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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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포르의 탑 / 레니 원정대 진행 상황 』
◈ 레니 원정대 / 원정대 종합등급 SS랭크 이상.
※ 레니 : (C) 랭크 모험가 / 마법사.
※ 쥬드 : (A) 랭크 모험가 / 전사.
※ 아서 : (?) 랭크 / 자영업자.
◈ 현재 공략 상태 / 1계층 진입. ※ 정령의 호롱불로 유적 외부와 흡사한 호흡 가능. ※ 고유결계 : 마법이 적용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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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의 단서’라는 SSS랭크의 마안은 시야에 포착된 모든 마법 장치를 파악하거나,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를 통해 주위를 둘러보며 우리가 같은 곳을 맴돌고 있던 이유를 발견하고야 만다.
1계층은 파수꾼들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있는 이 공간 자체가 ‘마법결계’로 이루어진 ‘고유영역’임을 알 수 있었고, 이 또한 마력 유동을 감추는 결계가 중첩되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든 듯했다.
그렇다면 마력을 공급하는 심장부는 어디인가, 바로 이 탑의 꼭대기에 있는 ‘발레포르’라는 것이 확실하다.
“아서, 무엇을 알아냈는가?”
“네, 아무래도 1계층은 고유결계로 침식되어 있네요.”
“고유결계라면… 상당히 복잡한 마법이 아닌가요?”
“거기다 연비도 좋지 않아서 마력 공급을 수도 없이 해야 해.”
지성이 뛰어난 생명체가 아니라면,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복잡한 장치의 마법결계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점이 수상했다. 전자대로라면 이 결계의 구조를 생각한 발레포르가 지성이 뛰어난 마물이라는 소리였기에.
2계층 바닥에 수많은 덩굴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마법결계의 핵심이 되는 구간인 듯했다. 여러 개의 마력 회로가 가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력 유동 자체를 숨기는 결계는 발레포르의 탑 전체에 씌워져 있는 듯했고, 1계층에 마법결계만 조심히 부순다면, 반대로 2계층을 올라가기 전까지 탑에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게끔 유도할 수 있을 듯했다.
“시야에 포착된 마법을 ‘제거’ 가능한 마안을 결속한다.”
[ 피해 카테고리 지정 : 제압 / 파괴 / 침묵 ]
“완전히 침묵시키겠다.”
[ 해당 마법을 ‘침묵’시키기 위해 ‘SS―랭크 : 화조의 마안’ 중첩결속 ]
얼굴 정면으로 주황빛의 마법진이 생성되며 그 속에서 화염을 두른 작은 새들이 덩굴로 날아갔다.
불이 붙기 시작한 덩굴은 씌워져 있던 마력, 마법이 서서히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셜록의 단서’도 반응하기를, 공간에 적용되어 있던 ‘고유결계에 대한 기능 상실’이라는 결과를 도출했다.
1계층의 천장이자 2계층의 거대한 바닥에 완전히 둘러있던 덩굴들이 타오르자 레니는 ‘가까이에서 태양을 보는 것 같다.’며 말했다.
어두운 나머지 주변의 지형지물 파악이 쉽지 않았던 공간에, 붉은 화염의 일렁임 덕에 발레포르의 탑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다시 올라가면, 2계층에 닿을 수 있을 겁니다.”
“알, 알겠네.”
“작은 새들이 귀엽게만 느껴졌는데… 순식간에.”
“어서 출발해요.”
우리는 무한하게 반복할 뻔했던 계단 오르기를 끝내고 1계층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거대한 동굴 모양을 한 2계층 입구가 보였고, 이곳에 들어가면 곧바로 2계층으로 오를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내부에서 빠져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생각보다 마력 농도가 상당히 탁해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레니가 조금씩 과거를 떠올리며 패닉상태에 접어들려 했다.
“레니.”
“…네, 네!”
“겁을 먹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해.”
“알, 알겠습니다. 집중할게요!”
* * *
[ 서대륙 고대유적 / 발레포르의 탑 2계층 ]
우리는 어두운 2계층에 들어서자마자, 정령의 호롱불이 비추는 이곳을 두 눈을 부릅뜨고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1계층처럼 계단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3계층으로 올라갈 만한 길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닥 아래에는 돌덩이를 조각해서 만든 2m 신장의 거인들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마치 ‘진시황의 무덤’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건, 나도 처음 보았다네.”
“중요한 사실은 올라가는 길이 없다는 겁니다.”
“아서, 2계층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어요.”
레니는 과거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점점 몸을 떨기 시작했고, 우리는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며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과거의 일로 인해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은 후, 좋지 않은 기억의 반절을 날리려 지금까지 노력했을 텐데. 공략을 위해 기억을 되살리려는 레니의 거친 호흡이 2계층에 울린다.
끝내 ‘2계층에서… 동료 2명이 사망을 했어요.’라는 말을 우리에게 전한다.
“지금 저희가 마주하고 있는 석상 중에 열쇠가 있어요.”
“3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의 열쇠?”
“네, 꼭 열쇠의 모양을 한 건 아니지만….”
“하하, 그럼 그것을 찾으면 그만이겠군, 레니.”
“쥬드, 석상을 건드는 순간 모든 석상이 우릴 공격해요.”
“그렇다면 그 열쇠를 가지고 있는 녀석을 단숨에 찾아야겠군.”
“바로 저기에요, 아서.”
원정대의 앞으로 약 10m 전방에는 사각형 모양으로 6개의 구간으로 바닥이 뚫려 있고, 그 속에는 그리스에서 자주 볼 법한 동상이 오와 열을 맞춘 채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다.
레니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가장 끝에서 오른쪽 구간의 유일하게 갑옷을 입고 있는 동상이었다. 생김새가 꼭 석상들의 대장인 것 같은 느낌.
그녀가 설명한 바로는 ‘대장처럼 보이는 저 동상을 깨트리면’ 내부에 전이 마법이 적용되어 있어서 3계층의 입구 앞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서, 마음 편하게 네 마법을 사용해서 3계층으로 강제 이동을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쥬드의 물음에 ‘애당초 그럴 수 있었다면… 용사의 쉼터에서 레니를 안고서 발레포르에게 전이한 다음, 별안간 목을 베고 돌아왔겠죠.’라 대답했다.
그렇다고 이 마안의 뭉치를 계속해서 남용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게, 사용 수가 많아지면 안구에 알 수 없는 통증은 덤이고, 길게는 며칠 동안 시야가 흐릿해지기까지.
은퇴 이후에 마안의 뭉치 한도 범위를 5번 이하로 정해서 사용하고 있다. 과하게 사용할 시에는 시력을 몽땅 잃는 엄청난 보상 효과도 존재한다. 이른바 ‘조건부 무적’일 뿐, 시력을 잃지 않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레니, 바로 앞에 있는 이 석상도 똑같이 생겼어.”
“이건… 그때 당시에 보지 못했던 석상이네요.”
“그럼 고민할 필요 없이, 처음 가리켰던 놈으로.”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혹시 가까운 곳에서 녀석을 파괴해야 하는 거야?”
“아니요, 남아있던 동료 중, 궁수가 화살을 쏘아 맞히셨어요.”
석상들을 움직일 여유도 주지 않고, 이곳에서 마안으로 클리어를 할 수 있다면 곧바로 ‘발레포르’에게 도달할 수 있다.
멀리서 요격할 만한 마안으로 레니가 지목했던 석상을 깨부수면 그만이고, 많으면 3번까지 마안을 사용해서 발레포르를 상대할 수 있으니, 이미 유적의 클리어는 예상된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시야에 포착된 대상을 ‘요격’ 가능한 마안을 결속한다.”
[ 피해 카테고리 지정 : 제압 / 파괴 / 침묵 ]
“부수기만 하면 돼.”
[ 해당 마법을 ‘파괴’하기 위해 ‘S랭크 : 마탄의 사수’ 중첩결속 ]
손가락 끝에서 작은 원형의 마법진이 생성되고, 그 앞으로 푸른 구체의 거대한 마력이 조금씩 압축되기 시작했다. 마력 유동이 강렬하게 일어나며 구체가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크기까지 줄어든다.
별안간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석상들이 건담의 탑승자가 시동을 걸면 눈빛에 전격이 들어오는 것마냥 푸른빛으로 눈을 반짝인다. 레니와 쥬드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움직이는 녀석들을 보며 ‘레니, 마력 유동으로 인해서 움직이기도 한다고 말해줘야지!’라며 으름장을 놓았더니, ‘정, 정말 몰랐어요!’라는 표정으로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이런, 빨리 전이해서 올라가야겠어.”
손가락 끝에 있던 구체가 빠른 속도로 열쇠를 지닌 녀석에게 날아갔다.
마탄이 강렬하게 부딪치는 순간 거대한 굉음과 함께 바닥의 파편과 짙은 먼지들이 휘날렸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면 도착할 줄 알았던 3계층의 입구는 온데간데없고, 석상을 가리고 있던 먼지가 사라지니 파괴는커녕 다소 금이 나간 정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발로는 무리라는 건가.’
어기적거리며 어느새 올라온 수많은 석상이 레니 원정대를 둘러쌌고, 쥬드는 생각보다 움직임이 빠른 석상들의 공격을 막으며 레니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손가락 끝에 여러 개의 구체를 압축시키며 열쇠를 가진 석상에게 지속해서 공격을 가하던 중, 급작스럽게 아파지는 동공 때문에 손바닥으로 눈알을 짓누르며 무릎을 꿇었다.
“아, 아서!”
“아서, 괜찮아요?!”
어째서, 아직은 마안의 뭉치가 결속된 해당 장기에 과부하가 오지 않았을 터, 하지만 현 상황에서 공격을 멈추었다간 레니의 말대로 이곳에서 ‘두 명의 동료가 사망했어요.’라는 말이 재실현될지도 모른다.
“…한 발만 더 쏘면 될 것 같아.”
“걱정하지 말게, 레니는 내가 지키겠네!”
“아서, 회복 마법을!”
회복 마법 따위로 호전될 것 같았으면, 레니 같은 회복 마법 전문 마법사들을 10명은 더 끌고 왔을 것이다. 그래도 플라시보 효과라고 조금 나아지는 것 같네, 그래!
―쾅
“전, 전이에 성공했어요. 아서.”
“아, 아서 괜찮은가!”
“괜찮아요, 조금만 쉬었다 가도록 하죠.”
아무래도 ‘SSS랭크의 마안, 셜록의 단서’를 지속 적용 상태로 두어서 그런 듯했다. 전자대로 안구에 빠르게 쌓여가는 피로와 통증을 생각하다가 문득 새로운 의문점을 떠올린다.
셜록의 단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도, 어째서 열쇠를 가진 석상과 전이 마법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을까, 단서는커녕 셜록의 단서를 적용하기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수상해, 그럴 일은 없어.’
셜록의 단서는 나에게 신뢰도가 높은 마안이었다. 몇 년 동안 숨도 쉬지 않고 마물과의 전투를 벌였을 때, 진짜 내 동공처럼 사용했던 것이었으니까.
이런 셜록의 단서라도 유일하게 자기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공간이 있었는데, 바로 ‘절망을 토하는 구멍의 안’이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3계층의 문, 이곳으로부터 ‘절망을 토하는 구멍의 내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산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오귀스트 로댕이 만든 지옥의 문을 떠올리게 하는 3계층의 입구, 이곳은 1계층, 2계층과는 완전히 별다른 마력 유동이 이루어지는 별개의 차원임이 틀림없다.
오만했다. ‘발레포르의 탑’은 위험한 곳이라는 말을 무지한 채, 은퇴 이후의 전투가 없었던 나머지 너무나도 섣부른 판단을 가지고 접근했다.
구멍 안에 존재했던 ‘72개의 절망’을 왜 반절밖에 죽이지 못했는가. 어떻게든 ‘절망을 토하는 구멍’이 닫혔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평화에 안주해버렸던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더는 관계없다는 식의 내 입장.
구멍이 언제 다시 열릴지에 대한 것.
당연하다는 듯.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