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비명헌터-363화 (363/366)
  • 외전 25화

    지의의 물음에 민이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곧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여기가 어딘진 알겠어요? 아니, 일단 본인이 누군진 알겠어요?”

    “…….”

    민의 눈동자가 바쁘게 좌우로 움직이며 병실을 훑었다. 누가 보아도 혼란스러워하는 그의 모습에 지의가 한숨을 내쉬곤 이불을 치우며 민 쪽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 행동에 민은 그를 경계하며 눈을 피했다.

    “이름이 뭐예요.”

    “…최민.”

    “직업은요.”

    “직장인.”

    ‘직장인이라고?’

    지의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는 곧 천천히 입술을 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각성했어요?”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괴로움]

    ―우득.

    민의 이가 아랫입술을 파고들어 기어코 피를 내고 말았다. 턱을 타고 흐르는 붉은 액체에 지의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뻗었지만 민이 그것을 쳐냈다. 손등이 붉게 물들 정도로 강한 힘이었지만 지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민의 마지막 기억이 그가 가장 괴로워했던 순간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드르륵.

    “무슨 일이에… 어?”

    때아닌 소란에 의사와 진우가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민과 지의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지의는 착잡한 얼굴로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검사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

    .

    .

    민의 기억을 확인하기 위한 상담이 시작됐다. 민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그는 묻는 대로 순순히 대답했다. 자신의 기억을 찾고 싶어서라기보단, 그냥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가벼운 일상 대화로 시작된 상담은 서서히 민의 무의식을 끌어내는 단계에 이르렀고, 덕분에 그의 기억이 사라진 시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지금의 민은 각성한 직후 방공호 안에서 죽음을 택하기로 한 시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최민 헌터가 국내 두 번째 S급이라고 했을 때 그냥 엄청난 동안이라고만 생각했어요.”

    “…….”

    “저런 사정이 있었을 줄은…….”

    상담실 밖에서 그들의 대화를 전해 듣던 진우가 중얼거렸다. 어느새 그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지의는 아무런 말 없이 상담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럼 지금 난 헌터인 건가?”

    “네. 베테랑 S급 헌터죠. 최민 헌터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람이 정말 많아요.”

    “…….”

    민은 입을 다물고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의는 그 침묵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아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구했음에도,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은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겠지.’

    ―끼익.

    상담실의 문이 열렸다. 상담사가 차트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 지의와 진우를 향해 이야기했다.

    “처음보단 많이 안정된 상태예요. 현재 상황도 완전히 이해했고요.”

    “기억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요?”

    “비각성자였다면 약물 치료든 뭐든 시도해 보겠지만, 최민 헌터의 경우는 그게 아니라서 문제예요.”

    상담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헌터들의 상태 이상은 일반 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어, 어떡하죠, 그럼……?”

    진우가 울상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구를 때쯤 지의가 숙였던 고개를 들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앗, 신지의 헌터……!”

    지의는 진우의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의 바로 앞까지 갔다. 민이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보자 지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문을 텄다.

    “지금 기분 어때요?”

    “…불쾌해.”

    민은 인상을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머리론 자신의 상황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대한민국의 두 번째 S급 헌터이며, 아이템 부작용으로 인해 기억을 잃은 상태라는 사실은 안 그래도 답답한 가슴을 더욱 짓눌렀다.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려 해봐도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졌다. 상태창을 띄워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외딴 섬에 갇힌 기분이었다.

    “저도요.”

    [발언력 상승]

    [구원자 ‘신지의’의 발언에 각성자 ‘최민’이 동요한다.]

    [발언 결과 : 당황]

    그때 지의가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민이 몸을 움찔 떨었고 곧 말을 덧붙였다.

    “네가 불쾌할 게 뭐가 있지?”

    “최민 헌터는 제 동료니까요. 동료가 불쾌해하는 상황을 반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바스락.

    지의가 민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최민 헌터의 기억은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확신해?”

    “네.”

    “방법은?”

    지의는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숙였다.

    ‘원래의 최민 헌터가 들었다면 기겁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지.’

    지의가 다시 몸을 일으킨 후 싱긋 웃었다.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따라와요.”

    민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지의를 빤히 응시했다. 병실에 있을 때만 해도 허둥대던 사람이 갑자기 여유를 찾은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민의 못마땅한 눈빛을 피해 지의가 상담실 문 쪽으로 발을 돌렸다. 민은 그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치지직.

    ‘응?’

    그때 지의의 주위로 비슷한 형체가 나타났다. 지의를 닮은 형체는 민이 어떻게 손을 쓰기도 전에 수 초 만에 사라졌다.

    그러자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던 안개가 잠깐 걷혔다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설명되지 않는 그리운 감정이 그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녹아 없어졌다.

    ―드르륵.

    민은 뭐에 홀린 양 일어나 지의의 뒤를 성큼성큼 따라갔고 스르륵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깜짝이야……!”

    “악!”

    지의가 목을 움츠렸다. 그의 외침에 문 주위에 있던 진우까지 덩달아 놀랐고, 두 사람은 동시에 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네 개의 눈동자가 일제히 제게 꽂히자 민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다.

    ‘이 인간을 왜 붙잡은 거지?’

    잡지 않으면 어딘가로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민의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지의가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어디 가는 거야?”

    “…최민 헌터 기억 찾게 해줄 장소요. 차로 갈 거니까 따라와요.”

    민은 혼란스러운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손은 안 놓을 건가?’

    지의가 민에게 잡힌 손목을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민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의를 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듯했다. 놓으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지의는 민에게 잡힌 채로 병원 1층으로 내려갔다.

    * * *

    지의와 민을 태운 리무진이 멈춰섰다. 지의가 먼저 내리자 창밖을 바라보던 민이 그의 뒤를 부지런히 따랐고,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던전이야?”

    “네. 감천 B급 던전이에요.”

    “왜 여길 온 건지…….”

    민이 성가시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의는 씁쓸하게 웃으며 직원을 향해 눈짓을 보내자 그가 아이템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이 던전에서 ‘그때’와 똑같은 순간을 만들어 내면 최민 헌터의 기억을 살릴 수도 있어.’

    구원자의 죽음을 목격한 자의 인과율, 지의는 의도치 않게 주변인을 지독하게 괴롭힌 그 인과율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민은 이곳에서 지의가 죽은 걸 목격했고, 이번 시간선의 지의에게 그것을 털어놓았었다.

    “제 이 기억과 죄책감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민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여전히 선명하게 맴돌았다. 지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몬스터에 밀려 절벽 밑으로 떨어질 준비를 말이다.

    ―끼이익.

    민의 스캔까지 끝나자 지의가 게이트를 열었다. 화려한 벽화로 뒤덮인 돌담길이 끝없이 쭉 뻗어 있었다. 지의는 자아를 손에 쥐며 좁은 골목길 안으로 먼저 발을 들였다.

    “제가 앞장 설게요. 앞뒤로 몬스터가 등장하니까 뒤를 조심하세요.”

    “알았어.”

    “스킬 어떻게 쓰는지 기억하세요?”

    “…대충은.”

    민은 손 끝에 가볍게 불꽃을 일으키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전투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전장을 누비던 감각만큼은 그의 몸에 남아 있었다. 지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콰드득.

    벽화 속 덩굴이 꿈틀거리며 지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당장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움직임에 지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 긴장 상태를 이어갔다.

    ―탕!

    열 걸음 쯤 더 이동하자 곧바로 덩굴이 튀어나와 지의의 목을 노렸다. 지의는 침착하게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고, 탄환이 덩굴 한가운데를 파고들어 그대로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리고 그 공격은 좁은 골목에서의 공방의 신호탄이 됐다. 벽화에 있던 화분과 온갖 꽃들이 지의와 민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붉은 불꽃과 새하얀 탄환이 번갈아 가며 그것들을 소멸시켰다.

    중간 보스 몬스터가 소환되는 장소에 다다를 때쯤 지의는 민을 흘긋 바라보았다.

    “뭐 떠오르는 거 없어요?”

    “없어. 계속 갑갑해.”

    민이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지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치지직.

    또 다시 지의의 환영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환영은 민이 반가운듯 밝게 웃은 후 지의에게로 흡수됐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민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중간 보스 몬스터가 나올 거예요. 행동이 민첩하니까 조심하시고요.”

    “알겠어.”

    찝찝함이 해결되지 못한 채 민은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타이밍이 관건이야.’

    그동안 지의는 자신이 몬스터에게 당해야 할 타이밍을 계산했다. 전투가 한참 이어질 때 난간 쪽으로 슬슬 이동해서 녀석의 기습을 유도하고, 녀석이 제 몸을 밀쳤을 때 그대로 난간 밖으로 떨어지면 된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미친 지의가 계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몬스터가 붓과 페인트 통을 들고 터덜터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페인트로 뒤덮인 얼굴이 지의와 민을 향한 순간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생겼다.

    ―쾅!!

    마을버스가 운석처럼 내리꽂혔다. 두 사람이 양쪽으로 물러나 피한 후 곧바로 지의가 자아의 방아쇠를 길게 당겼다. 널리 퍼진 음파가 공간 전체를 잡아먹어 강하게 진동했다.

    “키야아아악!!”

    몬스터가 비명을 지르며 지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쿵, 쿵, 쿵.

    전봇대와 커다란 페인트 통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동안 지의는 그것들을 피하며 난간으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어느새 중간 보스 포인트는 커다란 사물들로 뒤덮여 시야의 바로 앞에도 물건이 들이밀어진 상황이 되었다.

    ―탁!

    그때 지의의 몸이 뒤로 훅 넘어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감각과 함께 두 다리가 붕 떴고 지의가 보던 시야가 위아래가 바뀌었다.

    ‘됐어!’

    지의는 낮말을 듣는 새를 쓰지 않고 자신의 몸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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