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지 신경을 거스르는 낯선 소음은 처음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으나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면서 점점 증폭되기 시작했다. 헬기 소리였다. 그 기분 나쁜 소리는 내가 니콜라스를 앞세우고 필리스 도어를 막 나설 즈음에는 저택의 유리창을 뒤흔들 정도로 커져 있었다. 뒤이어 헬기에서 쏟아져 나온 서치라이트의 날카로운 빛이 후원 유리문을 통해 필리스 홀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니콜라스가 출몰했다는 신고에 놀란 경찰이 헬기까지 동원해 저택을 포위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충분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했는데도 어떤 경고나 지시도 없을 뿐더러 소리와 빛은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위협적인 기류에 니콜라스가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부지불식간에 힐끔 뒤를 돌아봤다. 강렬한 빛의 입자 때문에 눈이 부셨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헬기는 거의 바닥에 닿을 듯 낮은 고도를 유지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후원 쪽 벽과 문은 모두 유리로 되어 있는데다 파티 중이라서 외부에도 조명을 환하게 밝혀놨기 때문에 그 검은 윤곽이 확실하게 보였다. 헬기의 접근 속도는 빨랐다. 어지간히 가까이 왔는데도 그 기세를 늦출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뭔가 잘못 됐다고 생각했을 때엔 이미 그 시커먼 동체가 필리스 홀의 유리벽을 깨부수고 안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살이 터질 것 같은 찬바람이 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헬기 날개에 맞아 산산조각난 실내 장식물의 잔해와 함께 안으로 몰아닥쳤다. 급하게 얼굴을 가린 팔에 파편이 스쳐서 옷이 갈가리 찢기고 피가 흘렀다. 갑작스런 사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니콜라스가 나를 문 옆으로 거칠게 끌어 당겼다.
눈을 떠 보니 유리문 가까이 있던 테이블 서너 개가 헬기 동체에 깔려서 산산이 부서져 나가는 중이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중년 부인의 머리가 터져 사방으로 뇌수가 튀었다. 헬기는 마치 해변에 올라오려고 기를 쓰는 거대한 고래처럼 꿈틀거리며 동체를 반도 넘게 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사방에서 울리는 비명소리는 필리스 홀의 유리와 천장을 다 부수고도 아직 멈추지 않은 헬기의 굉음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몬티첼리의 경호원들이 양쪽 문에서 쇄도해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들도 마치 거대한 괴수가 머리를 들이밀고 포효하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광경에 한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파티장 안으로 날아든 괴조는 경찰 헬기가 아니었다.
“저, 저건…… 블랙 호크다!”
레빈이 넋을 잃고 앉아 있는 몬티첼리의 어깨 죽지를 잡아 일으키며 소리쳤다. 바로 그때 마크도, 일련번호도 없는 정체불명의 헬기에서 검은 헬멧과 개인 화기로 완전무장한 일단의 침입자들이 일사분란하게 뛰어내렸다.
침입자들의 행동은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헬기에서 뛰어내린 침입자들이 제일 먼저 취한 액션은 이 과감한 난입의 기세에 눌려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무장 경호원들에 대한 무차별 난사였다. 가르시아를 필두로 경호원들이 주춤 늘어선 필리스 도어가 1차 목표로 집중 공략을 당했다.
가르시아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쓰러진 가르시아를 부축해서 한 걸음 물러서던 남자는 얼굴 한복판에 총격을 당했다. 가르시아가 망연한 표정으로 안면이 아예 날아가버린 친구의 주검을 끌어안고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폭력 전과 12범에 내 손으로 체포한 횟수만 4번이나 되는 ‘밤길 승냥이’ 카를로스는 수십 발의 총알에 가슴과 배가 다 해진 처참한 몰골로 쓰러졌다. 테시오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쪽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친 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도시의 뒷골목을 누비며 폭력이라면 신물 나게 경험해본 마피아 조직원들조차 얼어붙을 정도로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침입자들은 무장 경호원과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을 구별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놈들은 인간이라기보다 피에 굶주린 통제 불능의 괴수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차이나타운에서 마주친 루크 첸의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레빈이 말하던 충격적이고 치명적인 2차 공격이란 게 이런 거였나?
필리스 도어 쪽의 경호원들을 대충 쓸어버린 침입자 중 하나가 드디어 내 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놈이 들고 있는 소총은 VZ61 스콜피오였다. 그 성능 좋은 반자동 소총이 품고 있는 치명적인 독은 진짜 전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습격자의 스콜피오와 내 베레타가 동시에 불을 뿜었고 놈이 조금 더 빨랐다.
그러나 습격자의 총격에 희생된 것은 대학살의 와중에 갈팡질팡하다가 나와 괴한 사이에 뛰어든 마르첼로였다. 몇 초 간격으로 난사된 10여 발의 총알이 마르첼로의 몸을 잔인한 아이 손에 맡겨진 헝겊 인형처럼 갈가리 찢었다. 반도 넘게 떨어져 나간 그의 목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쳐 사방에 흩뿌려졌다.
내가 발사한 총알 중 두 발은 빙그르 돌며 무너져 내리는 마르첼로의 팔과 허리에…… 그리고 나머지 한 발은 괴한의 가슴에 명중했다. 하지만 놈은 방탄조끼와 헬멧으로 완전무장한 상태였다.
충격에 잠시 주춤하던 놈이 다시 총을 들어올렸다. 당황해서 한 걸음 물러서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덮쳤다. 니콜라스였다. 그에게 푹 안기다시피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목 언저리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끈끈한 피가 삽시간에 셔츠를 붉게 물들였다. 니콜라스도 작은 비명을 입 안으로 삼켰다. 그의 어깨…… 손목……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서도 피가 솟구쳤다. 그에 비하면 총알이 스쳐 지나간 내 상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있는 힘을 다해 니콜라스를 밀쳤다. 바닥에 밀려 쓰러진 니콜라스가 상처 입은 자신의 손으로 역시 피에 젖어서 어딜 어떻게 다쳤는지도 알 수 없는 얼굴을 더듬어 보며 혀를 찼다. 그 사이에 침입자들은 우리들의 숨통을 끊어 놓을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며 한 발짝 다가섰다.
습격자의 총구가 정확히 내 이마를 조준하고 있었다. 순간이 영원처럼 길고도 짧았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린 걸까……. 짙은 체념이 솜에 스며드는 물처럼 순식간에 마음을 적셨다.
침입자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생명을 빼앗겠다는 의지는 단호했고, 상대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 따위는 일체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습격자의 총격은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 이미 엉망으로 헤어진 어느 여자의 초상을 한 번 더 뒤흔들었다.
침입자의 사격 솜씨가 형편없어서가 아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 놈의 몸이 크게 뒤로 젖혀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중심을 잡으려고 비틀거리던 침입자가 바닥에 무릎을 짓찧으며 무겁게 주저앉았다. 눈이 아플 정도로 새빨간 피가 시간이 되면 터져 나오는 간헐천처럼 거칠게 솟구쳤다. 훅 끼쳐 오는 비린 피 냄새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무릎을 꿇은 채 두어 번 움찔거리던 침입자의 몸이 쿵…… 소리를 내며 뒤로 무너진 것은 잠시 후였다.
총알은 침입자는 헬멧 아래 목덜미를 관통했다. 전투용 헬멧과 갑옷 같은 방탄복으로 무장한 놈들의 빈틈이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다. 습격자의 목에서 치솟은 피가 마르첼로의 그것과 섞인 채 대리석 바닥에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바닥은 이미 제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온통 붉디붉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놈들의 약점을 제대로 간파해내고 이렇게 깨끗하게 해치울 수 있는 배짱과 실력이 그저 감탄스러웠다. 세상에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총잡이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방안에는 단 한 명뿐이었다. 홀 저편에서 발렌타인이 몬티첼리를 자기 등 뒤로 끌어당기며 헬기에서 내려서는 두 명의 침입자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발렌타인은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놀라거나 당황해본 적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 침착하면서도 가차 없는 공격에 습격자 중 하나는 목이 아예 날아갔고 다른 하나는 헬멧 위로 덮어쓴 고글이 박살나면서 얼굴에 총알이 박혔다. 방탄처리가 되어 있었겠지만 지척에서 발사된 매그넘의 위력을 당해낼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헬멧 안의 얼굴은 형체도 없이 조각이 났을 터였다. 그런 식으로 발렌타인은 총알 한 발에 목숨 하나씩을 정확하게 거둬들였다. 하지만 습격자의 숫자는 많고 그가 가진 총알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 덕에 레빈과 몬티첼리는 아직 무사했다. 이렇다 할 무기도 없는 레빈이 몬티첼리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며 빠져나갈 통로를 찾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침입자들의 공격에 발렌타인이 그렇게라도 버틸 수 있는 건 몬티첼리가 놈들의 주공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홀로 통하는 두 군데 통로에서 일대 격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무기도, 엄폐물도 없는 수십 명의 민간인은 꼼짝없이 갇힌 채 사방에서 날아드는 유탄에 맞아 죽을 판이었다. 로즈마리 도어 뒤편에서는 용병들이 침입자들의 집중 공격에 거칠게 대응하고 있었다. 수많은 실전 경험 덕인지 용병들은 어느새 대오를 정비하고 반격에 나섰는데, 그 대응이 경호원들보다는 훨씬 효과적이고 치열했다. 용병들 때문에 침입자들이 자신들의 헬기를 엄폐물로 쓰면서 쉽게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입자들 쪽에도 이제 사상자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금방까지도 눈앞에서 갈팡질팡하던 웨이터가 옆구리를 움켜쥐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렇게 쓰러져서 꿈틀거리는 부상자가 이미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이 쏟아낸 붉은 피가 발목까지 차오를 지경이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데, 그런데 이렇게 구경만 하고 서 있다니…….
“정신 차려!”
감당하기 힘든 충격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데 니콜라스가 내 어깨를 움켜잡고 거칠게 뒤흔들었다. 돌아보니 그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내 몸을 훑어 내리고 있었다. 나도 그를 그렇게 살펴봤다.
니콜라스는 심하게 다쳤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상은 세 군데였다. 오른쪽 어깨가 벌겋게 젖어 있고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걸 보면 어깨 부상은 관통상 이상의 중상이었다. 얼굴은 오른쪽 광대뼈에서부터 귀까지 수평으로 날카로운 것에 깊이 베인 듯 찢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흉터는 오래 남겠지만 상처 자체는 심각한 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목은…….
니콜라스의 손목을 내려다본 순간 낮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니콜라스의 손목은 살점과 뼈가 거의 떨어져나가 있었다. 그의 손은 간당간당하게 손목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었다. 섣불리 움직이기라도 하면 그 손이 지금이라도 바닥에 툭 떨어져버릴 듯 위태로운데, 니콜라스가 성한 손으로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리곤 나를 끌고 필리스 도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특수 부대에서나 쓸 것 같은 헬기, 고성능 화기, 일사 분란하고 가차 없는 학살…… 고쳐 생각할 것도 없었다. 침입자들은 군인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훈련받은 특수부대가 틀림없었다. 이게 정말 루크 첸이 사주한 짓일까? 놈은 고작 도시 뒷골목의 이해를 다투는 갱단의 두목일 뿐인데, 저 정도의 화력과 병력을 동원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리로 가면 어디야?”
니콜라스가 갈라진 복도에서 걸음을 멈췄다. 저택은 조금 전부터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난리 통에 전선이 끊어진 탓일 테지만 도망치는 입장에서는 어두운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어둠 속에 몸을 감출 수 있어서 좋고, 참혹한 광경이 보이지 않으니 더 좋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헬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굉음과 총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소리가 한데 섞여서 들려왔다. 눈에 보이는 게 많지 않으니 소리가 더 크고 위압적이었다. 침입자들의 헬기는 한 대가 아니었다. 정원에서도 일대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왼쪽은 서재, 오른쪽은 후원이야.”
니콜라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후원엔 뭐가 있는데?”
“아무것도…….”
뭐 대단한 게 있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안 된 얘기지만 잘 조경된 정원이 있고…… 눈이 쌓인 데다 삭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다.
“숲으로 통해. 뒤쪽은 숲이야.”
“한숨은 돌리겠군.”
나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다가 니콜라스에게 질질 끌려 몇 걸음을 더 걸었다.
“도망칠 생각이야?”
“좋은 기회잖아?”
“당신은 병원에 가야 돼!”
손목에 매달려 덜렁거리는 시뻘건 살덩어리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지경인데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동맥이 터지고도 남을 상처의 깊이였지만 최악의 출혈사태가 없는 걸 보면 중요한 혈관은 무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 움직일 수는 없을 거다. 어깨에 입은 총상의 출혈도 만만치 않았다.
후원으로 통하는 복도 어귀에서 잠시 니콜라스와 실랑이는 벌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쿠웅…… 하는 굉음이 울렸다. 거의 동시에 엄청난 충격으로 저택이 뿌리까지 뒤흔들렸다. 사방에서 불빛이 번쩍거렸고, 저택의 모든 유리창이 동시에 터져 나갔다. 어딘가에서 불어 닥친 세찬 기류가 내 몸을 거칠게 떠밀었다. 폭발이었다.
정확히 어디에서 뭐가 터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폭발의 진원지는 멀지 않았다. 몇 걸음 앞에 있던 응접실 문짝이 무서운 기세로 튕겨나가서 창을 부수고 후원에 있던 키 작은 나무들을 뿌리까지 뒤흔들고서야 쌓인 눈 위로 떨어졌다.
무너져 내리는 잔해, 뒤이어 들이닥치는 화염에 기가 질려서 멈칫했다. 하지만 니콜라스는 눈앞에서 벽이 터지고 화염이 솟구치자 주저 없이 방향을 틀었다.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든지, 아니면 예전에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까지 민첩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건 불가능했다.
재수가 없으려니 일이 꼬여서 복도를 수색하던 몇 놈이 우리를 발견하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자욱한 연기와 화염을 헤치고 나와서 뒤를 쫓는 놈들의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금방 뛰쳐나온 괴수 같았다. 몬티첼리 조직과 아무 상관도 없는 나나 니콜라스를 기를 쓰고 쫓아오는 걸 보면 저택에 있는 사람을 모두 다 죽일 작정인 것 같았다.
몬티첼리의 저택이 아무리 넓어도 달리다 보면 금세 막다른 벽이다. 게다가 이 집은 구조가 단순한 편이었다. 니콜라스가 나를 끌고 발길 닿는 대로 도망치다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살려면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나가야 했다. 건물 위쪽으로 도망치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놈들은 중화기로 무장한데다 숫자도 많았다. 게다가 언제 불이 저택 전체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위로 올라가는 건 꼼짝없이 갇힌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만류할 사이도 없이 니콜라스는 이미 계단을 날듯이 뛰어 올랐고, 놈들은 어느새 계단 아래쪽까지 바싹 다가와 있었다. 아래쪽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하면서 나도 니콜라스를 바싹 따라 붙었다. 이제라도 더 중요한 다른 목표로 관심을 돌려준다면 다행이겠지만, 놈들의 추적은 이상할 정도로 집요했다.
2층 복도엔 연기가 자욱했다. 뭔가 타는 것 같은 매캐한 냄새, 갑갑할 정도로 온몸을 죄어 들어오는 열기, 아래층 어디선가 화재가 발생해서 그 연기와 열기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불규칙적인 폭음 같은 것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불길은 이미 꽤 번져 있는 것 같았다. 화재를 진화할 여유가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고 보면, 머지않아 저택 전체가 화마에 휩싸일 판국이다. 집안에서 오래 머뭇거릴수록 죽을 확률이 높았다.
“여기서 나가야 돼!”
니콜라스에게 잡힌 손목을 뿌리치고 후원 쪽으로 길게 난 창문을 가리켰다. 고작해야 2층이었다. 게다가 바닥엔 눈까지 쌓여 있으니까 다칠 위험도 크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니콜라스가 창에 다가선 나를 뒤로 끌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부상의 정도로 보면 니콜라스에게는 난감한 일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등 뒤의 뜨거운 공기가 거칠게 뒤흔들렸다.
후원 쪽으로 나 있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유리창이 도미노가 무너지듯 차례차례 터져나갔다. 처음엔 밖에서 폭탄이 터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리창을 박살내면서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것은 네댓 명의 침입자들이었다. 지붕으로부터 로프를 타고 건물 안으로 진입한 놈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앞을 막아섰다.
침입자들이 그야말로 지척에 닿아 있었다. 손을 뻗으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놈의 헬멧을 만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놈들이 전열을 가다듬는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놈들은 우리가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곧바로 소총을 고쳐 쥐고 사격 자세를 취했는데 그 찰나 같은 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침입자들 중 제일 선두에 서 있던 놈이 나를 향해 총구를 들어 올린 것과 내가 놈의 헬멧 위에 덮인 고글에 총구를 들이댄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습격자의 몸이 공중을 유영하듯 높이 떠올랐다. 그게 내가 가진 마지막 총알이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마피아 전쟁에 휘말려서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서 어이없고 허탈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그간 위험한 순간도 많았고, 제명에 못 죽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지만…… 죽어도 근무 중에 순직을 할 줄 알았지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죽을 줄은 정말 몰랐다. 예상치 못했던 반격에 잠시 멈칫했던 습격자들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