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11화 마닐라 익스프레스 (1)
1941년 12월 22일 오전 10시.
나는 그 시간의 마닐라 만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하략)
- 맥아더 원수의 회고록 가운데서…
“그래… 내가 아마 그 배를 처음 본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거야. 그때 내가 휴스턴에서 견시를 하고 있었거든… 갑자기 그 배가 나타났을 때, 악마가 나타났다며 기도문을 외운 녀석들이 한 다스는 넘었을 거요.”
- 마이클 스톤. 전직 해군 수병.
- 2005년. 2차 대전 종전 60주년 특집 BBC 다큐멘터리.
‘2차 대전 음모론의 총아,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의 1화 ‘갑자기 나타난 그들’ 중에서…….
* * *
필리핀의 마닐라로 향하는 동안, 고 제독은 필코 세이프티의 사장인 송일한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송 사장님, 고초가 크셨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편하게 앉아만 있어서 큰 고생은 없었습니다.”
“일이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번 억류사태의 주동은 누구입니까 앞으로의 행보를 위해서라면 미리 배제해야 할 인물들입니까 ”
고 제독의 물음에 송 사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척을 지면 안 되는 이들입니다. 만약 그들을 배제한다면 필코 세이프티, 아니 육군은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겁니다.”
송 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일이 복잡했다.
필코 세이프티의 창립 당시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기존에 있던 PMC회사 한 곳을 대상으로 인수합병 작업을 벌였다. 그리고 인수한 회사의 전투요원들에 더해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는 식으로 필요한 만큼 덩치를 키운 것이 지금 광양 프론티어3호에 타고 있는 인원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이 문제였다.
인원을 충원할 당시의 계획은 군대에서 나와 아직 실직상태인 사병, 부사관 출신들과 ‘퇴역’으로 신분세탁을 한 장교들로 자리를 메웠다. 그리고 그렇게 조직된 이들의 지휘는 새로이 충원된 ‘퇴역’ 장교들이 맡으며, 그 장교들의 총괄 지휘는 송 사장이 맡아 ‘민간복을 입은 육군부대’로 만들고 그렇게 조직된 부대를 이용해 로사리나 섬에서의 치안확보와 동시에 TICN을 비롯한 신규 장비들의 필드 테스트를 하는 것이 군의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공식적인 군의 투입이 아니기 때문에 쓸데없는 정치문제가 생기지 않고 필드 테스트 과정에서 기밀도 유지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만… 후~”
설명을 하던 송 사장은 갑갑한지 길게 한숨을 쉬고는 물을 들이켰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린 송 사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이렇게 조직이 완성되자 원 PMC 출신자들이 한 가지 기획을 내놓았습니다. 자신들이 합병되기 전에 계약이 진행되던 일을 한번 해보자고. 합병 전의 자신들이었다면 조금 벅찬 사이즈지만 덩치가 커졌으니 적당한 사이즈라고 하면서 필리핀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합을 맞춰보는 것이 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진행된 겁니까 ”
“예. 저도 그렇고 당시 막 지휘권을 잡게 된 장교들도, 상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약이 체결되고 세칭 ‘영업’에 들어갔지요. 아프리카에서 3주 간의 영업이었습니다. 그 결과….”
또 다시 갑갑한지 잠시 말을 멈춘 송 사장은 연거푸 물을 들이켰다.
“작전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투입되었던 장교 22명 가운데 단 세 명만이 남고, 나머지는 자진 퇴사가 아니면 병신이 돼서 회사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지사장이 되어버린 겁니다.”
“허….”
송 사장의 설명에 고 제독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현재 필코 세이프티의 조직 통제는 누가 하는 겁니까 ”
“원명환 수석치프가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원명환 아….”
지난 번 억류사태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늙수그레한 목소리를 기억한 고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송 사장은 필코 세이프티를 누가 장악하고 관리하는지 제독에게 설명했다.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는 ‘영감’이라고 불리는 원명환이었다. 육군에서의 최종계급은 중령. ‘계속해서 커리어를 쌓아갔다면 군단 하나 정도는 가뿐하게 손에 쥐고 흔들었을 실력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파벌주의를 혐오한 덕에 중령을 끝으로 예편.
원명환의 좌우를 책임지는 이들이 ‘벌레’ 김진한과 ‘빨갱이’ 이진한이었다. 성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덕에 ‘벌레’와 ‘빨갱이’라는 별명이 더 많이 쓰였으며, 둘 다 공수특전단의 특전부사관 출신이기도 했다.
* * *
대화를 마친 송 사장을 배웅하고 돌아온 고 제독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우~ 다들 만만치 않은 이들이야.”
2차 대전에 참여하여 전과를 얻고 한반도를 되찾기 위해서는 육군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저들이 육군의 기간인력이 될 것은 명약관화. 자칫 잘못하면 전통적인 군의 모습이 아닌 변칙적인 육군이 태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고심을 하는 고 제독은 광양 프론티어3호로 돌아가며 남긴 송 사장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나름 희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육군의 비합리적인 관행 덕에 옷을 벗은 자들이 육군을 만든다면 그런 구태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그래서 제가 얌전히 인질놀이를 하게 된 거고 말입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저 역시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느끼고 있고 말입니다.’
“밀려난 자들이라….”
고 제독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항모의 운영과 항모를 포함한 함대가 이상 없이 운영 가능한가를 테스트하는 모르모트가 고 제독이라는 이야기가 나도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전의 성 부장 일행도 그렇고….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지난 공개토론회에서 벌레라는 별명의 젊은 친구가 했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도는 가운데 고 제독은 중얼거렸다.
“그래서 헬반도였지….”
갑갑한 현실에 막막해 하다가 무엇인가 결심을 했는지 고 제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론 밀려나는 인생은 사절이다! 부관!”
“예, 제독님!”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관을 호출한 고 제독은 명령을 내렸다.
“함장과 항공전대장에게 작전 통제센터로 오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제독님!”
* * *
작전 통제 센터로 자리를 옮긴 고 제독은 상황을 정리했다.
“현재 주변 해역의 상황은 ”
“아직은 깨끗합니다.”
“그래도 주의를 놓치면 안 돼. 다시 말하지만 일제 어뢰건 미제 어뢰건 어뢰에 당하는 건 사절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필리핀, 특히 마닐라 지역의 항공정찰은 아직 무리인가 ”
“지금의 속도라면 내일 정오부터는 항공정찰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인기라지만 귀중한 자산일세. 격추 위험성은 ”
“우리 무인기들이 있는 고도까지 올라올 수 있는 프로펠러 전투기들은 아직 안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흠….”
강 대령과 박 대령의 보고에 고 제독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표정은 뭔가 모자란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무작정 마닐라 항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겠지 ”
“평시에도 그건 국제적 관례를 무시한 일인데 지금은 전시니 더욱 그러할 겁니다.”
“흠….”
잠시 고민을 하던 고 제독은 강 대령을 돌아봤다.
“미군에게 통신을 보내도록 하지. 내용은… ‘우리는 대한민국해군 9전단이며 연합군에 합류하기를 희망한다. 마닐라 항의 입항을 허가해주기 바란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어떤가 ”
“글쎄요….”
고 제독이 보내고자 하는 전문의 내용을 들은 강 대령은 말을 흐렸고, 옆에 있던 박 대령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대로 보냈다가는 문전박대당하기 딱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기는 한데… 딱히 더 쓸 게 없지 않은가 ”
“그게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뭔가 솔깃한 양념이라도 더 쳐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양념 ”
“내일 정오가 지나면 항공정찰이 가능한 위치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일본군의 이동상황을 첨부해 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우선 제독님이 말씀하신 내용으로 주기적인 통신을 한 다음 항공정찰 정보를 곁들이면 다가가기가 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통신 문제를 해결한 고 제독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자료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 ”
“아직….”
“쯧… 인터넷이 문제로군.”
강 대령의 대답에 고 제독은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어제 토론이 끝날 무렵, 한 젊은 수병이 내놓은 의견이었다.
-2차 대전에서 미국이 이겼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거 외에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제대로 알수록 우리는 좀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한 자료가 필요하다!
수병이 내놓은 의견에 모두가 찬성을 하고 다들 자료를 찾기 시작했지만, 다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오프라인 자료가 전멸 상태다!
한반도를 위시해 광양 프론티어3호까지 함대에 있는 모든 배들의 선실을 뒤졌지만 2차 대전에 관련된 서적은 단 5권-그것도 전쟁사가 아닌 무기에 관한-이었다.
심지어 고 제독 자신까지도 한반도에 오르면서 가져온 책들 대부분이 현대 해전 전술이나 육해공 통합 작전에 관한 서적, 아니면 첨단 장비에 관한 기술서적들 뿐이었다. 물론 2차 대전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좌라락 나오는데 누가 책을 들고 다녀 누가 인터넷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으로 올지 알았냐고!”
“야! 좀 더 찾아보라신다.”
“여기서 ”
“여기서.”
“후우~.”
한반도 함의 전산 담당 박재석 상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넷도 안 되는데 무슨….”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 박 상사는 함내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들기고 마우스를 클릭했다. 모니터는 결과를 출력했고, 따분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보던 박 상사는 사래가 들려버렸다.
“콜록! 콜록! 뭐 몇 건 ”
-검색 조건 ‘2차 대전’ 관련 데이터 총 2320건. 영상데이터564건. 문서데이터 1756건.
의외의 수에 놀란 박 상사는 문제의 데이터가 있는 카테고리를 확인했다.
“복지 ”
보고를 받은 강 대령은 곧장 고 제독에게 발견 사실을 알렸다. 보고를 받은 고 제독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강 대령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준 영상들 사이에 2차 대전 관련 다큐멘터리와 영화, 드라마가 잔뜩 들어있었고, 국립도서관에서 만든 전자 도서관의 전자도서들이 함 내 데이터 서버에 들어있었다 ”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승무원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니까 복지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었고 ”
“그렇습니다.”
“이걸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