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랭크의 여관주인-43화 (43/222)

0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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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포르의 탑 / 이퀴시아 제국 측 안내 사항 (수정) 』

◈ 예상 계층의 수 / 3층

※ 탑의 높이 521M / 둘레 920M

◈ 레니 원정대(SS랭크) 3인 공략 성공

※ 발레포르 토벌 성공

※ 전 계층 공략 성공

※ 공략 후, 제국보상금 수령

◈ 원정대 종합 등급 D 미만 입장 불가.

※ 위 사항을 어길 시에 이퀴시아 제국법 위반.

※ 입장 레벨 S랭크 이상에서 D랭크로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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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륙 이퀴시아 중심구 / 마리의 여관 ]

“히끅, 아서, 그래서 회복 마법을 어떻게 하냐면.”

“벌써 쓰고 있잖아, 레니….”

발레포르의 탑을 공략하면 레니의 회복 마법 술주정이 없어질 줄 알았다는 예측을 완벽하게 뒤엎는 상황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파티원들을 모집하고 있을 때의 레니와는 달리, 그나마 술주정의 강도가 약해졌다는 것은 나름대로 특이점이긴 했다.

레니는 회복 마법을 다른 모험가들에게 사용하고 다니진 않았다. 반면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초록빛으로 가득한 망할 힐 타임이 무한대로 지속하고 있다. 그만, 그만!

쥬드는 유적 공략 이후에 제국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을 보더니, ‘이번 달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겠는데.’라며 행복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지 않아도 발레포르의 탑이 공략된 상황에 이퀴시아 제국은 떠들썩한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여관의 손님들은 우리의 얼굴을 어떻게 기억해낸 듯했다.

마리의 여관 내부에서 ‘발레포르’에 대한 언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타 모험가들이 한가득, 이 정도 시선 집중이면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저 사람들이 발레포르의 탑을 공략했대.”

“며칠 전 그 사람들이군, 용케 살아 돌아왔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공략했을까.”

레니는 눈이 반쯤 풀린 채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던 모험가들에게 다가갔다. 이내 쥬드도 일어나 팔짱을 끼고 함께 따라가더라.

“이봐요, 다 들리거든요, 히끅, 그리고 공략은 아서가 했거든요.”

“우리에게 정신 나간 짓이라고 하더니, 살아 돌아오니까 반갑나 보군.”

“하하, 그게.”

“미안하네, 그곳이 조금 위험한 곳도 아니니까 그랬네.”

“아서가 이렇게 눈에서 퐝! 하고, 뭔가를 하면 전부 한 방이라고요.”

“크하하, 제국 하나쯤은 그냥 날려버릴 수, 읍!”

“제발, 허튼짓 좀 하지 말아요, 둘 다.”

쥬드가 ‘이런, 이런 섭섭한데 그래.’라는 소리를 한들, 두 사람의 옷깃을 잡고 다시 자리에 앉힐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의 복장을 하는 직원들이 속닥거리는 소리, 모험가들이 곁눈질로 우리를 의식하는 느낌, 이미 ‘발레포르의 탑을 공략’한 원정대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아는 듯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쥬드와 레니가 먹어 치운 케피탄 맥주와 음식들이 한가득하였고, 여관의 홀에 있기에는 한계라고 볼 수 있었다. 쥬드와 레니에게서 케피탄 맥주 냄새가 난다.

이퀴시아 제국 내부에 여관에는 어떤 포도주가 유명한지 궁금하여 포도주를 주문했었는데, 제대로 음미하기는 개뿔, 떠들썩거리는 분위기 때문에 몇 모금 홀짝거린 게 전부다.

“슬슬 올라가도록 해요.”

“그래, 어깨가 결리는데 얼른 들어가서 한숨 자야겠어.”

“히끅, 다들 주무세요.”

3층에 있는 투숙 시설, 쥬드와 레니는 각자의 방으로 이동하기 위해 여관의 계단을 올라갔다.

그들이 무사히 침대까지 도착하길 소원하며, 마시다 말았던 포도주만 전부 해결하고 올라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이게 목적이라 먼저 보낸 거지만.

생각이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발레포르가 나에게 했던 말, 그리고 현재 아칸이라는 세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관자놀이를 누르는 버릇도 전부 ‘망할 구멍’ 때문이었고, 그 안에서 수많은 마물들과의 혈전을 치르며 갈아치운 안구만 1000피스가 넘을 것이다.

‘……뜻을 품은 인간이여, 선택의 기로는 네 몫이다.’

‘잘 들어라, 인간이여, 집 안에 쥐구멍을 막는다고 한들.’

‘쥐라는 생물이 사라지지는 않는 법.’

이미 나는 이 이야기의 아니, 계약상의 모든 엔딩을 끝마쳤을 텐데, 어째서 발레포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도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말을 내가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이런 거겠지만.

절망을 토하는 구멍은 과거에 닫혔고, 그 이후로 전혀 아무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급작스럽게 조우하게 된 72개의 절망 중 하나가 새로운 플래그를 세웠다.

‘쥐구멍을 막는다고 한들 쥐라는 생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듣자, 피부가 간지러울 정도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계략인 것처럼 나를 다시 끌어들이려는 수작이 아닐까 하고 이를 세게 깨물었다. 하물며 꾸역꾸역 엄지와 중지로 양쪽의 관자놀이를 누르기 바쁘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관여하지 않겠어.’

절망을 토하는 구멍을 두고 ‘귀찮은 건 질색’이라는 허언 가득한 소리를 내뱉고 싶지 않으나, 이미 내 몸은 망가질 만큼 망가져 있다.

현역 시절인 본인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던 그때, 7인의 원정대라는 영웅담을 대신하면서까지 다시금 검을 뽑는다는 것은 스스로 미안할 행동이다.

“하, 생각해보니 지구로 돌려보내지 않은 이유를 이제 알겠네.”

지금의 나는 은퇴라는 말보다 어울리는 단어가 없다. 누구는 20년, 누구는 30년, 혹은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용이 만년을 사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던가.

분명한 것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절망을 토하는 구멍’ 안에서 내가 보낸 시간은 우리 여관의 웨이트리스를 하는 렌과 아이리스의 나이보다 많을 것이다. 망할.

창가로 보이는 하늘, 그래 ‘장엄한 하늘’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한 토시 놓치지 않고 진심이다.

“다시는 관여하지 않을 거라고. 이 빌어먹을 아칸이 파멸하든 말든.”

* * *

찝찝한 기분을 단번에 날려 보내주는 것이 있었는데, 여관에 돌아오자마자 눈에 들어오던 ‘엑스칼리버’의 성장이었다. 아이리스가 신경을 쓰며 물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봤자 손가락으로 물을 뿌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냐며 태클을 걸었지만, 아이리스는 ‘짐이 성장시킨 것이니 얼른 칭찬해 주거라, 임자.’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더니, 옆에 있던 렌이 야단법석을 치며 나에게 다가와 ‘저도 여관을 열심히 운영했어요, 마스터.’라며 눈에 별 무리를 담은 채, 무언가 기대하는 반응을 했다.

“고생했어, 렌도.”

“아하하, 기뻐요. 마스터.”

“임자, 발레포르 녀석은 해치웠는가.”

“암, 귀찮아 죽는 줄 알았다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전부 해결해주고 오셨네요, 마스터.”

“…그렇긴 하지.”

여관으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렌과 아이리스의 황당한 행동으로 인해 관자놀이를 누르는 동작의 작동 버튼이 되는 것도 똑같았다.

한편으로 아쉬움이 남을 법했던, 레니의 주사는 여전해서 다행이었고, 브라운 아저씨의 붉게 달은 얼굴로 껄껄거리며 웃는 소리, 홀에서 울리는 웨라의 연주 소리, 여관은 나에게 휴식이라는 말을 안겨줬다.

아이리스가 공들여서 물을 주었다는 ‘엑스칼리버’.

언덕을 오르고 여관 전방에 보이는 묘목이 확실히 델타산맥 꼭대기에서 가지고 온 그 식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상당히 놀라웠다.

무엇보다 ‘엑스칼리버’에서 흘러나오는 특이한 마력이 기존 대륙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아주 신묘한 기운이었다.

이 기운 때문에 그런 것인지, 주류 창고의 플로우들도 이 기운을 따라 밖으로 자주 나오더니, 엑스칼리버 주변을 어슬렁거리고는 했다. 외부손님들이 플로우들이 날아다녀 볼 것이 많아 좋았다고.

“오, 아서 돌아왔군!”

“하하, 마커스 오늘은 밖이네요.”

“아아, 요즘 사냥이 잘돼서 늦게 오는 바람에.”

“다행이네요, 저희 직원들에게 팁이라도 주세요.”

“그래야지 특히 홉스와 아이리스에게는!”

사냥꾼 마커스가 외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는데, 근래 사냥이 잘되는지 여관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계속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홉스와 아이리스의 사냥 조언 덕에 근래 능률이 높아져서 그런 탓인지 ‘아이단’과의 사냥 내기에서도 종종 이겼다고.

여관의 밤하늘을 실컷 구경하다가, 외부에 있는 손님들 한 명씩 인사를 건네며 안부를 전하고는 다시 홀로 들어갔다.

여관의 지적임을 상징하는 정장 차림의 고블린 ‘홉스’가 안경을 착용하더니, 홀에 들어온 나를 보며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홉스가 여관의 매니저를 맡기 시작하면서부터, 가게 내의 로테이션이 상당히 좋아졌음을 느꼈다. 가게의 홀이 이전과 다르게 ‘그저 복잡하다.’가 아니라 ‘많고 알차다.’라는 느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장님, 배달 서비스에 대한 기획서입니다.”

“홉스는 정말 끝도 없이 연구하는구나.”

최근 홉스와 함께 고민하고 있었던 것,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안들을 내가 발레포르의 탑으로 다녀오는 동안에 기획안으로 정리한 듯했다.

“하하, 용사의 쉼터가 잘되면 저도 좋으니까요.”

“차라리 네게 사장을 맡기고 내가 종종 놀러 오는 게.”

“사양하겠습니다. 여관이 잘되는 것은 엄연히 사장님 덕이니까요.”

“내 덕이라, 나는 그저….”

‘소신으로 여관을 운영할 뿐.’ 늘 찾아오는 다른 대륙의 자영업자들이 내게 조언을 구할 때 대답한 문장.

내가 여관을 운영하면서 생각한 소신은 무엇이었을까, 헤이스트를 중첩하면서까지 혼자서 분주한 홀을 뛰어다니고, 어렵게 용사의 쉼터를 운영한 소신 말이다.

누구나 다 웃으며 이곳에 이를 수 있길, 과거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단란한 공간 속에서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길, 상당한 매출을 지닌 여관 반열에 오른 용사의 쉼터. 그 주인이 가진 소신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어쨌거나.

보라, 용사의 쉼터를, 해골들이 서빙을 하면서 춤을 추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어두웠던 표정 속에서 웃음꽃이 서서히 피기 시작한다.

주방에서는 뼈가 부딪치는 소리인지, 프라이팬으로 요리하는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달그락’ 소리가 반복되고 있다.

레니는 주문한 스테이크를 조금 더 구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고, 본래 레드드래곤이라는 렌은 입으로 불꽃을 뱉어서 레니의 부탁을 해결한다.

늘 자신을 칭하길 ‘짐’이라던 아이리스는 특별히 물이 담긴 길쭉한 그릇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손님들이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손가락 하나로 ‘물은 셀프라는’ 말을 가볍게 무시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이 여관을 운영하는 소신이란.

‘그냥, 인간미 넘쳐서.’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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