눈 이들의 거의 대부분이 ‘왜 그랬을까 ’로 대화가 멈추는 것과 달리 벌레, 빨갱이 그리고 송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원명환은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금수저는 금수저인데 스스로의 힘으로도 성공한 머리 좋은 금수저라서 그래.”
“예 ”
“알아주는 명문가 출신. 웨스트포인트에서도 앞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1차 대전에서도 사단장이었지… 또 그 후에도 승승장구해서 육군 총참모장까지 올라갔지. 그 과정에서 ‘역대 최연소’라면서 줄줄이 기록을 갈아엎었고 말이야. 이러려면 배경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이 뛰어난 성공한 금수저야 가능해. 맞지 ”
“맞네요.”
“이런 양반들의 특징이 뭐냐. ‘내가 하는 일은 다 옳다.’야. 당연하지, 자기가 계획한대로 다 성공했었으니까.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아니요.’라고 말하는 이가 눈에 들어오겠냐 점점 예스맨들로 가득 차게 되고 그럼 제대로 된 정보가 들어오겠어 그렇게 되면 잘 될 때는 잘 풀리겠지만 안 될 때는 개박살 나는 거다. 그 제일 좋은 예가 빌어먹을 6.25고… 남들 다 안 된다는 인천상륙작전 제대로 성공시키고, 중국 놈들이 수상하다는 정보 개무시 했다가 제대로 쳐 맞고.”
이야기를 하다가 열이 오르는지 잠시 목을 축인 명환이 말을 이어갔다.
“지금 필리핀 초반 전투도 중국 놈들한테 개털릴 때하고 똑같은 거야. 자신이 예상하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움직이니까 순간적으로 머릿속 CPU가 멈춰버리는 거지.”
“어디서 많이 본 인물이 생각나네.”
명환의 이야기에 ‘벌레’진한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누구 ”
“예전에 본 일본 SF소설 속 멍청이. 빨갱이 너도 봤을 걸 ”
“응 아… 아! 그 삼지창 ”
벌레의 설명에 잠시 기억을 더듬던 ‘빨갱이’진한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그러거나 말거나 잠시 숨을 고른 명환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 양반 나중에 필리핀 전투 고집하는 것도 그 성격 때문이야. ‘나 돌아온다!’라고 이야기 했으니 그거 안 지키면 자존심이 견디겠어 ”
명환의 말에 다시 주제로 돌아온 ‘벌레’와 ‘빨갱이’가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죽어나가는 건 우리 같은 졸병들이고 말이지요.”
“그러췌! 우리 벌레 똘똘하네 ”
“시꺼! 이 빨갱이 새꺄!”
* * *
한반도 함을 포함한 함대 여기저기에서 맥아더에 대한 품평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정작 당사자인 맥아더는 하트 제독과 함께 홀로그램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이건….”
홀로그램은 루손섬 전역의 지역을 입체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 미군과 필리핀군으로 보이는 푸른색 점과 선들이 일본군으로 보이는 붉은색 점과 선에 의해 이리저리 부서지며 꾸준히 남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현재 루손 섬의 상황입니다.”
“형편없군.”
“그렇습니다.”
패색이 완연한 모습에 맥아더와 하트는 이를 악물었다. 두 사람이 현재의 전세를 보며 한탄하는 동안 경보음과 함께 지도 한쪽에 새로운 아이콘이 떠올랐다.
“무엇입니까 ”
새로이 추가된 아이콘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트 제독이 묻자, 고 제독은 앞에 앉아있던 조작 담당 중위를 바라봤다.
“입항하기 전 내보낸 정찰기에서 온 통신입니다. 일본군의 새로운 호송함대 발견. 목적지는 필리핀의 루손 섬입니다.”
“예상되는 최종 목적지와 도착 예정시점은 ”
고 제독의 명령이 입력되자 슈퍼 컴퓨터는 홀로그램 컴퓨터에 예상 목적지와 예상 시각을 표시했다. 고 제독의 옆에 서있던 통역장교가 맥아더와 하트 제독에게 표시된 것과 고 제독의 명령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일본군의 새로운 상륙부대입니다. 그리고 저기 반짝이는 곳이 상륙 예정지, 그리고 예상 시각입니다.”
“라몬 만. 24일 자정에서 2시 사이….”
고 제독의 설명에 맥아더와 하트 제독은 심각한 얼굴로 고 제독을 바라봤다.
“상륙 예정지와 예상시각 확실한 거요 ”
“확률은 89%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상륙한다고 봐야할 겁니다.”
“흐음….”
날카로운 눈으로 지형도를 살펴보던 맥아더가 질문을 던졌다.
“밑으로 돌아 남서쪽에 있는 바탕가스 만에 상륙할 가능성도 있지 않소 ”
맥아더의 질문에 고 제독은 통역 장교를 바라봤다. 통역 장교가 통역해준 문장이 컴퓨터에 입력되자 잠시 계산을 마친 컴퓨터가 자신의 대답을 모니터에 띄웠다.
“비효율적이랍니다. 루손섬을 우회하는 과정에서 시간 소모가 크며,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에 라몬 만이 더욱 유리하다고 합니다. 일본군이 바탕가스 만을 상륙 지점으로 선택할 확률은 37%.”
“흐음….”
통역장교의 번역을 들은 맥아더는 고 제독을 돌아봤다.
“방금 전의 대답을 한 참모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사람이 아니라 기계입니다.”
“기계 ”
“컴퓨터라고 하지요. 대위, 설명을 하게.”
고 제독의 명령에 통역을 맡고 있던 대위가 맥아더와 하트 제독에게 컴퓨터가 무엇인지 설명을 했다. 설명을 들은 맥아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데이터를 입력하면 조건에 맞춰 답을 내놓는다 기계가 이게 가능한 기술이오 ”
“지금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
“내가 아무리 군대에서 나이만 먹은 늙은이라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은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소. 그런데 이런 기술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오. 솔직히 묻겠소. 당신들은 누구요 ”
맥아더의 물음에 고 제독의 대답은 간단했다.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알기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없소. 설마 내 앞에서 사기를 치려는 것이오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은 비록 임시정부만 있는 식민지지만 제가 있던 ‘때’에는 세계가 인정한 국가였습니다.”
“지금 말장난할 때요 ”
“지금 때 마치 지금시대의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군요 ”
고 제독의 말에 목소리가 높아지는 맥아더와 달리 지금까지 조용히 관망만 하던 하트 제독이 이채를 발하며 질문을 던졌다. 하트 제독의 질문에 고 제독은 담담하게 대답을 했다.
“다시 설명을 드립니다. 저와 제 휘하의 승무원들은 모두 서기202*년의 대한민국 해군 9전단 소속입니다.”
“서기 202*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