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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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포르의 탑 / 레니 원정대 진행 상황 』
◈ 현재 공략 상태 / 1계층 통과. ※ 정령의 호롱불로 유적 외부와 흡사한 호흡 가능. ※ 고유결계 : 마법이 적용되어 있음.
◈ 현재 공략 상태 / 2계층 통과. ※ 54개의 석상(파수꾼) 중 1개의 열쇠를 가진 석상. ※ 석상을 파괴하여 전이 마법을 통해 3계층 입구로 이동. ※ 해당 구간에서 마안 ‘셜록의 단서’의 기능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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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륙 고대유적 / 발레포르의 탑 3계층 ]
“쥬드 씨, 아까 2계층에서 몇 개의 석상을 파괴했나요.”
“열, 열 마리.”
“44개의 석상이 왜 3계층에 있는 걸까요?”
“아서, 쥬드! 여기로 오고 있어요!”
거대한 신전을 연상하게 만드는 3계층, 여전히 피부를 쭈뼛하게 만드는 섬뜩한 마력 유동은 ‘절망을 토하는 구멍’의 내부와 흡사하다.
저 멀리, 천장에 달린 거미줄이 잔뜩 처진 유일한 샹들리에. 거대한 공간의 어둠을 비추기에는 아득히 부족했다. 더욱 공기가 무거워지는 분위기였다.
중요한 것은 전방에 보이는 44개의 석상, 2계층에서 본 것들과 아주 흡사했다. 아니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지만, 그것이 분명했다. 3계층에 녀석들이 어떻게 전이되었는가?
‘레니가 모르던 갑옷을 입은 또 하나의 석상.’
이것이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던 장치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석상들의 민무늬 동공에는 푸른빛이 번쩍거렸다.
내가 파괴한 열쇠를 가진 석상 이외에, 또 하나의 열쇠를 가진 석상을, 석상들이 파괴하고 3계층을 올라왔다. 당연하게도 예상되는 방법은 유일하게 그것밖에 없다.
나와 쥬드는 레니의 앞으로 서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서서히 다가오는 석상들의 쭈뼛한 걸음걸이는 레니의 트라우마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드는지 목 뒤로 그녀의 거친 호흡이 들려온다.
금방이라도 우리를 공격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석상무리들이 별안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천천히 동작을 거두는 것이 아닌, 엔진에 제동이 걸린 것 같은 느낌으로.
“움직임을 멈췄어.”
“레니, 정신 차리게.”
“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보고 싱긋 웃는 레니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했고, ‘도저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표정이잖아?’라며 쥬드와 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 3계층까지 올라오는 인간들은 몇 없었는데. 』
『 조용히 개미를 구경하듯, 잠자코 지켜보았더니. 』
『 인간 영혼의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엄청난 것을 소유했구나. 』
신전 내부에서 웅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니 원정대의 전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음성의 출처를 찾기 바빴다.
앞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던 석상들이 천천히 주변으로 흩어지더니, 우리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중앙에 거대한 길을 만들었다.
그 사이 끝에는 인간의 것이라기에 크기가 심히 거대한 왕좌가 보였다. 그 왕좌에는 ‘발레포르’로 추정되는 섬뜩한 것이 앉아 있었다.
『 아, 아 그랬던 것이었군. 』
『 네놈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
『 영혼이 보였다. 구멍 속에서 나의 핏줄을 멸했던 자가… 』
『 절망에 절망이 되었던 이례의 존재… 신의 기계적 장치. 』
『 네놈, 이었구나. 』
아주 천천히, 시야에 잡히는 천장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비단 물방울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과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늦게 흐르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다.’
석상들이 길을 열고 난 후였다.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던 레니의 거친 호흡과 쥬드의 이를 깨무는 소리, 별안간 발레포르는 자기 영역의 시간을 비틀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가 죽인 절망의 복수라도 하고 싶다는 건가.”
『 우스운 소리, 어차피 결과는 내가 파멸할 것이 분명할 터인데. 』
“너희들이 유적에 숨어든 이유가 궁금하군.”
『 반대로 유적에 들어오는 인간의 호기심은 무엇인가. 』
거인보다 거대한 몸집, 어울리지 않은 로브를 착용하여 마법사행세를 하는 발레포르. 빗어진 주름은 움직이지 않았다. 3계층 내부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입 모양 없이 울린다.
전혀 움직임이 없어서 이를테면 2계층의 석상들과 다를 것이 없는 발레포르의 모습이었다. 그저 신전에 울리는 웅장한 목소리가 녀석의 모든 것을 대변했다.
『 네놈은 더는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것 같더이다. 사실이겠지. 』
『 그리고 호기심은 항상 대가를 원한다. 보이는 저 둘처럼. 』
『 이곳이라는 공간에서 저들은 무력이라는 단어에 걸맞다. 』
『 1계층부터 서서히 침식된 혼돈 때문에 또 다른 석상이 될 터이고. 』
『 그 대단히 신성한 눈 덕에, 네놈은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
『 아니하다… 눈이 아닌가, 원천은 전혀 다른 곳에 있군. 』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부분이 시야에 잡히기 시작했다. 레니와 쥬드의 발끝으로부터 서서히 석화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
관자놀이를 누르는 시늉을 한들 발레포르는 아무런 딴지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내가 괴로워지게끔 레니와 쥬드의 석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시야에 포착된 대상을 제거 가능한 마안을 결속한다.”
[ 피해 카테고리 지정 : 제압 / 파괴 / 침묵 ]
“저 지껄이는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게.”
[ 해당 대상을 ‘침묵’시키기 위해 ‘EX랭크 : 하델의 마안’ 결속 ]
“…윽!”
[ 해당 장기(눈)에 과부하 발생 / 마안 결속 강제 출력 가능 ]
[ ‘EX랭크 : 하델의 마안’ 강제 출력 시, 해당 장기의 파손 발생 ]
다시금 양 눈을 부여잡고 바닥에 꿇어앉아 신음을 낼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안구가 아프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뇌부터 시작해 모든 신경계가 망가지는 격통에 속한다.
벌써 해당 장기의 파손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내 능력이 상당히 감퇴 되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파고드는 안구의 통증 때문에 별다른 말을 뱉지 못하고 ‘아, 아.’를 운운할 뿐이었다. 이럴 때 쓰는 ‘아, 아’가 아닌데.
『 비롯된 결과다. 인간의 그릇으로 ‘기적’을 자유롭게 사용한다면. 』
“좀, 시끄러워….”
『 과연 ‘■■’나 ‘■■’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주절주절… 어울리지 않은 수다쟁이구나 너.”
『 그러나, 내 운명이 바뀌지 않는 걸 보아하니…. 』
“그래, 결과는 바뀌지 않아.”
―하델의 마안, 강제 출력.
―[ 해당 장기의 파손 발생. ]
눈가로 깃털이 휘날린다.
안구가 불타오른다.
일렬로 곧게 뻗은 백색의 창.
기어코 발레포르의 심장을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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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히 어리석고 미련하구나, 거짓된 기적이여…. 』
“포기는 무슨….”
서서히 시야가 흐릿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득히 깊은 어둠에 홀로 갇힌 기분. 과거에는 이 어둠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문제없다.
단말마의 비명 따위는 한 번 들리지 않고, 그저 전방에 있던 발레포르에게서 ‘타닥, 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만 들려온다.
이렇게 청각에 의존하여 녀석이 소멸해가고 있다는 것을 추측하는 게 전부였다. 이것도 추측일 뿐, 얼른 파손된 안구의 시야를 되찾아야만 한다.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대상(아서)의 장기를 복구한다.”
[ 대체 카테고리 지정 : 재생 / 제작(불가능) / 마안 대체(불가능) ]
“얼른, 레니와 쥬드가 멀쩡한지 확인해야 해.”
[ 해당 장기를 ‘재생’시키기 위해 ‘EX랭크 : 레노브의 손길’ 결속 ]
점점 어둠이 트이기 시작하더니, 다시 흐릿해지는 시야까지 확보한다.
온전하게 시력이 복구되지 못한 채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몹시 피곤하고 불편한 일이다. 마치 시야에 노이즈가 많아진 느낌이다.
눈을 아무리 비빈다 한들,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흐릿함 속에서도 분명한 점은 발레포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뭔가, 이럴 때마다 굉장히 인간미가 떨어지는 기분이라서.”
『 인간의 몸을 하고서 아득히 머나먼 형태로 존재하는군…. 』
“짓거리가 싫은 나머지 하루 5회라는 결정적인 횟수를 정해두었지만.”
『 ■■의 뜻을 품은 인간이여, 선택의 기로는 네 몫이다. 』
“구멍이 다시 열린다는 짜증나는 플래그를 세우는 것 같은데.”
『 잘 들어라, 인간이여, 집 안에 쥐구멍을 막는다고 한들… 』
인상부터 거대한 시체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발레포르, 주름 빗어진 얼굴이 ‘셀로닌’과 흡사할 정도로 인간의 분위기를 지닌 마물이었다.
서서히 로브를 제외한 몸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온몸에 두르고 있던 거대한 장신구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굉음을 내었다.
몸 안에 있던 알 수 없는 장비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탑에 들어왔던 모험가들의 것으로 추정을 할 수 있다.
『 쥐라는 생물이…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 』
왕좌에 남아있는 것은 발레포르의 장신구 이외 아무것도 없었다. 이어서 쓸쓸하게 남아있던 녀석의 잿더미가 알 수 없는 바람에 휘날리더니 완전히 무가 되어 사라진다.
멈춰있던 44개의 석상도 가루가 되어 바닥에 남겨지자,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이내 레니와 쥬드는 날숨을 뱉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스산한 기운이 계층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낀 그들이었고, 눈앞에 있던 석상들이 모조리 가루가 되어 바닥에 놓인 것을 확인한다.
“발, 발레포르도 사라졌어요.”
“미안 레니, 막타를 남겨주지 못했어.”
“아서, 어딜 보고 얘기하는 거죠?”
“아서 자네, 눈에서 피가!”
“괜찮아요, 회복 중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반대를 보고 얘기하고 있다네.”
“망할, 그렇군요.”
“어서 회복 마법을!”
“관둬, 이렇게 원맨쇼 하루 정도면 돌아오니까.”
여전히 희미한 시야 때문에 쥬드의 부축을 받아 움직이는 나였고, 레니는 발레포르가 끝장나버린 왕좌에 다가서 바닥에 놓인 장비들을 확인했다.
이전에 동료들의 것으로 추측되는 장비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다가, 이내 펑펑 울기 시작한 그녀, 우리들은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다른 방향을 보며 ‘괜찮아 레니, 이제 다 끝났어.’라고 이야기하는 나에게 ‘어딜 보고 위로하는 거예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레니, 동료들의 장비들을 챙긴 것인가.”
“맞아요, 돌아가면 이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려고 해요. 쥬드.”
“나도 도와주도록 하지.”
“고마워요. 아서도 고마워요… 정말.”
‘우리 여관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레니의 주사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건가.’라며 그녀에게 장난을 쳤는데 ‘아쉽지만, 레니의 주사는 오늘부터 끝이에요.’라는 꽤 섭섭한 대답을 던지더라.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더냐.’
맛이 가버린 내 시력 때문에 잠시 으슥한 3계층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결정되었고, 레니는 내게 소용도 없을 회복 마법을 꾸준히 사용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여, 비록 레니의 힐이 나에게 엄청난 회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걱정이 묻어나는 초록빛 손길. 이번만큼은 주사가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