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2화 작전명 ‘白象’ (1)
201*년, 싱가포르.
친중파로 소문난 김 의원이 호텔방 안에서 다른 국회의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도대체가… 내가 왜 이곳 싱가포르까지 와서 중국인과 만나야 하는 거요 ”
“그냥 단순한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 전인대 의원이에요. 단순한 중국인이 아니란 말이외다.”
“흥!”
김 의원이 주의를 주었지만 맞은편의 동료 국회의원은 코웃음으로 응수를 했다.
“그런 대단한 중국 전인대 의원 나리께서 이 보잘 것 없는 국회으~원을 보자고 하니 황송해 몸 둘 바를 몰라야 하는 것이오 ”
“그건 아니고…….”
‘우리 당 소속으로 군에 발 넓은 인간이 댁 말고 또 있었으면 나도 골치 아프게 댁 안 끌고 왔다!’
당장이라도 입을 열면 나올 것 같은 말을 억지로 다시 삼키며 전 의원을 구슬리는 김 의원이었다.
김 의원이 자신과 끈이 연결된 중국 전인대의 왕 의원에게 은밀하게 연락을 받은 것은 2주 전이었다.
당시 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
- 대한민국 군부의 차세대 그룹과 관계가 좋은 국회의원이 있으면 자신을 연결시켜 달라.
몇 번이고 이유를 물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고, 만남이 성사되면 그때 알려주겠다는 말에 김 의원은 요구조건에 부합되는 이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왕 의원이 내건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이가 눈앞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조범호 의원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조범호는 육사를 나와 정석적인 출세코스를 거쳐 장성까지 오른 이였다.
본인의 능력과 주변의 인망, 세간의 평가도 좋았지만 단 하나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상사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였다.
군과 관련해 이런저런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조범호는 원칙론에 따른 쓴 소리를 상대와 자신의 상하관계를 따지지 않고 직설적으로 던졌다.
결국 그를 껄끄럽게 여기던 그의 상급자들은 그의 어깨에 별을 하나 더 달아줌과 동시에 옷을 벗겨버렸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그 상급자들은 정권이 바뀜과 동시에 대부분 조범호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퇴역을 했지만 조범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긍정적인 것을 본 정치권에서는 기회를 놓칠 새라 영입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보수 정당에는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이 많았기에 조범호는 진보를 표방한 현재의 여당과 손을 잡았고, 의원 자리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원칙주의에 입각해 나오는 그의 쓴소리는 자신이 속한 여당의 유불리와 상관이 없이 튀어나왔다.
결국 여당 의원들 가운데서도 그를 거북해 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불퉁거리는 그를 달래며 약속장소로 가는 김 의원도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만약에 말이오.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국정, 특히나 국방에 대해서 이런 저런 소리가 나오기만 해보쇼. 당장 김 의원 당신부터 갖다 메다꽂을 줄 아쇼!”
“그럴 일이야 있겠소 ”
진땀을 흘리며 손사래를 치는 김 의원의 얼굴을 보며 조 의원은 혀를 찼다.
“쯧! 하여간… 아무리 복고풍이 유행이라 해도 이건 너무하잖소 저쪽에서 군사 독재 시절과 친일이 득세하던 왜정 때까지 간다 싶더니만 어느새 민비의 카피본까지 나와 혀를 찼는데 말이지요. 이쪽은 소중화를 외치던 조선시대 선비들이 나와버렸네. 중국 쪽에서 뭐라고 입만 뻥긋하면 냅다 허리를 굽혀 버리니… 에이!”
“하하하… 정치와 외교를 하다보면… 그리고 민비가 아니라 명성황후시고…….”
“됐소! 유신시대와 전대갈 시대에 국사를 배운 놈이라 그러려니 하쇼! 도착해서 봅시다!”
말을 마친 조 의원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는 듯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고, 김 의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쩌다 이런 인간밖에 없었는지… 차기 국방장관 0순위만 아니었으면 그냥…….’
* * *
싱가포르의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에서 왕 의원은 김 의원과 조 의원을 맞이했다.
“왕쓰차오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소이다.”
“조범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말이 아주 능하시군요.”
“내가 한국 드라마를 아주 좋아하다보니 늘게 됩디다. 자, 그럼 이쪽으로.”
비행기 안에서와는 달리 왕 의원과 대면을 하게 된 자리에서 조 의원은 예의에 맞춰 상견례를 나누었다.
김 의원과 조 의원에게 자리를 권한 왕 의원은 대기하고 있던 보좌관들과 경호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준비해 놓은 다과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수행원들이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자, 왕 의원은 조 의원을 상대로 대화를 시작했다.
“조 의원은 군에 계셨었지요 ”
“그렇습니다.”
“군 쪽에 아는 지인들을 통해 이야기를 꽤 들었소이다. 유능한 분이신데 아쉽게 되었다고 다들 그러더군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왕 의원의 호의적인 말에 조 의원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그러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왕 의원의 말에 조 의원에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지만 유능한 적보다 무능한 적이 더 좋다는 말을 떠드는 이들도 몇몇이 있지만 말이오. 항미원조 전쟁이 언제 이야기인데… 쯧!”
가볍게 혀를 차던 왕 의원은 앞에 앉은 두 사람, 특히 조 의원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고는 얼른 말을 이었다.
“아! 이런! 이거 실례했소이다! 본국에 있는 답답한 친구들을 생각했더니 잠시 헛소리가 나왔소이다! 이런 실례가 있나!”
“괜찮습니다.”
“참… 요즘 들어 한국이나 우리나라나 중간에 끼인 어느나라 때문에 일이 쉽지가 않소이다. 안 그렇소 ”
“그렇지요.”
“그 나라의 지도자가 조금만 더 사리분별을 잘해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을 텐데… 그렇지 않소이까 ”
“그렇지요.”
호응은 하고 있었지만 조 의원은 점점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김 의원과 이곳에 오기 전 조 의원 역시 나름대로 만나야 될 이의 신상조사를 해봤었다. 중국 전인대의 고참 가운데 하나이기는 하였으나 군과 관련해서는 접점이 없는 이가 맞은편에 앉아있는 왕 의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군과 연결고리가 있는 한국 국회의원을 찾았고,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6.25와 북한을 언급하고 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비상경보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저 자가 왜 이런 자리를 만들었는지, 또 왜 심상치 않은 단어들을 꺼내드는 지 정보가 전혀 없다. 이대로는 저 자에게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는 정면으로 상대해 쓸데없는 부분을 걷어내야 한다! 작은 손실로 큰 손실을 미리 막는다!’
마음속으로 결심을 한 조 의원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왜 저를 보자고 한 겁니까 ”
조 의원의 질문에 왕 의원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역시 군인이어서 그런지 명료하구려. 그럼 나 역시 명료하게 결론부터 대답을 하지요.”
말은 바로 대답을 한다고 했지만 왕 의원은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들어 느긋하게 입술을 축였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자신에게로 주도권을 찾아온 왕 의원은 조 의원이 기다리던 대답을 내놓았다.
“한국에서 원잠을 건조하려는 계획이 있지요 그 계획, 폐지해주셨으면 하오.”
* * *
“후우~”
“후우~”
숙소로 돌아온 김 의원과 조 의원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연이어 한숨을 내뱉었다. 한참동안 한숨만을 내쉬던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것은 김 의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 의원의 물음에 조 의원은 깍지 낀 손을 뒤통수에 대고는 소파에 길게 몸을 뉘이며 대답했다.
“내 선에서 결론이 날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군에서 요직을 거치셨으니 어느정도 답은 보일 것 아닙니까 "
“그래서 저 중국 놈이 나를 부른 것이겠지요. 어차피 이 일은 청와대의 결단이 있어야만 하는 일이고, 그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자화자찬일 수도 있겠지만 내 목소리는 무시 못 할 것을 아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김 의원의 질문에 조 의원은 천장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항공모함이라니…….”
다시 한 번 왕 의원과의 대화를 떠올리는 조 의원이었다.
* * *
“야! 네가 전인대 의원이면 다야!”
‘원잠 계획 중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조 의원은 왕 의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이런 빌어먹을 짱깨 새끼가!”
“조 의원! 참아요! 참아!”
당장이라도 왕 의원의 멱살을 잡을 것처럼 길길이 뛰는 조 의원을 말리던 김 의원은 왕 의원에게도 한마디를 했다.
“왕 의원. 지금까지 괜찮은 분으로 봤는데 실망입니다. 한국은 조선이 아닙니다.”
김 의원의 힐난에 자리에서 일어난 왕 의원은 고개를 숙였다.
“문제가 많은 발언인 것은 알고 미안하게 생각하오. 하지만 꼭 필요한 말이었기에 했어야 했고,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겠소이다. 부디 화를 가라앉히고 들어주셨으면 하오.”
“조까! 나갑시다!”
“조 의원! 잠깐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이야기만!”
“김 의원!”
“글쎄! 나를 믿고 한번 들어나 보자니까요!”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는 조 의원을 다시 자리에 앉힌 김 의원은 왕 의원에게 주의를 주었다.
“여태까지 알아온 왕 의원을 알기에 다시 자리에 앉기는 앉았지만… 다시 한 번 허튼 소리가 나오면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것이고, 귀국 즉시 주요 일간지 1면에 터뜨릴 겁니다.”
“알겠소이다. 그럼 설명을 하지요. 왜 이런 말을 해야만 했냐 하면…….”
왕 의원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았던 김 의원과 조 의원은 석상이 되어버렸다.
왕 의원이 한 설명을 대략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 중국은 공산주의 1당 독재 국가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는 중국주석의 1인 독재체제가 완성이 된 상황.
-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지지는 필요불가결한 상황.
-현재 인민해방군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축이 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것은 군사력의 감축이 아닌 질이 양을 대체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 이런 상황에서 군의 원로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직도 항미원조전쟁 시절을 기억하며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 잠수함은 추진 체제의 종류를 막론하고 탐지하기가 매우 힘든 무기이다.
-AIP 등의 새로운 체계가 나오기는 했지만 재래식 잠수함은 장기간 작전이 불가능한 반면 원자력 잠수함은 장기간 작전이 가능하다.
- 원자로를 탑재해야 한다는 제한 때문에 원자력 잠수함은 어느 정도 대형화가 필수이고, 대형 원자력 잠수함에는 순항미사일은 물론이고 전략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만큼의 탄도탄을 탑재할 수 있다.
- 한국은 충분한 타격력을 가진 탄도탄을 개발했다. 문제는 부족한 사거리인데 이는 잠수함 탑재로 해결이 가능하다. 세종대왕 함의 예를 살피더라도 한국이 개발할 원자력 잠수함에 실릴 탄도탄의 수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 만약 한국에서 상정한 대로의 원잠이 전력화 된다면,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은 중국 군부 원로들의 성향까지 합쳐져 중국 군부의 현대화 계획은 질적인 성장뿐만이 아니라 양적 성장까지 하는 것으로 변경이 될 것이다.
- 질과 양 모두를 강화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예산의 증대를 가져오며 이는 현재 중국 경제에 악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 경제상황이 안 좋아질수록 국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갈 것이고 이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공안과 군부의 힘이 더더욱 필요해지게 된다.
군부의 힘이 커질수록 결제에는 더더욱 부담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 악순환이 심화되면 결국…….
“…결국, 한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주변 강대국들의 골치를 썩이는 어느 형제국처럼 선군정치가 국시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거기서 더 잘못되면 이는 생각하기도 싫은데…….”
“거기서 더 악화될 수도 있단 말입니까 ”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설명을 듣던 김 의원이 던진 질문에 대답을 한 이는 옆에 앉아 있던 조 의원이었다.
“구( ) 일본제국의 황군.”
조의원의 대답에 왕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맞소이다. 아시아를 고통에 빠트리고 결국은 자국마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 미친 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